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124화 (124/198)

“잠깐만요! 제이논! 그래도 구두는 신고 가야죠!”

“아악, 전하의 명령을 어기고 밖에 나온 것도 모자라 거기서 꾸벅꾸벅 조는 모습까지 보이다니!”

에드는 잠결에 제이논이 벗어 둔 구두 한 짝을 챙기며 그를 뒤따랐다.

그런 둘을 보며 텐스가 외쳤다.

“제이논! 에드! 그 방향이 아니잖아? 식당으로 가야지!”

텐스의 지시에 제이논과 에드가 빠르게 방향을 다시 잡았다.

“아으, 숨차.”

식당 앞에 도착하자 옆구리를 짚은 채 숨을 몰아쉰 제이논이 문을 열었다. 그러자 로넨이 품에 안은 로아의 발바닥으로 대공의 손등을 톡, 톡 찍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형, 온실에 심은 딸기 보셨어요?”

“보고 왔지. 우리 로넨처럼 아주 예쁘게 잘 심었던데? 나중에 심은 모종에서 큰 딸기가 맺히면 성의 모두와 나눠 먹자.”

로넨과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대공을 조심스레 살펴보던 제이논이 에드에게 속삭였다.

“지금이야, 에드. 전하의 기분이 좋아 보이니까 어물쩍 들어가 앉자.”

에드는 입매를 끌어 올린 채 부드럽게 웃는 대공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제이논이 팔을 툭, 쳐 오자 뒤늦게 반응했다.

“아, 네.”

제이논과 함께 움직인 에드는 대공에게 인사를 꾸벅한 뒤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아까 보드랍게 웃던 대공의 얼굴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려서 자꾸만 대화의 흐름을 놓쳤다.

‘아직 잠에서 덜 깨서 그런가.’

왜 이렇게 멍하고 집중이 안 되지?

“네? 외출이요?”

그 순간, 옆에 앉은 제이논이 목청을 꽥 높였다. 식탁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에드가 고개를 들자 대공이 보드랍게 웃으며 로아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래, 그동안 급한 일정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했으니까. 이참에 다들 밖에 나가서 휴식을 즐기고 오도록 해. 마침 중앙 마을에서 야시장이 열리고 있으니 그 기간에 나가서 놀다가 저녁때 들어오면 되겠군.”

“하지만 전하, 저는 북부 성에서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는데요.”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하는 일인가?”

끄응, 하며 제이논이 테이블에 머리를 기대자 로넨이 로아의 앞발을 잡아 번쩍 들며 물었다.

“형, 저도 같이 나갈래요!”

대공이 로넨의 품에 안긴 로아를 챙겨 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넨도 그간 열심히 했으니까 당연히 같이 나가야지. 다만 이렇게 다 같이 외출하면 성을 지킬 사람이 없으니 로아가 우리 대신 이곳을 지키는 걸로 하자.”

대공의 말이 끝나자마자 로아가 제게 맡기라는 듯이 우렁차게 울었다.

* * *

밖을 내다보던 로넨이 마차가 비탈길을 내려가기 시작하자 입을 뗐다.

“그런데 제이논, 야시장을 구경하러 가는 건데 벌써 나가도 돼? 야시장이면 밤에 열리는 거 아니야?”

“그게요, 본격적인 시장은 밤에 열리지만 아무래도 다양한 상단이 모이다 보니 그전에도 구경할 게 많거든요. 대표적인 걸로 유랑단이 있죠.”

“유랑단?”

“연극이나, 서커스 그리고 로넨 도련님이 좋아하실 만한 인형극 같은 걸 하며 돌아다니는 상인들을 유랑단이라고 부릅니다.”

“아하, 그렇구나.”

“네, 그리고 편의상 야시장이라 하지만 상단이 오는 경우가 별로 없는 북부다 보니 오늘 같은 날은 벌써 장사진을 이루고 있을 겁니다.”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다.”

기대가 어린 목소리로 대답을 한 로넨은 맞은편에 앉아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에드의 눈앞에 작게 손을 흔들었다.

“에드.”

그에 제이논과 로넨의 대화를 들으며 마을에 도착해서 뭘 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던 에드가 시선을 들었다.

“아, 네. 도련님.”

“에드는 야시장에서 하고 싶은 일 있어?”

“음, 그게요. 갑작스럽게 나온 휴가라 아직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도련님은 어떠세요?”

“난 일단 전에 먹었던 꼬치구이 같은 음식이 먹고 싶어. 여기에도 있겠지?”

“물론이죠, 이런 행사 때 길거리 음식은 절대 빠질 수 없고, 빠져서도 안 되는 요소니까요.”

“정말 기대된다!”

신이 난 로넨이 밖을 내다보며 입에 잔뜩 바람을 머금었다. 에드는 그 모습을 보며 오늘 하루 정말 즐겁게 놀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야시장에 도착하자 로넨과 에드, 제이논은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 눈만 끔뻑였다.

로넨이 말한 길거리 음식도 있고 여러 가지 연극이나 볼거리가 잔뜩 있었지만, 그 종류가 너무 많다 보니 도리어 막막해졌다.

그나마 무리 중에 북부에 대해서 잘 아는 제이논은 성에 틀어박혀 일에만 몰두해 온 터라 이렇게 아무 예정 없이 밖에 나온 적이 없었다.

“와……. 벌써 이 정도로 사람이 몰릴 줄이야.”

제이논의 낮은 탄성에 말없이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로넨이 뭔가 큰 다짐을 한 표정으로 에드의 옷소매를 붙들었다.

“에드,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절대 떨어지면 안 돼.”

“네, 도련님께서도 이쪽으로 오세요. 그나저나 사람이 정말 많네요.”

마차를 정리하러 간 텐스가 돌아왔을 때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뭐 해야 해? 제이논, 네가 우리 중에서 가장 북부에 대해서 잘 아니까 안내 좀 해 봐.”

에드는 로넨을 안쪽으로 끌어당기며 조금 기대 어린 눈으로 제이논을 바라보았다.

“으음, 잠깐만. 이럴 때는 말이지.”

텐스의 요청에 제이논이 팔짱을 낀 채 고민하자 로넨이 에드의 잡은 손을 붕붕 흔들며 말했다.

“배고픈데 우리 일단 꼬치구이 먹으면 안 돼?”

에드는 무엇을 할지 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지금 다들 어딜 갈지 못 정한 상태니 음식을 먹으면서 정하는 게 낫겠다. 계속 이곳에 서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럼, 우선 배를 채우러 가는 건 어떨까요? 제이논.”

“응, 그렇게 하자!”

제이논 대신 로넨이 재빠르게 대답하자 로넨 일행은 큰 해답을 얻었다는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로넨이 말한 대로 음식점을 향하면서 에드는 이곳저곳에서 활짝 웃고 있는 인파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일라에서 봤던 축제 때가 생각나네. 그때도 이렇게 모두가 활기차고 즐거워했는데.’

“……어, 에드 왜?”

갑자기 걸음을 멈춘 채 에드가 어느 한 곳을 바라보며 서 있자 그와 손을 잡고 있던 로넨이 손을 잡아당기며 걱정스레 물었다.

“아, 아닙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길래 뭔가 했는데 그냥 연극을 기다리고 있었나 봐요.”

에드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대답하자 안심한 로넨이 그의 손을 다시 앞으로 잡아당겼다.

“우리도 빨리 꼬치구이 먹고 연극을 보러 가자! 앗, 벌써 제이논이 안 보여. 에드, 빨리 가자.”

“도련님! 여기입니다.”

앞서가던 텐스가 손을 번쩍 들어 흔들자 그를 발견한 에드가 로넨을 안아 들며 그쪽으로 향했다.

“와, 맛있는 냄새!”

텐스가 서 있는 곳에 도착하니 벌써 주문을 했는지 가게 주인이 다양한 꼬치를 굽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로넨이 침을 꿀꺽 삼켰다.

“거의 다 구워졌으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꼬마 도련님.”

로넨이 고개를 끄덕이며 기다리자 완성된 꼬치를 에드가 받아 살짝 후후 소리를 내며 불고는 로넨의 입가에 가져다줬다.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드세요.”

조금 식히긴 했지만,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고기를 작은 입으로 한 움큼 베어 먹은 로넨이 뜨거운지 후하후하 하는 소리와 함께 입김을 불었다.

“에흐…… 이거 너무 뜨거어.”

바람이 섞인 소리를 몇 번 내뱉던 로넨이 이내 꿀꺽하며 고기를 삼켰다.

“괜찮으세요, 도련님?”

“뜨거운데 너무 맛있어! 에드도 어서 먹어 봐.”

“그래그래, 텐스가 다 먹기 전에 에드도 빨리 먹어.”

옆에서 로넨을 흐뭇하게 보고 있던 제이논이 에드의 입가에도 꼬치를 들이밀었다.

금방이라도 저를 찌를 것 같은 꼬치에 식겁한 에드가 급히 고기를 베어 물고는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에드는 입 속에 고기가 들어간 뒤에야 제이논이 방금 건네준 꼬치가 방금 막 구운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

너무 뜨거워 어쩔 줄 몰라 하는 에드를 보며 제이논과 텐스 뿐만 아니라 그 손을 꼭 잡은 로넨 역시 큰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제이논에 대한 복수심을 키우던 에드도 모두가 정신없이 웃자 이내 저도 따라 이유 모를 고양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고양감이 강해질수록 이 자리에 없는 대공에 대한 생각이 점점 떠오르기 시작했다.

항상 모두를 생각하며 쉴 수 있게 배려하는 대공이었지만, 정작 그가 제대로 쉬는 걸 에드는 본 적이 없었다.

“에드, 이쪽으로 가 보자!”

평소에도 기운이 넘치던 로넨은 꼬치까지 먹은 후라 그런지 더욱 체력이 넘치는 것 같았다.

일에 찌든 직장인들을 연신 이곳저곳 끌고 다니던 로넨은 연신 우와, 하는 탄성을 터뜨렸다.

“와, 에드! 저건 구름 과자라는 거래. 허공에서 저런 게 만들어지다니 꼭 마법 같아!”

나무 꼬치를 기계 안에서 돌돌 돌릴 때마다 풍성해지는 구름 과자―에드가 보기에는 영락없는 솜사탕이었다―에 로넨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다른 색도 보고 싶은데, 가능할까?”

“그럼요, 도련님.”

로넨의 귀여운 반응에 제이논이 메뉴판을 가리키며 답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