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142화 (142/198)

조금 더 에드의 얼굴을 쓰다듬던 대공이 물었다.

“에드, 몸이 안 좋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 홑몸도 아닌데 그러다 큰일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려고?”

“네?”

“임신을 축하드립니다.”

곁에 있던 주치의의 축하 인사를 들은 에드는 어? 하고 눈동자를 굴렸다.

“……임신이요? 누가요?”

“누구긴 누구겠나? 자네지.”

주치의의 대답에 에드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이, 이게 뭐지? 몰래카메라 같은 건가?’

대공의 손에 들린 분홍색 아이 옷과 하늘색 아이 옷을 발견하자 더욱 의아해졌다.

“아, 이거. 너무 이른 것 같지만 그래도 미리 준비하면 좋을 것 같아서. 에드는 어떤 옷이 더 나을 것 같아?”

“……네? 제, 제가 임신이요?”

에드가 어버버 하자 대공이 주치의에게 눈짓했다. 그 시선을 알아챈 주치의가 밖으로 나가자 대공이 침대에 걸터앉았다.

사실 그는 지금 평온함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연회장에서 잠든 에드를 안아 방으로 데려온 이후 지금까지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에드는 잠깐 잠든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는 파티가 끝날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대공은 급히 주치의를 찾아 불렀다.

주치의가 미간에 깊은 주름을 만들어 내며 에드의 온몸 구석구석을 진찰하다가 고개를 갸웃하자 대공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도대체 에드가 쓰러진 이유가 뭔가?〉

뭔가 입을 떼려던 그는 다시 신중하게 에드를 진찰한 후 한참 만에 입을 뗐다.

〈대공 전하.〉

〈그래, 병명이 무엇이지?〉

〈그게 저…… .〉

뜸을 들이는 그의 모습에 큰 병인가 싶어진 대공이 더 자세히 물으려던 찰나였다.

〈아무래도 임신을 한 것 같습니다.〉

주치의가 입을 열었다. 이에 대공은 잘못 들은 건가? 싶어졌다.

〈……뭐? 임신? 누가? 에드가?〉

〈네, 남자인 그가 임신을 하다니, 이를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틀림없는 임신입니다.〉

대공은 지친 듯한 에드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 모습이 동굴에서 봤던 그때와 겹치면서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아스넬,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렴. 우리 일족은 대대로 단 한 번뿐이지만 진심으로 원할 때 사랑하는 이에게 용의 축복을 내려 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때때로 이 축복은 당사자가 가장 원하는 소원을 들어준단다.〉

소원이라면…… 대공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버지가 용의 축복으로 이루신 소원은 가장 강한 전사가 되어 마물로부터 북부를 지키는 거라고 하셨지.’

……그렇다면 에드의 소원은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그런 것이었을까?’

에드의 앞머리를 살살 쓸어 넘긴 대공은 의사에게 말했다.

<기이한 일이 아니라 용의 가호가 함께한 ‘기적’이군.〉

〈……네?〉

〈이건 내 피에 도는 용의 힘이 에드의 염원과 결합해 나타난 축복이야.〉

대공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주치의가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가 두 사람이 어떤 식으로든 결속을 맺어, 그게 기적으로 나타났다는 걸 깨닫고는 환하게 웃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대공 전하.〉

만세를 부를 듯이 외치는 주치의에게 대공은 쉿, 하고 목소리를 줄일 것을 명하며 잠에 빠진 에드의 얼굴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그대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조금 더 경과를 지켜보며 임신이 확실한지 확인해 보았으면 해. 그리고 에드의 의사도 들어봐야 하니 이 사실은 당분간 다른 사람들에게 함구하게.〉

대공은 에드가 애틋하고 애처로웠다.

〈용의 축복은 그 사람이 원하는 가장 근원적인 바람을 들어주는 거였을 텐데.〉

대공은 이제야 에드가 왜 자신의 고백을 들었을 때 그렇게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눈빛을 했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대공은 깨어나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배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던 에드의 손등을 덮으며 깍지를 꼈다.

“에드,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에드는 제 상태를 살피는 대공의 시선에 축 처지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런 에드를 지켜보던 대공은 그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있을 수 있게 등에 베개를 대 주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에드는 배려심이 느껴지는 대공의 손길에 조금 가슴이 간질거렸다. 대공은 에드의 이런 상태를 모르는 듯 그가 한결 편안해진 것만을 확인하고 침대 옆에 앉았다.

“에드, 그럼 우선 우리 황족에게 내려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게.”

대공이 꺼낸 이야기는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용의 피를 잇고 태어났다는 황족들에게서 전해져 내려온 일화, 대공을 오랜 시간 괴롭혔던 고통이 사실은 그 피 때문에 일어난 대가라는 것 등, 많은 이야기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에드가 원작에는 없던 이야기들을 전부 듣고 창밖을 봤을 때는 이미 새카만 밤이 되어 있었다.

‘자신이 가장 원하는 소원이라면.’

내가 대체 언제, 무슨 소원을 빈 거지? 하며 고개를 살짝 갸웃하던 에드는 아, 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꿈에서 멜라를 만났던 일이 떠올랐다.

〈……제 소망이요?〉

〈그래, 선유야. 네가 이곳에 오기 전부터 바라 왔고 지금도 바라고 있는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소원.〉

〈어, 제가…… 원하는 건…….〉

희미하게 남은 잔상에 에드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럼 그때 내가 말한 소망이 임신을 하는 거였다고?’

사실 에드는 대공에게 처음 황족들의 일화를 듣고는 자신이 바라던 소망이 뭔지 어렴풋이 짐작하기는 했다.

빙의를 하기 전에 고아로 살았던 자신이 로넨과 대공을 만나면서 생각했던 게 있었던 것이다.

‘나도 이렇게 따스한 가족이 있으면 좋겠어.’

에드는 대공과 로넨을 좋아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그들과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았다.

‘내 역할은 대공 전하와 로넨이 꾸리는 가정을 옆에서 보고 지키며 그들의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우는 것까지야…….’

원작의 엑스트라였던 자신의 운명으로는 이런 조연의 삶이 딱 맞는다고 생각했으니까.

에드는 언젠가 자신이 했던 생각을 떠올리며 배를 만지작거렸다.

‘……임신이라니.’

에드는 이곳이 제가 빙의 전에 봤던 다른 장르 소설처럼 남자가 임신이 가능한 오메가버스 세계관이 아니었기에 아직도 제가 임신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조금 멍해 보였던 그에게 대공은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에드의 얼굴색이 조금 파리해지자 대공은 침대 옆 탁상에 놓여 있던 주전자를 들어 컵에 물을 따라 건네줬다.

“에드, 많이 놀랐지?”

“아…….”

그가 건네준 물을 조심히 받아 든 에드는 대공의 눈가 밑이 어둑해진 걸 발견했다.

그제야 지금 이 사태가 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에드는 마음속으로 제 머리를 두어 번 때렸다.

‘아직 나와 대공 전하 사이의 고백에 대한 매듭도 제대로 지어지지 않았는데 갑자기 아이가 생기다니…….’

갑작스러운 임신은 자신에게나 그에게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저, 그런데 대공 전하.”

에드는 자신의 표정에 집중하던 대공의 시선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말을 이었다.

“괜찮으신가요?”

“뭐가?”

“제가 임신을 했다는데, 그게 진짜라면…….”

“응, 그런데?”

“그건 이상한 일이잖아요.”

남자가 임신을 하다니. 처음엔 놀란 마음에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큰일이었다.

“대공 전하께서 용의 축복에 대해 말씀해 주시긴 했지만, 그래도 남자인 제가 임신한 일이 사람들에겐 이상하게 생각될 수도 있고요.”

“…….”

“그러다 이 일로 대공 전하의 입지에 금이 가거나 하면 안 되잖아요.”

“……그게 걱정이라고?”

“네?”

“예상치도 못한 임신을 해서 무섭다거나 에드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 하고 억울한 생각은 들지 않아?”

대공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아무리 이곳이 소설 속이라고 한들 ‘임신을 했다’라는 사실 자체가 갖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고, 심지어 자신은 남자의 몸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에드는 제 안에 움튼 새 생명이 너무 기특하고 예뻤다. 가족이, 자신의 피를 이은 아이가 생길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너무 신기하며 기분이 묘했다.

‘이건 아마도 이 아이가 대공 전하와 나의 아이이기 때문이겠지?’

“걱정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건 저보다는 대공 전하의 입지 문제나 아이가 제 몸에서 잘 자라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인지라…….”

아직 납작하기만 한 제 배를 다시 살살 문지르며 대답하던 에드는 말을 미처 다 잇지 못했다. 대공이 에드를 와락 감싸 안았기 때문이었다.

“에드.”

“네? 대공 전하.”

“북부 성의 주치의 실력은 제국에서 알아주지만, 그래도 에드만 담당하는 의사를 데리고 와서 곁에 두자. 임산부를 진찰해 본 경험이 많은 사람을 당장 알아봐야겠어. 에드의 몸과 아이의 건강, 모두 중요하니 검진도 다시 해 보고.”

“…….”

“그리고 조금 변명해 보자면, 표현을 한다고 했는데 부족했던 모양이야. 나는 에드가 내 아이를 가진 것이 정말 기쁘고 행복해.”

대공이 몸을 살짝 떼며 말하자 에드는 머리가 어질어질한 기분이었다.

와락 끌어안는 힘도 그렇고 갑자기 훅, 와닿은 대공의 체향도 그렇고. 무엇보다 그와 자신의 아이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모습에 가슴이 홧홧하게 타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까 아이 옷들을 보여 주지 않았을 거야. 그건 어머니께서 로넨을 가졌을 때 준비하셨던 것이거든.”

놀란 에드가 눈을 크게 떴다. 대공이 보여 줬던 옷들에 그런 사정이 있는 줄 몰랐다. 손을 뻗은 에드는 침대 한쪽에 잘 놓인 옷들을 눈높이로 들어 올려 보았다. 마치 인형 옷 같이 작은 사이즈의 분홍색과 하늘색 옷이 귀여웠다.

흐음, 작게 웃는 기척에 옷에서 눈을 뗀 에드가 대공을 바라보았다.

“대공 전하, 어머니께서 이 옷을 준비하시던 모습이 기억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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