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물을 든 에드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대공이 의아해했다.
“왜 제이논이 아니라 에드가 온 거지?”
에드는 전하께 절대 알리지 말라는 제이논의 부탁을 상기하며 우편물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네, 제이논이 시설물 점검에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며 따로 부탁했습니다.”
“그렇군. 수고했어, 에드.”
우편물을 확인하며 여상히 고개를 끄덕이는 대공의 반응에 에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이논에게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군.’
하지만 그 단편적인 행동만으로 단번에 뒷사정을 전부 파악한 대공은 에드가 나갈 때까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으며 생각했다.
‘제이논을 찾아봐야겠네.’
* * *
다음 날 오전, 아침 식사를 마친 에드는 식당을 나서다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로넨을 만났다.
“에드!”
“네, 도련님.”
“식사는 맛있게 잘했어?”
“네, 도련님께서는 벌써 식사를 마치셨나요?”
“응, 오늘 할 일이 있어서. 아! 에드, 나 지금 온실 가는 데 같이 갈래?”
에드는 손을 잡아 오는 로넨의 손을 맞잡으며 물었다.
“온실이라면 후원이요?”
“어, 형이 온실에서 할 일이 있다고 불렀어.”
“전하께서요?”
“응, 텐스가 오늘 온실을 보수하는데 그 김에 내부도 조금 손보고 꾸민다고 했어. 그런데 내 도움이 필요하대! 백작 저에서 했던 것처럼 하면 된다고 했는데 혹시 모르니까 에드도 같이 가자.”
“네, 도련님.”
로넨과 함께 온실에 도착하자 삽을 들고 있는 텐스와 그 옆에서 모종을 살피고 있는 제이논이 보였다.
“내가 땅을 파겠다니까, 텐스.”
“네가 하면 오늘 밤까지 해도 땅을 다 못 고를걸?”
“아니, 전하께서는 왜 나보고 하루 쉬라는 거야.”
“그러니까 방에 가서 쉬라고. 여기서 알짱거리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에 있으면 뭔가 불안하단 말이야.”
제이논이 한숨을 지으며 말하자 텐스가 툴툴거렸다.
“네가 여기에 있는 게 더 불안한데?”
“내가 왜?”
“그러다 또 코피라도 흘려 봐라. 이번엔 하루 쉬는 걸로 안 끝날걸?”
“전하께선 대체 어떻게 아신 거야? 에드도 나도 엄청 조심했는데.”
“모르실 리가 없지.”
텐스의 대답에 제이논이 미간을 찡그렸다.
“왜?”
“왜긴 왜야? 너와 에드니까.”
“뭐라는 거야.”
“심심하면 이르텔에게나 가든가.”
“기사단 훈련을 보는 건 취향에 안 맞는다고.”
둘이서 티격태격하는 소리를 들으며 안으로 들어가자 삽을 바닥에 꽂고 한숨을 쉬던 텐스가 손을 들어 인사했다.
“로넨 도련님, 좋은 아침입니다. 에드도 안녕.”
“안녕, 텐스. 그런데 벌써 온실을 다 수리한 거야?”
“네, 도련님.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끝내야 할 것 같아서 일찍 시작했는데 금방 끝나서 이젠 내부를 가꾸면 될 것 같습니다. 다행히 땅이 좋아서 씨앗을 심으면 금방 자랄 것 같아요.”
정말? 하면서 쪼르르 달려간 로넨이 쪼그려 앉아 소중하게 들고 있던 모종삽으로 땅을 톡톡 두드렸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제이논과 텐스도 서둘러서 땅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에드는 모두가 바삐 움직이는 걸 보며 바닥에 놓인 화분과 모종을 챙겨 걸음을 옮겼다.
“텐스, 이쪽 땅은 그 정도 골랐으면 될 것 같아요.”
에드는 모종들을 살피며 모종삽을 들었다.
“그런데 기존에 있던 관상용 목적의 식물보다는 대부분이 식용 목적의 모종들이네요?”
“응, 형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안 되는 식물보다는 약초나 토마토, 딸기 같은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했어.”
“기존에 있던 식물들은 상인들이 왔을 때 모종이랑, 식료품으로 다 바꿨어.”
텐스의 말에 이곳에 있는 모종들을 다시 살펴보니 정말 전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식물들로 바뀐 상태였다.
에드 역시 그간 온실을 가꾸며 대공과 비슷한 생각을 해 왔다. 속으로 대공의 선택에 빙그레 웃은 에드는 고르기를 마친 땅에 모종을 심으려는 제이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동안 공부했던 약초와 식물이 가진 특징들을 상기하면서 말했다.
“토마토를 심을 자리엔 물을 흠뻑 적셔야 뿌리를 잘 내린다고 해요.”
에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물뿌리개를 가져온 제이논이 땅을 촉촉이 적셨다.
“이 정도면 될까?”
“잠시만요, 제이논.”
에드는 그 이후로도 수첩을 꺼내 메모했던 부분들을 살피며 그들에게 조언을 했고, 로넨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모종을 심을 구획을 나눠서 나무 팻말을 꽂았다.
상인과 교환한 모종은 물론 협회에서 보내 준 약초까지 전부 깔끔하게 심은 그들은 온실을 한 바퀴 돌고는 감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결국 점심 전에 끝냈네.”
“그러게…… 텐스랑 둘이서 할 때는 한 일주일 걸릴 것 같았는데.”
에드는 텐스와 제이논의 한탄을 들으며 속으로 생각한 말을 조용히 삼켰다.
‘둘이서만 했으면 아웅다웅하느라 정말 일주일이 지나도록 한 구획도 다 못했을 거야.’
“그럼 잠깐 앉아서 쉴까?”
제이논의 말에 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 테이블에 앉아 있는데 온실을 통해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살 때문에 에드의 눈이 점점 감겨 왔다.
“에드, 나는 텐스와 로아 데리고 올게.”
“아, 네. 도련님.”
에드가 졸음을 힘겹게 버티며 고개를 돌리자 로넨과 텐스는 벌써 온실 밖으로 나가고 없었고, 제이논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음, 나도 조금만 눈을 붙일까…….’
작게 하품을 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드도 결국 눈을 감고 테이블 위로 쓰러졌다.
* * *
에드는 몸 전체에서 느껴지는 개운함을 느끼다 지금 자신이 어딨는지를 떠올리고는 헉,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다행히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지 온실 안은 여전히 햇살로 가득했다.
그러다 자신의 등 뒤로 무언가가 흘러내린 걸 깨닫고 뒤를 보니 담요가 땅에 떨어져 있었다.
‘……자기 전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에드가 주변을 둘러보니 테이블에 엎어져 잠든 제이논의 등에도 담요가 덮여 있었다. 시선을 조금 내려보니 테이블 위에는 못 보던 쪽지가 놓여 있었다.
@모두 일어나면 식당으로 오도록@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필체에 에드가 눈을 비비고 쪽지를 들어서 가까이 대보았다.
“이건…… 전하의 필체인데!”
화들짝 놀란 에드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의자 끄는 소리가 온실 안을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뿌연 먼지를 일으키듯이 빠르게 온실로 뛰어 들어온 텐스가 아직도 일어나지 않은 제이논의 등짝을 내리쳤다.
“야, 언제까지 잘 거야? 빨리 일어나.”
“허억! 뭔데!”
갑작스러운 통증에 깜짝 놀란 제이논이 연신 등을 문지르며 되물었다.
에드는 쪽지를 내보이며 답했다.
“제이논, 저희 큰일 난 거 같지 않아요?”
“큰일은 무슨.”
제이논이 쪽지를 내려다보며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렸으나 그의 말과 행동은 달랐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가 쏜살같이 온실을 뛰쳐나가자 에드가 외쳤다.
“앗, 제이논 같이 가요!”
“빨리 와, 에드. 난 하루 더 쉬라는 명을 받으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말 거라고! 아침에 멍하니 방에서 뒹굴던 것만으로도 온몸이 비비 꼬여 죽을 뻔했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