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65화 (65/198)
  • Chapter 65

    “아! 도련님. 오셨군요.”

    사근사근하며 부드러운 태도였다.

    로넨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얼굴에 환한 미소를 꽃피운 남자가 로넨을 천막 안으로 안내했다.

    “사냥제에서 아스넬 대공 님의 동생분을 뵙게 될 줄 몰랐는데, 이렇게 인사를 드릴 수 있어 정말 영광입니다. 저는 황제 폐하를 모시는 시종인 유스입니다.”

    10살 이하의 어린 귀족 자제들이 모인 장소답게 천막 안은 밝고 경쾌한 색감과 함께 통통 튀는 분위기가 있었다. 테이블 색깔이며 테이블에 놓인 생화며 모든 게 선명하고 환한 색이었다.

    천만 안을 밝히는 램프도 일반 천막에 비해 훨씬 많았다.

    “이쪽으로 앉으시면 됩니다, 도련님.”

    천막 중앙에 놓인 테이블로 안내한 유스의 말에 로넨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많은, 어색한 자리였으니 최대한 말수라도 줄이겠다는 로넨의 의도였다.

    그러나 열 명에 가까운 아이들의 눈이 한꺼번에 자신에게 쏠리자 부담스러움을 느낀 로넨이 흠흠, 작게 헛기침했다.

    로넨이 앉은 의자 뒤에 선 텐스가 바로 잔에 물을 따랐다.

    텐스의 옆에 선 에드가 고개를 숙여 작게 속삭였다.

    “괜찮으십니까? 로넨 도련님.”

    “으응, 괜찮아.”

    조심스레 잔을 든 로넨이 물을 마시자 그 자그마한 행동마저도 관심의 영역이 되었다. 영식과 영애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뒤에 서 있는 하인들의 시선까지도 로넨에게 쏠렸다.

    로넨이 잔을 내려놓자 그 옆에 앉은 한 영식이 인사를 건넸다. 로넨보다 덩치가 크고 인상이 강한 이였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저는 루인 공작가의 차남 갈로아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앉은 영애도 인사를 했다.

    “저는 주아 후작가의 장녀 체임스입니다.”

    둥그런 테이블에 앉아 있던 귀족의 자제들이 돌아가며 인사를 하자 로넨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아직 아이들이었지만 가문의 대표로 행동해야 한다는 의식 때문인지 듬직하고 의젓해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인사를 마치고 나자 얼굴이 어느 정도 익었다고 생각한 건지 갈로아가 찻잔을 손에 쥐는 로넨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안 겁니까? 대공자께서 린든 대공 전하의 동생이라는 것을요?”

    “아…….”

    로넨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시선을 들었다.

    궁금한 질문에 많은 이들의 눈길이 로넨에게 쏠렸다. 호기심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였다.

    “그건.”

    로넨이 입을 열자 사방이 조용해졌다. 얼마나 로넨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아스넬 형이 저를 보자마자 알았습니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 모습과 똑 닮았다고 하더군요.”

    로넨에게서 어떤 답이 나올까 집중하던 이들의 시선에 각기 다른 빛을 띠었다.

    “어머, 정말이요? 그럼 대공 전하께서 로넨 님이 동생이라는 걸 첫눈에 알아본 건가요? 너무 낭만적인 상황이에요.”

    “정말로요! 두 분이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첫눈에 알아보다니요! 이렇게 감동적인 일이 또 어디 있을까요? 세상의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는 제 유모도 들으면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라며 깜짝 놀랄 겁니다!”

    몇몇은 감동을 느끼며 쿠키를 집어 먹었고, 몇몇은 꼬투리를 잡으려다 대공의 돌아가신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자 입을 다물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입을 떼는 이도 있었지만.

    “그렇다는 것은 다른 확인 방법과 절차 없이 오직 린든 대공님의 감으로 도련님을 동생이라고 확신했다는 것입니까?”

    차를 마시며 목을 축이던 로넨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찻잔을 내려놓으며 질문을 한 영식을 바라보았다.

    “음, 루인 공작가의 차남 갈로아라고 했던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 질문의 의미가 조금 이상하게 들려서 다시 묻는데요, 혹시 영식은 아스넬 형의 판단을 의심하는 건가요?”

    로넨의 질문에 차를 마시려던 갈로아가 빠르게 찻잔을 내려놓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그럼 어떤 의미인가요?”

    “그, 그냥 궁금해서 질문드렸던 겁니다.”

    “그런가요?

    “네, 그렇습니다.”

    에드는 속으로 감탄했다.

    대공은 밤 산행을 떠나기 전, 로넨에게 주입식 교육을 했다.

    대공은 오늘 모임에서 예의 없이 행동하는 이가 나타난다면 이렇게 대응하라고 했다.

    1. 상대방을 지그시 쳐다본다.

    2. 질문한 사람의 이름을 확인하듯이 묻는다.

    3.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그 질문의 의미는 아스넬 형의 판단을 의심한다는 것인가요?’

    그를 완벽하게 수행한 로넨 덕분에 한동안 노란 천막 안에는 찻잔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울렸다. 다행이었다. 에드는 이대로 시간이 지나가길 바랐다.

    하지만 고요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 그런데 도련님께서는 황금 장신구를 착용하지 않으셨네요?”

    이번엔 체임스 영애가 입을 열었다.

    “오늘 모임의 드레스 코드는 황제 폐하께서 직접 정해 주신 건데, 전해 듣지 못하셨나요? 이 자리에 참석하는 귀족가 자제들은 모두 황금 장신구를 착용해야 해요. 황금처럼 밝게 빛나는 아이로 자라라는 황제 폐하의 깊은 뜻이지요.”

    그런 말은 듣지 못했다.

    텐스의 미간이 약하게 꿈틀거리는 걸 보며 에드는 귀족가의 자제들을 빠르게 살펴보았다.

    영식과 영애들이 우아하고 화사한 옷차림에 번쩍이는 금배지와 목걸이, 머리 장신구로 힘을 주고 있었다.

    황제를 알현하는 자리에선 그가 착용한 것보다 귀한 것을 입지도, 걸치지도 못했다.

    감히 황제의 찬란한 빛을 같이 나누려는 행동이자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대공의 황금 장신구만이 황제와 함께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금붙이였다.

    그건 선대 황제가 북부로 터를 옮긴 자신의 여동생인 멜라에게 직접 만들어 준 장신구였으니까.

    그러니 목숨이 귀한 줄 알면 사냥제에 금덩이를 가져온 귀족은 없을 터였다. 이 자리에 허락된 자제들만 빼면.

    아마도 대공이 밤 산행을 나설 때 어깨에 그 장신구를 하고 나올 거라고 생각한 황제가 이런 유치한 자리를 마련했겠지.

    이러한 황제의 명이 내려졌는데도 황금으로된 장신구를 가져오지 않는 것은 황권을 무시한다는 뜻으로 보여 질 수 있었다. 아마도 황제는 이걸 빌미로 대공가를 공격하려는 거겠지.

    설사 대공가에서 뒤늦게 알더라도 다른 귀족들에게 금붙이를 빌린다면 그건 그것대로 웃음거리가 될 테고.

    에드는 품 안의 장신구를 느끼며 분위기를 살폈다.

    입을 떼도 될까? 잠시 고민한 에드는 경직된 로넨의 어깨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런 전언이 있었다면 그를 제대로 알리지 못한 자의 잘못이지 않겠습니까?”

    에드의 대답에 체임스가 말없이 부채를 살랑였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드레스 코드가 그렇다는 걸 알았으면 준비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넨 도련님은 황제 폐하 앞에서 황금을 두를 수 있는 대공 전하의 하나뿐인 동생이시니까요.”

    그러니 너희들과 달리 지금 당장 금붙이를 구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이를 은연중에 알린 에드는 로넨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럼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로넨 도련님.”

    * * *

    노란 천막 밖으로 나온 에드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켠 후 숲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법등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둡고 한적한 곳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휙, 휙 주위를 살피다 망토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대공의 소중한 물건을 내가 가지고 있는 걸 누군가가 알아봤자 좋을 건 없으니까.’

    반질반질하게 세공된 장신구가 손끝에 착 감겨 왔다.

    파스락.

    그리고 그 순간, 에드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기민하게 주위를 살폈다. 부스럭부스럭, 풀숲이 흔들리는 소리였다. 바람결에 가볍게 흔들리는 게 아니라 제법 큰 소리였다.

    ‘흔들리는 풀숲을 조심하라.’

    제이논이 귓가에 소곤거린 말이 생각나자 에드는 망토 안으로 넣은 손을 뺐다. 누군가 있나 싶어 빠르게 자리를 옮기려 몸을 돌렸다.

    파스락.

    그리고 또 한 번 풀숲이 크게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을 때 에드는 보았다. 눈앞으로 커다랗고 검은 그림자가 달려드는 것을.

    “……뭐, 뭐지?”

    뱀이 움직이듯이 스르륵 바닥을 타고 움직인 새카만 넝쿨이 에드의 발을 감싸려고 했다. 에드는 주춤하지 않고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에드의 움직임을 감지한 시커먼 넝쿨이 뒤로 살짝 물러났다가 다시 에드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엔 아까보다 훨씬 빨라진 속도였다.

    파스락파스락.

    땅을 파헤치듯이 움직인 넝쿨이 발목을 확 감자 에드는 발을 뒤로 크게 물렸으나 넝쿨을 뿌리치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그리고 에드의 저항에 더 자극을 받은 모양인지 넝쿨은 에드의 발목을 더 단단히 감아쥐고는 풀숲 쪽으로 그를 끌어당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