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125화 (125/198)

“그럼 그냥 전부 다 살게!”

로넨이 색깔별로 산 솜사탕을 하나씩 받은 일행은 입에서 사르르 녹는 간식을 먹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진짜 맛있다.”

“맞아요, 도련님. 단 걸 좋아하지 않는데 이건 자꾸 입에 들어가요.”

제이논이 홀린 듯이 중얼거리자 텐스가 그의 솜사탕을 한 움큼 떼며 히죽 웃었다.

“악! 텐스.”

“너, 그렇게 먹다가 또 배탈 난다.”

앞서가는 텐스에게 대거리를 하며 뒤쫓던 제이논이 이내 사람들을 헤치고 되돌아왔다.

“도련님, 아까 보고 싶다고 하신 용사를 주제로 한 그림자극이 곧 시작할 것 같아요.”

“정말? 그럼 빨리 가자.”

“벌써 텐스가 표를 구했으니 자리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 다행이다.”

그림자극은 주제가 어른보다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줄을 오래 설 필요는 없었다.

“도련님, 이쪽입니다!”

미리 자리를 잡은 텐스가 손을 흔들며 큰소리로 그들을 불렀다. 그러자 얼른 달려간 제이논이 텐스의 옆구리를 쿡, 쿡 찌르며 그의 입을 손으로 턱, 막았다.

“목소리가 너무 크다고, 텐스.”

“이 정도는 괜찮으……읍.”

“도련님, 여기 안쪽으로 앉으세요.”

에드는 그들이 투덕거리는 사이 로넨을 이끌어 자리에 앉혔다. 그러자 곧이어 환하게 켜져 있던 마법 등이 꺼지며 그림자극이 시작되었다.

불빛에 이리저리 바뀌는 그림자에 관객들이 숨을 죽이며 관람하는데 로넨이 고개를 기울이며 에드에게 속삭였다.

“형도 함께 나와서 구름 과자도 먹고 연극도 보면 좋았을 텐데, 너무 아쉽다.”

에드도 로넨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저도 모르게 그의 손을 꽉 붙잡으며 동의를 표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도련님.”

눈은 무대를 향해 있었지만 생각은 북부 성에 있는 대공에게 닿아 있던 터라 연극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 * *

연극을 다 본 이후에도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보니 해가 많이 지나 있었다.

“도련님, 춥지 않으신가요?”

“어, 괜찮아. 에드는?”

햇빛이 사라지며 부쩍 떨어진 기온에 에드가 로넨에게 외투에 달린 모자를 씌워 주었다.

“네, 전 괜찮습니다.”

“응, 그러면 우리 저기 한 군데만 더 갔다가 돌아가도록 할까?”

에드는 로넨이 손으로 가리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환한 불이 켜져 있는 노점은 아기자기한 장신구를 파는 곳이었다.

“야시장을 더 안 보고 거기만 보셔도 괜찮으시겠어요? 아직 구경하지 못한 곳이 많은데요.”

텐스가 주위를 훑으며 대꾸하자 로넨이 볼을 긁적였다.

“밤이 깊어지면 더 추워질 테니 성에 일찍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야시장은 며칠 더 열리니까 내일 또 나와서 봐도 되잖아. 제이논도 그렇고 에드도 그렇고 많이 추워 보여.”

환한 빛과 차가운 바람을 뚫고 축제를 즐기며 들뜬 사람들, 달콤한 냄새를 흩뿌리는 색색의 간식 등, 눈을 돌리면 로넨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 참 많았다. 그런데도 로넨은 그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텐스가 로넨을 바라보며 제 가슴을 탕, 탕 두드렸다.

“그럼 내일도 제가 도련님과 함께하며 북부를 안내하겠습니다!”

“저도요, 도련님!”

의욕이 넘치는 그들을 보며 로넨이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은 아침 일찍 움직여서 못 해 본 거 다 하자!”

다 함께 마지막 목적지로 향해 가던 중 제이논이 로넨의 곁에 바짝 붙으며 물었다.

“그런데 도련님, 장신구 노점에 들르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그냥…… 형은 평소에도 바빠서 밖에 못 나가니까. 조그마한 선물이라도 주고 싶어서.”

“전하께요?”

“나는 이번 외출로 추억이 생겼는데 형은 아니잖아. 그래서 추억 대신할 겸…….”

제이논이 모자 끝을 만지작거리며 설명하는 로넨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도 대공 전하께 드릴 선물을 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씩 선물해 드리죠!”

“응, 고마워. 형도 분명 좋아할 거야.”

노점에 도착한 이들은 곧이어 눈에 불을 켜고 전하께 드릴 선물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어떤 종류를 전하께 선물해 드리고 싶으세요, 도련님?”

“음, 그게 말이야. 형이 책상이나 테이블에 놓고 자주 볼 수 있는, 그런 기념품이었으면 좋겠어.”

“그럼 이건 어떠세요? 크리스털을 백조 모양으로 깎은 건데, 눈이 녹색이라 보고 있으면 차분해지는 것 같습니다.”

“와, 예쁘다!”

텐스가 손에 작은 크리스털 백조를 올리며 로넨의 눈앞에 보이자 제이논이 그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보다 이건 어떠세요, 도련님? 구 형태의 장난감이 올라가 있는 오르골인데요, 흔들어서 내려놓으면 구 안의 하얀 가루들이 떨어지는 것이 마치 눈이 내리는 북부의 풍경 같지 않나요?”

“이것도 정말 멋지다!”

에드는 로넨이 장신구를 고르는 동안 노점 안쪽 유리관 안에 진열된 다양한 브로치를 구경했다.

‘내가 드리는 선물도 전하께서 기뻐해 주실까?’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은 에드는 지갑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고민했다.

장식장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자 주인장이 다른 건 크리스털로 만든 장식품이지만 여기 있는 건 수도에 있는 귀족을 대상으로 한 액세서리라 진짜 보석을 사용했다며 이것저것 추천해 줬다.

에드는 그 설명을 들으며 마음을 굳혔다.

‘그럼 전하의 눈 색과 비슷한 이걸로 하나만…….’

에드는 붉은 루비가 박힌 작은 브로치를 사려고 했다.

그때 전하께 드릴 선물을 산 먼저 산 제이논이 그에게 다가왔다.

“붉은 보석 브로치는 귀족들이 마음이 있는 상대방에게 호감을 표할 때 사는 건데. 에드 누구 좋아하는 사람 있었어?”

“……네?”

“좋아하는 사람한테 주려던 거 아니었어? 아, 옛날에 중앙에서 유행했던 거라 에드는 모르겠구나.”

갑작스러운 제이논의 발언에 에드는 자신의 심장이 빨라지는 걸 느꼈다. 브로치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았지만 어쩐지 그는 대공에게 드릴 이 선물을 더더욱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제이논에게는 그냥 예뻐서 샀다고 둘러댄 에드는 브로치가 든 상자를 품속에 소중히 안아 들었다.

* * *

북부 성에 돌아갔을 때 대공은 밖에 나와서 로넨의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형!”

마차에서 폴짝 뛰어내린 로넨이 대공에게 달려가자 그를 안아 든 대공이 말했다.

“로넨, 야시장은 잘 다녀왔어?”

“네, 엄청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일찍 들어온 것 같은데.”

“날이 추운 것 같아서요. 대신 내일은 일찍 나갔다가 늦게 들어올 거예요! 두툼한 외투를 챙겨서요!”

“오늘 많이 추웠어?”

“전 괜찮았는데요, 에드와 제이논이 추워 보였어요.”

대공은 시선을 들어 뒤에 선 에드와 제이논을 바라보았다.

“그럼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본성으로 들어오자 추운 밖과 훈훈한 내부의 온도 차이에 에드의 몸이 가볍게 떨렸다. 그걸 본 대공이 로넨을 내려놓고 에드의 손목을 잡았다.

“함께 따스한 응접실에서 몸 좀 녹이고 방으로 올라가는 게 좋겠군.”

대공이 앞서자 로넨이 그 뒤를 쫄래쫄래 따르며 킥킥 웃었다.

“형! 그렇게 가니까 에드가 꼭 우리 가족 같아요!”

그에 에드의 볼이 빨개지자 대공이 뒤를 돌아보며 웃었다.

“그럼 로넨에게도 작은 형이 생긴 건가?”

“아앗, 그럼 저는요? 도련님?”

로넨의 뒤를 따르던 텐스가 묻자 로넨이 활기차게 답했다.

“물론 텐스도! 어, 그런데 그렇게 되면 텐스가 에드의 형이 되는 건가?”

로넨의 순수한 의문에 작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대공이 응접실 안으로 들어섰다.

에드는 온몸을 감싸는 따스함에 볼을 손으로 문지르다가, 모두가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자 여전히 손목을 놓지 않은 대공의 곁에 앉았다.

타닥타닥, 장작이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한동안 화기애애한 대화가 이어졌다.

꼬치구이나 그림자극 등의 이야기를 신나게 꺼내 놓던 로넨이 아, 하며 손뼉을 짝 쳤다.

“참, 형. 이거요.”

로넨이 포장된 선물꾸러미를 건네자 대공이 물었다.

“이게 뭐지, 로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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