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74화 (74/198)

그리고 고개를 살짝 들자 대공이 에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이제 식사하러 갈까?”

“네!”

로넨의 대답과 함께 활기찬 하루가 시작되었다.

* * *

사냥제가 진행되는 동안 대공은 로넨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낮에는 황궁 후원을 거닐며 대화를 나눴고 밤에는 함께 잠자리에 들며 로넨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그리고 사냥제를 마치고 황궁에 돌아온 황제를 함께 알현하러 갔다. 황제는 여전히 사이가 좋아 보이는 대공과 로넨을 바라보며 말했다.

“짐에게 심려를 끼칠까 하여 사냥제에 참가도 안 한 대공치곤 얼굴이 좋아 보이는군.”

대공은 시종장의 손길에 사냥복을 벗는 황제의 실루엣을 보며 답했다.

“이 모든 것이 황제 폐하께서 신을 염려해 주신 덕분입니다.”

피식 웃으며 황제가 가림막 너머로 대공을 바라보았다.

“괜찮아졌다니 다행이군. 그럼 미처 끝내지 못했던 남은 일을 처리해도 되겠지. 오늘 밤 사냥제 기념 만찬에 두 사람도 참석하게.”

황제는 가늘어진 눈으로 말을 이었다.

“그때는 피하지 말게, 아스넬 대공.”

로넨은 전신 거울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황궁에서 열리는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서 옷을 갈아입었는데 평소에 입던 옷과 달라서 그런지 멋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색한 것 같기도 했다.

앞머리를 넘긴 민얼굴이 환한 조명 아래에서 너무 훤히 드러난 것 때문에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로넨은 거울을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에드, 나 이상하지 않아?”

로넨의 상의를 탁탁 잡아당기며 정리하던 에드는 숙였던 허리를 폈다.

“왜요? 도련님? 옷이 맞지 않으세요?”

황궁에서 열리는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서 새로 맞춘 옷이었다. 에드는 혹시 옷이 작거나 커서 로넨이 갑갑하거나 거치적댄다고 느끼는 게 아닐까 싶어서 로넨이 입고 있는 옷을 이리저리 살폈다.

로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아, 그게 아니라 나한테 옷이 잘 어울리나 해서.”

에드가 시선을 들어 올리자 로넨이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멋쩍어했다.

에드는 로넨에게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도련님, 여기서 보아도 멋지시고요.”

그리고 또다시 뒤로 한 발자국 성큼 물러서며 입을 뗐다.

“여기서 봐도 정말 근사하십니다.”

로넨은 에드의 칭찬에 바닥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에드가 좋은 말만 해 주는 것 같은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이렇게 차려입으시니까 너무 매력적이셔서 눈을 어디에 둘지 모르겠는걸요?”

에드의 계속되는 칭찬에도 로넨이 어딘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한쪽 볼을 부풀렸다. 그러다 또 확인하듯이 물었다.

“오늘 정말로 만찬에 함께 가는 거지?”

에드는 아침부터 몇 번이나 대공에게 자신과 함께 만찬에 가고 싶다고 말하던 로넨을 떠올리고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답했다.

“네, 물론이죠.”

그에 로넨이 환하게 웃었다. 그와 동시에 똑, 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네.”

로넨의 대답에 문이 열리고 대공이 방으로 들어왔다.

“준비 잘하고 있어?”

“네, 형.”

“평소에도 반짝거리는 내 동생이지만, 오늘은 특히 더 눈부신걸?”

옅게 웃으며 대공이 말하자 로넨이 대공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형이 그렇게 말하니까 기분이 묘해요.”

“묘하다니 뭐가?”

“제 눈에는 형이 훨씬 더 반짝거리거든요.”

“오늘 옷이 잘 어울리는지 걱정됐는데 로넨이 이렇게 말해 주니 안심이 되네.”

그렇게 말하며 대공이 로넨의 머리를 쓸어 넘기자 로넨이 이마를 긁적이며 구두 앞코로 바닥을 톡, 톡 찼다. 그를 내려다보던 대공이 로넨의 손을 잡았다.

“그럼 갈까? 로넨?”

로넨이 그 손을 마주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형.”

“아, 그 전에 잠깐만.”

잡은 로넨의 손을 놓은 대공이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대공과 로넨의 대화를 들으며 슬며시 뒤로 빠져 있던 에드에게 다가와 손을 뻗었다.

“…….”

“…….”

갑작스러운 대공의 손길에 놀란 에드가 눈을 감았다 뜨자 대공이 자신의 셔츠 깃을 매만지며 구겨진 부분을 정리해 주는 모습이 보였다. 언제나처럼 섬세하고 다정한 손길이었다.

“에드는 어떤 옷을 어떻게 입어도 멋지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스넬 형!”

대공과 로넨의 대화에 작은 한숨처럼 웃음을 흘리며 겸연쩍어하던 에드는 입을 뗐다.

“만찬에 참석하기 전에 마차를 타고 황궁 근처를 구경하기로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이제는 움직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대공 전하, 로넨 도련님.”

* * *

황궁에서 열리는 만찬회 장소는 대연회장이었다. 조금 이르게 방을 나선 그들은 황궁 근처를 돌며 밖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마도 로넨의 긴장을 풀어 주려는 의도겠지.’

에드는 마차 맞은편에 앉은 로넨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타닥타닥, 천천히 움직이는 마차 안에서 로넨은 옷이 구겨지지 않게 바르게 앉았다가 창턱에 손을 대고 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으로는 사람들이 활기차게 오고 가는 시가지의 모습과 잘 가꿔진 마을의 울타리가 보였다. 시원한 저녁 바람에 로넨은 크게 숨을 들이켜며 자꾸만 긴장되려는 마음을 다독였다.

“로넨, 가볍게 한 바퀴 더 돌까?”

그런 로넨을 바라보던 대공이 묻자 밖을 내다보던 로넨이 시선을 돌렸다. 마차 안에서 조용히 자신을 살피는 대공과 에드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 아니에요. 이제 시간이 다 되었으니 황궁으로 돌아가 만찬에 참석해야 할 것 같아요.”

바람결에 날리는 로넨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넘겨주며 대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황궁까지 느긋하게 가도록 하자.”

대공의 말에 텐스가 마차 속도를 줄였다.

서서히 움직이던 마차가 연회장 입구에 도착해 멈추자 대공은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뒤에서 대공의 손을 잡은 로넨이 폴짝 뛰어내렸다.

“에드, 이리로.”

대공은 마지막으로 마차에서 내리는 에드를 제 곁으로 불렀다.

마차 안에 뭐 놓고 내리는 게 없나 살펴보던 에드가 대공의 목소리에 걸음을 옮겨 그의 앞에 섰다.

대공의 곁에 서 있던 로넨이 에드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 손길에 시선을 내리자 로넨이 에드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우리 곁에 잘 붙어서 따라와야 해, 에드. 에드가 너무 멋있어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면 사람들이 다른 가문의 귀족인 줄 알 거 같아.”

에드는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지만, 로넨이 느끼고 있을 긴장감 역시 이해가 갔다. 그래서 에드는 말없이 로넨의 뒤에 바짝 붙어 계단을 올랐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대공 전하.”

“대공 전하와 로넨 도련님 좀 부탁해, 에드.”

시종 한 명만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대연회장이라 이르텔과 텐스는 밖에서 배웅할 수밖에 없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한 에드는 부지런히 발을 움직였다.

“아스넬 린든 대공과 로넨 린든 대공자께서 입장하십니다!”

대연회장 앞 레드 카펫에 서자 시종이 외쳤다. 그에 연회장 안에 있던 사람들의 눈과 귀가 입구로 쏠렸다.

안쪽에는 이미 많은 귀족들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만찬이 시작되기 전인지 황제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아마 축사를 할 시간에 맞춰 들어오겠지.’

에드는 슬쩍슬쩍 주위를 둘러보며 대공과 함께 움직였다.

시종이 트레이에 올려진 샴페인을 내밀며 말했다.

“대공 전하, 샴페인을 드릴까요?”

대공은 가볍게 손을 저으며 그를 물리려다 물었다.

“술이 아닌 시원한 음료도 있나?”

“아, 네. 여기 있습니다.”

시종이 건네는 음료수를 받은 대공이 이를 로넨에게 건넸다. 로넨은 목이 탔는지 금세 한 잔을 다 마셨다.

그때 부시종장인 졸렌이 연회장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다가 대공을 발견하고는 빠르게 다가왔다.

“아니, 대공 전하. 사냥제에 참석하지 않으시고 먼저 가셔서 걱정했는데 이렇게 만찬에서 뵐 수 있다니 다행입니다.”

“그래, 부시종장. 나도 그대를 다시 만나 기쁘군.”

대공은 부시종장에게 인사를 하며 로넨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에드는 고개를 숙인 채 생각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