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71화 (71/198)

공터에 모인 사람들이 저마다 입을 떼느라고 바빴다.

대공이 로넨의 앞을 가로막아 다른 사람들이 쏟아 내는 시선은 막았지만, 귀를 막아 줄 순 없었다. 사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구설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로넨이 에드는 안타까웠다.

‘이게 무슨 짓이야.’

에드는 마른 입술을 잘근거리며 뒤를 살짝 돌아보았다. 대공의 뒤에 서 있는 로넨이 고개를 숙인 채 땅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직 어린아이인 로넨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대공의 그림자 뒤에서 나오지 않고 숨을 죽였다.

황제는 검은 머리의 아이를 내려다보다가 몸을 돌려 귀족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짐이 사실 이를 직접 밝히고 싶진 않았는데…….”

그제야 공터에 있는 사람들의 눈과 귀가 아이와 대공을 벗어나 황제에게로 닿았다.

“아스넬 대공이 친동생을 찾는 데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짐 또한 그 사실이 몹시 가슴 아프고 괴로웠지.”

황제는 뒤를 돌아보았다. 대공을 바라보며 입매를 부드럽게 끌어 올렸다.

“그래서 짐도 백방으로 수소문해 보고 찾아보았다. 아스넬 대공의 친동생은 곧 짐의 동생과 마찬가지이니.”

공터를 울리는 목소리에 에드는 한숨을 내쉬고 싶었으나 참았다. 속이 답답했다.

“그리고 드디어 로넨케아즈 린든에 대한 실마리를 잡고 움직여 아이를 한 명 찾아냈지. 아이가 홀로 떨어진 경위와 아스넬 대공과 똑 닮은 외모, 그리고 아이가 지닌 목걸이를 봤을 때 이 아이가 대공이 친동생임이 무척 유력했지만 이미 대공이 동생을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짐은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황제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아이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대공이 동생이라고 주장하는 아이를 본 후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이 아이야말로 로넨케아즈 린든이 맞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황제는 잠시 말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공이 어떻게 나올지 가늘게 뜬 눈으로 살펴보다가 말을 이었다.

“이 아이가 진짜 대공의 아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자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이며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그러자 황제가 아이에게 다가가 말했다.

“괜찮다. 너를 해치려는 사람들이 아니니.”

고개를 든 황제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사냥제 기간 동안 아스넬 대공과 대화를 나누며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해 볼 생각이었는데…… 아까 있었던 땅울림 때문에 아이가 겁이 나 여기 와 있었나 보군.”

황제가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뒤로 돌았다. 그가 대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이 몹시 보고 싶어 그런 듯한데……. 아스넬 대공.”

“네, 황제 폐하.”

“이렇게 말했음에도 이 아이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을 보니 대공은 그대가 찾은 아이가 친동생이라는 믿음이 확고한 모양이군.”

“네, 그렇습니다. 황제 폐하.”

“그렇군. 짐 또한 대공의 안목을 믿고 있지. 하지만 하나뿐인 대공의 친동생이 둘일 수는 없는 법 아니겠나. 하루라도 빨리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지만 초대 황제를 기리는 거룩한 사냥제에 개인의 일을 끌어들일 수 없는 노릇.”

“…….”

“그러니 이에 대한 이야기는 사냥제가 끝나고 축하연에서 하도록 하지.”

에드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잘근거렸다.

‘결국 속만 시끄럽게 하고 가겠다는 작정인 건가.’

대공은 황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송구하오나 황제 폐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이지? 아스넬 대공.”

“신은 이만 사냥제에서 물러갈 수 있기를 청합니다. 사냥제에 집중하지 못해 황제 폐하께 심려를 끼칠 것을 염려하는 마음에 드리는 청이오니 부디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황제는 고개를 기울이며 비죽이 웃다가 답했다.

“오랜만에 대공과 사냥제에 함께할 수 있을까 했더니 이번에도 기회가 좋지 않군. 어쩔 수 없지. 그런 이유라면 이만 물러가기를 허락한다, 아스넬 대공.”

* * *

사냥터에서 황궁으로 돌아오는 길은 조용했다. 깊은 밤, 천천히 달리는 마차 안에서 대공은 로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동생의 놀랐을 마음을 다독였다.

“로넨, 오늘 많은 일이 있었지?”

대공의 곁에 앉은 로넨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요.”

그렇게 말하며 대공을 빤히 바라보는 눈동자에 시무룩한 기운이 실려 있었다.

대공은 그런 로넨의 몸을 부드럽게 당겨 자신에게로 끌었다. 로넨이 기운 없는 이유를 알았기에 로넨의 이마를 가볍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로넨, 전에 형이 말했었지? 형이 로넨의 이마에 약속의 증표를 콕, 찍었다고.”

“……네.”

대답은 했지만 로넨은 여전히 기운이 없었다. 이에 대공은 그쪽으로 한층 더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쪽을 보면 로넨, 형의 왼쪽 귀에 점이 있지?”

로넨은 머리카락까지 넘겨 가며 귀를 자세히 볼 수 있게 하는 대공의 손길에 따라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다가 “아!” 했다.

“네, 있어요.”

“이 점은 로넨의 귀, 여기에도 있어.”

대공은 로넨의 작은 귀를 매만지며 말했다. 은행잎 모양의 작은 상처가 있는 왼쪽 귀였다. 엄연히 말하면 점과 상처는 다른 것이었지만 대공은 그를 로넨과 자신의 접점으로 삼았다.

대공이 고개를 들어 에드를 바라봤다.

“로넨, 에드에게도 한 번 물어볼까? 에드, 나와 로넨의 귀에 닮은 반점이 있지?”

마차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에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대공과 로넨의 귀를 번갈아 살펴보며 답했다.

“네, 두 분의 귀 뒤쪽에 닮은 자국이 있습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로넨 도련님.”

에드의 대답에 로넨이 눈에 띄게 안심하는 게 느껴졌다.

대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왼쪽 귀에도 우리와 똑같은 점이 있었거든.”

그러니 걱정할 것 없어.

그렇게 말하는 대공을 올려다보던 로넨은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듯 대공의 몸에 머리를 기댔다. 단단한 대공의 몸은 마차가 흔들려도 로넨을 든든히 받쳐 주었고 좋은 향기가 났다.

로넨은 마차가 흔들릴 때마다 엉덩이가 가볍게 움직이는 걸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깜빡깜빡, 로넨이 다시 눈을 떴을 땐 한밤중이었다. 그는 침대에 눕혀져 있었고 머리맡에는 은은한 램프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이불은 가슴까지 올라와 있었고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서는 대공이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로넨은 숨을 죽이고 그를 올려다보다가 다시 스르륵 감기는 눈꺼풀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

그렇게 쭉 아침까지 잠이 들었으면 좋으련만 또다시 깜빡깜빡, 로넨은 다시 눈을 뜨고 말았다. 이번엔 어둠이 더 깊어진 새벽이었고 램프도 꺼져 있었다.

‘…….’

그리고 대공도 곁에 없었다.

로넨은 데굴데굴 눈동자를 굴리다가 옆으로 돌아누웠다. 아직 아침까지 한참 남았으니 더 자려고 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 올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잠이 안 오지?’

이불을 슬그머니 내린 로넨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황궁의 별채는 낯설었지만 싫지는 않았다. 침대와 테이블, 질 좋은 카펫과 예쁜 램프까지 모든 게 좋았다.

‘그러니 잠자리가 불편해서 그런 건 아닌데.’

황궁에 오는 동안 거쳤던 숙소에서도 잘만 잤으니까.

로넨은 다시 눈을 질끈 감았지만 잠이 오지 않아서 꼬물꼬물 일어나 앉았다.

‘방 안을 조금 걸어 볼까?’

그러면 피곤해져서 금세 잠이 들지도 몰라.

침대 아래로 다리를 달랑달랑 흔들며 생각을 하던 로넨은 도로 자리에 누웠다. 그러곤얼른 이불을 머리 위까지 끌어 올리고 숨을 죽였다.

“…….”

누군가가 방 가까이 다가오는 기척 때문이었다.

끼이익.

그리고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렸을 때 로넨은 눈을 질끈 감고 자는 척을 했다. 그러자 잠시 방 안을 둘러보던 기척이 이내 사라지고 방문이 닫혔다.

로넨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이불을 살짝 끌어 내렸다.

‘귀찮게 하면 안 되니까.’

끼이익.

하지만 금세 다시 열린 방문에 로넨은 도로 눈을 질끈 감았다.

“로넨 도련님.”

“…….”

에드였다.

로넨은 대답하지 않고 자는 척을 했으나 에드는 방 안으로 들어와 침대 곁으로 다가와 섰다. 잠시 말없이 로넨을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잠이 오지 않으십니까?”

그렇게 묻는 에드의 다정한 목소리에 어쩐지 로넨은 눈가가 시큰시큰해졌다. 슬그머니 눈꺼풀을 들어 올린 로넨은 무릎을 짚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에드와 시선을 맞췄다.

“에드.”

“네, 도련님.”

“나 이상해. 잠이 오질 않아.”

결국 몸을 일으켜 앉으며 하는 로넨의 말에 에드는 생각했다.

‘로넨의 방을 들여다보길 잘했어.’

에드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로넨이 잘 자고 있나 확인하러 문을 살짝 열어 보았다가 이불이 꿈틀꿈틀, 하는 것을 봤다.

가늘어진 눈으로 그를 확인한 에드는 못 본 척 문을 닫았다가 문에 귀를 대 보았다. 그러자 안에서 작은 한숨 소리와 함께 기척이 들렸다.

로넨이 자면서 몸을 뒤척인 게 아니라 잠이 든 척을 했던 것이란 걸 직감한 에드는 다시 문을 열고 천천히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로넨은 조금 더 자는 척을 했지만 결국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언제나 맑고 환했던 부드러운 눈 안의 눈동자가 촉촉하게 느껴져서 에드는 마음이 아팠다.

로넨이 불안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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