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146화 (146/198)

“에드는 잘 잤어?”

“네, 전하는요?”

“음, 잘 자긴 했는데.”

대공은 에드의 반쯤 감긴 눈꺼풀을 바라보며 그의 허벅지에 자신의 다리를 걸쳐 끌어당겼다. 그 바람에 에드의 몸이 대공에게 더 가까이 다가붙자 그 위로 이불이 포옥 덮어졌다.

“조금만 더 자자.”

대공이 다시 눈을 뜬 건 정오쯤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옆부터 살핀 그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에드를 확인했다.

어디 불편한 곳은 없는지, 아픈 것은 아닌지 들여다보다가 하얀 피부 위에 남은 울혈들을 발견하고는 작게 혀를 찼다.

‘처음이고, 아이 때문에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결국 중간에는…….’

제대로 참지 못한 자신을 탓하던 대공은 에드에게 이불을 꼼꼼하게 덮어 주고 조용히 침대 밖으로 나왔다.

‘에드를 무탈하게 대공비 자리에 앉히기 위해서는 그의 임신이 신성하다는 것임을 알리는 게 먼저겠군. 그 다음엔 황제 폐하의 동의도 필요할 거고. 그리고 결혼식은…….’

거기까지 생각한 대공은 침대를 두 손으로 짚고 햇살 아래에서 편히 잠든 에드를 한참이나 내려다보았다.

‘에드, 지금 내 앞에 펼쳐진 길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지만 너와 함께한다면 그늘이라곤 한 점 없는 한낮처럼 환하고 따뜻한 날이 이어질 거야.’

고개를 숙인 대공은 달콤한 숨결이 흘러나오는 에드의 입술에 입을 맞댔다.

* * *

늦은 오후, 눈을 뜬 에드는 의자에 앉아 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로넨과 눈이 마주쳤다.

“에드, 잘 잤어?”

어째 평소와 달리 작게 소곤거리는 목소리에 에드는 살짝 의아해하며 입을 뗐다.

“제가 너무 오래 잤죠?”

“아니, 아프면 더 자도 되는데.”

로넨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에드가 눈을 뜬 게 기뻐 연신 발을 까딱거렸다. 어제 에드의 얼굴을 보지 못해서 울적했는데 오늘도 그의 잠든 모습만 봐야 했다면 아쉬웠을 터였다.

‘로아도 같이 인사했으면 좋았을 텐데.’

조금 안타까운 점이 있었지만 로넨은 아까 에드의 방에서 나서던 형과 마주쳤을 때 나눴던 대화를 상기했다.

〈에드는 조금 더 휴식을 취해야 하니까 로아는 나중에 인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리고 그가 일어나면 먹고 싶은 게 없는지 물어보고 주방으로 기별을 넣어 줘. 식사를 준비할 수 있게.〉

그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던 에드가 작게 마른기침을 했다. 형에게서 에드를 잘 지켜봐 달라는 부탁을 받았던 로넨은 잽싸게 의자에서 내려와 탁상 위에 놓인 물잔을 건넸다.

“에드, 여기.”

“감사해요, 도련님.”

로넨은 물을 마시는 에드의 주변을 계속 기웃거리며 말을 걸었다.

“에드, 배는 안 고파? 먹고 싶은 건 없고?”

“막 일어나서 그런지 아직 배가 고프진 않아요. 항상 다들 잘 챙겨 주셔서 그런지 먹고 싶은 것도 없고요. 도련님은 식사하셨나요?”

아플 땐 잘 먹어야 낫는다고 했는데, 로넨은 조금 조바심이 난 표정으로 답했다.

“응, 나는 아까 형이랑 배부르게 식사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보다 나중에라도 먹고 싶은 게 생기면 꼭꼭 나나 형한테 말해 주는 거야, 응? 에드, 약속해!”

침대에 바짝 다가붙은 로넨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에드도 손을 내밀었다. 제가 누워 있는 동안 마음을 졸인 로넨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네, 도련님께 꼭 말씀드릴게요.”

그에 활짝 웃은 로넨이 손가락을 건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가 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드가 기침을 하고 볼이 빨간 걸 보니까 감기에 걸린 게 틀림없어. 눈이 붓기도 했고.’

이미 에드는 부드럽고 도톰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혹시라도 한기가 들까 봐 로넨은 그에게 이불을 끌어 올려 주고, 벽난로에 장작도 더 집어넣었다.

‘그리고 또…….’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로넨은 아! 하며 말했다.

“잠깐만, 에드!”

방 밖으로 나온 로넨은 빠르게 복도를 내달렸다. 형에게 에드가 깬 것을 알리려던 참이었는데 마침 계단을 내려서다 대공을 만났다.

“형! 에드가 일어났어요.”

“안 그래도 궁금해서 올라가 보던 차인데 로넨 덕분에 걸음을 아낄 수 있었네.”

“그런데 많이 아픈 걸까요? 눈도 부어 있고 목소리도 안 좋아요. 그리고 별로 배도 고프지 않대요, 어떡하죠? 아무래도 감기인 것 같아요.”

로넨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은 대공이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답했다.

“로넨도 에드 걱정이 많이 되나 보구나. 그래도 너무 걱정하진 마. 곧 괜찮아질 테니까. 형이 기력을 회복할 수 있을 만한 음식을 준비할게. 로넨은 그동안 대화 상대가 되어 주지 않을래? 에드가 외롭지 않게.”

“네! 그건 자신 있어요.”

“고마워, 로넨.”

“그런데 로아는요, 아직 에드와 같이 놀면 안 될까요?”

“그건 조금 더 에드가 몸조리를 한 후 생각해 보자. 아, 그리고 방문을 여닫을 때나 그를 부를 때 어떻게 하자고 형과 약속했지?”

“에드가 놀라지 않게 조심조심이요!”

“로넨이 있어서 정말 든든해, 형이.”

로넨이 볼이 발그레 달아오르자 다시 한번 동생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은 대공이 말을 이었다.

“에드를 잘 부탁할게, 로넨.”

“걱정하지 마세요, 형!”

대공과 헤어져 다시 계단을 빠르게 오르던 로넨은 카디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손끝에 걸리는 쪽지를 발견했다.

“아, 이거.”

걸음을 멈추고 쪽지를 내려다본 그는 입을 작게 내밀었다.

소원?

1. 전하와 함께 놀기.

2.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소풍 가기.

3. 대공 전하께서 읽어 주는 동화책 들으면서 잠자기.

4. 전하와 함께 쿠키나 케이크 만들기.

…….

‘이게 에드의 소원이었는데…….’

언젠가 로아를 데리고 에드의 방으로 갔다가 그가 자고 있어서 말없이 나온 적이 있었다.

〈어, 로아야? 네 몸에 붙은 게 뭐야?〉

그리고 살금살금 복도를 걷다가 로아의 부들부들한 털에 조그마한 종이가 달라붙어 있는 걸 보았다.

종이에 적힌 게 에드의 글씨체인 걸 알아본 로넨은 그에게 돌려주려고 했지만, 내용을 전부 읽고 나니 종이는 저도 모르게 외투 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 이후 로넨은 에드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뒷동산으로 소풍도 가고 형과 에드가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걸로는 부족했던 걸까?

로넨은 최근에 살이 빠진 에드를 떠올리고는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도 에드가 아프다니.”

입 안에 바람을 넣고 볼을 부풀리던 로넨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렇다면 에드에게 더 행복한 시간을 선물해 주면 되지!’

몸도 마음도 아프지 않게!

두 주먹을 불끈 쥔 로넨은 쪽지를 주머니에 잘 챙겨 넣고 에드의 방으로 향했다.

방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간 로넨은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 앞에 서 있는 에드를 보고 뽀르르 달려갔다.

“에드, 일어나면 아픈 거 아니야?”

“걱정 많이 하셨죠, 도련님? 이제 다 나았으니까 괜찮아요.”

“정말?”

작게 고개를 끄덕인 에드는 책상에 올려져 있던 선물 상자를 로넨에게 건넸다.

“이게 뭔데, 에드?”

“어제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생신을 정말 축하드려요, 로넨 도련님.”

“……어.”

로넨은 눈을 깜빡거렸다.

어제는 북부 성에서 파티가 열렸다. 사람도 북적이고 맛있는 음식이 그득한 연회장에서 주인공은 자신이었다.

백작 저에 있을 때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생일 축하 인사도 많이 들었고, 형과 함께해서 더 즐거운 자리였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생일 파티를 준비한 에드는 보이지 않았다.

파티가 진행되는 내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 로넨은 나중에서야 에드가 방에서 자고 있다는 걸 형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에드는 이미 내게 큰 선물을 줬는걸?”

“그런가요?”

“어! 내 생일 파티를 준비한 게 에드라며? 형에게 다 들어서 알아!”

로넨이 품에 안은 선물을 차마 풀어 보지도 못하고 대답하자 에드가 부드럽게 답했다.

“저 혼자만 한 일이 아니라 대공 전하를 주축으로 북부 성의 모든 사람들이 애를 쓴 일이에요.”

“…….”

“그러니 도련님께서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고마움을 느끼셨다면요. 그걸 저에게만 표현하는 게 아니라 파티 준비를 하느라 노력한 사람들 모두에게 전하면 좋을 것 같은데 도련님 생각은 어떠세요?”

에드의 말에 집중하던 로넨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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