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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54화 (54/198)

Chapter 54

그를 알아챈 에드는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상단주는 그 반항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에드의 손을 벌렸다.

“하, 하지 말라……!”

히이이이잉.

그리고 그 순간, 말의 거친 투레질 소리가 울렸다. 오솔길 전체를 울리는 큰 울음소리였다.

에드와 상단주의 시선이 오솔길 끝자락으로 동시에 향했다.

그러자 저쪽 끝에서 점처럼 보이던 뭔가가 나타나나 싶더니 순식간에 형체가 드러났다. 꼬리가 검은색인 백마가 오솔길을 미친 듯이 달려왔다.

에드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 뭐야? 컨디션 좋은 썬더보다도 열 배는 더 빠른 것 같은데?’

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생각하기가 무섭게 세찬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미친 듯이 달려온 말이 히이잉, 울며 머리로 상단주의 옆구리를 박더니 앞발로 키가 큰 남자의 등마저 공격했다.

“아악.”

“커어억.”

오솔길 위로 비명이 터졌다. 그와 동시에 낮고 그윽한 목소리가 깔렸다.

“지금 여기서 뭐 하는 짓들이지?”

대공과 그의 말 조이가 나타났다.

* * *

오솔길에 들어선 조이가 갑자기 히이잉, 울며 미친 듯이 달리자 깜짝 놀란 대공은 이내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 이를 악물었다.

멀리서도 한눈에 띄는 옅은 금발과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몸 선이 영락없는 에드였는데, 그런 그의 앞뒤를 웬 놈들이 막고 있었다.

‘아침 일찍 나간 에드가 왜 저런 곳에 있는 거지?’

대공은 고삐를 풀어 쥐며 조이가 속력을 더 낼 수 있도록 했다.

‘에드를 찾아 해풍을 흠뻑 먹은 만드라고라를 같이 사려고 했는데 이런 일을 당하고 있을 줄이야.’

지난밤, 자정이 훨씬 넘어 주점을 나섰을 때 취한 발터가 조이의 고삐를 잡았다. 따라붙지 말고 먼저 가라고 해도 들러붙어 헤실헤실 웃었다.

〈아니, 대공 전하. 안주를 그렇게 많이 시키고도 만드라고라주를 못 받으시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영문을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하는 녀석의 목소리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저는 만드라고라주를 네 병이나 손에 넣었다고 말하고 싶어서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장작이었다.

대공은 피식 웃었다.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한 모양이군.’

발터의 품 안에서 삐죽 나온 술병을 보고 있으면 그가 이걸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었다.

대공의 시선이 그를 떠나 앞에 앉아 있는 에드에게로 옮겨갔다. 조이의 발걸음에 따라 에드의 어깨가 리드미컬하게 움직였다.

저택을 나설 때는 꼿꼿했던 에드의 등허리에 긴장이 많이 빠져 있었다. 조이의 몸이 크게 흔들리면 언뜻언뜻 자신에게 몸을 기대 오기도 했다.

‘이렇게 나른하게 긴장이 풀린 건 내가 조금은 편해진 걸까?’

아니면 그저 술에 취해서 그런 걸까?

가볍게 날리는 에드의 머리카락에서 바람 향기가 묻어나는 것 같았다.

〈에드, 너도 사실은 이 만드라고라주를 마시고 싶었지? 아까 내가 환호를 터뜨릴 때 마주친 시선에서 나는 네 눈동자에 서린 기대감을 봤다.〉

그리고 어두운 거리를 걷는 발터의 입은 잠시도 쉬지 않았다.

〈그러게 우리 테이블로 놀러 왔으면 좋았잖아? 내가 그렇게 손가락을 까딱여도 피식 웃고 말더니.〉

졸음과 술에 취해 눈이 가물가물한 에드의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터였건만 기분 좋게 취한 발터는 자기 말만 하느라고 바빴다.

〈좋아, 에드.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까 너에게 특별한 기회를 줄게. 이 만드라고라주를 맛보고 싶으면 내 방문을 살포시 두드리라고. 한 잔 정도는 남겨 둘 테니까. 물론, 그 전에 다 마시면 어쩔 수 없지만.〉

옌이 발터에게 이제 그만하라며 눈짓했지만 이미 늦었다. 대공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몸에 좋은 걸 마시고 체력도 든든히 비축한 모양이니 발터는 지금부터 저택을 향해 뛴다.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까 나보다 늦게 저택에 도착하면 내일은 산을 좀 타 볼까? 일라의 가드너 산 공기가 그렇게 좋다던데.〉

〈앗! 잠깐만요! 대공 전하! 갑, 갑자기 이러는 게 어디에 있습니까? 기분 좋게 한잔 걸친 밤이면 그 느낌을 계속 즐겨야…… 으아, 조이! 뛸 준비 하지 마!〉

〈어디에 있긴 어디에 있어? 여기에 있지.〉

말고삐를 내려놓은 발터가 발을 동동 굴렀다.

옌이 한숨을 포옥, 내쉬며 말했다.

〈인마, 그러니까 입 다물라고 내가 얼마나 눈치를 줬는데 그걸 못 알아채고 신나게 입을 털더니 꼴좋다.〉

〈옌, 좋아할 게 아니라 너도 뛰어야 하거든?〉

〈너 때문에 나는 왜 뛰어야 하는데?〉

〈동기의 실수는 연대 책임이니까?〉

발터와 옌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대공은 말고삐를 움켜쥐었다. 앞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눈가를 비비는 에드의 배를 한 팔로 단단히 감쌌다.

술에 취해 늘어져 살짝 몸을 기대 오는 에드의 무게감이 기분 좋았다.

‘……막판에 맥주를 조금 더 마시긴 했지만 발터와 옌에 비하면 체력이 종잇장 수준이긴 하군.’

그러니 아침에 에드와 약방에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대공은 조이의 배를 발로 톡, 찼다.

궁싯거리면서 뛸 준비를 다 마친 발터가 앗! 하는 새에 조이는 이미 달리고 있었다.

〈잠, 잠깐만요! 대공 전하! 정말로 늦게 도착한다고 내일 산을 타는 건 아니죠? 그냥 하신 말씀인 거죠? 조이! 잠깐만 기다려 봐! 아직 대공 전하와 할 이야기가 남았다고!〉

뒤에서 왁왁 외치는 소리가 들렸으나 대공은 바람을 가르며 달렸다. 앞에 앉힌 에드와 따뜻하게 부대끼는 온기가 기분 좋았다. 에드가 편히 잘 수 있도록 침대에 눕혀야겠다고 생각하며 빠르게 달렸다.

저택에 도착해 말에서 내린 에드는 인사를 꾸벅, 하고 방으로 들어갔고 대공은 일라에서 가장 유명한 약방을 알아본 뒤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에드의 방에 가 보니 에드는 없고 이불이 잘 정돈된 침대만 보였다. 빠르게 방을 나온 대공이 저택을 누비며 물어봤지만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어디에 간 거지?’

그러다 숙취로 늦게야 머리에 까치집을 달고 일어난 발터가 아! 하며 말했다.

〈동이 틀 무렵에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에드를 만났는데, 혹시 대공 전하께서 찾으시면 잠깐 볼일을 보러 나갔다 오겠다고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무슨 볼일 때문에?〉

〈……네?〉

〈에드가 무슨 볼일을 보러 저택을 나선 거지?〉

대공이 그것까지 물을 줄 몰랐던 발터는 눈을 깜빡였다. 그야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 있으니 나간 것 아니겠습니까…… 하고 대충 뭉개려던 발터는 흐리멍덩했던 시선에 힘을 주며 정신을 바짝 차렸다.

발터는 여기서 대답을 못 하면 종아리가 까일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숙취 때문에 태업하려는 머리를 억지로 굴리며 에드와 했던 대화를 상기했다.

〈아! 광장에 뭘 좀 사러 간다고 했습니다.〉

필사적으로 두뇌를 가동한 발터가 기억해 대답하자 대공의 미간이 살짝 풀렸다. 아직 미미한 빗금이 남아 있었지만 발터는 작게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아니, 그런데 에드가 대공 전하의 돈이라도 먹고 튄 건가? 왜 이렇게 녀석의 행방을 궁금해하지?’

발터는 밤에 좋았던 분위기와 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서던 에드를 떠올렸다.

그러나 발터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그래, 그럼 발터는 가드너 산을 뛰어갔다 오도록. 좋은 공기를 마시면 숙취도 깨고 정신도 맑아질 거야.〉

악,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싸 쥐는 발터를 뒤로한 대공은 밖으로 나왔다. 정원을 빠르게 가로질러 마구간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조이에 올라탔다. 누군가가 팽팽히 신경 줄을 잡아당긴 것처럼 예민해졌던 기분은 누그러졌지만, 걱정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동틀 무렵이면 3, 4시간밖에 자지 못했을 텐데 무슨 급한 일이 있어서 나간 걸까?’

광장으로 나갔다면 오솔길을 거쳐서 저택으로 돌아와야 했기에 대공은 오솔길 길목에서 에드를 기다릴 생각이었다. 좁고 다른 길로 빠질 틈이 없었으니 길이 엇갈릴 가능성은 없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에드의 몸 상태가 괜찮은지 확인하고 싶단 말이지, 두 눈으로 직접.’

무슨 일로 나간 건지도 궁금하고.

그런 이유로 저택을 나섰다 에드를 앞뒤로 둘러싼 놈들을 보았을 때 대공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여기서 뭐 하는 짓들이지?”

바람같이 달린 조이가 키가 큰 남자의 등을 공격했을 때 대공은 말에서 내렸다. 쓰러진 상단주에게 다가가 도망칠 수 없게 오른쪽 발로 등을 밟았다.

“…….”

무릎을 꿇고 있던 에드의 모습이 생각나자 발끝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대공의 단단한 발에 짓밟히는 상단주는 신음도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

“대공 전하! 죽이지는 마십시오!”

쏜살같이 저택을 나서는 대공을 발견하고 뒤따라온 이르텔이 뒤에서 소리쳤다.

눈을 가늘게 뜬 대공은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더 꾸욱, 상단주를 힘주어 밟다가 발을 내렸다.

그리고 걸음을 옮겨 아직도 얼떨떨해하는 에드의 손을 잡아 자리에서 일으켰다. 에드의 바지에 묻은 먼지를 본 대공의 이마로 깊은 주름이 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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