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101화 (101/198)

“아앗.”

로넨이 놀라자 아란이 꼬리를 살랑이며 로넨의 손에 머리를 비볐다. 놀라서 손가락을 구부렸던 로넨은 그 부드러운 털의 감촉이 신기한지 웃으며 아란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던 대공이 에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까 보니까 에드도 아란을 좋아하는 거 같던데 어때?”

에드가 조심스레 손을 내밀자 로넨과 교감을 하던 아란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에드를 가만히 바라보며 고개만 갸웃하기에 그는 살짝 실망했다.

“저는 별로 마음에 안 드나 봐요.”

“아란, 장난치지 말고.”

그러자 아란이 쫄래쫄래 다가와 에드의 손에 볼을 비볐다. 에드는 마치 옛날에 기르고 싶던 허스키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 기분이 묘했다.

“에드, 털이 엄청 부드럽지? 느낌이 엄청 좋아.”

“그러게요, 따스하고 포근하네요.”

“로넨과 에드 때문에 아란이 오늘따라 더 신나 보이는데.”

아란이 커다란 꼬리를 휙휙 돌리는 걸 보며 옅게 웃던 대공이 텐스에게 말했다.

“짐수레의 주인에게 따뜻한 음료를 내어 주고 쉴 수 있게 해 줘. 그리고 그의 일행과 추가 물품이 아직 산 중턱에 있다고 하니 다른 기사들과 함께 내려가서 상태를 살펴보고 안전하게 올 수 있도록 도와줘.”

텐스는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대공 전하.”

상황을 정리한 대공은 아란에게 다가갔다.

“아쉽겠지만 이제 아란은 환수계로 돌아가 있자.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다시 만나서 놀 수 있을 테니까 너무 아쉬워하지 말고.”

그새 정이 들었는지 아란을 아쉽게 쳐다보던 로넨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형. 다음에 또 아란과 놀게 해 주세요!”

그러더니 손을 떼고 아란에게 인사했다.

“안녕, 아란. 다음에 또 보자.”

에드도 가볍게 손을 흔들며 로넨과 함께 아란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대공이 아란을 역소환하자 에드는 로넨에게 물었다.

“도련님,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귀빈석에 가 계실래요? 아니면 막사에 계시다가 전하와 함께 가실래요?”

로넨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음, 막사에 있을래.”

* * *

무투 대회를 보러 온 사람들이 하나둘씩 도착하기 시작하자 에드와 제이논은 공터 입구에 서서 초대장을 확인했다. 들어오는 인사들 모두 북부의 귀족이거나 명망 있는 사람들이었다.

에드는 초대장이 확인된 사람들을 베이스 캠프의 정해진 구획으로 안내했다. 정해진 좌석이 점점 채워지던 중 몇몇 사람이 에드에게 다가와 로넨의 행방을 물었다.

“그런데 로넨 도련님께서는 오늘 행사에 참여하지 않으시나?”

“아직 전하와 대공자께서 보이지 않으시는군. 행사 준비 때문에 바쁘신 건가?”

에드는 아직 막사에 있는 로넨을 떠올렸다. 로넨은 아직 홀로 사람들이 많은 곳에 나서는 것을 멋쩍어했다.

“도련님께서는 행사 준비로 지치셔서 잠시 쉬고 계십니다.”

“하긴 아직 어린 나이이신데 너무 무리하시다 감기라도 걸리시면 큰일이지.”

“아주 어릴 때 전대 대공 부부의 곁에서 본 게 마지막이라 조금이라도 빨리 무사하신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군.”

“행사 시작 때는 모습을 보이실 예정이니 조금만 더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기다리시는 동안 몸이 식지 않도록 뜨거운 차와 간식이 준비되어 있으니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안 그래도 산을 오르다 보니 몸이 으슬으슬한 것 같았는데 따스한 배려 감사하네.”

“그럼 우리가 앉은 자리에 가져다줄 수 있는가.”

“네, 자리에 앉아 계시면 사용인들을 통해 차례에 맞춰 간식과 차를 준비해서 가져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에드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주의를 돌리며 로넨이 대화의 중심에서 멀어지게 했다.

간식을 부탁한 사용인들에게 귀빈들의 좌석을 알려 준 에드는 막사로 돌아왔다. 부족한 물품을 파악하고 홀로 기다리고 있을 로넨을 생각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도착한 막사 안에는 어째선지 로넨은 없고 대공이 있었다. 대공은 작은 바구니에 든 간식거리를 트레이에 올려 정리하고 있었다.

“에드, 그렇게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니까.”

“지금 이곳에 있는 사용인으로만 감당하기에는 입장객 수가 만만치 않아서요.”

“제이논 말로는 에드가 있어서 작년보다 훨씬 수월하다고 하던데.”

대공의 칭찬에 에드는 눈동자를 살짝 굴렸다.

“……로넨 도련님은 어디 나가신 건가요?”

“텐스와 함께 말을 구경한다고 하면서 나갔어.”

“아, 그렇군요.”

대공이 웃으며 에드의 손목을 잡았다.

“그보다 에드, 말 돌리지 말고 잠깐 이곳에 앉아서 좀 쉬어.”

자신의 행동을 간파한 대공을 보며 에드는 마지막 반항을 시도해 보았다.

“어, 그게 귀빈석에 돌릴 간식이 다 떨어졌다고 해서 말인데요.”

하지만 대공은 여유롭게 받아쳤다.

“응, 그건 방금 전에 제이논이 갖고 나갔으니까 괜찮아.”

막사 안에서 에드에게 휴식을 권한 대공은 무투 대회가 열리는 시간이 되자 에드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대공 전하 드십니다.”

이르텔의 외침에 웅성거리던 베이스캠프에 조금씩 정적이 퍼져 나갔다.

이윽고 조용해진 베이스캠프에 대공이 모습을 드러내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추었다.

양쪽 진영으로 나누어서 자리를 잡은 기사들도 고개를 깊게 숙이며 대공을 정중하게 맞았다.

대공은 그들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하며 에드가 단상 아래에 서 있는 제이논 옆에 자리하는 것을 확인한 후 단상에 올랐다.

붉은 카펫이 깔린 단상에 선 대공은 온화한 시선으로 주위를 훑었다.

“매년 보는 반가운 얼굴들이지만, 이번 행사는 동생을 찾은 이후 열린 첫 행사라서인지 감회가 남다르군. 더욱이 얼마 전에 내린 비로 이곳까지 오기 힘들었을 텐데도 모두 참석해 준 것에 감사를 표하네. 그럼 이번 무투 대회의 행사 순서에 대해…….”

잔잔하고 힘 있는 대공의 목소리가 베이스캠프를 울리며 사람들을 휘어잡았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대 때부터 대공을 지지하고 힘을 보태 왔는지 로넨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손수건으로 살짝 눈을 가리기도 했다.

대공은 그런 그들을 향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말을 끝맺었다.

“추후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 주변의 사용인들에게 말하게. 이쪽에 있는 제이논과 에드가 상황에 맞춰서 처리해 줄 테니. 그럼 이번 연도 무투 대회를 즐겁게 보내길 바라네.”

* * *

무투 대회의 첫 번째 경기는 검술 대련이었다.

공터에 동그랗게 선을 그어 만든 경기장 안으로 들어선 기사들의 눈빛에 긴장감이 흘렀다. 양쪽 팀의 선수가 나와 인사를 하자 각각의 진영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함성도 커졌다.

“사자 팀의 첫 번째 기사 제스입니다!”

“독수리 팀의 첫 번째 기사 레브노입니다!”

인사를 마친 그들이 서로를 향해 목검을 겨누자 이곳저곳에서 응원이 날아왔다.

“제스! 잘 할 수 있어!”

“레브노! 평소에 하던 대로만 해!”

에드는 그 모습을 단상 뒤쪽에 앉아 바라보며 손에 땀을 쥐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대공이 로넨과 함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로넨이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도록 대공은 무대가 한 번에 보이는 귀빈석 중앙이 아닌 이곳으로 옮긴 상태였다.

이윽고 두 기사의 목검이 맞부딪히며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빠르고 거침없는 움직임이었다.

“정말 멋있다.”

어느새 대공에게 기댔던 몸을 일으켜 바로 앉은 로넨은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에드는 로넨이 자신도 모르게 내뱉는 말에 동의했다. 시선을 내리자 로넨의 눈이 반짝이며 기사들의 절도 있는 검술에 열중하고 있었다.

“첫 번째 대결은 사자 팀 승리!”

어느새 넋을 빼고 보다가 심판이 승리를 외치자 에드는 박수를 쳤다.

처음엔 누구 이기라며 함성이 가득했던 대회장이었지만, 이제는 서로에게 잘했다며 칭찬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었다.

* * *

다행히 무투 대회는 창술, 활쏘기, 기마 경기까지 큰 부상자 없이 무탈하게 진행되었다.

어느새 내일 오전에 열리는 마지막 사냥 대회만 남겨 둔 무투 대회 이틀째 밤, 막사 안에서 로넨이 잠결이 묻은 목소리로 에드에게 말을 걸었다.

“에드는 흑마가 좋아? 아니면 백마가 좋아?”

낮에 열린 기마전을 보고 눈을 빛내던 로넨은 결국 대공과의 협상에서 승리해 무투 대회가 끝나는 대로 텐스에게 승마를 배우기로 한 상태였다.

대공은 아직 어린 로넨이 조랑말도 아니고 기사들이 타는 말로 승마를 배운다는 사실이 조금 걱정스러웠던 모양인지 계속 버텼다.

〈로넨이 큰 말을 타기엔 아직 어린 것 같은데.〉

하지만 그의 철벽은 텐스와 에드까지 합세하면서 결국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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