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79화 (79/198)

에드는 지금이 로넨이 말한 비밀스러운 행동임을 직감했다.

잠시 외출을 하겠다며 대공에게 허락을 받은 로넨을 조용히 따라나서던 에드는 문 앞에서 마주친 텐스에게 자신을 따라와 달라고 신호를 주었다.

‘로넨 도련님은 모두에게 비밀로 하고 어딜 가고 싶으신 걸까.’

마을을 빠르게 걷던 로넨이 검과 방패가 새겨진 가게에서 걸음을 멈췄다.

‘여긴 무기점인데.’

“어서 오십시오.”

가게 안으로 조심히 들어가자 주인이 인사를 했다.

“어떤 무기를 보여 드릴까요? 도련님.”

“단단한 종류의 목검이 보고 싶어.”

“2층에 있으니 이쪽으로 오시죠.”

주인이 보여 주는 목검들을 확인하며 로넨이 말했다.

“아, 그리고 잠시만 자리를 피해 줄 수 있을까?”

“그럼 저는 1층에 가 있어도 될까요?”

“음, 그래 주면 좋겠어.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다시 부를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럼 천천히 둘러보시고 도움이 필요하면 불러 주십쇼. 도련님.”

주인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밖으로 나갔다.

무기대에는 여러 종류의 무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묵직한 목검을 들어 본 로넨이 붕붕 휘둘러 보는 동안 에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잘 꾸며진 무기대에 반질반질하게 손질된 무기들이 놓여 있었다.

“에드, 이것 봐.”

그리고 에드가 그렇게 잠시 한눈을 팔기가 무섭게 로넨이 그를 불렀다.

“아, 네! 도련님!”

에드가 고개를 돌리자 로넨이 작게 심호흡했다. 무기점 한편에 마련된 연습 공간에 선 그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러더니 가볍게 목검을 내리치고 힘 있게 들어 올리는 모습에 에드는 놀랐다.

‘로넨이 언제 이렇게 검술이 는 거지?’

곧이어 에드는 로넨의 움직임에 기시감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혹시 그건 대공 전하께서 쓰시는 검술이 아닌가요? 도련님.”

“아! 알아차렸어? 에드? 어때? 이상해?”

“정말 멋지십니다. 언제 배우신 건지요?”

로넨이 볼을 발갛게 물들인 채 답했다.

“형이 훈련할 때 본 걸 따라 한 건데 아직 한참 부족해서 좀 부끄러워. 그래서 에드에게만 보여 준 거야. 아직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아, 몰래 검술 훈련을 했다는 걸 들키기 싫어서 비밀이라고 했구나.’

에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도련님. 혼자서 배우셨는데 너무 잘하셔서 전 정말 놀랐는걸요?”

“정말이야?”

“네, 그럼요.”

에드가 확신에 찬 어조로 답하자 로넨이 신이 났는지 조금 더 열심히 목검을 붕붕 휘둘렀다.

한참을 그렇게 목검을 휘두르던 로넨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에드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에드, 저녁 시간 전이지만 혹시 가는 길에 뭐 사 먹으면 안 돼?”

배고픔을 호소한 로넨이 선택한 음식은 의외로 무기점 바로 옆에서 파는 꼬치구이였다.

“나 이거 먹고 싶어.”

에드는 식사 전에 이런 군것질을 해도 되는 건가 고민했지만, 로넨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꼬치구이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

성장기라 그런지 게 눈 감추듯이 꼬치구이 한 개를 먹어 치운 로넨을 흐뭇하게 보며 꼬치 하나를 더 건네준 에드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도련님, 혼자서 검술 훈련은 언제부터 하신 거예요?”

어느새 꼬치를 두 개째 해치운 로넨의 입가를 에드가 손수건으로 닦아내자 그가 옅게 웃으며 답했다.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어. 그냥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한 거거든. 목검이 없어서 나뭇가지를 대신해서 휘둘렀었는데 뭔가 형처럼 잘 안 되더라고. 그래서 이르텔한테 넌지시 물어봤더니 무기도 균형이 잡힌 걸 써야 한다는 걸 듣고 오늘 무기점에 온 거야.”

대답을 마친 로넨 허리에 찬 목검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에드는 목검을 소중히 움켜쥔 그 모습을 내려다보다가 로넨에게 물었다.

“그 목검은 손에 잘 맞는 것 같으세요?”

“응, 아주 마음에 들어.”

에드는 신중히 목검을 고르던 로넨을 떠올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도련님. 꼬치를 하나 더 드시겠어요?”

“응! 근데 에드는 왜 안 먹어? 자, 빨리 나만 주지 말고 어서 먹어.”

“네, 도련님.”

에드는 가장 맛있어 보이는 꼬치를 로넨에게 건네며 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에드와 로넨의 어깨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그들에게 팔을 걸쳐 왔기 때문이었다.

에드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로넨과 에드, 안녕. 마을 구경 재밌게 하고 있어?”

“어? 아스넬 형!”

로넨이 반갑게 인사하자 대공이 그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흐트러뜨렸다.

“와, 로넨 허리에 찬 검이 멋있는데?”

대공은 로넨의 허리춤에 자리 잡은 목검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반질반질하게 광이 나는 손잡이가 아직 손길을 타지 않은 새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아, 네! 아까 에드랑 무기점에 들렀다가 마음에 들어서 샀어요.”

“이런, 로넨의 첫 검은 형이 사 주려고 했는데.”

“아니에요, 형. 그냥 장난감으로 쓰려고 산 거예요!”

대공은 로넨의 대답에 작게 웃으며 에드에게 물었다.

“정말 그래? 에드?”

에드는 그제야 대공의 얼굴에 홀렸던 시선을 돌렸다.

에드가 시선을 내리자 로넨이 검지를 입가에 대며 쉿, 했다. 비밀을 지켜 달라는 뜻에 에드는 말을 골랐다.

“아마도 대공 전하와 기사들이 검을 든 모습이 멋있어서 그러신 것 같습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로넨의 새 목검 장만을 기념하여 선물을 해야겠는데?”

“선물이요?”

그 사이에 꼬치를 하나 더 집어 먹은 로넨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에드의 것도 함께 말이야.”

* * *

에드는 포만감에 배를 통통 두드리는 로넨을 흐뭇하게 내려다보며 대공과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대공이 커다란 보석점 앞에서 걸음을 멈추자 눈을 크게 떴다.

‘어? 여기에서 선물을 준비하시려는 건가?’

로넨에게 목검과 짝이 맞는 방패나 훈련복을 맞춰 줄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곳이었다.

“형, 여기는 보석점이잖아요?”

로넨 역시 의아했는지 대공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목검 손잡이는 미끄러우니까 가죽을 덧대야 하는데 거기에 이름을 새겨 넣으면 좋을 것 같아서 그래. 이 보석점에서 가죽 공예품도 함께 취급한다고 하니 천천히 둘러보자.”

“아, 네!”

커다란 보석 가게 안은 환한 마법 등에 비친 보석들로 반짝반짝 빛이 났다. 대공이 점원이 서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자 로넨이 쫄래쫄래 따라갔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게 대공을 맞이하는 점원에게 말했다.

“목검 손잡이에 덧댈 가벼운 가죽을 보고 싶군.”

“그럼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점원을 따라 걸음을 옮기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가죽 줄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굵기가 다른 색색의 줄이 늘어져 있는 것을 보며 로넨이 눈을 끔뻑였다.

그런 로넨의 반응을 보며 점원이 밝게 웃었다.

“이쪽에 마음에 드시는 게 없으시면 다른 쪽에도 준비되어 있으니 말씀해 주세요.”

“어, 너무 많으니까 모르겠는데.”

작게 로넨이 중얼거리는 말에 에드는 입을 열었다.

“우선 마음에 드는 색부터 고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도련님의 눈에 들어오는 색이 있으세요?”

“검은색도 좋은데 붉은색도 괜찮고, 파란색도 예쁘고.”

로넨이 부지런히 눈동자를 굴리며 대답하자 대공은 그가 물건을 고르는 데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말했다.

“천천히 살펴보고 결정해도 괜찮아.”

대공은 로넨과 시선을 맞추며 색을 골라 나갔고 에드는 신중하게 의견을 조율해 가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대공 전하, 잠시 자리를 비워도 되겠습니까?”

“음, 어디를 가려고?”

“다른 곳에 가려는 건 아니고요, 잠시 확인할 게 있습니다.”

대공은 로넨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하니까, 어디 멀리 가지는 말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