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0
에드는 손바닥에 척 들러붙은 두툼하고 단단한 느낌에 손을 살살 움직여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무슨 돌이 이렇게 크고 단단해?”
“……음, 에드. 괜찮아?”
그리고 귀에 닿는 대공의 목소리에 답했다.
“네, 물론입니다. 대공 전하.”
“그래, 그럼 손 좀 치워 줄래?”
“손이요?”
“그래, 그 손 말이야. 에드가 열정적으로 내 것을 더듬고 있는.”
“아, 대공 전하의 것을 열정적으로 더듬는 손이요.”
하면서 중얼거리던 에드가 정신을 번쩍 차렸다. 아악, 소리 없는 절규를 내뱉었다.
‘아, 아니 이 나쁜 손이 왜 대공의 것에 껄떡거리고 있어?!’
어디에 정신이 확 홀린 것만 같았다. 손바닥에 닿은 낯선 느낌이 신기하고 묘해 저도 모르게 이런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무엇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난 건지 안 그래도 크고 단단한 것이 점점 더 커지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에 그만 정신이 팔려…… 빠르게 손을 치운 에드는 사죄하며 벌떡 일어났다.
“으아아, 죄, 죄송합니다. 대공 전하.”
사위는 조용했고 햇볕은 따사로웠으며 대공은 옅게 웃었다.
“그래, 그만하면 멀쩡한 것 같아 다행이군.”
* * *
에드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일라에서 6시간 떨어진 소도시의 식당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러 가게에 들어오긴 했는데 밥은 먹어 뭐하나 싶었다. 에드는 그냥 접시 물에 코를 콱 박고 싶었다.
모두가 자신을 보고 웃는 것 같았다. 북부로 바로 향하는 기사들과 인사를 나눌 때도 그랬고, 마차에 숨듯이 앉아 있을 때도 그랬다.
제이논에게 눈이 가려졌던 로넨만이 순수한 눈망울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았으나 에드는 지금 그 순수함을 마주하기가 어려웠다.
‘이미 더러워진 몸이야.’
에드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고해성사하듯이 중얼거렸다.
“접시 물이 필요해.”
접시 물에 코 박고 정신 차리게.
그러나 정말로 접시 물이 눈앞에 들이밀어졌을 때는 에드는 덜덜 떨었다.
“이, 이게 무엇입니까? 대공 전하.”
커다란 접시에 새카만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아침, 점심에 먹은 물약보다도 점도가 더 걸쭉하고 색이 진한 물약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독약이었다.
다른 접시에는 환약이 3개나 놓여 있었다. 크기도 낮의 것보다 훨씬 더 커진 것 같았다.
그래서 에드는 알 수 있었다.
‘아까 낮의 일로 대공이 마음을 먹은 모양이구나!’
나를 쓱싹하기로!
대공은 울상을 짓는 에드를 바라보며 옅게 웃었다.
“주치의와 상의해 봤는데 체력이 약하면 그럴 수 있다고 하더군. 달려오는 말도 못 보고, 거석을 쓰다듬는데 정신이 팔리고.”
“…….”
“그래서 내가 조금 더 신경 써 봤어, 에드. 앞으로도 걱정할 것 없어. 에드의 건강은 내가 챙길 테니까.”
그렇게 에드가 먹어야 할 약이 늘어났다.
* * *
황성에 도착하기까지 몇 개의 도시를 지났고, 그때마다 로넨과 에드가 먹어야 할 약이 늘어났다.
그래서 높고 커다란 황궁의 지붕이 보이기 시작하자 에드는 만세를 부르고 싶었을 정도였다.
빙의한 후 매운맛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쓴맛은 아무리 맛보아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먹는 약이 늘어나는 일은 없겠지.’
에드는 마차가 선 틈을 이용해 배긴 엉덩이를 살짝 들었다 도로 자리에 앉았다. 두툼한 방석을 깔았어도 오랜 여정에 몸이 조금씩 삐거덕거렸다.
황궁이 자리한 도시에 들어서자 느려진 말 속도가 황궁으로 들어가기 위한 성문에 도착하자 완전히 멈췄다.
“드디어 도착했네요.”
제이논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황궁에 도착하려면 아직 거리가 꽤 남았다. 대공 전하가 있기에 복잡하진 않겠지만 몇 가지 절차도 남아 있었고.
일주일이 넘게 계속된 여정으로 에드는 알 수 있었다. 대공이 계획했던 일정에서 오차 없이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말이 오랜 여정으로 병에 걸려서 움직이지 못할 때도 있었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노숙을 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 예상치 못한 일들이 툭툭 튀어나와 당황할 법도 하건만 그를 조율하고 해결하는 대공은 노련하고 여유가 있었다.
“로넨 도련님, 목이 마르진 않으십니까?”
몸을 이리저리 뒤틀던 제이논이 마차 뒤쪽에서 물병과 컵을 찾아내며 말했다. 그의 손에는 물뿐만 아니라 육포와 간식거리도 들려 있었다.
“응, 괜찮은데.”
“그래도 조금 드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황궁에 도착하려면 아직 2, 3시간은 남았으니 체력을 비축해 둬서 나쁠 것은 없거든요.”
으으, 로넨도 기지개를 켜며 대꾸했다.
“다 온 게 아니라 아직도 그렇게 남았다고?”
“더구나 이제까지는 마차가 움직였으니 덜 힘들었지만, 앞으로는 가다 서기를 반복해 허리가 아플 수 있습니다. 잠시만요, 쿠션이 더 있을 테니 말이 나온 김에 등에 더 덧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제이논이 마차 내부의 짐칸을 살피자 에드도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 제이논을 도와서 손을 놀렸다. 제이논이 넘겨주는 사탕도 받고 초콜릿도 받았다.
대공은 자신의 등에 대고 있던 쿠션을 로넨의 등 뒤로 받쳐 주며 말했다.
“이거 쓰면 돼.”
“어? 이것도 있습니다. 대공 전하.”
제이논이 폭신폭신한 쿠션을 찾아 건네자 대공이 이번엔 에드의 자리에 놓았다. 가볍게 탁탁 쳐 등허리를 잘 받칠 수 있게 모양을 잡았다.
그 모습이 재밌었는지 로넨이 사탕을 입에 넣고 굴리다 헤실, 웃었다. 그러곤 팔을 뻗어 한창 재미가 들린 마사지를 시작했다. 대공의 팔을 손으로 주무르기도 하고 통통 두드리기도 했다.
똑, 똑
그때 마차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대공이 닫아 두었던 마차 창문을 열었다.
창밖에는 이르텔과 함께 은발의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말을 타고 빠르게 달려온 건지 머리카락이 거칠게 휘날려 있었다.
“아스넬 린든 대공 전하, 소호앤 후작입니다. 황제 폐하의 명을 받고 대공 전하의 입성을 보필하고자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그래, 고맙군.”
대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시는 길에 불편한 점은 없으셨는지요?”
“황제 폐하께서 신경 써 주신 덕분에 무탈한 여정이었네.”
“네, 제가 왔으니 성문에서 확인 절차가 빠르게 진행될 것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입성하기까지 불편함이 없도록 수행하겠습니다.”
“오래 기다린 것도 아니고, 이렇게 느긋하게 가는 것도 괜찮으니 너무 신경 쓸 것 없네.”
대공의 대답에 소호앤 후작이 감사를 표하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대공 전하. 외곽 성문을 통과하면 대로를 달려 중앙 성문까지 바로 가겠습니다. 혹시 불편하신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상 없네, 소호앤 후작. 잘 부탁하네.”
“네, 아스넬 린든 대공 전하.”
대공이 다시 닫는 창문 사이로 소호앤 후작이 로넨을 살피려는 기척이 느껴졌으나 창문이 닫히는 게 더 빨랐다.
대공이 팔을 기댄 마차 창틀을 손끝으로 톡, 톡 두드리며 작게 말했다.
“소호앤 후작이라…… 낯이 익지 않을 걸 보면 궁정 귀족은 아닌 것 같은데. 신발에 진흙도 많이 묻어 있었고.”
눈이 가늘어지며 생각에 잠기려다가 마차가 움직이자 몸을 바로 해 앉았다.
“성문을 활짝 열어라!”
소호앤 후작이 크게 외치며 인솔하자 마차와 말이 천천히 움직였다.
대공이 창문을 살짝 열자 그 틈 사이로 바깥 풍경이 느릿하게 지나갔다. 높다란 성벽 사이로 난 크고 웅장한 문으로 말과 마차가 줄지어 들어갔다.
황성의 도로는 넓었다. 도로는 잘 포장되어 있어 마차는 덜컹거리는 것 없이 달렸다.
에드는 푸른 하늘에 뭉게뭉게 떠오른 구름을 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좋은 날에 진흙이 묻은 신발이라.’
마차 안쪽에 앉은 에드는 소호앤 후작의 신발을 확실히 보지 못했지만, 대공이 의아해하는 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이상하긴 한데.’
멀리서 보이던 황궁의 지붕이 어느덧 가까이 보이기 시작하자 마차가 한 번 더 멈춰 섰다.
“중앙 성문에 도착했습니다!”
소호앤 후작의 외침에 밖에서 말을 타던 이르텔이 열린 창으로 대공과 시선을 교환했다.
“불편한 점은 없으십니까?”
대공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밖을 살폈다.
“그래, 괜찮아.”
단단한 재질의 중앙 성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그 안을 따라 길게 길이 나 있었다.
너르고 잘 정비된 길이었다. 안쪽으로는 크고 멋들어진 분수대가 보였다.
그 분수대를 따라 정원이 네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꽃과 나무, 덩굴과 장인의 손길로 아름답고 섬세하게 다듬어진 조각품 등으로 꾸며진 공간은 멀리서 봐도 장관이었다.
“와.”
밖을 내다보던 로넨이 작게 감탄했다.
황궁으로 들어서는 큰길을 따라 기사들이 서 있었다.
황실을 상징하는 황금용의 문양과 북부를 상징하는 검은 용의 문양이 수놓아진 깃발을 교차해 들고 있던 기사들이 바로 세워 길을 만들었다.
마차가 그 길을 따라 움직이자 거대한 탑이 보였다. 삼각뿔처럼 뾰족하게 올라간 탑 꼭대기에는 커다란 조각상이 달려 있었다.
황금용이 크게 날개를 펄럭이며 비상하려는 순간을 나타낸 조각상이었다. 크고 웅장함에 어디에서 보더라도 눈에 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