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92화 (92/198)

“이르텔 경.”

“에드, 아직 안 자고 있었어?”

“로넨 도련님의 잠자리를 살펴보고 오는 중이었습니다.”

“그렇군.”

고개를 끄덕이는 이르텔의 안색을 살핀 에드가 살짝 걱정스러움을 담아 물었다.

“이르텔 경, 대공 전하는 무사하신 건가요?”

“무탈하게 귀성하셨으니 걱정할 것 없어. 그러니 에드도 걱정하지 말고 가서 쉬어.”

“……네, 알겠습니다.”

담담한 이르텔의 대답에 한결 마음이 놓인 에드는 인사를 꾸벅했다. 아직 궁금한 게 남아 있었지만, 휴식이 필요한 대공의 방 앞에서 수선을 떨 수는 없었다. 에드는 대공의 방에 시선을 줬다가 이내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하루였네.”

에드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침대에 누웠다.

‘그러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온실에 가야겠다. 마물이 나타나 놀랐을 로넨과 지치신 대공 전하께 드릴 찻잎을 준비하고 에린에게 함께 먹을 음식을…….’

아침에 일어나서 할 일을 정리하던 에드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예정했던 대로 일찍 잠에서 깬 에드는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에드는 신선한 허브와 꽃을 따러 온실로 향했다.

“어?”

온실 문을 열고 들어서려던 에드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온실에 놓인 소파에 방에 있어야 할 대공이 누워있었다.

천천히 문을 닫은 에드는 조심스레 대공 곁으로 다가갔다. 점점 밝아 오는 햇살이 그의 얼굴 내리쬐고 있는데도 그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왜 여기서 주무시고 계신 거지?’

에드는 곧 의문을 접고 햇살 때문에, 혹여 대공이 깨지 않도록 화분을 옮겨 그 위로 그늘을 만들었다.

그리고 에드는 한결 편해진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오래전부터 마음속 깊숙한 곳에 묻어 두었던 말이 흘러나왔다.

“대공 전하가 원작과 다르게 조금이라도 편하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어.”

한참 동안 대공을 내려다보던 에드는 몸을 돌려 허브를 따러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에드가 온실 깊숙한 곳으로 사라지자 대공의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갔다.

“…….”

대공은 자신의 얼굴 위로 드리운 화분을 보며 에드가 한 말을 떠올렸다. 에드가 낮게 중얼거리는 탓에 앞부분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가 자신의 행복을 바라고 있다는 말은 똑똑히 들었다. 그 말을 떠올리자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왔다.

대공은 잎사귀가 너른 화분을 바라보다 손끝으로 톡, 건드려 보았다.

이곳은 본성 근처에 있는 작은 온실이었다. 그는 향긋하고 싱그러운 풀 냄새가 퍼지는 따스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에드는 이른 아침부터 뭘 하는 거지?’

목 뒤를 가볍게 주무르며 일어나 앉은 대공은 자신의 손목을 타고 올라온 검은 흔적을 내려다보았다.

‘황궁에서 마력을 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무리해서 그런지 쉽게 안 사라지는군.’

대공은 옷소매를 끌어 내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머리가 바쁘게 요리조리 움직이는 에드를 향해 걸어갔다.

“좋은 아침이야, 에드.”

“아, 대공 전하. 일어나셨네요. 몸은 좀 괜찮으세요?”

“다행히 마물 수가 많지는 않았어서 괜찮아. 근데 에드, 더 쉬지 새벽부터 온실은 왜 온 거야?”

대공은 자신을 걱정스레 올려다보는 에드에게 괜찮다는 듯 웃으며 그의 관심을 돌렸다.

“로넨 도련님께서 어제 마물 때문에 많이 놀라신 것 같아서요. 아침에 일어나시면 드실 수 있게 차를 준비하려고 했습니다.”

“어제 일로 에드도 놀랐을 거 같은데, 괜찮은 거지?”

“저는 이미 몇 차례 겪었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전하.”

“그게 몇 번 겪는다고 해서 괜찮은 건 아닌데……. 에드도 이제 내 식구니까 언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에드는 대공의 내 식구란 표현에 가슴 안쪽이 뻐근해지는 것을 느끼며 콩닥거리는 가슴을 손으로 짚었다.

‘빙의를 하기 전에는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없었는데.’

얼굴에 열이 몰려서 벌겋게 달아올랐을 것이 틀림없어 에드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대공은 답 없이 땅만 바라보고 있는 에드를 보다 살짝 웃으며 입을 뗐다.

“음, 그런데 로넨 것만 있고 내 건 없는 건가?”

“……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질문에 에드는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대공은 에드의 머리카락에 묻은 작은 허브 조각을 손가락으로 떼어 내며 이어 말했다.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않고 왔는데 그에 대한 보상은 없나 해서.”

“아.”

‘레몬밤을

상을 달라는 대공의 모습에서 로넨이 겹쳐 보였다. 어쩐지 그가 귀엽게 느껴져서 마음이 술렁거리는 와중에 대공의 손등이 검게 물든 것이 에드의 눈에 띄었다.

“……전하, 그럼 제게 손을 잠깐 건네주실 수 있을까요?”

염려가 담긴 에드의 시선과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대공은 팔을 뒤로 물렸다.

“괜찮아, 이 정도는 흔히 있는 일이니까 조금만 쉬면 금방 없어질 거야. 신경 쓸 것 없어, 에드.”

에드는 대공의 반응에 제 추측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역시 시간 내에 마물을 처리하기 위해 대공께서 직접 나섰던 게 틀림없어.’

에드는 바닥에 바구니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치료하려는 게 아니라 상을 드리기 전에 정말 다치신 곳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전하, 제게 손을 보여 주시면 안 될지요?”

황궁에서 대공과 손을 잡고 잔 뒤에 분명히 그의 상태가 좋아졌다. 그를 회상한 에드는 대공이 이에 대해 신경 쓰지 않도록 담담히 그의 말에 답했다.

그러나 대공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도 주치의에게 보일 생각이었으니 걱정하지 말고 우리 찻잎이나 같이 준비하는 건 어떨까? 어떤 걸 따면 되지?”

자연스럽게 말을 돌리는 대공의 모습에 에드가 시무룩한 얼굴로 생각했다.

‘……확실히 얼마 전부터 대공 전하께서 나와 거리를 두는 것 같은데, 괜한 기우일까?’

평소라면 생각으로 그쳤겠지만 대공의 손을 본 이상 그럴 순 없었다. 에드가 낮게 운을 뗐다.

“송구하오나 전하,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뭐든지 물어봐도 괜찮아, 에드.”

“……혹시 저와 몸이 닿는 게 불편하신지요.”

대공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물어봐도 될까?”

“대공 전하께서도 저랑 접촉하고 있으면 부작용이 줄어든다는 것을 알고 계실 텐데, 굳이 저와의 접촉을 피하고 힘들게 버티시는 이유가 그것 말고는 짐작 가는 게 없어서요.”

에드가 그렇게 말하며 대공을 올려다보자 그는 에드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흐트러뜨렸다. 머리카락 사이에 가볍게 감기는 대공의 손가락에 에드는 시무룩했던 기분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에드는 이미 우리 형제를 위해 많은 걸 해 줬어.”

“…….”

“그래서 항상 고마워.”

에드는 조곤조곤한 대공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까 말한 대로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에드의 곁에 있으면 내 몸이 좋아지는 건 맞아. 하지만 그것 때문에 에드에게 부담감을 주고 싶지 않아.”

“…….”

“내가 마법을 사용하면 대가를 치르는 것처럼 에드도 나와 닿고 나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니 말이야.”

대공은 에드가 내려놓은 바구니를 들며 말했다.

“나는 에드의 부작용이 되고 싶지 않아.”

* * *

“에드.”

“…….”

“에드?”

로넨은 에드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북문 창고 뒤에서 이제까지 한 목검 수련을 에드에게 보여 주고 있었는데 오늘따라 그가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제야 로넨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에드는 아, 하며 로넨의 말에 반응했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아니야, 괜찮아. 혹시 무슨 일 있어?”

“아뇨.”

로넨은 어딘지 모르게 얼이 빠진 에드를 바라보았다.

‘어제 나타난 마물 때문인 걸까?’

로넨은 차를 챙겨 주는 에드의 얼굴을 살피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검술이 많이 는 것 같아서 자랑하고 싶었는데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았다.

‘맞아, 에드는 어른이긴 하지만 마물은 아이나 어른이나 다 두려워하는 존재니까.’

나도 빨리 크고 강해져서 에드랑 형을 지키고 싶어.

작게 주먹을 쥐었다 편 로넨은 에드가 아침부터 따서 우렸다는 허브차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마셨다.

“차가 정말 맛있어, 에드. 고마워.”

“감사합니다, 도련님. 한 잔 더 드릴까요?”

“아니야, 어제 늦게 자서 아직 조금 졸려. 들어가서 쉴래.”

아무래도 에드에게 휴식이 필요한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로넨은 목검을 허리에 차며 에드의 손을 잡았다.

“나는 저녁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쉴 테니까 에드도 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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