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100화 (100/198)

에드의 말에 로넨이 손가락 인형을 꼬물거리며 대답했다.

“어, 모두가 무투 대회를 위해서 노력하는 걸 봤으니까 절대 안 그럴 거야.”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가며 결연하게 대답하는 로넨을 보며 에드는 옅게 웃었다.

그때 에드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대공의 음성이었다.

“아주 공정한 채점자를 둔 덕에 내일 무투 대회는 그 어떤 때보다 즐겁고 훌륭한 대회가 되겠는데.”

에드가 고개를 돌리자 도서관에 들어선 대공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에드가 인사하자 대공이 가볍게 눈인사하며 옆자리에 앉았다. 로넨이 인형을 까딱이며 말했다.

“형, 오늘도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고마워, 로넨. 그런데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이렇게 늦게까지 자지 않아도 괜찮을까?”

“내일 무투 대회가 설레서 그런지 아직 잠이 오지 않아요, 형. 그리고 에드도 방금 전까지 공부했으니까 조금 머리를 식히고 자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직 눈빛이 초롱초롱한 로넨이 독수리 인형을 움직여 맞은편에 앉은 대공의 손을 부리로 가볍게 콕, 콕 찍으며 답했다.

대공은 인형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에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역시 아직 잠이 오지 않는지 의자에 등을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서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로넨은 내일 대회에서 어떤 종목이 가장 기대가 돼?”

“음, 저는요…….”

하며 잠시 고민하던 로넨이 말했다.

“검술 대련이요! 연무장에서 보니까 기사들이 검술을 연마하는 모습이 너무 멋졌거든요. 저도 빨리 검술을 연습해서 무투 대회에 나가고 싶어요.”

“형도 내년에는 로넨이 무투 대회에 오르기를 기대할게.”

“……어, 내년은 안 될 것 같은데요.”

“그럼 내후년에 오르면 되지.”

“네! 열심히 수련해서 그때는 꼭 무투 대회에 참가할래요.”

로넨이 인형들을 까딱거리며 대답하자 대공이 낮게 웃으며 로넨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에드도 내일 기대되는 종목이 있어?”

고개를 돌린 대공이 에드에게 물었다.

“저는 기마요. 말을 탄 기사들이 어떻게 그렇게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건지…… 말을 타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데 말이에요.”

“아, 그러고 보니 에드는 아직 승마를 배운 적이 없지?”

“네, 그렇습니다.”

“북부 성에서 일을 하다 보면 말을 타야 할 일도 생길 거야. 그걸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승마를 미리 배워 두면 나쁠 것은 없을 것 같아.”

“…….”

“그러니 무투 대회가 끝나고 나면 승마 교육을 하는 게 좋겠군. 처음엔 조랑말을 타는 것부터 시작하면 무섭지 않을 거야. 내가 직접 가르쳐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에드.”

* * *

다음 날 이른 아침, 북부 성은 말과 마차가 빠져나가느라 분주했다. 말을 탄 이르텔을 선두로 빨간색 옷과 파란색 옷을 입은 기사단이 두 팀으로 나뉘어 성을 나섰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가렌다 산에 도착했을 때 이미 각 팀은 자리를 잡아 막사를 세우고 움직이느라 바빴다. 흥분이 서린 기사 단원들의 열기는 뜨거웠고 승리를 향해 구호를 외치는 함성은 맹렬했다.

“제이논, 넌 참가자도 아닌데 왜 계속 이쪽에서 얼쩡거리는데? 괜히 다치지 말고 빠져. 대머리독수리에게 오늘 본때를 보여 줄 테니까.”

“참가자가 아니면 응원도 못 하냐? 그리고 너야말로 오늘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할걸? 자칫하면 이빨 빠진 사자가 될 테니까.”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에드는 막사 밖으로 나왔다. 로넨은 이르텔을 따라 무투 대회가 열리는 장소를 구경하러 간 참이었다.

양쪽 진영 막사 앞에서 신경전을 벌이는 텐스와 제이논이 에드를 발견하자 앞다투어 말을 걸었다.

“에드, 오늘 잘 보라고! 내가 제이논의 콧대를 어떻게 납작하게 만드는지.”

“이랬던 텐스가 어떻게 망가질지 보는 즐거움이 있을 거야, 에드. 원래 빈 깡통이 내는 소리가 요란한 법이거든.”

에드는 저래도 사이가 좋아 보이는 텐스와 제이논에게 ‘기대할게요.’라고 대답하며 발길을 옮겼다.

‘이쪽으로 가면 작은 호수가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에드는 로넨이 이르텔과 함께 하는 사이에 가볍게 산책을 할까 싶었다.

가렌다 산은 험준한 북부 산 중에서 그나마 낮고 길이 잘 나 있었다. 멋스러운 가을 산의 운치를 느끼며 에드는 슬슬 걸음을 옮겼다.

“죄송합니다만, 나리.”

그때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에드가 몸을 돌리자 노인이 짐수레를 끌며 다가오고 있었다. 에드는 힘겨워 보이는 노인에게 다가가 짐수레 끄는 것을 도와주며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오늘 대회에 쓸 화살인데 오다가 말이 탈이 나서 늦었습니다. 어디로 가져가면 될지요.”

“비품 관련은 막사 입구에서 안내받으시면 될 텐데……. 다들 한창 준비 중이라 길이 엇갈렸나 봐요.”

에드는 짐수레에 실린 화살대를 확인하며 생각했다.

‘막사가 아래에 있으니 짐수레를 여기에 놔두고 말을 끌고 오는 게 낫지 않을까?’

에드가 정확한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막사에 뛰어 내려갔다가 올까 고민하던 중,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에드?”

몸을 돌리자 어느새 대공이 뒤에 서 있었다. 짐수레를 받치고 있던 에드는 얼른 대공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한 후 대답했다.

“이번 대회의 물자를 담당하는 상인인데 길을 잘못 들었다고 합니다, 대공 전하. 그런데 수레를 끌기에는 언덕도 높고 길도 포장되어 있지 않아서 제가 본부에서 말이라도 끌고 오면 어떨까 해서요.”

대공은 짐이 가득 실린 수레를 흘깃 보고는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오느라 수고했군.”

노인은 에드의 말을 듣고서야 제 앞에 있는 사람이 그 유명한 대공이라는 걸 알아챘다. 노인은 수레를 잘 고정한 뒤 부랴부랴 대공에게 인사를 꾸벅하며 대답했다.

“안, 안녕하십니까. 대공 전하. 예정 시간보다 늦게 도착해서 죄송합니다. 며칠 전 내린 비로 인해 길이 험해진 걸 염두에 뒀어야 했는데…….”

대공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길이 망가졌을 걸 생각해서 기사와 병사들을 보내 미리 정리했어야 했는데 내가 더 미안하군. 그러면 그 먼 곳에서 홀로 수레를 끌고 왔나?”

“아닙니다. 도중까지는 말과 함께 수레를 끌고 왔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미끄러운 길 때문에 말이 놀라서 조금이라도 빨리 오기 위해 일행은 두고 저 홀로 먼저 왔습니다.”

“그렇군. 다른 일행들은 산 아래 있는 건가?”

“아마도 지금쯤 말을 달래고 다른 수레와 함께 조금씩 산을 오르고 있을 겁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곰곰이 생각하던 대공이 말을 이었다.

“상단 이름과 일행이 오는 방향을 알려 주게. 내가 기사들을 보내 쾌적하게 올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아, 아닙니다. 대공 전하.”

“아직 길이 좋지 않은데 무리하게 일정을 진행하다 생긴 문제니 내가 살펴보는 게 맞아. 그러니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말해 주게.”

“정, 정말 감사합니다. 대공 전하.”

노인이 위치를 말하자 고개를 끄덕인 대공이 한쪽 손을 허공에 휘둘렀다. 갑작스러운 그 행동에 에드의 눈이 동그래지고 노인은 눈을 끔뻑였다.

“어?”

곧 허공에 환한 빛이 떠오르더니 소환진 속에서 아란이 튀어나왔다. 주변을 둘러보던 아란은 오랜만에 본 에드가 반가운지 그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몸을 비벼 왔다.

그런 아란이 반가워 살포시 웃던 에드는 대공의 몸이 걱정되어 그를 살짝 쳐다봤다. 그 시선을 느낀 대공은 아란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에드를 바라보았다.

“여러 가지 고등급 마법을 함께 사용하지 않는 이상, 이 정도는 아무 영향도 없으니까 괜찮아, 에드.”

“……그런데 아란은 갑자기 왜 소환하신 건가요?”

에드가 아란의 복슬복슬한 털을 상기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에드의 모습을 흐뭇하게 보며 대공이 장난스레 답했다.

“왜긴, 이 무거운 수레를 에드가 끌게 둘 수는 없으니까?”

* * *

에드는 짐수레를 끄는 아란을 바라보며 심란해했다.

‘정말 몸에 부담이 되지 않다고 해도, 전하의 마법을 고작 이런 일에 써도 되는 걸까? 그냥 내가 막사로 내려가 말을 끌고 오면 될 것 같은데.’

아란은 이런 에드의 생각도 모른 채 그저 오랜만에 산책이라도 한다 생각하는지 즐거워 보이기만 했다.

에드는 저를 흘깃흘깃 쳐다보며 걷는 아란이 마치 로넨처럼 느껴져 살짝 웃다가 대공을 바라봤다.

“아란 혼자 이 수레를 끄는 건 힘들지 않을까요?”

“아란은 집채만 한 크기의 마물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던 녀석이라 이 정도 수레는 그냥 장난감처럼 느껴질걸.”

“아란이 괜찮다면 다행이지만요…….”

“그리고 아란도 오랜만에 이렇게 바깥에 나와 돌아다녀서 신난 거 같아.”

그제야 마음속의 짐을 덜어 낸 에드가 대공의 곁에 슬그머니 붙어 걸었다.

막사 근처에 도착하자 로넨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형!”

대공과 에드를 보고 뛰어오던 로넨이 이내 그들 곁에 선 아란을 발견하고는 멈춰 섰다.

“형, 이 늑대는 형이 소환한 건가요?”

“아, 로넨은 처음 보는 거지?”

“네.”

“위험하지 않으니까 가서 인사해도 괜찮아. 이름은 아란이야.”

대공이 짐수레 밖으로 나와 꼬리를 살랑이는 아란을 향해서 손을 내밀자 늑대가 다가와 머리를 비볐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로넨이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자 아란이 혀를 내밀어 할짝 핥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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