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72화 (72/198)

황제가 찾았다는 남자아이의 존재로 인해서.

‘로넨에게 이런 불안감을 심어 주기 위해서 황제가 귀족들을 대동하고 미리 준비한 남자아이를 밖으로 드러낸 것이겠지. 치졸하고 유치하게.’

에드는 침대맡의 램프를 약하게 켰다. 그리고 몸을 숙인 채 로넨과 시선을 맞췄다.

마차에서 잠든 로넨을 바라보던 대공의 눈빛과 황궁 후원에 도착하자 주변을 살피며 그를 품에 안고 옮기던 대공의 모습을 그가 직접 봤더라면 결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할 터였다.

‘자신의 움직임에 로넨이 깨기라도 할까 봐 대공이 얼마나 애지중지하면서 이동했는데.’

대공은 침대에 눕힌 로넨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그러고도 혹시나 잠에서 깨 자신을 찾지 않을까 싶어 한동안 곁에 머무른 후에야 불을 끄고 방에서 나섰다.

대공은 해결할 일이 남아 있어 발걸음을 옮겼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면 밤새도록 로넨의 곁을 지켰을 터였다.

에드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잠이 오지 않으십니까? 도련님?”

“모르겠어. 그냥 좀 마음이 이상해.”

“마음이요?”

“응. 아스넬 형은 내가 동생이 틀림없다고 말했지만, 막사 앞에 서 있던 그 아이를 만나니까…….”

잠시 말을 멈춘 로넨이 에드를 바라보았다.

“에드.”

“네, 도련님.”

“에드가 보기에도 그 아이가 나보다 더 아스넬 형이랑 많이 닮아 보였지?”

에드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도련님께서도 그 아이를 보셨다고 하셨죠?”

“으응.”

로넨이 고개를 끄덕이며 시무룩하게 답했다.

“그럼 자세히 보셨을지요? 저는 공터에 마법 등이 켜져 있었지만 낮처럼 환한 것은 아니라서 대공 전하와 같은 머리카락 색과 눈동자 색밖에 보지 못했거든요.”

에드는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로넨을 느꼈다.

“저는 검은색 머리카락과 붉은색 눈동자를 가진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얼핏 봐서 대공 전하와 그 아이가 닮은 느낌이 들었을 뿐이고 자세히 뜯어보면 또 다를지 몰라요, 로넨 도련님.”

“……으응, 그럴까?”

“물론이죠, 로넨 도련님도 대공 전하의 귀에 점이 있었다는 걸 아까 마차에서 보기 전에도 알고 계셨나요?”

로넨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대공 전하와 로넨 도련님을 자세히 살펴봐야 닮은 곳을 찾을 수 있듯이, 그 아이도 낱낱이 뜯어보면 대공 전하와 다른 점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닮았다는 이유만으로는 피를 나눈 형제라고 확신을 할 수도 없고 말이지요.”

로넨이 잠시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빠지더니 에드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황제 폐하께서 직접 찾은 아이니까…… 그래서 자신이 없어지는 것 같아. 내가 아스넬 형의 동생이 아니면 어떡하지, 하고.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아서 잠이 오지 않는 것 같아.”

에드는 로넨의 머릿속에 들어 있을 여러 가지 걱정과 불안을 충분히 느꼈다. 그리고 그런 로넨의 걱정을 덜어내 주고 싶었다.

“물론, 황제 폐하께서 많은 신경을 써 주셨지만 저는 대공 전하를 믿습니다. 대공 전하께서는 로넨 도련님과 어린 시절 같이 지내셨으니 도련님이 친동생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근거를 지니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로넨 도련님.”

로넨이 에드를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정, 정말 그럴까?”

“네, 그럼요. 수많은 전장의 선봉에 서서 승리를 쟁취하신 대공 전하이지 않습니까? 그러려면 적과 아군뿐만 아니라 주변의 지형까지 잘 파악하는 눈썰미가 필수입니다.”

“으응.”

“그러니 그런 눈썰미를 가지신 대공 전하께서 친동생을 잘못 알아볼 리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데굴데굴 눈동자를 굴리던 로넨이 도로 이불 속으로 쏘옥 들어갔다. 편하게 몸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나도 아스넬 형을 믿어.”

에드는 옅게 웃으며 답했다.

“네, 저도 그렇습니다.”

“이제 잠이 오는 것 같아.”

로넨이 눈을 감으면서 말했다. 에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 곁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로넨이 잠이 들면 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대로 잠이 드는가 싶던 로넨이 다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졸음기가 다분한 눈으로 에드를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에드도 피곤하지 않아? 그러니까 방에 돌아가서 얼른 자. 지금은 늦은 밤이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에드는 로넨의 눈이 가물가물하게 풀리는 것을 바라보며 이불을 꼼꼼히 덮어 주었다.

“네, 조금만 이따가 제 방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난 혼자서 자도 괜찮으니까…….”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며 결국 눈꺼풀이 내리감긴 로넨이 어느새 새근새근 잠들었다. 에드는 눈을 비비며 작게 하품했다.

‘이렇게 잠이 들었다가도 다시 깰지 모르니까 조금만 더 앉아 있다가 움직이자.’

에드는 램프를 끈 뒤 어두운 방 안에 조용히 머물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에드는 몸이 붕 뜨는 듯한 느낌에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을 몇 번이 깜빡이다가 “어?”했다.

등 뒤로 단단한 뼈대가 느껴졌고, 누군가가 자신을 안고 움직이고 있었다. 어두운 방 안이었고 침대에 자신을 내려놓는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등 뒤를 감쌌던 손길이 빠져나가는 것에 에드는 눈을 깜빡이다가 입을 열었다.

“……대공 전하이십니까?”

머리맡에서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했는데.”

안타깝다는 듯이 작게 혀를 차는 대공을 올려다보며 에드는 옅게 웃었다.

“제가 깜빡 잠이 든 모양입니다.”

“긴 하루였으니 피곤한 게 당연하지.”

“대공 전하께도 긴 하루이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이제 그만 눈을 붙이면 좋겠다는 에드의 속마음을 눈치챈 대공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로넨이 잠든 걸 보고 나왔는데 중간에 깬 건가?”

“아, 네. 선잠이 드셨다가 깨셨던 모양입니다.”

대공은 로넨을 살피기 위해 방문을 열었을 때 의자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에드를 보고 기분이 묘했었다.

‘에드도 피곤하고 힘들었을 텐데.’

오늘 있었던 사건들이 보통 일들이었던가.

그런데도 자신의 안위를 살피기보다 로넨을 살뜰하게 챙기니 그 모습이 퍽 고마웠다. 대공은 깊게 잠든 로넨을 확인한 뒤 고개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에드를 안아 들었다.

불안해하는 로넨을 에드가 보살폈으니 피로한 그는 자신이 챙기는 게 당연했다.

대공은 졸음이 밀려드는지 눈꺼풀을 느릿하게 깜빡이는 에드를 그의 방 침대 위에 눕히고 자신은 그 옆의 의자에 앉았다. 그가 깊게 잠든 것을 확인하고 방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대로 잠에 빠질 것 같던 에드가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자신을 올려다보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저, 그런데 대공 전하. 송구하지만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무슨 부탁이지? 에드?”

“급히 처리할 일이 없으시다면 오늘 밤은 로넨 도련님의 곁에서 주무시면 어떠실까 싶어서요.”

창가로 새어드는 옅은 불빛에 드러난 푸른 눈동자를 내려다보며 대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에드의 말대로 할게.”

그에 에드는 입가에 희미하게 번지는 미소를 머금은 채 눈을 감았다.

“감사합니다…….”

채 완성되지 못한 말을 하며 잠이 드는 에드를 한동안 지켜본 대공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의 커튼을 쳤다.

그리고 에드에게 작게 대답하듯이 말했다.

“나야말로 고마워, 에드.”

* * *

로넨이 눈을 뜬 건 조금 이른 아침이었다. 작게 하품을 하며 정신을 차린 로넨은 “어?” 하고 작게 감탄사를 흘렸다.

‘아스넬 형이잖아?’

자신이 자고 있던 침대에 형이 함께 누워 있었다. 바로 곁에서 자신의 몸을 안고 팔베개를 해 주고 있었다.

조용히 눈을 깜빡인 로넨은 슬금슬금 움직여 대공에게 가까이 붙었다. 커튼 틈 사이로 새어 드는 빛에 드러난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그마한 손으로 대공의 얼굴을 매만졌다.

‘여기서 여기까지는 반듯한 이마, 여기서 여기까지는 날렵한 콧대.’

로넨은 대공을 눈에 새겨 넣듯이 빤히 바라보다가 어제 하지 못한 말을 생각했다.

‘그런데 형, 그 아이가 진짜 아스넬 형의 친동생이면 어떡해요?’

이렇게 묻고 싶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면 자신이 버려질 것 같아서.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도 숨겼다.

‘만약에 제가 친동생이 아니라고 해도 가끔은 형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셨으면…… 아니 아니, 간간이 편지를 보낼 테니 답장이라도 주셨으면 좋겠어요.’

로넨은 여전히 콩콩 뛰는 가슴을 가볍게 누르며 생각했다.

‘아직 그 걱정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에드가 형은 눈썰미가 좋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로넨은 대공이 눈꺼풀을 천천히 올리며 잠에서 깼을 때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스넬 형?”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스넬 형?”

로넨으로서는 조용히 움직인다고 움직인 것이겠지만, 꼬물거리는 아이의 기척에 눈을 뜬 대공은 옅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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