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식사가 한창 준비 중인 천막 안으로 들어가자 모두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요리사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에드는 조용히 구석으로 이동하려고 했다. 하지만 에린이 그를 발견하는 게 더 빨랐다. 그녀가 활짝 웃으며 에드에게 다가왔다.
“에드!”
“아, 에린.”
“여기는 무슨 일로 왔어? 대공 전하의 심부름? 아니면 전하께서 식사 준비를 조금 더 서두르라고 이르셨어?”
“아냐, 그런 게 아니라.”
“응? 그러면?”
에린이 빤히 올려다보며 묻자 에드는 수첩을 품 안에 넣으며 답했다.
“사실 대신관님께 특별한 음식을 대접해 드리고 싶어 불이랑 기구 좀 빌릴까 했어. 근데 너무 바쁠 때 온 거 같네.”
“하하, 그런 거라면 말을 하지!”
그때 갑자기 등을 툭, 쳐오는 두툼한 손길에 에드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에드는 몸의 중심을 잡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안녕하세요, 주방장님.”
“그래, 에드. 대신관님께 특별한 음식을 해 드리고 싶다고?”
“아, 그게 말입니다.”
“어떤 음식을 준비하려고 했지?”
주방장이 소매를 걷어붙이며 웃었다. 빨리 답해 보라며 채근하는 의욕적인 그의 모습에 에드는 생각했던 것들을 말했다.
에드의 설명을 차분히 들은 주방장이 손으로 턱을 쓸며 되짚었다.
“감자와 고기를 넣은 따뜻한 스튜라…… 그걸 약간 매콤하게 하고 싶단 말이지?”
주방장이 테이블 한쪽에 놓인 조미료와 재료를 바라보며 말했다.
“매콤한 맛은 이쪽에 놓인 향신료로 내면 어렵지 않을 것 같고, 그리고 감자를 채 썰어서 기름에 굽고 싶다면…….”
열정적인 주방장의 설명에 에드는 품에 넣었던 수첩을 꺼내 그의 말을 꼼꼼하게 적어나갔다. 그러다 옆에서 작게 웃는 에린에게 시선을 돌렸다.
‘왜?’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만 말하자 에린이 고개를 작게 저으며 주방장의 말에 집중했다. 설명을 하나라도 놓치려고 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에드도 자극받아 눈을 빛냈다.
“그럼 에드, 이쪽에 자리를 내 줄 테니 만들어 보고 싶은 걸 해 봐. 내가 알려 줄 테니. 아, 마침 에린이 옆에 있으니 도와주면 되겠구나.”
에드는 주방장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주방이 바빠 보이는데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바쁜 일은 모두 해치운 상태니까 괜찮아. 그러니 에드가 말한 걸 만들어 봐. 나도 어떤 음식이 나올지 기대가 되니까.”
* * *
치익, 치이익.
기름에 감자전이 지글지글 익을 때마다 에린이 눈을 반짝 빛냈다.
“에드, 이번에도 이 끄트머리를 먹어 봐도 돼?”
처음에 모양을 망친 감자전을 옆에 앉은 에린과 나눠 먹었는데 그게 입맛에 맞은 모양이었다. 특히나 바삭바삭하게 구워진 감자전 끄트머리가 맛있었는지 감자를 채 썰던 에린이 입맛을 다셨다.
에드는 이전보다 잘 구워진 감자전을 접시에 담아 에린에게 건넸다. 이 세계에서 제가 한 음식을 처음으로 먹어 준 에린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자 에드는 뿌듯함을 느꼈다.
“맛이 괜찮아?”
“괜찮은 정도가 아니야. 정말 고소하고 맛있어.”
“칭찬해 주니까 고마워.”
“칭찬이 아니라 진심이라고. 만드는 방법도 간단해서 나중에 기사님들 야식으로 만들기도 딱이다.”
에드는 에린의 감상에 옅게 웃으며 옆의 화롯불에서 보글보글 끓는 감자탕을 확인했다.
에드가 두 가지 음식을 한꺼번에 하기에 어려울 수 있었는데 주방장과 에린이 밑 작업을 도와주자 예정이었던 식사 시간과 큰 차이 없이 대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스튜도 맛보고 싶은데 살짝 먹어 봐도 돼?”
“다 끓었으니 먹어도 될 것 같아. 그런데 살짝 매울 수도 있는데.”
주방장이 알려 준 조미료를 이용해 최대한 한국식 감자탕을 생각하며 끓였더니 제법 비슷한 맛이 났다.
“괜찮아, 나 매운 거 잘 먹고 새로운 음식이라면 뭐든 먹어 봐야 직성이 풀리거든.”
에드가 감자탕을 그릇에 담아 에린에게 넘기자 김이 식기도 전에 국물을 마셨다.
“너무 뜨겁지 않아?”
“조금 뜨거운데 이거 맛있다. 매콤한데 구수한 고기 육수와 부드러운 감자 전분의 맛이 잘 어우러져서 자꾸 입맛이 당겨.”
“정말?”
“어, 여기에 뭐 뭐 넣었지? 빨리 알려 줘 봐.”
“잠깐만, 이따가 수첩 보여 줄게.”
에드가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려놓는 그때 주방장이 다가왔다.
“에린, 이제 음식을 밖으로 가지고 나가야 하니 그릇에 담아 배식할 준비해 줘.”
“네, 주방장님.”
“그리고 에드, 괜찮다면 음식을 야외 테이블로 나르는 걸 도와줄래? 늦지 않게 빠르게 움직이려면 손 하나라도 더 필요한 상태라.”
“네, 알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에드와 에린이 음식을 접시와 그릇에 나눠 담으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에드는 자신이 만든 음식을 은쟁반에 올려 뚜껑을 닫고 트레이에 올리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대공 전하와 대신관님께서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는데.’
“이제 다 준비되었으니까 나가자.”
“그래, 알았어. 에린.”
에드는 에린과 함께 트레이를 돌돌 밀면서 천막을 나섰다. 그리고 야외 테이블에 음식을 차리다 자리에 앉아 있는 대공과 눈이 마주쳤을 때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대공 전하께서 아까는 기분이 좋으셨던 것 같은데 지금은 또 살짝 눈빛이 가라앉으신 것 같잖아? 그새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걸까?’
어젯밤 느꼈던 대공의 그늘진 눈매가 다시 보이는 것 같아서 에드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멈췄다.
“왜, 에드? 무슨 일 있어?”
갑자기 멈칫한 에드에게 에린이 묻자 그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니야, 에린.”
대공의 앞에 먼저 음식을 차린 에드는 대신관 앞에도 차례로 그릇을 내려놓았다.
대신관이 옅게 웃으며 물었다.
“이게 에드가 날 위해 손수 준비해 준 음식이군.”
“네, 입에 잘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스튜의 향이 굉장히 좋군. 이건 감자로 만든 건가?”
“네.”
에드는 대신관의 질문에 대답하며 상석에 앉은 대공을 흘긋흘긋 바라보았다. 지금 에드의 모든 신경은 대공을 향해 있었다.
대공은 테이블에 음식이 다 차려지자 말했다.
“어제와 오늘, 대신관과 함께 다친 이들을 치료하며 애써 준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감사를 표하네. 예정보다 일정이 늦어진 관계로 이렇게 점심 식사만 간단하게 하게 되었지만, 북부 성에 돌아가면 만찬을 제대로 즐기도록 하지.”
테이블에 앉은 신관들과 기사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네!”
대공이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식사가 시작되었고 뒤로 빠졌던 에드는 트롤리를 돌돌 끌고 주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대공이 그런 에드를 불러 세웠다.
“에드.”
“네, 대공 전하.”
“에드도 여기서 같이 식사하는 건 어때?”
“아닙니다, 저는 제이논과 함께 따로 식사하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같이 함세. 마침 여기에 자리가 하나 남아 있으니 이리 와 이 음식에 대해 설명도 좀 해 주게.”
대신관이 옆의 의자를 빼며 대공을 거들자 대공이 로넨을 바라보며 말했다.
“로넨 역시, 에드와 함께 식사하길 원하는 것 같은데.”
“에드! 얼른 앉아서 같이 먹자. 에드가 만든 이 감자 구이 정말 맛있어! 그리고 스튜도 맛있…… 아! 매워.”
로넨이 감자탕의 매콤함에 혀를 내밀자 대공이 로넨의 손에 컵을 쥐여 주었다.
“괜찮아? 로넨?”
“네, 괜찮아요. 처음에만 조금 맵게 느껴졌지 다시 맛보니까 그렇게 맵지 않아요!”
뜨거운 국물을 다시금 들이켠 로넨이 에드를 향해 씨익 웃었다.
“에드, 정말 맛있어!”
에드는 볼이 발개진 로넨의 앞으로감자전과 빵을 더 챙겨주며 말했다.
“원래는 다른 음식과 함께 먹는 건데 시간이 부족해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스튜를 적셔 먹을 수 있는 빵을 준비했으니 함께 드시면 매운맛이 한결 덜할 거예요.”
“응, 알았어. 이번엔 에드 말대로 먹어 볼게.”
에드는 로넨 이외에도 다들 생전 처음 맛보는 요리를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그 모습을 조금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욕심에 결국 권유받은 의자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와, 에드 말대로 빵과 먹으니까 훨씬 덜 매워!”
“다행이에요, 도련님.”
“에드, 이건 굉장히 부드럽구먼. 이 노구가 씹어 넘기기에도 아주 좋아.”
“입에 잘 맞으신다니 다행입니다, 대신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