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동시에 커다란 뜰채를 공수해 온 텐스가 빠르게 후원으로 뛰어왔다.
“어? 에드도 합류한 거야? 좋아! 여기 후원에 있는 닭만 잡으면 끝나!”
“이거 좀 받아 봐.”
어느새 맨손으로 닭을 세 마리나 잡은 이르텔이 잡은 닭들을 텐스에게 넘기자 그가 아으으, 소리를 내며 받아 들었다.
“내가 살아 있는 건 잘 못 만져서…… 아니, 도대체 누구야? 닭장 문을 열어 놓은 게.”
에드는 품에 안은 로아를 내려다보며 눈을 맞췄다.
“설마 로아가 그런 건 아니겠지?”
그러자 곁에 있던 로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외쳤다.
“그건 절대 아니야. 로아와 밖에서 놀고 있는데 갑자기 푸드덕거리며 닭들이 나타났어!”
텐스가 들고 있는 뜰채를 가져간 이르텔이 로아의 집으로 향했다.
여전히 꼬끼오오오, 하며 하늘을 향해 힘차게 부르짖던 닭은 용감하게 이르텔과 대치했으나 결국 뜰채에 잡혔다.
‘후원은 거의 정리된 건가?’
에드는 온실에 들어간 닭을 확인하며 텐스에게서 여분의 뜰채를 받았다.
“온실에 들어간 건 제가 잡아 볼게요.”
로아를 로넨에게 넘긴 에드는 온실로 조심히 들어갔다. 잘못해서 화분을 건드리면 곤란하니 밖으로 몰아서 잡을 생각이었다.
온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곳이 원래 제집인 것처럼 땅바닥을 쪼던 닭이 고개를 들었다. 걸음을 멈춘 에드는 거리감을 확인한 뒤 뜰채를 휘둘렀다.
“앗, 안으로 더 들어가면 안 되는데.”
아슬아슬하게 뜰채를 피한 닭이 작은 테이블로 올라가 파닥거리자 에드는 몸을 앞으로 쭈욱 뻗었다.
‘거기 화분을 건드리면 안 된다고.’
에드는 흔들리는 화분에 아악, 소리 없는 절규를 흘리며 닭이 땅으로 내려오게 유도했다.
꼬옥꼬꼬꼭.
소란스럽게 울며 빠르게 도망치는 닭을 뒤쫓으며 에드는 혼신의 힘을 다해 뜰채를 휘둘렀다.
‘이번엔 절대 실수 안 해.’
그리고 단번에 포획했을 때 어느새 온실 안으로 뛰어 들어온 로아가 에드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와, 에드!”
로아의 뒤를 따라온 로넨도 뜰채 안에서 얌전해진 닭을 내려다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럼 다른 녀석들도 잡으러 나갈까요?”
“응, 내가 로아를 챙길게. 에드는 닭이 도망가지 않게 잘 확인해.”
“네, 도련님.”
뜰채의 그물 윗부분을 손으로 모아 그러쥐고 일어난 에드는 로넨과 온실 밖으로 나왔다.
“이것 봐, 텐스. 에드가 후원 침략자를 잡았어!”
자루에 잡은 닭을 넣던 텐스가 고개를 들며 대견하다는 듯 에드의 어깨를 툭, 쳤다.
“나머지 닭들은요? 다 잡은 건가요?”
조용해진 주위에 에드가 묻자 텐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그런 것 같아.”
텐스가 이르텔이 뜰채에 잡아 오는 닭을 눈짓하며 대답하자 에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닭장으로 가 볼게요.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러잖아도 제이논이 상황을 파악한다고 먼저 가 있어.”
“에드, 나도 같이 가.”
“네, 도련님.”
그렇게 로넨과 함께 닭장에 도착하니 품에 가만히 앉아 있던 로아가 낑낑거렸다.
“왜 그래? 로아야.”
한참을 낑낑거리던 로아는 로넨이 땅바닥에 내려 주자 수풀 속으로 빠르게 들어가 버렸다.
“제가 가 볼게요.”
당황한 로넨을 안심시킨 에드는 로아의 뒤를 서둘러 쫓았다.
수풀 쪽을 살피자 벌써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로아가 멈춰선 채 에드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를 잡기 위해 다가가자 자길 따라오라는 듯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뭐가 있는 걸까?’
로아가 어디론가 자신을 유도하는 느낌에 에드는 그를 말없이 뒤쫓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닭장 뒤쪽으로 난 작은 수로에 숨어있는 닭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잘했어, 로아.”
제 다리에 얼굴을 비비는 로아를 가볍게 쓰다듬은 에드는 경사로를 조심조심 내려간 후 좁은 통로 안에 몸을 숙이고 들어가 뜰채를 휘둘렀다.
꼬꼬대엑.
‘잡았다!’
자유를 갈구하던 마지막 닭까지 포획한 에드는 뜰채 안에서 나부대는 닭을 챙겨 무릎걸음으로 수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경사로를 오르려는데 그 앞에 익숙한 인물이 서 있었다.
“……대공 전하.”
온몸에 진흙과 닭 깃털을 달고 있는 에드를 말없이 보던 대공이 작게 한숨을 내뱉고는 손을 내밀었다.
에드는 그제야 제가 어떤 꼴을 하고 있는지 깨닫고 민망해하며 그 손을 마주 잡았다.
그를 단번에 들어 올린 대공은 에드가 소중히 품고 있던 뜰채를 건네받았다.
그렇게 대공과 함께 닭장으로 돌아가자 이르텔을 비롯한 모두가 모여서 닭들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있었다.
“이르텔, 이걸로 마지막인가?”
“네, 전하.”
마지막 닭을 이르텔에게 넘긴 대공은 닭장을 수리하고 있는 텐스와 제이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닭장 문이 열린 원인이 뭐지?”
“빗장이 낡아서 헐거워졌는데 그걸 닭들이 건드리다가 부서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이걸 마지막으로 다 수리한 상태입니다.”
“손을 본 지 오래되기도 했지. 오늘은 이만 다들 들어가 씻고, 내일부터는 다른 곳도 보수가 필요한 곳이 있는지 확인해보도록.”
대공의 말이 끝나자 태풍이 지나간 듯한 닭장을 멍하니 돌아보던 제이논들은 터벅터벅 지친 걸음으로 성으로 돌아갔다.
그 뒷모습은 영락없이 전투에서 패배한 패잔병의 모습이었다.
닭장에서 닭이 탈출한 이후 대공은 북부 성의 시설 전반을 확인하라고 명했다.
“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북부 성의 시설물들을 점검하고 보수가 필요한 곳들이 있으면 보고하도록.”
그에 명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며칠간 북부 성 곳곳을 누볐다. 제이논 역시 그중에 한 명이었다.
“에드, 다 되어 가? 내가 마저 할까?”
응접실에서 제이논 대신 우편물을 분류하던 에드는 어깨를 통통 두드리며 안으로 들어서는 제이논을 올려다보았다.
“아뇨, 괜찮아요. 이것만 하면 끝나요.”
“도와줘서 고마워.”
“여기 물이요.”
에드는 맞은편 소파에 앉아 두 손을 맞잡고 쭈욱 뻗으며 가볍게 몸을 비트는 제이논에게 물 잔을 내밀었다.
“어, 고마워. 오늘 더운 날씨도 아닌데 계속 땀이 나네.”
닭을 잡느라 분주했던 날 이후에도 에드를 슬슬 피하는 기색을 보이던 제이논이었지만, 일이 밀려들자 어쩔 도리가 없었는지 에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제이논, 여기요. 제대로 되었는지 한 번 더 확인해 보세요.”
“에드 덕분에 한시름 놓았다. 이제 전하께 우편물만 갖다 드리면 오늘의 급한 일은 끝이야.”
에드는 고개를 숙이고 우편물을 확인하는 제이논에게 시선을 줬다가 화들짝 놀랐다.
“어? 제이논, 코피!”
“뭐?”
제이논이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하다가 테이블에 떨어지는 피에 얼굴을 번쩍 들었다.
에드는 품 안에서 잽싸게 손수건을 꺼내 제이논의 코를 틀어막으며 고개를 들지 못하게 했다.
“잘못하면 피가 기도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 불편하더라도 조금 더 이대로 있어요.”
“아, 이제 괜찮은 거 같은데.”
“그렇지 않아요, 제이논. 아직도 피가 멈추질 않는다고요.”
코피가 나는 와중에도 우편물부터 챙기려는 제이논을 보며 에드는 서둘러 손을 움직였다. 제이논 대신 우편물을 한쪽으로 치우고 테이블에 떨어진 피를 닦아 낸 에드가 말했다.
“전하께는 제가 대신 가서 우편물을 전해 드리고 올게요.”
“아니야, 내가 갈 수 있어.”
제이논이 손수건으로 코밑을 훔치며 대답하자 에드는 이마를 긁적였다.
평소에도 일 중독인 제이논이었지만, 닭장 사건 이후로 더더욱 일에 파묻혀 지내는 걸 알았다.
“하지만 제이논, 그 상태로 갔다가는 되려 전하께 혼이 날걸요.”
“……그, 그럴까?”
“네, 그리고 제이논이 과로라는 걸 전하께서 아신다면요…….”
“아신다면?”
“제이논이 푹 쉴 수 있도록 방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조치하실 수도 있어요. 전에 제가 머리카락을 덜 말렸을 때 그런 말씀을 하시기도 했거든요. 대공 전하께서는 굉장히 다정하시니까요.”
진지하게 말하는 에드를 보며 제이논은 생각했다.
‘……대체 어디가 다정하시다는 걸까? 내 귀에는 ‘자기 관리 못 하는 녀석은 방에나 들어가 있어’로 들리는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