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대연회장은 첼로와 바이올린의 은은한 선율이 흐르며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대신관과 신관들은 함께 구호 활동을 했던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사냥 대회 때부터 쌓인 긴장감을 내려놓은 것 같아 다행이야.’
에드는 주변을 둘레둘레 둘러보았다. 황성이나 남부에서는 황족과 귀족들이 서로의 지위만 신경 썼는데 북부 성에서는 그런 요소 상관없이 서로 어울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에드.”
“…….”
“에드!”
그때 귓가에 바짝 와닿은 음성에 에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선을 내리자 로넨이 둥그렇게 손을 모아 에드의 귀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고 있었다.
“아, 네 도련님.”
“왜 이렇게 멍해? 어디 아파?”
“아, 아닙니다.”
“피곤하면 에드 먼저 들어가서 잘래? 혹시 에드를 찾으면 제이논이나 형한테는 내가 말할게.”
로넨의 말에 잠시 고민한 에드는 답했다.
“그럼 잠깐 바람 좀 씌고 와도 될까요? 파티장이 더워서 그런지 조금 멍해서요.”
사용인으로서는 로넨 도련님 옆을 지켜야 했지만, 에드는 파티장에 모인 사람들을 보면 어쩐지 홀로 동떨어진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알았어!”
로넨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에드는 대연회장을 나섰다. 외투를 걸치며 연회장 밖으로 나오자 의외로 꽤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 에드. 이제 숙소로 돌아가려고?”
“아니면 대공 전하의 심부름?”
파티장 밖에서 사람들에게 시설 안내를 하던 기사들이 에드를 알아보며 말을 건넸다.
“아뇨, 안이 너무 북적이고 더워서요. 잠깐 머리 좀 식히고 들어오려고요.”
“그렇다고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말고. 여기 앞에 정원 정도까지만 돌아다니다가 와.”
“바람도 서늘하니까 너무 오래 있지도 말고. 여기 등 여분이 하나 있으니까 이거 가져가.”
“감사합니다.”
“이런 걸로 무슨.”
이제 제법 친해진 기사들은 그 이후로도 에드에게 이런저런 대화를 던지다 멀어졌다.
에드는 기사들의 가벼운 배웅을 받으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오른손에 든 등 때문에 어두웠던 밤의 그늘이 불빛에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에드는 느린 걸음으로 정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불빛에 비친 꽃들을 감상하다 발을 멈췄다.
슥슥슥슥.
수상한 소리가 조금씩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뭐지?’
눈동자를 굴리며 주위를 살펴본 에드는 등으로 주변을 밝혔다.
‘…… 이건 시골에서 듣던 조그마한 동물이 움직이는 소리 같은데…….’
에드는 조심스레 발을 움직여 그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내 등 빛 끄트머리에서 둥그런 하얀 덩어리 같은 게 보이자 침을 꿀꺽 삼켰다.
에드가 두려움을 참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하얀 덩어리가 휙 그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아악!”
에에에엥.
“흐아아…… 응? 너 로아니?”
에드는 뒤로 넘어진 상태로 등을 다시 주워 품에 안긴 생물체를 비춰 보았다.
으헤헷헷.
“아니, 로아야.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에드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여우의 등을 쓸어내렸다. 어찌나 놀랐는지 무릎이 다 후들거리는 느낌이었다.
“세나가 목욕을 시켜 준 게 언제인데, 벌써 앞발에 묻은 이 흙 좀 봐. 다음부터는 씻고 나서 이렇게 돌아다니면 절대로 안 돼. 알았지?”
에드는 로아의 앞발을 가볍게 털며 주의를 줬다. 로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에드에게 반응을 보이다가 켕켕, 작게 짖었다.
“알아들었다는 거지?”
로아가 혀를 내밀어 에드의 손등을 부드럽게 핥았다. 기분 좋게 느껴지는 까칠함에 에드는 옅게 웃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나온 거지?”
에드는 로아를 품에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나가 분명 연회장 내려오기 전에 잘 자고 있는 걸 봤다고 했는데. 혹시 자는 척?’
“벌써 이 성의 말썽꾸러기가 된 거 같네.”
에드가 작은 여우의 통통한 궁둥이를 톡, 톡 치며 중얼거렸다.
“내일은 로아의 집부터 만들어야겠다.”
로아는 에드의 이런 반응에도 기분이 좋은지 몸을 비비며 낑낑거릴 뿐이었다.
“자, 그럼 가자.”
에드가 로아를 로넨에게 데려다주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어디선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에드 아닌가요?”
에드가 등으로 앞을 길게 비추며 누군가 했더니 자신에게 이런저런 약초를 알려 줬던 신관이 앞쪽에 서 있었다.
“아, 신관님. 밖에 나와 계셨군요?”
에드는 빠르게 뛰어가 인사했다.
“네, 조금 갑갑해져서 북부 성의 정원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추운 날씨에만 사는 풀이나 나무들이 많아서 중앙에서 보지 못한 식물이 많거든요.”
“수도에서도 보지 못하는 식물들이 많나요?”
“네, 중앙이 아무리 상인들과 교류가 잦다고 해도 약초는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약효가 떨어지는 게 대부분이니까요. 더군다나 가난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약초는 가격이 싸니 별로 취급하지도 않습니다. 기온에 따라 서식지가 달라지는 이런 풀들은 그곳 말고는 직접 보기 힘들죠.”
“마법이나 도구 같은 걸 사용해서 서식지를 비슷하게 맞추는 방법은 없을까요?”
에드는 신관이 등으로 식물들을 비추며 알려주는 식물들을 눈에 꼼꼼하게 담으며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로아를 안은 채 품 안에서 노트도 꺼내 들었다.
신관은 이런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에드와 한참이나 대화를 나누다가 아,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런, 제가 오래 붙잡고 있던 것 같습니다.”
어느새 정원 안 깊숙한 곳으로 들어서자 신관이 멋쩍게 웃으며 연회장 쪽으로 천천히 방향을 돌렸다.
“그런데 에드, 혹시 전문적으로 약초에 대해 공부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에드만 괜찮다면 함께 중앙으로 내려가 신전에서 약초학을 배워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방금까지 자신이 알려 주는 약초들을 노트에 적던 에드를 떠올리며 신관이 물었다.
“신전에서 공부를요?”
에드는 신관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눈을 깜박거리며 의문을 표했다.
‘확실히 저번에도 약초에 대해 잠깐 배운 건데 주민들이 사용할 유용한 약재를 만들 수 있었어. 분명 전문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면 의원이 적은 북부에 많은 도움을 될 거야.’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렇고…… 흐음, 작게 침음하던 에드는 대답했다.
“그건 조금 더 생각해봐도 될까요?”
신관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지금 당장 답해 주실 필요 없으니, 생각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요. 필요한 물품이나 수속 같은 건 제가 알려 줄 수 있으니까요.”
“네, 감사합니다.”
신관과 헤어진 에드는 그의 말을 곱씹으며 수첩을 잘 갈무리했다.
‘……약초학이라.’
신전에서 배운다면 많은 약재에 대해서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을 텐데.
그때 제 어깨를 툭, 쳐 오는 손길이 있었다. 생각에 잠겼던 에드가 고개를 돌리자 바로 눈앞에서 제이논이 헉헉거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에드, 한참 찾았잖아.”
“저를요?”
“로넨 도련님께서 에드가 잠깐 바람을 쐬러 나갔다고 전해 주셨는데 밖으로 나가 봐도 도통 보여야 말이지. 어휴, 힘들어.”
밖이 제법 쌀쌀했는데도 불구하고 얼마나 뛰어다닌 건지 제이논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그를 가볍게 훔쳐 낸 제이논이 시선을 내렸다.
“로아를 데리러 방에 올라갔다 온 거였어?”
“그건 아니고요, 정원을 걷다가 우연히 만났어요.”
“밖에서 만났다고? 세나가 방에서 자고 있다고 했는데?”
제이논이 에드의 품에서 삐져나온 털 뭉치를 바라보자 로아가 그 시선을 느끼고 에드의 옷 속을 더 파고들었다.
제이논이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웃음을 터트리다 이럴 때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에드의 팔목을 잡았다.
“어쨌든 빨리 대연회장으로 가자. 대공 전하께서 아까 전부터 에드를 찾고 계셔.”
“대공 전하께서요?”
“어, 이미 시간이 오래 지났으니까 빨리 가자.”
* * *
대연회장에 들어서자 곳곳에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제이논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지 않게 조용히 대연회장으로 들어가 에드를 로넨 옆에 앉혔다.
“어, 로아!”
로넨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하자 에드가 품속에서 바둥거리는 로아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