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107화 (107/198)

에드의 염려 어린 대답에 로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냐! 아까 대신관님이 치료소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해 주셨는데. 그렇죠?”

“대공자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이 노부가 오늘 품속에 가져온 이야기보따리를 더 풀어 봐야겠습니다.”

대신관의 말에 로넨이 환하게 웃으며 에드의 손을 붙잡았다.

“에드! 빨리 나가자. 분명히 에드도 들으면 좋아할 거야.”

* * *

에드는 휴대용 마법 등을 들고 대신관의 옆을 따라 걸었다. 모닥불을 피운 막사 안과 달리 밖으로 나오자 서늘한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산 근처라 그런지 생각보다 바람이 많이 찬데 괜찮으십니까, 대신관님?”

“이 정도는 괜찮다네, 에드. 신전도 숲속에 있다 보니 이 정도 서늘함에야 늘 익숙하지. 다만 어린 대공자님은 조금 걱정되네만.”

“나도 괜찮아, 에드!”

에드가 물을 새도 없이 대답한 로넨은 손에 쥔 마법 등을 휘휘 휘두르며 앞서 걸었다. 활기찬 로넨의 뒷모습을 보며 에드는 목청을 높였다.

“로넨 도련님, 너무 빨리 가시면 안 됩니다.”

“응, 알았어. 에드.”

전혀 지친 기색이 없이 성큼성큼 나아가던 로넨이 뒤로 돌아 곁으로 뛰어오자 대신관이 웃으며 물었다.

“대공자님께서는 여기 있는 에드가 참 좋으신 모양입니다.”

“네, 아주 좋아요.”

“어떤 점이요?”

“에드는 항상 따뜻하고 친절해서 좋아요. 제가 백작 저에 있을 때부터 즐거운 놀이도 많이 알려 줬고요.”

“근데 지금은 에드 말고도 다른 사람들 모두 대공자님을 잘 보살펴 드리지 않습니까?”

“맞아요! 모두 좋은 분들 같아요, 하지만…….”

그들 주변을 돌아다니며 입을 열던 로넨이 말을 멈추더니 대신관에게 쪼르르 달려가 귀를 빌려달라는 듯 손을 모으고 작게 속삭였다.

“에드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나를 아스넬 형의 동생이 아닌 그냥 로넨으로 봐줘서 좋아요. 그래서 가끔은 제 친구 같기도 하고, 때로는 형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에드는 저를 빼고 대화를 나누는 둘을 보며 약간의 호기심과 아쉬움을 느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하지만 로넨의 상기된 표정을 보고는 아무런 티를 내지 않고 마법 등으로 길을 밝혔다.

이후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슬슬 걷다 보니 어느새 가렌다 산의 중턱이었다. 산 중턱에는 대공이 에드에게 줬던 히아신스가 곳곳에 활짝 피어 있었다.

‘대공 전하께서 요 며칠 제대로 쉬지 못하셨을 텐데…….’

그 꽃을 기점으로 에드의 머릿속에서 그간 피해 왔던 대공에 대한 생각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감자처럼 생긴 돌을 보면.

‘대공 전하 제대로 식사는 하고 계실까? 저번에 보니까 바쁘실 때는 대부분 거르시는 것 같던데.’

도톰한 옷을 입고 활짝 웃는 로넨을 볼 때는.

‘대공 전하도 로넨의 웃는 모습 보는 걸 참 좋아하시지.’

곳곳에 뛰어노는 동물을 볼 때는.

‘저번에 전하가 소환한 아란의 털이 진짜 복슬복슬했는데 나중에 부탁드리면 또 만질 수 있게 해 주실까.’

“……에드.”

‘그리고 아까 대공 전하께서 이르텔 경과 제이논을 데리고 막사를 나서시던데.’

에드는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에드!”

그 순간, 밑에서 제 손을 흔드는 따스한 감촉과 부름에 정신을 차린 에드가 고개를 숙였다. 로넨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에드도 이 소리 들려?”

끼이잉.

에드도 로넨이 말한 소리를 들었다. 어디선가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잉.

걸음도 멈추고 집중해서 들으니 한쪽 풀숲에서 더 선명하게 소리가 들려왔다.

“동물 새끼 소리 같은데 혹시 모르니까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뭔가 이상하면 바로 도망쳐야 해, 에드?”

“도련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번에 제이논에게 들으니 여기 주변에는 맹수나 위험한 동물들은 없다고 했거든요.”

주위를 둘러보던 대신관이 살짝 에드에게 주의를 주었다.

“얼마 전에 일어난 지진 때문에 동물들이 이동했을지도 모르니 조심하게. 다행히 나무나 풀이 부러지거나 쓰러진 흔적은 없네만.”

“네.”

작게 대답하며 조심스레 움직인 에드는 소리가 들리는 풀숲을 들여다보다가 무심결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

풀숲에는 다리를 다쳤는지 엎드려 낑낑거리는 새끼 여우가 한 마리가 있었다.

“……이번 지진 때 다친 걸까?”

끝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로넨이 어느새 그의 등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마법 등을 뒤로 물려 여우가 놀라지 않게 빛을 조절한 로넨은 발을 동동거리며 여우와 대신관을 반복해서 바라보았다.

여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람들을 향해 이를 드러내려고 했지만, 많이 지쳤는지 낑낑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근처에 부모의 흔적도 없는 걸 보니 도망치다가 다치는 바람에 남겨진 것 같아요.”

“내 한번 봄세.”

대신관이 대답하며 바닥에 주저앉자 에드는 바닥에 제 외투를 벗어 깔려고 했다.

“대신관님, 바닥이 차갑습니다.”

대신관은 그런 에드를 만류하며 여우의 상태를 확인했다.

“괜찮네, 에드. 금세 치료가 끝날 것 같으니 그럴 필요 없다네. 대신 마법 등을 조금 더 앞으로 비춰 주겠나? 상처가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말일세.”

힘이 빠진 여우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불안한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몸을 풀썩거리며 움직이려고 하는 여우의 몸을 대신관이 신력으로 감싸기 시작했다.

“해치려는 게 아니란다.”

대신관 옆에 쪼그려 앉아 여우를 내려다보던 로넨이 이를 드러냈던 여우가 차츰차츰 온순해지는 것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이내 낑낑거리던 여우가 으헷헷헷, 하며 이상한 소리를 내자 상처 부위를 확인한 대신관이 치료를 시작했다.

‘근데 여우 울음소리 원래 이렇게 이상했나? 이건 물개 소리 같기도 한데……?’

에드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여우가 또다시 묘한 소리를 내며 울었다.

으에에헷, 으헤헤헷.

마침내 대신관이 상처 치료를 끝내고 뒤로 물러나자 여우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움직였음에도 아픈 곳이 없자 뒷발을 혀로 몇 번이나 핥으며 고개를 갸웃하더니 자리에서 겅중겅중 뛰었다.

“그렇게 좋아?”

로넨은 그런 여우의 모습에 웃으며 물었고 그 질문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여우는 로넨과 대신관의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았다.

여우가 대신관의 다리에 몸을 부딪치며 애교를 부렸지만, 대신관은 그런 여우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다가 엉덩이를 툭, 툭 치며 떠밀었다.

“자, 이제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가거라.”

그럼에도 여우가 떠나려고 하지 않자 로넨이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바라보다가 앞서 대신관이 한 것처럼 여우의 몸을 살짝 밀었다.

“이제 다치지 말고 잘 살아야 해, 여우야.”

여우는 조금 더 자리에 머물렀지만 대신관과 로넨이 모르는 척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결국 풀숲으로 사라졌다. 날쌔게 움직이는 여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로넨을 향해 대신관이 말했다.

“많이 아쉬우십니까, 대공자님?”

“……네, 조금요.”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야생동물이 사람의 손을 타서 좋을 건 없지요. 그래서 아쉽지만 정이 더 붙기 전에 빨리 떠나보냈습니다.”

로넨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대신관이 마법 등을 손에 쥐며 로넨과 함께 걸어 나갔다.

“참, 대공자님. 제가 이와 비슷한 설화를 알고 있는데 혹시 듣고 싶으십니까?”

“여우가 나오는 거예요?”

“여우는 아니지만, 용이 나오는 이야기랍니다.”

“정말요?”

“에드도 멀리 떨어져 있지 말고 이리 와서 같이 듣게. 이곳 북부와도 관련이 있는 이야길세.”

에드 역시 용이 나온다는 옛날이야기에 많은 관심이 있었기에 천천히 대신관 곁으로 다가갔다.

“대공자님도 용을 좋아하시니 용과 관련된 설화는 아주 다양하게 있다는 걸 아실 겁니다.”

“네, 그리고 형이 보여 준 용은 조금 작았지만, 원래는 집채만 한 크기인 것도 알고 있어요!”

평소에도 동화책에서 나오던 용을 좋아하는 로넨이 눈을 반짝이며 대신관의 손을 붙잡았다.

‘형이 소환한 용은 예뻤지만 커다랗지는 않았는데…….’

“네. 북부 성만큼 아주 커다랗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합니다, 대공자님.”

하늘 전체를 메울 정도로 컸다는 소문도 있었다며 대신관이 팔을 넓게 벌리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에드는 그간 자신이 조사했던 것과 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대신관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저도 모르게 침을 꿀떡 삼키며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용 한 마리가 자신을 공격한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입고 숲속 깊숙한 곳에 위치한…….”

에드는 대신관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기시감이 들었다.

“……중상을 입은 용을 치료하려면 신관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숲 깊숙이 위치한 마을에는 신관이 없었습니다.”

“그럼 그 용은 그대로 죽었나요?”

로넨이 울먹이며 대신관의 옷을 꾸욱 잡아당겼다.

“다행히 그 마을에는 신관을 대신할 치료사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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