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90화 (90/198)

대공의 뒤를 따르던 에드는 부부에게 고개 숙여서 인사한 뒤 마차에 올라탔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텐스의 외침에 로넨이 창을 열고 밖을 바라보다 물었다. 마차가 산을 오르고 있었다.

“어, 형? 북부 성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요?”

“이왕 나왔으니 조금 더 여유를 가져도 좋을 것 같아서.”

그리고 완만한 경사를 올라가는 마차가 멈췄을 때 에드는 눈을 크게 떴다.

마차가 도착한 곳은 북부 전체가 보이는 산 정상이었다.

에드는 마차에서 내려 물끄러미 그 풍경을 바라봤다.

“…….”

대공도 그런 에드의 곁에 서서 말없이 그 풍경을 함께 바라봤다.

북부 성으로 돌아왔을 때는 해가 진 후였다.

방으로 돌아온 에드는 품 안에 잘 넣어 두었던 꽃을 꺼내 보았다. 혹시 꽃이 망가지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북부를 지킨다는 상징성이 큰 꽃이라고 했으니까.’

에드는 잘 마른 꽃을 책상에 손수건을 깔고 올려 두었다.

‘혹시 꽃이 부스러질지도 모르니까 내일 제이논에게 보관할 수 있는 용기가 없는지 물어봐야겠다.’

그러다 자연스레 대공의 조곤조곤한 음성이 떠올랐다. 에드는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상념에서 벗어났다.

‘밤이 늦었으니까 어서 자자.’

주변을 정리하고 침대에 누운 에드는 눈을 감았다. 오늘은 피곤했으니 금세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에드는 눈을 번쩍 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설핏 잠이 들어 꿈을 꾼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정확하게 생각은 나지 않았다.

에드는 바로 누웠던 몸을 돌려 장작이 타오르는 벽난로를 바라보았다.

북부의 봄은 예상보다 따뜻했지만, 밤은 그렇지 않았다. 철에 맞는 외투를 걸치면 밝은 햇살 아래에서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는 낮과 달리 밤에는 기온이 뚝 떨어졌다.

그래서 부주의로 벽난로의 불이 꺼지기라도 하면 감기에 들기가 십상이었다.

그를 염려한 대공은 항상 잠자리에 들기 전 로넨과 에드의 방을 돌아보며 벽난로를 살폈고 마법으로 온기가 유지되는 주전자를 준비해 두었다.

불을 멍하니 바라보다 도로 눈을 감은 에드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리저리 뒤척여 보아도 잠이 오지 않자 따스한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침대에서 나왔다.

그런 다음 에드는 벽난로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았다. 따뜻한 훈기를 쬐면 잠이 올까 싶어서였다. 그는 그렇게 자리에서 한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결국 에드는 몸을 일으켰다. 책상 위에 놓아둔 회중시계를 확인해 보니 밤 11시 30분이었다.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한 에드는 카디건을 걸치고 방문을 열었다. 램프가 일정 간격을 두고 켜져 있어 그리 어둡지 않은 복도를 걷다가 계단을 올랐다.

한 층을 올라간 그는 밝은 갈색 문 앞에 서서 귀를 대 보았다. 그리고 안에서 소리가 들리자 똑, 똑 노크했다.

“누구야?”

“제이논, 저 에드인데요.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아, 잠깐만.”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어제 제이논과 텐스가 게임하느라 늦게 잤다고 해서 혹시나 해서 올라와 봤는데.’

에드는 방문을 열고 씨익 웃으며 자신을 반기는 텐스를 올려다보았다.

“늦은 밤에 죄송해요, 텐스.”

“죄송하기는, 놀고 있었는데. 에드도 게임하러 왔어?”

“뭐야? 텐스, 우리의 은밀한 취미를 에드에게도 알린 거야?”

“어쩌다 보니. 걱정하지 말라고, 제이논. 이르텔에게만 안 걸리면 되니까.”

가볍게 웃으며 제이논에게 대꾸한 텐스가 안으로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에드는 그를 따라 어딘가 어수선한 방으로 들어갔다.

방 한가운데는 낮은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나무 블록들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제이논의 이마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오늘 전 부단장님의 식당에 다녀왔다며?”

제이논이 흩어진 나무 블록을 한곳에 모아 차곡차곡 쌓으며 에드에게 물었다.

“아, 네.”

“나도 도서관 정리만 아니었으면 따라가는 건데 아쉽네.”

“에드, 제이논이 오늘 자길 안 데려갔다고 나를 계속 괴롭히고 있어.”

“아니거든?”

제이논이 입을 살짝 내민 채 대꾸하며 에드에게 앉으라고 눈짓했다.

‘어차피 잠도 오지 않으니까.’

제이논의 맞은편에 앉으며 에드가 게임 참전 의사를 밝히자 자리에 앉은 텐스가 두 손을 가볍게 풀었다.

제이논은 탑처럼 쌓은 나무 블록을 손으로 탁탁 쳐 정리하며 설명했다.

“어려울 건 없어. 돌아가며 블록을 하나씩 빼다가 탑을 쓰러뜨리는 사람이 지는 거야.”

“벌칙은요?”

“탑을 쓰러뜨린 사람은 꿀밤 한 대씩.”

텐스가 손가락을 통통 튕기며 대답하자 에드는 제이논의 이마를 다시 한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시작.”

제이논이 나무 탑 한가운데에서 블록을 빼며 게임을 시작하자 그다음으로 텐스가 손을 놀렸다.

에드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신중한 눈길로 블록을 살피고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제이논이 에드의 손길을 눈으로 따르다 물었다.

“아, 맞다. 그런데 이 시간에 내 방까지는 왜 온 거야, 에드? 잠은 안 자고.”

“뭘 좀 보관하고 싶은 게 생겨서요. 망가뜨리지 않고 간직할 수 있게 보관함을 구할 수 있을지 물어보려고요.”

“보관함? 어느 정도 크기?”

“크지 않아도 돼요. 꽃 한 송이 들어갈 정도면 되거든요.”

“아, 그 정도 크기라면 내 방에 있을 것 같은데? 잠깐만 기다려 봐.”

대답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제이논이 책상 서랍을 쭉 빼 안을 살피는 동안 텐스가 에드를 보며 조그맣게 속삭였다.

“제이논의 이마가 왜 저런지 알겠지?”

에드는 고개를 작게 주억거렸다.

땡땡땡땡!

그때 북부 성 전체를 울릴 정도의 커다란 종소리가 들렸다. 서랍을 들쑤시던 제이논도, 피식 웃던 텐스도 일시에 동작을 멈췄다.

종소리가 한차례 멈춘 뒤 다시 울리기 시작하자 텐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외쳤다.

“마물이다! 내가 로넨 도련님의 방으로 갈 테니까, 제이논! 에드와 함께 대피소로 가 있어!”

* * *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 대공은 집무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땡땡땡땡!

그 순간, 밖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대공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땡땡땡땡!

일정 간격을 두고 다시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대공은 빠르게 갑옷을 입고 검을 챙겨 들었다. 실수로 울린 종소리가 아니었기에 한밤의 고즈넉함에 잠겨 있던 성안이 순식간에 시끌시끌해졌다.

똑, 똑

그때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와 함께 이르텔이 빠르게 문을 열었다.

“대공 전하, 동문 초소에서 마물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발견된 장소는?”

“동쪽 사우니 숲 초입 부근입니다. 북부 기사단 선발대가 확인을 위해 나섰습니다.”

“마물의 종류는?”

“비행이 가능한 마물인 것으로 보입니다.”

대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방 밖으로 나섰다. 다행히 동쪽 사우니숲이라면 성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서두른다면 마물이 영지 근처에 다가오기도 전에 격퇴할 수 있을 터였다.

북부 성은 대피를 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들은 질서 있게 움직였지만, 그 발걸음 속에 녹아든 긴장감까지 다 숨길 수는 없었다.

평소에 대피 훈련을 주기적으로 했지만,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두려움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까지 정해진 대피소로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을 확인하며 대공이 물었다.

“총 몇 마리인지 확인되었나?”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두 마리입니다.”

“움직임은?”

“아직까지는 동면 상태로 큰 움직임은 없다고 합니다.”

대공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로넨의 방으로 걸음을 옮기며 마물의 현재 상태에 대해 파악했다.

마물들은 균열의 틈에서 빠져나온 직후, 한동안 현세에 적응하기 위해 동면에 빠진다. 그때를 노리면 행동이 굼떠 최소한의 피해로 격퇴할 수 있었기에 대공은 이르텔에게 바로 움직일 수 있게 준비하라 일렀다.

“형!”

로넨은 텐스의 손을 잡고 방을 나오고 있었다. 대공은 몸에 보호대를 차고 자신에게 달려오는 로넨이 무서워하지 않게 부러 잔잔히 말했다.

“로넨, 텐스와 대피소에…… 아니, 내가 직접 데리고 가지. 자, 로넨. 내 품에 안겨.”

몸을 숙인 대공은 자신의 품에 안기는 로넨을 단단하게 받치고 일어서며 물었다.

“에드는?”

“제이논과 대피소로 먼저 이동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