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113화 (113/198)

“에드, 내가 올릴게.”

어느새 등장한 대공이 에드의 손에 쥐고 있던 가방을 채 갔다. 대공의 손바닥이 스치고 지나갔을 뿐인데 에드의 손등은 마치 뜨거운 불이 긋고 지나간 것 같은 작열감이 번져 올랐다.

에드는 그 느낌에 멍하니 손을 만지작거리다 뒤늦게 감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대공 전하.”

“날이 저물면 길이 험해지니까 서둘러 마차에 오르자, 에드.”

“네.”

대공을 따라 마차에 오른 에드는 로아와 노는 로넨의 옆에 앉았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밖에서 울리는 텐스의 외침에 로넨은 마차 창을 열고 여우와 함께 밖을 내다보았다.

“이것 봐, 로아야. 바람이 엄청 시원하지?”

깡깡.

그렇게 여우를 품에 안고 밖을 내다보던 로넨이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제법 피곤했는지 어느새 스르륵 잠이 든 탓이었다.

에드는 로넨의 머리를 잘 받쳐 쿠션을 대어준 후 모포로 몸을 감싸 주었다.

“쉿, 로아.”

로아의 눈을 마주치며 작게 중얼거린 에드는 로넨의 품에서 꼼지락거리는 작은 여우를 손에 쥐려고 했다.

하지만 대공의 손이 더 빨랐다. 대공이 로아의 배를 감싸 자신의 무릎에 올렸다.

에드는 옅게 웃으며 생각했다.

‘……대공 전하도 역시 로아가 귀여우신가 보네.’

하지만 그런 에드의 추측과는 다르게 대공은 눈꺼풀이 반쯤 내려온 에드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에드가 요 며칠 계속 바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을 텐데, 마차에서라도 편히 쉬게 해 주는 게 좋을 것 같군.’

에드가 무척 피곤할 거라는 대공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로넨이 기대 오는 머리에도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던 에드의 고개가 어느 순간 꾸벅인다 싶더니 어느새 둘의 머리가 맞닿은 것이다.

그는 로넨과 에드가 잠든 것을 보며 조용히 마차 창문을 닫았다.

* * *

땅거미가 내려앉기 전에 도착한 북부 성은 분주했다. 마차가 도착하자 대공을 맞으러 내려온 인력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오시는 길이 고단하진 않으셨습니까?”

방금까지 잠들어 있던 에드는 북부 성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눈을 떴다. 잠결이 묻어 있던 에드의 눈동자가 또렷해지는 과정을 말없이 바라보던 대공은 집사장의 질문에 조금 늦은 답을 했다.

“……아니, 괜찮았어.”

그리고 아직 잠든 로넨을 챙기려는 에드에게 로아를 넘기고 로넨을 품에 안았다.

“에드, 로아를 세나에게 넘기고 목욕을 시키라고 전해 줘.”

“네, 대공 전하.”

마차에서 내리는 대공을 뒤따라 내리며 에드는 또랑또랑하게 대답했다.

대공은 집사장에게 저녁 만찬에 대한 보고를 간단히 들으며 대화를 나눴고, 세나에게로아를 건넨 에드는 그 뒤를 따랐다.

“그래, 그럼 집사장은 그렇게 하도록 하고 에드는 가볍게 몸을 풀고 대연회장으로 내려오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대공의 지시에 따라 민첩하게 이동하는 사용인들과 함께 에드도 방에 올라와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어느새 잠이 들었나 몰라.’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빠르게 말린 에드는 저녁 만찬이 열리는 대연회장으로 내려갔다.

“어? 에드.”

“그쪽 일은 잘 끝난 거야?”

커다란 샹들리에가 반짝반짝한 빛을 흩뿌리는 대연회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중 몇몇이 에드를 발견하고 인사를 건네왔다.

“네, 조금 전에 막 도착해서 내려온 참입니다.”

에드는 대답하며 일정 간격을 두고 떨어진 테이블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테이블에 그릇을 세팅하는 세나와 함께 손을 맞췄다.

“일을 거들어 줘서 고마워, 에드.”

“바쁠 때는 서로 도우면 좋잖아.”

에드의 대답에 세나가 옅게 웃었다.

“참, 그 여우는 뭐야?”

“로넨 도련님께서 기르시기로 한 여우. 목욕시키는 데 힘들진 않았어?”

“어, 물에 젖는 걸 싫어하는 것 같긴 했는데, 이곳에 있으려면 깨끗해야 한다고 말하니까 가만히 있더라고. 귀를 추욱 늘어뜨리는 게 귀엽더라.”

그 귀여움을 상상하며 가볍게 웃은 에드는 여우를 만나게 된 사연을 세나에게 설명하며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신기한 인연이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에드는 그릇들을 정리한 후에는, 화병과 촛대를 테이블 중간에 배치하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화병에 꽃이 너무 적은 느낌이지 않아?”

“그래도 이런 장식을 늘리기보다는 오는 손님들이 편히 즐기실 수 있는 음료나 음식을 더 갖다 놓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런가?”

세나의 의문에 그 이유를 하나씩 설명하던 에드는 문득 고개를 돌렸다. 어쩐지 뒤통수가 따끔따끔한 느낌 때문이었는데, 대연회장 입구에 시선이 닿았을 때 그는 이외의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공이 입구에 서서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 대공이 살짝 고개를 까딱하며 입을 열었다.

“에드.”

“아, 네!”

대공의 부름에 에드는 재빠르게 달려갔다.

‘급하게 시키실 일이 있으신 건가?’

아무 말 없이 대연회장 밖으로 나가는 대공을 뒤따르며 에드는 생각했다.

대공이 발걸음을 멈춘 곳은 대연회장과 조금 떨어진 한적한 복도였다.

‘이런 곳에 어떤 일손이 필요하신 걸까?’

에드가 주위를 둘러보며 살피는데 순간 머리에 따뜻한 손길이 닿았다. 동시에 에드의 고개가 녹슨 고철처럼 뻣뻣하게 멈췄다.

“아직 머리가 덜 말랐잖아, 에드. 이렇게 서둘러서 나올 필요는 없었는데.”

대공의 낮은 목소리와 머리카락을 가볍게 흐트러뜨리는 손끝의 행방에 어쩐지 에드는 묘한 긴장감이 제 등줄기를 내달리는 기분을 느꼈다.

에드는 멍하게 눈을 끔뻑였다.

대공이 젖은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릴 때마다 귓가에 열이 고이는 느낌이었다. 복도에 선선한 바람이 지나가 그나마 더운 열을 달랬지 그렇지 않았으면 머리까지 열이 끓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빨리 밖으로 나오라고 누가 채근하기라도 했어?”

에드는 대공과 맞닿았던 시선을 살짝 돌리며 답했다.

“……아, 아뇨.”

만약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당장 찾아 나서기라도 할 것처럼 대공의 눈빛이 형형했다.

“성안 곳곳에 불을 피워서 지금 당장 따뜻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제 곧 겨울이라 북부 사람들도 병에 걸리기도 쉬운 날씨야.”

옆에 미리 준비해 뒀던 타월로 대공이 에드의 머리를 부드럽게 말리며 말을 이었다.

“다음부터는 머리카락이 다 마르기 전에 방 밖으로 나오는 건 절대 금지야.”

“네?”

에드는 대공의 염려에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웃을 일이 아닌데, 안 되겠군. 내가 말하는 걸 지키지 않으면 에드에게 하나씩 벌을 주도록 하지.”

“벌이요?”

에드가 살짝 돌렸던 시선을 대공과 맞추자 그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왜 계속 에드가 북부 사람들과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 불안한 걸까. 왜인지 요즘엔 에드가 백작 저에 있었을 때가 더 마음이 놓였던 거 같아.’

에드는 대답 없이 자신을 보고만 있는 대공의 열기 어린 시선에 민망해져 일부러 방긋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그럼 전하의 말을 잘 들으면 상도 주시는 건가요?”

“상?”

“벌 말고 상도 주신다면 조금 더 조심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확실히 에드 말처럼 벌 뿐만 아니라 상도 있어야지 타당하겠네.”

“음, 꼭 그런 건 아니지만요.”

“아니야, 에드 말이 맞아. 그럼 앞으로 내가 말하는 걸 잘 지켜 준다면 에드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주도록 하지.”

대공은 선물을 준다는 말에 대답 없이 눈꼬리를 휘며 웃는 에드를 내려다보며 바람 빠지는 소리를 흘렸다.

‘……조금만 더 이대로 있으면 좋겠는데.’

그때 대공의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대공이 뒤를 돌아보자 이르텔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대신관님이 북부 성에 도착했습니다.”

“그래, 바로 준비해서 나가지.”

짧게 대답한 대공은 에드의 머리 위에 타월을 올린 뒤 그의 이마 위에서 입을 열었다.

“구호 활동을 떠났던 일행들이 조금 있으면 응접실로 올 거야. 에드는 그 사람들이 올 때까지 벽난로 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고 있어.”

“네.”

자신의 머리 바로 위에서 들리는 대공의 목소리에 에드가 한숨을 쉬듯 작게 답했다.

“그곳에 놓인 간식이랑 차도 맛은 괜찮은지, 양은 충분한지도 파악해 놓고. 에드가 하나씩 맛보며 직접 확인해 보면 좋을 것 같군.”

“아……알겠습니다.”

에드는 결국 따뜻한 응접실에서 모든 간식을 맛본 뒤에야 대연회장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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