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81화 (81/198)

똑똑.

“응, 들어와.”

단번에 들려오는 대공의 허락에 에드는 조용히 문을 열고 빠끔 고개를 들이밀었다.

“저 에드입니다, 대공 전하. 안으로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혹시나 대공의 부하들인 줄 알고 들어오라고 했을까 봐 에드는 다시 한번 확인했다.

테이블에 앉아 책을 보고 있던 대공이 에드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래, 에드. 들어와. 마침 밤바람이 서늘한데 사 준 망토는 왜 안 입고 왔어? 마음에 들지 않아?”

“네?”

“귀여웠는데.”

에드는 아까 대공이 망토 후드에 달린 줄을 잡아당겼다 풀었다 하던 모습을 상기하며 대답했다.

“아, 선물 정말 감사합니다, 대공 전하.”

대공이 옅게 웃으며 찻잔에 따랐다.

“마음에는 들고?”

“물론입니다, 대공 전하.”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야. 그럼 북부 성에서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겠군.”

에드는 옷걸이에 잘 걸어 둔 망토를 생각하며 속으로 의아해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보단 로넨에게 더 어울릴 것 같은데.’

대공은 그런 에드를 올려다보다가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그럼 자기 전이니 음식은 좀 그렇고, 차라도 같이 마실까? 마침 차를 우리고 있었는데.”

“아,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실례는 무슨.”

에드는 대공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와 착석했다. 그리고 손수건에 감싼 장신구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실은 오늘 이걸 돌려드리기 위해 대공 전하를 찾아뵌 것입니다.”

대공은 손수건에 소중하게 쌓인 장신구를 보다 입을 열었다.

“내가 준 물건을 소중하게 보관해 줘서 고마워.”

대공이 차를 따른 찻잔을 에드에게 건네며 말하자 에드는 어쩐지 멋쩍어져 웃었다.

“사실 황궁에서 있었던 일들 때문에 에드가 너무 고생을 많이 해 걱정이었는데.”

대공은 따뜻한 김이 나는 찻잔을 손에 쥔 에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여전히 로넨 옆에 있어 줘서 마음이 놓여, 에드.”

에드는 염려가 담긴 대공의 시선을 느꼈다.

“그대로 뒷걸음질 쳐서 멀리 떨어져서 살겠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들이었는데.”

“아, 아닙니다. 대공 전하.”

대공은 에드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 에드.”

대공이 한쪽 벽에 놓여 있던 푸른색 종이로 포장된 상자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게 뭘까?’

에드는 그를 내려보다가 대공이 자신 쪽으로 내밀자 시선을 들었다.

“부담스러워할 건 없고 내 작은 성의라고 생각해 주면 좋을 것 같아.”

“……네?”

“에드가 여러모로 수고하고 있는 데다 로넨도 잘 보살펴 줘서 말이야.”

“아, 아닙니다. 대공 전하. 제가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대공은 에드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마력의 부작용이 있었던 날, 에드의 손을 잡으니 확실히 몸 상태가 좋아졌다.

하지만 대공은 에드가 진짜로 치료의 힘이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그저 에드가 자신과 함께하면서 힘들지 않기를 바라고, 행복하길 원했다.

대공은 에드가 평소에 수첩에 뭔가를 적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긴 시간 마차를 탈 때는 말없이 밖을 내다보며 풍경을 눈에 담는 것을 즐겼고, 그걸 수첩에 낙서하듯이 그리며 소리 없이 웃는 것 또한 알았다.

자신도 모르게 에드를 시선으로 따르다 깨닫게 된 에드의 습관이었다.

“사양만 하지 말고 한번 풀어 봐. 보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으니.”

에드는 어쩐지 장난기가 담긴 것 같은 대공의 말에 상자를 자신 쪽으로 끌고 와 풀어 보았다.

“어, 이건.”

상자 안에 든 것은 만년필이었다. 광채가 나는 검은색 몸체는 고급스러웠고 그 아래에는 황금색 촉이 달려 있었다.

“받아 줄 거지? 에드?”

* * *

대신전으로 가는 마차 안에서 에드는 목에 걸린 회중시계를 만지작거렸다. 어젯밤 대공을 만났을 때 술을 마신 것도 아니건만 다른 날보다 그의 진심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가슴 안쪽에 넣어 둔 만년필이 손에 닿았을 때 에드는 눈가를 긁적였다. 지난밤 조곤조곤하게 울리던 대공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다시 들리는 기분이었다.

〈사실 에드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노트에 뭔가를 기록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러니 앞으로는 이 만년필로 좋은 일만 적어나갈 수 있기를 바랄게.〉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에드〉

그 순간, 상념을 깨우는 목소리가 들렸다.

“대신전에 도착했습니다, 대공 전하.”

제이논이 말하며 마차 문을 열자 조금 떨어진 곳에 하얀색 옷에 어깨에 금색 띠를 두른 대신관을 필두로 신관들이 서 있었다.

“오랜만이군, 대신관. 잘 지냈나?”

마차에서 내리는 대공을 대신관이 깍듯하게 맞았다.

“네, 저는 잘 지냈습니다. 대공 전하께서도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대신관이 항상 기도해 준 덕에 잘 지냈네.”

대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대신관이 옅게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대공자님, 처음 뵙겠습니다. 대신전의 대신관 하르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대신관님!”

“오시는 길이 힘들진 않으셨습니까?”

“네, 힘들지 않았어요.”

마차에서 폴짝 뛰어내려 주위를 둘러보던 로넨이 대신관과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그럼 대공 전하, 괜찮으시다면 별도의 휴식을 취하지 않고 바로 중앙 예배당으로 모셔도 되겠습니까?”

밖에서 두런두런 들리는 목소리에 귀를 만지작거리던 에드는 마차 밖에서 기다리던 제이논의 부름에 정신을 차렸다.

“에드, 안 내려?”

“아, 내립니다.”

대신전은 울창한 숲 근처에 세워진 곳이었다. 신전 중앙에는 우뚝 솟은 높은 탑이 있었는데 주변의 나무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마차에서 내린 에드는 시선을 들어 끝이 뾰족하게 모여드는 높은 탑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태양이 탑 꼭대기에 걸린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 에드는 눈이 부심에도 홀린 듯이 그 끝을 올려다보았다.

“에드, 가자.”

그때 로넨이 에드의 손을 잡으며 가볍게 흔들었다. 에드는 그 손길에 시선을 내렸다. 로넨이 고개를 기울이며 에드를 올려다보다가 잡은 손을 조금 더 세게 흔들었다.

“응?”

“아…… 네, 도련님.”

조금 뒤늦은 대답에 로넨이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에드를 이끌었다.

에드는 로넨과 걸음을 맞추며 생각했다.

‘어쩐지 대신전에 들어온 이후로 자꾸 멍해지고 가슴이 울렁이는 것 같은데.’

에드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가슴을 살짝 짚었다. 그러자 품 안에 넣어 둔 만년필이 손끝에 느껴졌다. 그 단단한 촉감에 에드는 긴장된 마음이 풀어지며 안정이 되는 것을 느꼈다.

‘……너무 여행이 길어지니 힘이 들어서 그런가.’

그래도 그렇지. 여기서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정신 차리자.

대신관이 앞서서 대공을 안내했고 그 곁을 따르는 신관들이 로넨을 보좌했다. 에드는 새하얀 벽으로 꾸며진 대신전 본관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대신전은 도심지가 아닌 숲에 지어진 곳이라 그런지 생각 이상으로 정숙하고 아름다웠다. 곳곳에 비치된 조각상과 장식물들을 보며 걷다 보니 어느새 에드는 예배당 앞에 도착했다. 예배당의 단아하게 장식된 고동색 문은 꽉 닫혀 있었다.

딸랑딸랑.

그 문 앞에 달린 종을 대신관이 가볍게 흔들자 청아한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신관들이 두 손을 모아 가볍게 기도하며 예식을 마치자 대신관이 말했다.

“대공 전하와 대공자께 축복을 올립니다.”

딸랑딸랑.

그리고 다시 종을 흔드니 소리가 기다란 복도를 따라 파도처럼 번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럼 대공 전하와 대공자님은 안으로 드시지요.”

로넨은 에드의 손을 잡은 채 대신관의 뒤를 따르려 했다. 그러자 신관이 부드럽게 웃으며 로넨을 말렸다.

“오늘은 전하와 대공자님께서만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어? 에드는 못 들어가요?”

곁을 따르는 신관을 올려다보며 로넨이 고개를 갸웃하자 대공을 이끌던 대신관이 뒤로 돌았다.

“대공자님께서 많이 따르시는 분인가 보군요.”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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