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이 소파 맞은편에 앉자 에드는 기대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대공은 어쩐지 이제 아무 문제 없으니 얼른 손을 달라고 하는 듯한 에드의 모습이 마치 간식을 기대하는 강아지처럼 느껴졌다.
“이상 증세가 생기면 바로 주치의에게 진찰을 받겠다는 약속도 드렸으니, 대공 전하…….”
결국 참지 못한 에드가 한 마디 더 거들자 대공은 손을 내밀었다.
에드는 제 앞으로 내밀어진 손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마주 잡았다. 악수를 하듯이 손을 끼자 따뜻하고 다정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 느낌이 기분 좋아서 에드는 무의식중에 대공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어떤 방식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제 힘이 대공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자신을 믿고 손을 맡긴 대공의 시간을 마냥 잡아먹을 수는 없었기에 에드는 정신을 다잡고 그의 손을 덮고 있는 검은 흔적에 시선을 집중했다.
대공은 그런 에드를 바라보며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떴다. 기분 좋은 나른함이 손끝에서부터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마치 에드의 따듯한 마음이 손끝으로 흘러들어 오는 것 같네.’
에드는 잡은 대공의 오른손을 가볍게 눌러보았다. 전에 손을 잡았을 땐 그의 몸이 좋아지는 게 느껴져서 좋았다면 지금은 그게 우연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대공 전하의 상태를 제대로 살피지도 못했고.’
혹시 손에 뭉친 부분은 없나 살피던 에드는 대공의 손에 남아 있는 흔적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느리긴 했지만 확실히 옅어져 가는 모습에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여기가 좀 딱딱한 것 같은데.’
의사 못지않은 자세로 대공의 손을 매만지던 에드는 그 순간 머리 위로 가벼운 웃음이 흩어져 내리는 걸 느꼈다.
“에드, 간지러운데.”
에드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소파에 몸을 편하게 기댄 대공이 부드럽게 웃는 모습이 시선에 잡혀 왔다.
“아, 죄송합니다.”
빠르게 사과한 에드는 대공의 왼손도 맞잡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공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도 한결 편해진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기분은 어떠신가요, 전하.”
“응, 좋아. 에드는? 에드는 어디 불편한 곳 없어?”
“네, 저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에드는 한결 편안해 보이는 대공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를 더 빠르게 치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힘이 더 강해지면 좋겠다고.
* * *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에드는 제 몸을 살펴보았다. 손을 쥐었다 펴 보고 이마에 손을 얹어 열도 재 본 후에 침대 밖으로 나왔다.
‘대공 전하께서 분명히 살펴보실 테니까.’
거울로 얼굴 상태를 확인한 에드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대공이 겪는 부작용을 치료하는 데에 성공한 에드는 뿌듯함에 어젯밤 쉬이 잠들지 못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도 그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좋아, 몸도 가뿐하니까 오늘도 활기찬 하루를 시작해 보자.’
방을 나선 에드는 조용한 복도를 걸어 식당으로 내려갔다. 우선 아침 식사를 할 생각이었는데 때마침 계단을 올라오는 로넨과 만났다.
“어? 에드!”
“로넨 도련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응, 에드는?”
“저도요.”
옆구리에 체스 게임판을 낀 로넨이 씨익 웃었다.
“에드는 아직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았지?”
“네, 지금 식당으로 내려가던 중이었습니다.”
“같이 체스 게임을 하려고 했는데, 에드가 식사를 마치면 그때 해야겠다. 나는 형이랑 이미 식사를 마쳤거든.”
에드는 순간 내가 늦게 일어났나? 하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벌써 식사를 마치기엔 조금 빠르지 않나 싶었다. 시선을 살짝 들어 창밖을 바라보자 이른 아침이 맞았다.
로넨이 웃으며 에드의 의문을 풀어줬다.
“내가 오늘 일찍 깨서 방을 나왔는데 연무장에서 수련하고 들어오던 형이랑 만났거든. 그런데 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니까 형이 졸리지 않으면 아침 식사를 하자고 해서 오늘은 일찍 먹었어.”
아, 하며 에드는 꺼내려던 회중시계를 품 안에 집어넣었다. 어쩐지 로넨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고 생각했는데 아침부터 형과 우애 좋은 시간을 보내서 그런 것 같았다.
“오늘 대공 전하께서 새벽부터 수련을 하셨어요?”
에드가 질문하자 로넨이 손을 허공에 가볍게 붕붕 휘두르며 대답했다.
“어! 몸이 가벼워서 즐겁게 땀을 흘렸다고 하셨어.”
“아, 다행이다.”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 에드는 로넨이 제 손을 잡아 오기에 고개를 숙였다.
“어때, 에드? 내 팔에 힘이 붙은 것 같아?”
“네, 도련님. 최근에 부쩍 힘이 붙으신 게 보입니다.”
“정말? 형처럼 되고 싶어서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먹고 목검 수련도 틈틈이 하고 있거든.”
에드에게 조그맣게 말한 로넨은 잡은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아주 훌륭하세요, 도련님.”
에드의 칭찬에 흡족하게 웃은 로넨이 발을 움직였다.
“에드가 식사를 하고 나면 온실에 가자. 어제 마셨던 차가 정말 맛있었거든. 에드가 허브를 직접 땄다고 했지?”
“네.”
“그럼 오늘은 나도 허브를 딸래. 그리고 차를 함께 마시면서 체스를 두면 좋을 것 같아! 에드는 체스를 해 본 적 있어?”
“아뇨, 없습니다.”
“그럼 내가 체스를 하는 법을 가르쳐 줄게. 어렵지 않게 차근차근 잘 알려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참! 그리고 어제 에드가 형에게는 페퍼민트 차를 끓여서 줬지?”
“네, 피로 회복에 좋다고 들어서요.”
“그럼 오늘은 나도 그걸 마실래. 형이 엄청 맛있게 마셨다고 해서 어떤 맛일지 너무 궁금하거든.”
* * *
온실에 들어서자 로넨이 허브가 자라는 곳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에드, 이게 페퍼민트 맞지?”
“네, 도련님.”
로넨의 뒤를 따라온 에드가 대답하자 로넨의 시선을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럼 이걸 따도 될까?”
“네, 그 정도 크기라면 따도 괜찮을 것 같아요.”
에드는 페퍼민트를 내려다보며 옅게 웃은 로넨이 조심스레 잎을 따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런 경험 하나하나가 로넨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아 에드는 조금 마음이 뿌듯해졌다.
“이 정도면 충분히 끓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바구니에 어느 정도 허브가 모이자 에드는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티포트에 페퍼민트를 넣고 우리기 시작하자 의자에 앉은 로넨이 발을 앞뒤로 까딱였다.
차가 우려지는 동안 로넨은 기대에 찬 시선으로 티포트를 바라보았다.
에드가 완성된 차를 로넨의 앞에 놓인 찻잔에 따르자 로넨이 냉큼 잔을 손에 쥐었다.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도련님.”
“응, 응. 알았어.”
대답은 그렇게 했어도 금세 차를 마셔 본 로넨이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
“에드, 이거 코가 뻥 뚫리는 느낌인데?”
아, 하며 에드는 로넨의 찻잔에 따뜻한 물을 조금 탔다.
“죄송해요, 도련님. 허브를 너무 많이 넣은 모양입니다.”
색이 연해진 차를 내려다보던 로넨이 조심스레 입을 대 보고 다시 한번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에드는 그 모습을 살피다가 물었다.
“이젠 입에 맞으세요, 도련님?”
“응, 맛있어.”
로넨은 에드에게 차를 더 달라고 찻잔을 내밀었다. 에드는 티포트에 물을 더 넣어 연하게 만든 차를 찻잔에 따랐다.
“에드도 마셔.”
“네, 도련님.”
그때 온실 문이 열리며 옅은 찬바람이 들어왔다. 에드가 고개를 들어 확인하자 대공이 안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어, 형?”
로넨이 대공을 반갑게 맞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대공이 동생의 머리를 가볍게 흐트러뜨리며 말했다.
“재미있게 잘 놀고 있었어?”
“네!”
“에드도 즐거운 시간 보내고 있고?”
“네, 대공 전하.”
“그럼 나도 차를 한 잔 마실 수 있을까?”
“물론입니다.”
에드가 새 찻잔에 차를 따르자 대공이 자리에 앉으며 에드를 바라보았다.
“고마워, 에드.”
“아닙니다, 전하.”
에드는 대공이 자신의 안색을 살피는 것을 느꼈다. 에드는 입매를 끌어 올리며 표정을 밝게 만들었고 대공은 그 모습에 작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