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112화 (112/198)

“그런데 에드.”

배가 어느 정도 찼을 때 대공이 입을 열었다. 에드는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대공의 말을 기다렸다.

“에린과 많이 친한 모양이지?”

“에린이요?”

“아까 둘이 트롤리를 옮기는데 사이가 좋아 보여서.”

그때 로넨이 말했다.

“에드와 에린은 헤린스 백작 저에서부터 사이가 좋았어요!”

“그랬군.”

대공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에드가 첨언했다.

“네, 말이 잘 통하고 동료애도 깊어서 그런 것 같아요.”

“말이 잘 통하고 동료애가 깊다라…….”

대공이 턱을 쓸며 중얼거리자 에드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내가 뭐 이상한 말을 한 걸까?’

그냥 평범한 말을 한 것 같은데.

에드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을 마셨다.

* * *

“여우야! 아쉽지만 나는 이제 북부 성으로 돌아가야 해. 그러니까 이제 너도 집으로 가야지.”

식사를 마친 대공과 기사들이 북부 성으로 돌아가기 위한 채비를 하자 로넨이 한쪽 풀숲에 앉아 귀를 쫑긋쫑긋하는 여우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니, 놀자는 게 아니라.”

풀숲을 뛰쳐나와 제 다리에 몸을 비비는 여우를 내려다보며 로넨은 이마를 가볍게 짚었다.

“이상하다. 분명히 알아들은 것 같은데.”

곰살궂게 구는 여우의 행동에 작게 웃은 로넨이 자리에 앉아 복슬복슬한 등을 쓸어내리며 조곤조곤하게 말했다.

“북부 성에 가면 이전처럼 이곳저곳 돌아다닐 수 없어서 네가 갑갑할 거야.”

끼이잉.

“아니, 거짓말이 아니고 정말인데. 넓은 가렌다 산에 비하면 방벽이 쳐진 성은 좁단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하는 말과 달리 로넨의 얼굴엔 여우를 북부 성에 데리고 가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

짐을 마차에 다 실은 에드가 로넨의 곁으로 다가갔다.

“도련님, 그렇게 마음이 쓰이시면 그냥 함께 가는 건 어떠세요? 여우도 이곳에서 홀로 지내다 보면 외로울 수도 있으니까요.”

“정말……?”

“네, 그러니 대공 전하께 한번 말씀드려 보세요.”

“그럼 그래 볼까? 이리 와, 여우야.”

로넨은 여우를 품 안에 안으며 에드를 올려다보았다. 여우의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활짝 웃었다.

“에드도 같이 가자.”

“그럴까요?”

“응, 형은 에드의 말을 잘 들어주거든!”

로넨의 말에 에드는 생각했다.

‘대공 전하께서 제 말을 특별히 잘 들어주는 게 아니라 로넨 도련님과 함께 있는 시간을 즐거워하시는 건데요.’

하지만 이미 여우와 시선을 맞추며 고개를 까딱하느라 바쁜 로넨의 모습에 에드는 말을 삼켰다.

“여우야, 우리 북부 성에 함께 가면 뭐 하고 놀까?”

여우는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이 로넨의 턱을 혀로 핥았다.

“아하하, 간지러워. 나도 이렇게 노는 게 좋아. 아! 그러고 보니 여우의 집과 울타리부터 만들어야겠다. 그래야 여우가 북부 성을 막 돌아다니는 일이 없을 테니까.”

로넨이 에드의 손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에드도 함께 하자. 여우의 집을 근사하게 만들어 주는 거야.”

“어떤 식으로 만들면 좋을까요?”

“크고 멋있게! 여우가 집에서 폴짝폴짝 뛰어도 머리가 천장에 닿지 않을 만큼 높게, 그리고 앞으로 클 것도 생각해서 넓게 만들고 싶어. 가렌다 산에서 느끼던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북부 성에서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

에드는 로넨을 내려다보며 답했다.

“네, 도련님. 좋은 여우 집을 지을 수 있게 저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고마워, 에드.”

“그리고 대공 전하의 허락을 받고 나면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은 어떨까요? 여우야, 하고 부르는 것도 귀엽지만 이름을 불러 주면 여우가 더 기뻐하지 않을까 해서요.”

“아! 맞다! 여우라고 부르는 게 입에 붙어서 몰랐는데 에드의 말을 들어 보니까 확실히 그래! 그럼 뭐라고 이름을 지으면 좋을까?”

에드는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로넨을 내려다보며 그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다른 생각에 빠진 로넨이 넘어지지 않게 주의하며 대공이 머무는 막사로 향했다.

“형!”

막사에 다다르자 로넨이 뽀르르 달려갔다. 북부 성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대공은 로넨의 품 안에 안긴 여우를 확인하며 에드를 바라보았다. 로넨이 이미 어떤 말을 할지 알겠다는 대공의 표정에 에드는 멋쩍게 웃었다.

‘로넨 도련님에게 약한 대공 전하께서는 못 이기는 척 또 허락하시겠지.’

“형한테 뭐 말하고 싶은 게 있니, 로넨?”

“어, 그게요…….”

대공의 질문에 말끝을 살짝 끈 로넨이 뒤에 선 에드의 옷소매를 잡아끌며 답했다.

“우리 로아를 북부 성에 데려가면 어떨까 하는데요.”

“로아?”

“아, 이 여우의 이름인데요, 로넨의 ‘로’와 아스넬 형의 ‘아’를 따서 만들어 봤어요. 어때요? 이름 괜찮은가요?”

“어느새 이름까지 부르는 사이가 되었구나.”

“아, 그게 형에게 북부 성에 데려가도 된다고 허락을 받으면 부르려고 생각만 해 둔 건데요…….”

대공은 로넨의 품 안에서 바르작거리는 여우를 내려다보다 에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에드는 어떻게 생각하지?”

“네?”

“여우…… 아니, 로아를 북부 성에 데려가도 괜찮을지 말이야.”

에드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제 생각으로는 로아만 성에 잘 적응할 수 있다면 데려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로넨 도련님은 어릴 때부터 동식물을 좋아하셨으니 분명 책임지고 잘 보살피실 거예요.”

에드의 대답을 차분히 듣던 대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북부 성으로 로아를 데려가도록 하지.”

그러자 로넨이 웃으며 말했다.

“이것 봐! 형은 에드의 말을 잘 들어주지?”

대공의 허락이 떨어진 막사 안에는 활기찬 로넨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로아야! 북부 성은 여기서 거리가 머니까 마차를 타고 가야 해. 로아는 차가 뭔지 알까?”

깡깡!

“마차에 올라 가렌다 산을 내려갈 때는 조금 덜컹거릴 수 있는데 걱정할 것 없어! 내가 로아를 안전하게 껴안고 있을 거니까. 그리고 마차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맞잖아? 그럼 기분이 정말 좋아!”

로넨은 마치 어린 동생에게 처음 접한 세상을 소개해 주듯이 로아를 향해 차근차근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로넨 도련님은 어릴 때부터 동식물을 좋아하셨으니 분명 책임지고 잘 보살피실 거예요.〉

대공은 즐거워하는 로넨을 바라보며 에드가 한 말을 곱씹었다. 어느새 여우는 에드의 품으로 뛰어들어 혀로 그를 신나게 핥고 있었다.

대공이 그 모습을 보며 못 말리겠다는 듯 웃음을 지을 때였다. 제이논이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대공 전하, 대신관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그래.”

“이 노구를 부르셨다고요, 대공 전하.”

제이논을 뒤따라 얼굴을 비친 대신관이 여우를 품에 안은 에드를 확인하곤 빙그레 미소 지었다.

“대신관은 부상자들을 조금 더 살펴본 뒤에 북부 성으로 돌아오겠다고 했다지?”

“네, 겨울이 점점 다가와 환자들의 거동이 힘든 상황이니, 대신 이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약재를 휘하 신관들과 함께 구해 보려고 합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대공은 낑낑거리는 여우를 달래는 에드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럼 이르텔을 곁에 둘 테니 일이 마무리된 후 함께 북부 성으로 오도록 하게. 나는 성에 먼저 내려가 고생한 사람들을 위한 만찬을 준비하도록 하지.”

“지금부터 약재 제조를 시작하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이 노구를 너무 오래 기다리시지 않도록 오늘 저녁까지는 북부 성에 돌아가겠습니다.”

대공과 대신관의 대화를 들은 에드는 여우를 다시 로넨에게 건네며 작게 소곤거렸다.

“도련님, 이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로아를 챙겨 먼저 마차에 타고 계세요. 제가 짐을 챙기도록 하겠습니다.”

“응, 알았어. 에드.”

대공과 대신관의 대화가 끝나자 에드는 막사 밖으로 로넨을 챙겨 나왔다. 여우를 품에 안고 가볍게 발걸음을 놀리던 로넨은 마차를 살피는 텐스에게 다가갔다.

“로아, 인사해. 우리 마차를 끌어 줄 텐스야.”

으헤헷.

“아, 로아가 텐스를 봐서 기분 좋은가 봐!”

“요 녀석이 북부 성에 함께 갈 여우인가요? 대공 전하께서 허락하셨다고 제이논이 말하더라고요.”

“응, 이름은 로아야!”

에드는 로넨과 텐스가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로넨이 지내던 막사로 들어가 짐을 정리한 뒤 양손에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에드가 수레에 올려진 짐들을 확인하고 손에 든 가방을 올리려고 할 때였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끼어드는 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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