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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58화 (58/198)

Chapter 58

경매장을 나선 대공이 직접 찾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자 거리가 북적거렸다.

거리는 팔짱을 낀 연인들, 부모님 손을 잡고 가판대 물건을 구경하는 아이들, 악기를 치고 켜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로 넘쳐 났다.

에드는 환한 마법 등이 밝게 켜진 밤거리를 걸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축제 분위기에 들뜬 사람들의 표정이 밝고 여유로웠다.

그렇게 길을 걷다가 에드가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자 대공은 에드의 손목을 잡았다. 대로를 빠져나와 골목과 골목에 이어진 계단을 올라 옆길로 빠져나왔다.

골목 안쪽은 큰길과 다르게 어둡고 조용했다. 낡은 철제 계단이 끼익끼익 울릴 때마다 대공은 에드를 힘주어 잡으며 길을 텄다.

계단을 다 오르자 세 갈래 길이 나타났다. 나지막한 경사로가 하나, 나머지는 내려가는 길이었다.

그 앞에서 대공이 물었다.

“에드, 발이 아프진 않아?”

“아, 네 괜찮습니다.”

“그럼 조금만 더 올라가 볼까?”

경사로는 낮은 산과 이어지는 길이었다. 에드는 나무가 쭉쭉 오른 산을 올려다보았다.

“불꽃놀이 보기에 좋은 곳이 있어서.”

그렇다면야.

“네, 좋습니다. 그런데 일라에 와 본 적이 있으십니까?”

“와 본 적은 없는데 지도를 보니 명당이 보이더군.”

아, 대공의 지도 읽는 능력이 여기서도 빛을 발하는구나. 일라의 작은 개울가 하나까지 다 머릿속에 넣어 둔 것 같은 대공의 대답에 에드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 후 그와 함께 움직였다.

위로 올라갈수록 불빛이 없어 어두웠지만, 손목을 잡은 대공이 길을 잘 이끌어서 에드는 어렵지 않게 산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와.”

에드는 놀랐다.

대공이 이끈 명당은 일라의 시가지가 모두 내다보이는 옛 성터였다.

축조되다가 만 듯한 성벽의 잔해가 남은 곳이었는데 눈앞이 탁 트였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어루만지자 기분이 상쾌했다. 성터 아래로 보이는 색색의 빛과 활기찬 사람들의 모습에 에드는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그때 대공이 말했다.

“에드, 참 이상하지?”

“네? 뭐가 말입니까?”

성벽에 몸을 기대고 아래를 내려다보던 에드는 고개를 돌렸다. 뒤에 물러나 있다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대공을 바라보았다.

“……왜 점점 더 다가가고 싶지?”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그때 퍼엉 펑펑퍼어엉, 하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하늘 곳곳에 색색의 불꽃이 수놓아졌다.

깜짝 놀라 하늘을 올려다본 에드는 화려한 불꽃에 시선을 뺏겼다가 빛이 사라지자 다시 대공에게로 시선을 내렸다.

어느새 에드 옆으로 다가온 대공이 에드의 머리에서 떨어진 모자를 주웠다. 흙이 묻은 부분을 가볍게 털어 내다가 다시 피유웅 하며 하늘을 향해 쏘아 올려지는 불꽃을 올려다보았다.

“죄송합니다, 대공 전하. 불꽃놀이가 갑자기 시작되어서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에드, 참 이상하지?〉

여기까지는 잘 알아들었는데 그 뒤는 엄청난 소리를 내며 터진 마법 폭죽 때문에 그 뒷말은 하나도 듣지 못했다.

대공은 성벽에 등을 기댄 채 에드를 바라보았다.

성벽에 기댔던 팔을 떼고 이쪽을 바라보는 에드의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가볍게 흔들렸다.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을 기다리는 모양새가 작은 다람쥐 같았다.

대공이 피식, 웃으며 에드의 머리에 모자를 씌웠다. 검은색 모자에 망토. 검은색 셔츠에 바지…… 밝고 환한 색감의 옷들을 놔두고 그의 복장을 검은색으로 통일한 고약한 성미는 내 어디에서 나온 것이려나.

퍼엉, 펑펑퍼어엉.

또다시 검은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 불꽃 아래에서 대공과 에드의 시선이 맞닿았다. 불꽃이 펑펑 터질 때마다 대공과 에드의 얼굴이 주변을 밝히는 빛에 환하게 드러났다가 너울졌다.

“로넨이 2살 때 부모님과 불꽃놀이를 본 적이 있어.”

대공의 소리는 조금만 딴청을 피우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고 조곤조곤했다. 하지만 에드는 대공의 말을 놓칠세라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되었다.

불꽃놀이가 잠시 멈추고 소원을 적은 작은 등을 날리는 행사가 시작되었다. 색색의 풍등이 둥실둥실 떠오르며 불꽃놀이의 잔상이 남은 밤하늘을 밝혔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동생마저 잃어버리는 바람에 그 이후로는 불꽃놀이를 본 적이 없었거든.”

대공의 얼굴로 모자의 챙이 깊게 그림자 졌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보니까…….”

대공의 정확한 심정을 알 수 없었지만, 에드는 어렴풋이 느낄 수는 있었다. 대공은 이렇게 로넨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 가족이 함께 나눴던 추억들을 함부로 꺼내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아마 지금도 많이 힘들겠지.

에드는 한참이나 말을 아꼈다가 입을 뗐다.

피융, 피유유융

다시 불꽃놀이가 시작될 때였다.

“앞으로 로넨 도련님과 함께 새로운 추억을 쌓아 갈 수 있는 시간이 아주 많을 것입니다, 대공 전하.”

그러니 지나간 그 시간을 아쉬워하실 순 있어도 모든 걸 자신의 잘못이라고 자책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뒷말을 삼키며 대공을 바라보자 대공이 옅게 웃었다.

환한 불꽃놀이의 잔상이 남은 에드의 얼굴이 더 자세히 보고 싶어 대공은 성벽에서 몸을 뗐다. 에드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하얀 얼굴을 가린 모자를 손끝으로 살짝 들어 올렸다.

“에드.”

“……네?”

갑작스레 가까워진 거리감에 에드의 눈이 커졌다.

“사실, 에드를 북부에 먼저 보낼까 생각했는데.”

퍼엉 퍼어엉

그때 불꽃이 터졌다.

환한 빛 무리가 크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대공과 에드의 머리 위에서 색색으로 피어올랐다.

그러나 대공은 상관하지 않았다. 에드의 머리에서 모자를 벗겨 내고 그의 귀에 입을 가까이 붙였다.

“나와 황궁으로 함께 가지 않을래?”

밝게 빛나는 불꽃이 대공과 에드의 머리 위에서 쉴 새 없이 터졌다.

에드가 하는 말에 화려한 수식이나 꾸밈은 없었지만, 마음을 울리는 진중함이 있었다. 자신을 향한 푸른 눈동자에 담긴 깊은 사려감에 거친 파도가 일렁이는 것 같던 마음에 안온함이 스며들어 잔잔하게 가라앉곤 했다.

‘나는 에드가 필요해.’

“에드의 선택에 맡기고 뜻을 존중할게.”

그 빛의 산란에 대공의 눈동자가 밝게 빛났다.

‘그러니 나와 함께 가자. 에드.’

* * *

다음 날 점심시간, 에드는 로넨과 마주 앉아 침을 꿀꺽 삼켰다. 점심 식사를 마친 직후였다.

“에, 에드.”

“……네, 로넨 도련님.”

“혹, 혹시 아스넬 형에게 뭐 잘못한 거 있어?”

에드는 창백해진 얼굴로 묻는 로넨을 잠시 바라보다 되물었다.

“로넨 도련님은 어떠십니까? 가슴에 손을 올려놓고 차근차근 생각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 대공 전하께 잘못하신 게 없는지요.”

에드 역시 로넨과 다를 바 없었다. 그렇잖아도 하얀 얼굴이 핏기라곤 하나 없이 질린 상태였다.

에드와 로넨의 앞에 물약이 놓여 있었다. 새카만 약이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독약 같은 것이 양도 많았다.

한 컵이라고 말하기엔 앞에 놓인 그릇이 커도 너무 컸다.

‘철천지원수라도 이렇게는 안 퍼먹일 것 같은데.’

대공 전하와 나 어제 분위기 좋지 않았어?

경마장도 다녀오고, 불꽃놀이도 보고.

황궁에도 같이 가기로 하고.

가늘어진 눈으로 뜨거운 김이 퐁퐁 나는 물약을 내려다보는 에드에게 로넨이 답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가며 무결함을 주장했다.

“……없는데.”

그러나 에드의 생각은 달랐다.

“분명히 무언가가 있지 않고서는 이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예를 들자면?”

“대공 전하께서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했는데 로넨 도련님께서 그건 말이 아니라 사슴이라고 말하셨다든가 하는 일 말입니다.”

눈가가 촉촉해진 로넨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게 어떤 문제라도 로넨 도련님과 제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에드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 * *

그러니까 북부 주방장이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한 아침을 먹고 난 후 제이논이 트롤리를 끌고 왔을 때만 해도 에드와 로넨은 아무 걱정이 없었다.

아침 식사는 맛있었고 차는 따뜻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일라를 떠나 예정이라 짐은 어제 미리 싸서 짐마차에 잘 실어 둔 상태였다.

그러나 제이논이 로넨과 제 앞에 커다란 그릇을 내려놨을 때 에드는 불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주전자를 기울여 그릇에 정체불명의 시커먼 액체를 따르기 시작하자 로넨의 눈도 불안함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 저, 저기 제이논.〉

〈네, 로넨 도련님.〉

〈이, 이거 설마 내가 마셔야 하는 것, 아니겠지?〉

로넨이 쓴 약초 냄새가 확 풍기는 물약을 내려다보자 제이논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대공 전하께서 로넨 도련님과 에드를 위해서 준비하신 영양제이니 한 방울도 남기지 마시고 드셔야 합니다. 대공께서 손수 부채질하며 약탕기에 데운 물약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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