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73화 (73/198)

“잘 잤어? 로넨?”

대공의 팔에 머리를 대고 누워 있던 로넨이 몸을 일으키며 답했다.

“네. 형은요?”

“나도 잘 잤어.”

“저 때문에 불편하진 않으셨어요?”

“로넨은 나 때문에 잠자리가 불편했어?”

“아, 아니요!”

로넨이 아니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모로 누워 로넨을 올려다보던 대공이 로넨의 앞머리를 살살 쓸어 넘겼다.

“나도 그래. 편안하고 좋은 밤을 보냈어.”

대공의 대답에 로넨은 새집 지은 뒷머리를 살살 누르며 웃었다.

“아, 맞다. 제가 잠들기 전에 곁에 에드가 있었는데요, 에드도 잘 자러 갔을까요? 제가 깜빡 잠들어 버리는 바람에 잘 자라는 인사도 못 했는데요.”

대공은 지난밤에 고개를 꾸벅이며 졸던 얼굴을 떠올리며 답했다.

“에드는 잘 자러 갔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악몽을 꿀 거 같다니까 로넨의 옆에서 자면 괜찮을 거라고 조언해 준 사람이 에드거든.”

“아, 정말이요?”

“그랬더니 정말 악몽도 안 꾸고 편안히 잘 수 있었어. 앞으로도 종종 로넨과 함께 자도 될까?”

“정말이요? 저랑 자니까 악몽도 안 꾸고 푹 주무셨어요?”

“그럼.”

대공의 대답에 로넨의 귀가 발갛게 달아올랐다.

“저도 형이랑 자니까 정말 좋았어요.”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로넨.”

“네!”

대공의 대답에 밝게 대답한 로넨이 활짝 웃다가 말했다.

“어, 그런데 형. 저 말씀 드릴 게 있는데요.”

“우리 로넨이 형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뭘까?”

“항상 에드가 절 신경 써 주잖아요. 그래서 저도 에드를 위해서 뭔가를 해 주고 싶어요.”

그렇게 말하며 뭘 하는 게 좋을지 골똘히 생각에 빠지는 로넨을 바라보며 대공은 옅게 웃었다.

“좋은 생각이야, 로넨. 그럼 에드를 위해 어떤 걸 하면 좋을까?”

* * *

로넨이 색색의 종이를 들고 후원의 벤치로 나왔을 때 곁에는 텐스와 제이논도 함께 있었다.

“그러니까 로넨 도련님, 에드의 방 앞을 꾸며 주고 싶다는 말씀이시죠?”

“응, 텐스. 에드가 깨기 전에 뭔가를 해 주고 싶어.”

“그렇다면 쉽고 빠르게 접을 수 있는 종이꽃을 만들면 좋은데…… 장미나 해바라기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으니 아이리스를 접는 건 어떨까요?”

“아이리스?”

“네, 종이를 자를 필요도 없으니 금세 만들 수 있습니다.”

텐스가 벤치에 놓인 색종이를 들고 손을 놀리며 아이리스꽃을 접는 시범을 보이자 로넨이 집중해 바라보았다. 그리고 텐스가 종이꽃 하나를 금세 접자 로넨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어, 예쁘다. 꽃을 이렇게 빨리 접을 수 있구나.”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제가 접는 법을 천천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로넨이 붉은색 종이를 손에 들자 텐스가 노란색 종이를 들고 반으로 접으며 천천히 손을 놀렸다. 그를 따라 꽃을 접어 나가는 로넨의 손은 작았지만 야무졌다.

“그런데 그냥 생화로 다발을 만들면 좋지 않을까요?”

에드가 깨기 전까지 꽃장식을 만들고 싶어 하는 로넨의 급한 마음을 알아챈 제이논이 텐스의 옆에 달라붙어 하늘색 종이를 들며 말했다.

“그러면 좋은데 황궁의 꽃은 함부로 쓰면 안 될 것 같아서.”

텐스가 종이를 반으로 접고 다시 반으로 접는 걸 바라보며 로넨이 답하자 제이논이 황제를 찬양하던 부시종장을 떠올리고는 말없이 종이를 접었다.

“그럼 종이꽃을 꽃병에 하나씩 담아 복도 앞을 꾸미는 건 어떨까요? 에드가 방문을 열고 나오면 도련님이 접은 꽃을 바로 볼 수 있게요.”

“아, 그러면 되겠다. 텐스. 나는 방문에 화환을 만들어 걸어 둘까 했는데 그게 더 좋을 것 같아.”

“그럼 그 옆에 작은 초도 놓아 켜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불빛에 종이꽃이 더 밝고 환하게 보일 테니까요.”

“응, 응. 그렇게 하자. 제이논.”

한동안 사각사각 종이 접히는 소리가 연달아 울리더니 금세 종이꽃이 수북하게 쌓였다.

텐스가 종이꽃을 한데 모아 정리하며 말했다.

“아이리스만 접으면 조금 밋밋해 보일 수 있으니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장미를 조금 접어 볼까요?”

“장미는 너무 어렵지 않을까?”

“하다가 어려울 것 같으면 다른 꽃을 접으면 되지요. 꽃대는 제가 만들어서 붙여 보겠습니다.”

제이논이 종이 끝자락을 손끝으로 둥글게 말며 말하자 소매를 걷어붙인 텐스가 분홍색 종이를 들어 장미를 접어 나갔다.

“그럼 너무 오래전이라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미간을 찌푸리며 집중한 텐스의 손끝에서 장미꽃이 만들어져 가는 걸 보자 로넨이 와, 하며 즐거워했다.

“진짜 대단하다. 텐스는 어떻게 이런 걸 다 알아?”

“제가 손으로 하는 건 뭐든 제법 잘하거든요. 대공 전하와 만나게 된 것도 소매치기를 하다가 걸려서…….”

로넨의 칭찬에 씨익 웃으며 답하던 텐스가 아, 하며 조용해진 주변을 둘러보았다.

제이논은 쯧쯧, 작게 혀를 찼고 로넨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파란색 종이를 들며 딴청을 부렸다.

텐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어쨌든 그런 제가 대공 전하를 만나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한 사람 몫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럼 로넨 도련님, 장미꽃을 접어 볼까요?”

* * *

에드는 문밖에서 들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시끌시끌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로넨 도련님, 종이꽃과 초는 이 정도 거리로 떨어뜨려서 장식하면 될까요?”

“어, 그 정도가 딱 알맞은 것 같아.”

“그럼 이 초는 여기에 놓을까?”

“네, 아스넬 형. 빨간색 초는 파란색 장미 옆에 두면 좋을 것 같아요!”

“아, 제이논! 아직 불을 붙이지 말라니까?”

“거참, 텐스는 진짜 무드 없다. 이런 건 미리 불을 붙여 둬야 분위기가 사는 거라고. 적당히 초가 타야 불도 잘 안 꺼지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가볍게 눈을 비빈 에드는 멍하니 생각했다.

‘이게 다 무슨 소리지?’

분명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를 감지한 에드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침대 밖으로 나와 빠르게 걸어 문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어?”

그리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던 에드는 멈칫했다. 복도 바닥에 밝게 타오르는 초와 종이꽃으로 길이 깔려 있었다.

“이게 무슨…….”

에드가 멍하니 중얼거리자 복도 바닥에 초를 내려놓던 로넨이 잽싸게 다가와 말했다.

“어? 에드, 아직 나오면 안 되는데.”

“……이게 다 뭔가요, 로넨 도련님?”

“뭐긴? 에드를 위한 꽃길이지. 에드는 옛날부터 가끔 꽃길만 걷고 싶다고 말했었잖아.”

에드와 로넨의 대화를 듣던 제이논이 에드를 다시 방 안으로 밀어 넣으려고 했다.

“그러니 다시 들어가 우리가 문을 두드리면 나오라고.”

옆구리를 쿡쿡 찔러 오는 제이논의 손길에 잠시 버티던 에드는 생각했다.

‘로넨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서 모두가 의기투합한 모양이구나.’

그에 별다른 토를 달지 않고 도로 방으로 들어온 에드는 밖에서 들리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에드가 이렇게 빨리 일어날 줄 몰랐어.”

“그러게 방문 손잡이를 끈으로 묶어 문이 안 열리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건 범죄라니까, 제이논.”

“로넨 도련님은 마음이 너무 약하신 것 같습니다. 가끔은 대의를 위해서 작은 것을 버려야 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요.”

“제이논, 저쪽에 초 다 꺼졌다. 불 다시 붙이고 와.”

“어엇! 초가 왜 다 꺼졌지? 알겠습니다! 대공 전하.”

두런두런 들리는 대화에 에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침대에 앉았다. 어제 있었던 일로 로넨이 기운이 처져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렇지 않아 보여 다행이었다. 대공의 얼굴 역시 좋아 보여서 에드는 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밖에서 준비가 다 끝났는지 방문이 똑, 똑 울렸을 때 에드는 입매를 끌어올렸다. 환하게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잘 잤어? 에드?”

곱게 접은 종이꽃이 작은 꽃병에 꽂힌 채 바닥에 늘어져 있었고, 그 옆에는 작게 일렁이는 초가 복도를 밝히고 있었다.

“네, 아주 잘 잤습니다. 로넨 도련님께서도 편안한 밤 보내셨습니까?”

로넨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응, 아스넬 형과 같이 자서 좋았어. 에드 덕분이야.”

에드는 옅게 웃으며 로넨과 시선을 맞췄다.

“숙면을 취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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