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141화 (141/198)

이미 날이 많이 늦었는지 북부 성과 이어진 길에는 인기척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고 어둠만이 가득했다.

‘북부의 성과 민가 주변은 기사단이 특별히 치안에 신경 써서 안전하다는 걸 알지만 어둑하니까 어째 으스스하네.’

바스락.

그 순간 등 뒤에서 무언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저 말고 북부 성으로 향하는 길을 걸을 만한 사람이 없었기에 에드는 이를 애써 바람결에 흔들린 나뭇가지 소리라고 생각하며 무시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점점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지자 에드는 결국 삐걱거리며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막상 뒤돌자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안도감에 가슴을 쓴 것도 잠시, 에드는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떨리는 손으로 마법 등을 높이 들었을 때였다. 그 순간 검은 실루엣이 그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에 너무 깜짝 놀란 나머지 에드는 눈까지 감고 뒤로 넘어지며 발버둥쳤다.

“으아아아악!”

한참을 그렇게 발버둥을 치고 있는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의문을 가졌다.

“뭐, 뭐지?”

후룹. 후릅.

그 순간 얼굴에 느껴지는 축축한 무언가의 느낌에 식겁한 에드는 번쩍 눈을 떠 그 상대가 누군지 확인했다.

“……어? 조이?”

대공의 애마인 조이였다. 녀석이 혼자 이곳에 있는 것이 의아해진 에드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 전하께서 같이 오신 게 아닐까?’

하지만 마법 등을 아무리 비춰 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에드는 어쩐지 드는 아쉬운 기분에 괜히 말의 미간을 긁어 주며 물었다.

“왜, 너 혼자 여기 있어?”

에드의 질문에도 조이는 오랜만에 만난 그가 그저 반갑다는 듯이 얼굴 이곳저곳을 기다란 혀로 핥았다.

점점 축축해지는 얼굴에 위기감을 느낀 에드가 슬슬 거리를 벌리며 혼잣말했다.

“혼자서 마구간을 탈출한 건가? 입이 무거운 이르텔 마저 영물이라고 할 정도였으니 아예 방목하는 걸 수도 있겠네. 어쨌든 돌아가는 길 너랑 같이 가면 외롭지는 않겠다. 그렇지, 조이?”

에드의 손길을 즐기던 조이가 이내 살짝 몸을 숙이더니 머리로 그를 툭툭 쳤다.

‘나 보고 타라는 거야?’

에드가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자 조이가 고개를 돌려 제 등 쪽을 흘낏거렸다.

“나를 데리러 온 게 맞는구나. 고마워. 덕분에 편하게 가겠다.”

에드가 자신의 등에 올라타 자리를 잡자 조이가 사람이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이것보다 훨씬 빠르게 달릴 수 있으면서도 부러 천천히 이동하는 녀석을 보며 에드는 어쩐지 조이가 배려를 해 주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10분, 20분이 지나자 말고삐를 쥐고 있던 에드의 고개가 점점 꾸벅꾸벅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에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정신을 차리려고 했지만 무거운 눈꺼풀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에드, 편히 기대.”

‘어……? 꿈인가? 전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자신의 등 뒤에서 들리는 대공의 목소리에 놀란 에드가 선잠에서 깨려고 하자 눈앞에 밝은 빛무리가 어렸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푹 자, 에드.”

부스럭, 부스럭.

몸에 부드럽게 감기는 이불을 끌어안으며 몸을 뒤척이던 에드는 이내 의아함에 눈을 번쩍 떴다.

“……어? 잠깐만. 내가 언제 방까지 온 거지? 분명히 조이를 타고 성에 가던 중이었던 거 같은데?”

아직 잠이 덜 깬 눈으로 주위를 빠르게 훑어본 에드는 자신이 제 방 침대에 누워 있는 상황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다.

‘겉옷도 갈아입혀져 있는 데다 어쩐지 몸도 뽀송뽀송한 거 같은데……?’

아리송함에 연신 머리를 굴려 봤지만 끝내 답을 찾지 못한 에드는 침대 밖으로 나와 로넨에게 줄 선물 상자가 책상 위에 놓인 걸 확인하고는 욕실로 들어섰다.

“진짜 뭐지?”

얼굴에 물을 끼얹으며 세수를 한 에드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턱 아래로 똑, 똑 떨어지는 물기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로넨의 선물을 사러 마을로 내려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조이를 만났고…… 그 이후엔 전하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세면대를 짚은 에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혹시 대공 전하께서 나를 방까지 데려다주신 건가?”

에드가 대공의 고백에 답을 미룬 것은 거절을 하고 나면 이전처럼 그를 이전처럼 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고백을 거절한 사람을 곁에 두는 건 껄끄러운 일이겠지.’

전하의 성정상 나를 눈에 보이지 않게 구석에 처박지는 않겠지만 괜찮다고 하면서도 나를 피해 다니실 테니.

그런데 만약 제대로 고백을 거절하기도 전에 전하께서 내 앞에 모습을 내비치기 어색해서 뒤에서 살피는 거라면……. 만약 어젯밤 전하께서 나를 보기가 겸연쩍어 살며시 방에 데려다준 거라면…… 그렇게 생각하자 에드는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난 것 같았다.

“…….”

이어 대공과 함께했던 날들이 눈앞에 떠오르자 눈을 내리깐 에드는 세면대에 얼굴을 묻었다.

찰박찰박.

세면대에 가득 담긴 물로 상념을 씻어 내기라오 하듯이 고개를 흔든 에드가 머리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물이 뚝뚝 흐르는 얼굴이 비치는 거울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오늘은 로넨의 생일이니 이런 생각은 하지 말고 파티에만 신경 쓰자.’

* * *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방 밖에서는 벌써 파티 준비가 한창이었다.

응접실에 내려와 상태를 확인한 에드는 일찍 일어나 파티 준비를 하는 사용인들에게 다가갔다.

“마리, 만찬 때 쓸 은 식기를 조금 더 넉넉하게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았어, 에드.”

“케이, 대공 전하와 로넨 도련님의 옷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확인하고.”

“네, 집사님.”

“그리고 화원에 연락해서 장미 화분을 추가한다고 전해 줘.”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시사항을 다 알려 줘도 케이가 자리를 뜨지 않자 에드가 의아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혹시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

“그게요, 집사님. 어디가 안 좋으세요?”

“어?”

“아까부터 머리를 자꾸만 이렇게, 이렇게 누르시는 데다 안색도 좋지 않아서요.”

케이가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며 하는 말에 에드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 요즘 과로를 해서 그런가 봐. 단순 피로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네, 알겠습니다!”

케이가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에드는 손으로 이마를 짚어 보았다.

‘……열이 조금 있는 건가?’

에드는 차가운 물을 마시며 가볍게 손부채질을 했다. 그때, 쌔애앵 달려온 진이 화가난 주방장의 상태를 알렸다.

“집사님, 주방장님이 딸기 상태가 좋지 않다며 사기꾼과 거래했다고 이렇게 화가 나셨는데 어떡하죠?”

가볍게 머리를 짚은 에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내가 주방에 내려가 볼게.”

빠르게 움직인 에드는 잽싸게 계단을 내려섰다.

그런데 그 순간, 눈앞이 흐릿해졌다.

‘왜 이러지? 피곤해서 그런 건가? 하지만 분명히 푹 자고 일어났는데…… 연회장까지만 둘러보고 잠깐 쉬어야겠다.’

작게 고개를 저으며 탁, 탁 손바닥으로 가볍게 뺨을 두드린 에드가 움직임을 서둘렀다.

연회장을 살피기 전에 주방 일을 해결해야겠다고 판단한 에드가 식당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는 들어서자마자 확, 풍기는 음식 냄새에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갑자기 음식 냄새가 왜 이리 역하지?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

흠흠, 작게 목을 가다듬은 에드는 주방으로 들어서려고 했으나 토기를 참지 못하고 결국 발을 멈췄다.

그때 주방 밖으로 나오던 에린이 벽에 몸을 기댄 채 손으로 입을 막고 있는 에드를 발견했다.

“어? 에드,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 아니야. 에린. 그냥 잠시 현기증이 나서.”

“어디 아픈 거 아니야? 못 본 새 왜 이렇게 수척해졌어?”

에린의 걱정 어린 말에 에드는 고개를 작게 저었다.

“아프기는. 요 며칠 바빠서 그래. 주방장님은 어때?”

다행히 주방장의 화가 풀렸다는 에린의 대답에 마음이 놓인 에드는 이어 몇 마디를 더 나누고는 연회장으로 걸음을 뗐다. 그리고 이것저것을 확인하다가 잠시 의자에 앉았다.

그러다 눈을 떴을 때, 에드는 어느새 제 방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대공과 주치의가 머리를 맞댄 채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보며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싶어진 에드가 입을 뗐다.

“대공 전하.”

“에드, 괜찮아?”

“아, 네. 괜찮습니다.”

에드는 눈을 깜빡이며 이마에 손을 짚고 있는 대공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걱정스러워하던 대공의 얼굴이 살짝 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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