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95화 (95/198)

에드도 알았다. 이 표정이 얼마나 어색한지. 그러나 미간에 주름 하나만 잡혀도 대공이 걱정할 것을 알았기에 해사한 표정으로 주변을 정리했다.

그때 로넨이 물었다.

“형, 어때요? 어제 마신 것과 오늘 마신 차 중 어떤 게 더 맛있어요?”

로넨의 질문에 대공은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말했다.

“에드의 정성이 들어간 거라면 어느 것이든 맛있지.”

대공의 대답에 아! 하며 로넨이 차를 한 모금 더 마시고 에드를 올려다보았다.

“에드, 정말 맛있게 마셨어. 고마워.”

“로넨 도련님께서 따신 허브로 차를 우린 덕에 더 맛있는 것 같습니다.”

로넨이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내일도 또 온실에 와서 허브를 따자. 그리고 에드도 어서 자리에 앉아.”

“네, 도련님.”

대공은 둘의 대화를 듣다가 에드가 자리에 앉자 로넨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에드와 뭘 함께 할 예정이야?”

“에드에게 체스를 가르쳐 주려고 해요.”

“체스?”

“네, 에드는 아직 체스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해서요. 에드는 따라오는 게 빠르니까 이것도 금방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대공은 테이블에 놓인 체스판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도 함께할까?”

* * *

에드는 머리를 맞대고 체스를 움직이는 대공과 로넨을 내려다보았다.

“형, 여기에선 이걸 움직이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그 방법도 좋은데 여기서 퀸을 이렇게 움직이면 승기를 한결 더 빠르게 잡을 수 있지.”

“아! 그렇네요.”

자신에게 체스를 가르쳐 주던 대공과 로넨은 어느 순간 진지하게 체스를 두며 대화를 나눴다.

에드는 그 둘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옅게 웃었다. 그 기척에 고개를 든 대공과 시선이 마주치자 에드는 흠흠, 작게 목을 가다듬으며 차를 마셨다.

“로넨, 그러고 보니 에드가 심심할 것 같아.”

체스판을 내려다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로넨이 대공의 말에 시선을 들었다.

“아, 맞아요.”

“그러니 에드에게 재미있는 걸 가르쳐 줄까?”

“재미있는 거라니 어떤 거요?”

“글쎄 어떤 게 좋을까?”

대공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작게 웃었다.

“에드는 뭐 가지고 싶은 거 없어?”

대공의 질문에 에드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지금 가진 것으로 충분한데요. 제 방에는 전하께 받은 선물이 이미 가득합니다.”

정말이었다. 대공에게 받은 선물들이 너무 많아서 지금도 방에 넘칠 지경이었다.

“하긴 에드의 방이 좁은 느낌이 있지.”

좁다니요? 북부 성에서 저처럼 넓은 방을 쓰는 사용인은 없는 것 같은데…….

에드가 대공을 바라보자 차를 다 마신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넨도 그를 따라서 벌떡 일어났다.

“형, 어디 가세요?”

“에드에게 채우는 즐거움을 알려 주고 싶어서.”

“채우는 즐거움이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대공이 에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럼 에드, 같이 나가 볼까?”

‘채우는 즐거움이라니, 그게 뭘까?’

얼굴에 의아한 빛이 서린 에드는 대공의 권유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실 밖으로 나오자 따뜻한 곳에 있다가 나와서 그런지 약간 서늘한 바람이 몸을 휘감았다. 에드가 옷깃을 여미자 대공이 뒤를 돌아보았다.

“에드, 추워?”

“아뇨, 괜찮습니다. 따뜻한 곳에 있다가 나와서 잠시 한기를 느낀 것 같아요.”

“오늘이 어제보다 쌀쌀한 것 같네.”

대공이 겉옷을 벗어 에드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그리고 옆으로 걸음을 옮겨 에드가 꽃샘바람을 덜 맞도록 그의 앞을 막으며 걸어갔다.

“…….”

대공의 향기가 스민 외투에 에드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가 그의 뒤로 얼른 따라붙었다.

“감사합니다, 대공 전하.”

“북부의 꽃샘추위를 가볍게 여겼다가 감기에 들면 고생하니 옷이 조금 크더라도 잘 걸치고 있어.”

‘대공 전하께서도 추우실 텐데.’

에드는 걱정하며 옷을 돌려줄 기회를 엿보다가 대공이 걸음을 멈추자 그 자리에 섰다.

‘어, 여기는?’

에드가 도착한 곳은 로넨과 자주 오가던 북부 창고 앞이었다. 하지만 며칠 전과 달리 훨씬 깔끔하게 정돈된 상태였다.

“로넨과 에드가 이곳에서 자주 노는 것 같기에.”

대공이 창고 문을 열며 말했다.

“이곳을 로넨과 에드의 보물 창고로 삼으면좋을 것 같아서.”

창고 안 역시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보물 창고요?”

환하게 웃으며 물은 로넨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마치 아늑한 다락방 같은 창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에드는 창고 안을 들여다보며 대공에게 물었다.

“이 창고는 북부 성의 물품을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길 제가 사사로이 사용해도 될까요?”

“본래 온실에서 나는 차를 말려서 보관하는 용도로 쓰인 곳이니 부담스러워할 것 없어.

“…….”

“그러니 로넨과 즐겁게 꾸미고 가꿔 보도록 해.”

그 설명을 들은 에드는 깨달았다.

원작에서 대공의 부모님이 온실에서 재배한 허브와 꽃을 말리던 장소라는 것을.

대공에게 시선을 주며 에드는 말문을 열었다.

“로넨 도련님이 즐거워하시는 걸 보니 마음에 드신 것 같아요. 저도 로넨 도련님과 함께 이곳을 따스한 공간으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러고는 외투를 벗어 대공에게 내밀었다. 지금 따뜻한 옷이 필요한 것은 자신이 아닌 대공인 것 같았다.

대공은 바람에 가볍게 머리카락이 날리는 에드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더 입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에드. 아직 바람이 쌀쌀하니.”

“하지만 전하의 몸이 상할 수도 있으니…….”

대공은 에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내가 어제 고맙다는 인사로 에드에게 감사를 전했는데 그걸로는 많이 부족하다는 걸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깨달았어.”

“…….”

“황궁에서 에드와 함께 손을 잡고 잤을 때도 그렇고……. 에드의 상태가 안 좋아 보이기라도 했으면 내가 걱정이 많이 되었을 텐데, 이렇게 활기차게 움직이는 걸 보니까 마음이 놓여.”

“제가 전하께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대공은 에드의 손에 들린 옷을 그의 어깨에 둘러주며 말했다.

“이제는 에드를 채우는 것이 곧 나를 채우는 일과 같으니 필요한 게 있다면 부담가지지 말고 뭐든지 말해.”

“…….”

“앞으로는 내가 에드를 더 잘 보살필게.”

* * *

북부 창고를 꾸며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이후로 로넨과 에드는 바빠졌다.

“에드! 여기에 테이블을 놓으면 어떨까?”

“그쪽은 문과 너무 가까워서 문이 열고 닫힐 때마다 바람이 많이 들어오지 않을까요?”

“아, 그럼 이쪽으로 놓아야겠다.”

에드는 작은 원형 테이블을 로넨과 함께 옮기며 창고 안을 둘러보았다. 대공은 보물창고를 채우라고 했지만 어쩐지 점점 아지트가 되어 가는 것 같은 창고였다.

“그럼 다음엔 의자를 놓고.”

테이블 자리를 잡은 로넨은 의자도 척척 움직여 놓더니 테이블 위를 꾸미기 시작했다. 온실에서 가져온 꽃도 화병에 꽂아 두고 체스 게임도 올려 두었다.

그러다 밋밋한지 고개를 갸웃하기에 에드는 마법 등을 챙겨 테이블에 올려 보았다. 로넨이 마법 등을 켜자 작은 불이 들어오며 테이블 위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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