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나한테는 견본을 만들어 본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째서 그게 계속 내 방에 걸리는 거지?’
오늘 오전에도 재단사가 방으로 가져다준 옷에 에드는 눈을 깜빡이다 옷이 별로냐며 시무룩해 하는 그를 달래느라 진을 빼야만 했다.
옷이 마음에 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대공 전하와 로넨, 재단사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만들던 옷이었다.
오히려 너무 좋아서 이걸 어떻게 입고 다닐 수 있을까 고민스러웠다.
‘내 신분에 맞지 않기도 하고.’
그때 똑, 똑 노크 소리가 울렸다.
“네.”
에드가 방문을 열자 텐스가 작게 하품하며 서 있었다.
“에드, 준비됐어?”
“텐스, 무척 피곤해 보이는데요.”
“어, 어제 제이논과 게임을 하느라 늦게 자서.”
“이르텔 경이 봤으면 분명 혼냈을걸요.”
“윽, 에드. 우리 사이에 무슨 그런 무서운 말을 하는 거야?”
에드는 냉큼 뒤로 도는 텐스를 보며 작게 웃었다.
오늘은 의복 양식에 대한 공부가 아니라 밖에 나가서 북부의 특산물과 백성들이 즐겨 먹는 음식에 관련해 공부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 호위와 안내를 겸해 텐스가 마차를 몰아 주기로 했다.
“그럼 가자.”
“네.”
에드는 텐스의 뒤를 따르며 곱씹었다.
‘아무래도 대공 전하께서 날 필요 이상으로 챙기시는 것 같은데…… 일도 많으셔서 바쁘실 텐데 괜한 내 욕심 때문에 전하를 고생시키고 있는 거 아닐지.’
“흐음, 에드. 나한테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하는 게 어때?
텐스와 함께 마차 앞에서 대공과 로넨을 기다리던 에드는 그제야 제가 마차 벽인 줄 알고 톡, 톡 쳤던 게 텐스의 등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 이런. 죄송합니다.”
“용맹한 기사가 허수아비를 내리치듯이 세게 때리던데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으면 말해 줘, 앞으론 잘할게.”
과장이 섞인 말이었지만 에드는 다시 빠르게 사과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그랬어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어제 제이논에게 게임을 다 이겼으니 좋아, 기분이다. 봐주지.”
장난스레 말한 텐스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까딱했다.
“저기, 전하와 도련님 나오신다.”
저 멀리서 “에드!”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에드가 시선을 돌리자 로넨이 빠르게 뛰어오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로넨 도련님.”
로넨이 마차 앞에 다가와 숨을 고르자 에드와 텐스가 웃으며 인사를 했다.
“안녕, 텐스. 에드도 안녕.”
“네, 로넨 도련님.”
“에드는 며칠 전에 맞춘 옷을 입었네. 아주 멋져!”
로넨이 에드의 주위를 빙빙 돌며 그를 칭찬했다. 그에 에드도 화답했다.
“감사해요, 도련님. 도련님도 정말 멋지십니다.”
“그럼 나는 어때?”
그 순간 들리는 목소리에 에드는 로넨과 시선을 맞추느라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얇은 청남색 코트를 걸친 대공이 마차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살랑이는 봄바람에 옷자락을 날리며 다가오는 그를 보며 에드는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응, 어떻지? 에드?”
대공이 다시 물으며 턱을 살짝 치켜들기에 에드는 술렁이는 감정을 숨기며 장난스레 웃었다.
“로넨 도련님보다 아주 조금 더 멋지십니다.”
* * *
마차가 도착한 곳은 높은 산자락 입구에 있는 작은 식당이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식당 주인인 중년 부부가 대공을 반갑게 맞았다.
“아이고, 대공 전하. 정말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지?”
“저희야 전하의 은덕으로 항상 잘 지내고 있습니다.”
부부는 대공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다 대공 곁에 있는 로넨과 시선을 맞췄다.
“안녕하십니까, 로넨 도련님.”
“아, 으응.”
로넨은 대공의 코트 자락을 가볍게 붙잡은 채 부부를 올려다보며 대답하고는 대공의 뒤로 살짝 숨었다. 그들은 그 모습이 신기하고 기쁜지 로넨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얼마 전까지 북부 기사단의 기사들이었어. 영지에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활약하며 북부 성을 지킨 부부지. 어릴 때 로넨이 어리광도 많이 부렸는데 기억 안 나지?”
대공의 설명에 로넨은 아, 하며 다시 살짝 앞으로 나와 부부를 올려다보았다. 부부는 환하게 웃으며 로넨에게 말을 건넸다.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로넨 도련님.”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도련님.”
“응, 나도…….”
부부는 로넨이 볼을 살짝 붉히면서 대답할 때마다 서로의 손을 부여잡으며 즐거워했다.
“텐스도 잘 지냈고?”
한참 후에 아내의 시선이 로넨에게서 떨어지자 텐스가 너스레를 떨었다.
“이제야 전 부단장님의 눈에 제가 보이나 봅니다?”
“이제라도 보이는 게 어디냐, 이놈아.”
아내의 대답에 텐스가 웃으며 테이블로 걸음을 옮기자 그 뒤에 조용히 서 있던 에드가 드러났다.
부부는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자 의아함과 궁금증이 담긴 눈빛을 했다. 남편이 에드에게 자리를 안내하며 물었다.
“처음 뵙는 분인데, 혹시 로넨 도련님을 찾게 해 주셨다는 분인가요?”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에드입니다.”
“아! 맞으시군요.”
부부의 환대에 에드가 얼굴을 붉히자, 그 모습을 본 대공이 조금 더 살을 보탰다.
“맞아, 로넨을 찾게 해 주고 그간 내 동생이 외롭거나 힘들지 않게 보살펴 준 은인이지. 그리고 지금은…….”
일부러 말을 흐리던 대공은 모두가 그의 뒷말을 궁금해하자 에드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살짝 웃었다.
“우리 형제에게 둘도 없을 소중한 사람이야.”
* * *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대공 전하. 음식을 곧 내오겠습니다.”
“기대하지.”
사실 에드는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이번에도 대공이 그저 맛있는 음식을 먹이기 위해 자신과 로넨을 속인 게 아닌가 의심했다.
하지만 그 의심은 차례로 나오는 그릇들을 보며 금방 접을 수 있었다.
처음엔 감자로 만든 고소한 식전 빵을 시작으로 산딸기를 갈아 북부의 야생화 꿀을 넣은 주스가 나왔다.
뒤이어 나온 마요네즈와 함께 버무린 감자 샐러드는 다른 지방에서 난 것보다 크고 맛있기로 유명한 북부 감자의 특색이 잘 드러나 있었다.
“에드, 왜 안 먹어? 입맛이 없어?”
에드가 나온 음식들을 멍하니 바라보자 이미 제 몫의 음식을 해치운 로넨이 물었다.
“아, 아닙니다.”
그제야 포크를 든 에드는 조심스레 감자 샐러드를 입에 넣었다. 분명 자신도 알고 있는 감자로 만들었을 텐데 수도에서 먹은 것보다 훨씬 맛이 진했다.
“입에 잘 맞아?”
“네, 정말 맛있습니다.”
대공은 그런 에드를 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에드도 알다시피 북부는 기온이 많이 낮아서 수도나 남부지방처럼 식자재를 구하는 게 쉽지 않잖아. 그 때문에 감자를 자주 먹었거든.”
부드럽게 이어지는 대공의 설명에 에드는 정말 그가 북부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전하의 설명을 듣고 있으니 음식 맛이 더 좋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알고 있는 북부의 지식을 총동원해서 분발해야겠는데.”
다음에는 감자로 만든 면에 치즈가 듬뿍 올라간 음식이 따끈따끈한 김을 풍기며 나왔다. 대공의 말로는 이 음식은 북부 주민들이 겨울철에 몸을 데우기 위해서 주로 먹는 식사라고 했다.
마지막으로는 북부에서 서식하는 산양의 젖으로 만든 푸딩이 나왔는데 특이하게 그 위는 말린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히아신스는 추위에 강해서 북부를 지킨다는 상징이 강한 꽃이기도 하지. 향이 좋아서 향수의 재료가 되기도 하고 기름을 짜서 먹기도 해.”
대공이 접시 위에 같이 놓여 있던 히아신스 꽃을 집어 들고 에드에게 건넸다.
에드는 그 꽃을 가만히 들어 바라보다가 손수건에 감싸 소중하게 품에 넣었다.
대공은 그 모습을 보며 웃었고 로넨도 따라서 꽃을 챙겨 주머니에 쏘옥 집어넣었다.
“맛있게 잘 먹었어.”
식당 부부는 대공의 간결한 말에 담긴 감정을 눈치채고 조금 눈시울이 붉어진 채 그들을 배웅했다.
오늘 먹은 음식들은 대공과 로넨이 북부 성에서 함께 자랐을 때 그들의 부모님이 종종 해 주던 음식이었다. 또한 히아신스는 대공의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었다.
“조심히 가십시오, 대공 전하.”
“오늘 정말 즐거웠어. 다음에 또 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