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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52화 (52/198)
  • Chapter 52

    다행히 에드는 이곳의 음식뿐만 아니라 술도 입맛에 맞는지 맥주를 참 맛있게도 마셨다.

    제 얼굴만 한 맥주잔에 든 맥주를 꿀꺽꿀꺽 시원하게 넘기더니 차가움에 몸을 가볍게 떨었다. 만족스러운 얼굴로 마저 잔을 비우고는 발그스름한 혀로 입술을 쓸었다.

    “…….”

    그러더니 금세 빈 잔을 내려다보며 말없이 아쉬워했다.

    에드의 주량을 알기에 모르는 척을 하며 몸에 좋은 음식을 그 앞으로 밀어 주던 대공은 너무 아쉬워하는 눈길에 못 이기고 맥주를 더 주문했다.

    그러자 감사합니다, 하며 씨익 웃는 모습이 그렇게 밝고 환할 수 없었다.

    하늘에 아름답게 뜬 보름달에 시선을 빼앗길 새가 없었다.

    주문한 맥주가 나오자 에드는 또다시 꿀꺽꿀꺽, 시원하게도 마셨다. 저 작은 몸으로 저 많은 술이 어떻게 다 넘어갈까 싶을 정도로 잘 마셨다.

    그러더니 감사 인사를 늘어놓았다.

    “로아 보육원에 신경 써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대공 전하. 갈 때마다 그 앞에 진을 치고 있었던 가시덤불이 얼마나 신경 쓰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정리된 걸 보니까 진짜 속이 시원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덧붙이는 말끝에는 술기운이 살짝 깃들어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깃든 푸른색이 너무 선명해 시려 보일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술기운이 돌아 부드럽게 풀려 있었다.

    아스넬은 옅게 웃으며 에드의 잔에 잔을 부딪쳤다. 가볍게 톡, 갖다 대자 에드가 두 손으로 잔을 가볍게 잔을 맞부딪혔다.

    그렇게 돌아오는 반응이 즐거웠다.

    “그건 제이드 공작이 받아야 할 감사인데. 그가 문을 열어 줘 북부 기사단이 움직일 수 있었으니.”

    “대공 전하께서 힘을 써 주신 덕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푸른 눈동자가 자신에게 올곧게 닿았고, 대화는 공백이 생기지 않아 부드럽게 이어졌다.

    그래서 아스넬은 에드의 잔이 비었을 때 맥주를 더 주문하며 문어 요리도 추가했다.

    맥주는 발효할 때 몸에 좋다는 약초를 첨가했다고 했고 문어 요리는 피로 회복에 좋다는 점원의 부연 설명에 시켰다.

    “……음.”

    처음엔 약초 향이 나는 맥주가 생소한지 고개를 갸웃하던 에드가 곧 적응해 시원하게 마시는 모습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목으로 톡, 튀어나온 목울대가 위로 아래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기특했다.

    제이논과 와인을 마실 때도 그랬지만 에드는 술자리에서 터프해지는 면이 있었다. 곡선이 유려한 와인 잔을 손에 쥘 때도 그랬고 투박한 철제 맥주잔을 손에 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잔 안에 든 술이 반 정도는 밀어 넣고 나서야 잔을 내려놓았다. 남은 술도 오래 남겨 두지 않았다. 꿀꺽꿀꺽 마시든 홀짝홀짝 넘기든 금세 잔을 다 비우고 보았는데 그 행동이 참 빠르고 거침이 없었다.

    ‘……술을 잘 마시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저 술자리를 즐기는 건가?

    아니면 자기 주량도 모르고 폭음하는 건가.

    대공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에드.”

    “네, 대공 전하.”

    “주량이 얼마나 되지?”

    “제 주량 말입니까?”

    “가장 많이 마셨을 때 말고 적당히 취하는 정도가 말이야.”

    “…….”

    “잔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고 궁금해서 묻는 거니 긴장할 건 없고.”

    여전히 철제 맥주잔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에드가 음, 하며 볼을 긁적였다. 깊게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느낌이었다.

    “주량을 셀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셔 보진 않았는데요, 그냥 차갑고 따가운 술이 목구멍을 긁고 지나가는 화한 느낌이 좋아서 마시게 되거든요.”

    “…….”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작게 덧붙이는 말은 혼잣말처럼 작았으나 아스넬은 가게 안의 모든 소리들이 모두 사라지고 에드의 목소리만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 웃는 푸른 눈동자가 어딘가 공허해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땡, 땡, 땡 종소리가 울렸다. 가게에서 이벤트를 시작한다고 알리는 신호였다.

    그에 고개를 돌릴 에드가 중앙 빈 공간에 설치되는 기다란 수조를 목을 빼고 보았다.

    그 움직임에 에드의 턱에 살짝 닿았던 대공의 손가락이 떨어지며 허공을 짚었다.

    아스넬의 눈이 가늘어졌다. 에드의 온기가 짧게 남았다 떨어진 손끝을 느릿하게 문질렀다.

    “…….”

    고개를 돌린 에드의 뺨이 램프가 밝히는 불빛과 술김에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부드러운 턱선을 타고 내려온 목덜미는 하얗고 단아했다.

    ‘균열의 틈’에서 함께 걸어 나온 이후 조금은 친밀해진 것 아닌가 했는데.

    침대에서 장난을 치다가 도로 잠이 든 것도, 마차에서 긴장을 내려놓고 잠이 든 것도 모두 없었던 일처럼 에드가 뭉개고 싶어 하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괘씸하단 말이지.’

    “…….”

    아니, 취한 건 에드가 아니라 나인 건가.

    대공은 문득, 에드의 턱에 손을 짚고 자신에게로 돌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자신을 향하지 않고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그의 푸른 눈동자가 자신만을 담았으면 했다.

    자신과의 접점을 지워 내고 뒤로 물러나려는 그의 꼬리를 꽈악 밟고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그의 그림자가 제 그림자에 완전히 뒤덮였으면 했다.

    손끝에 살짝 닿았다 떨어진 이 미묘한 열기가 몹시 아쉬워서…… 느릿하게 손끝을 문지르던 아스넬은 가볍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처음엔 잔잔한 파도 같았지만 끊이지 않고 이어지며 점점 덩치를 키우고 격해지는 생각의 굴레가 생경했다.

    ‘이러다 아무도 못 보게 하고 아무 데도 나가지 못하게 북부 성에 가둬 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겠는데.’

    스스로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아스넬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맥주잔을 들어 맥주를 입에 머금으며 서늘한 냉기가 드러났을 얼굴을 가렸다.

    그때 에드가 고개를 돌렸다.

    녹녹해진 푸른 눈동자가 즐거움에 반짝거렸다.

    “거북이 다섯 마리가 각각의 직선 수조에 들어가 있는데 이 중에서 어떤 녀석이 1등을 할지 맞히는 이벤트라고 합니다.”

    앞에 나와 설명을 하는 사회자의 말을 요약하며 에드가 의자를 당겨 앉았다. 음성을 낮추며 옆 테이블을 경계했다.

    “경주 게임은 총 네 번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안주 한 개당 한 번의 기회가 있으니까 어떻게 할까요? 대공 전하? 첫 게임에 두 번 정도의 기회를 쓰고 일정한 확률로 갈까요? 아니면 첫 게임에 열 번의 기회를 몰아 써서 만드라고라주를 최소한 두 병 얻는 방향으로 갈까요?”

    아스넬은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시며 웃었다.

    “에드는 어떻게 하면 좋겠어?”

    “어, 저는.”

    잠시 고민에 빠졌던 에드가 결론을 냈다.

    “첫 번째 게임에 열 번의 기회를 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1번 거북이에 두 장, 2번 거북이에 두 장…… 이렇게 기회를 쓰면 어떤 거북이가 이기든 간에 우리에게 1등을 선물할 테니까요.”

    “음, 그렇긴 하지?”

    팔짱을 끼며 아스넬이 고개를 끄덕이자 에드가 맞장구를 쳤다.

    “네, 그렇습니다.”

    “좋아, 그럼 첫 번째 게임에 1번 거북이에 열 번의 기회를 모두 쓰겠어.”

    “네, 그렇게 하시는 좋겠…… 네?”

    첫 번째 게임에서 공평한 확률로 승리를 거머쥐려던 에드의 고개가 삐끗, 했다.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대공이 한 말이 자신이 이해한 게 맞나 되새겨 보았다.

    ‘그러니까 첫 번째 게임에서 1번 거북이에게 몰빵이라는 거 맞지?’

    그 어리벙벙한 모습을 보며 아스넬은 옅게 웃었다. 에드의 의견에 따를까 하다가 짓궂은 생각을 했다.

    함께 대화를 나누던 즐거운 시간에서 홀로 튀어 나가 게임에 관심을 둔 에드가 괘씸하기도 했고 오늘은 더 이상의 술은 사양이었다. 아무리 만드라고라주라고 해도 술은 술이었다.

    ‘해풍을 맞은 만드라고라가 몸에 좋다고 하면 그냥 뿌리째 사 주면 되지, 술은 무슨 술.’

    그러니 오늘은 그만 마시고 몸에 좋은 음식들로 맥주에 긁혔을 에드의 속을 보호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만약에 1번 거북이가 질주를 해 1등을 한다면 상품은 발터와 옌에게 넘겨 버리면 될 일이었고.

    그렇게 대공은 1번 거북이에게 모든 걸 걸었다.

    에드는 거북이 경주대회가 시작되자 자리에서 일어나 수조에 다가갔다. 그리고 물장구를 치는 거북이, 앞으로 잘 가다가 도로 뒤로 돌아오는 거북이, 미동도 않는 거북이들을 확인하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대공이 고른 거북이는 경주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라인을 탈출해 옆 라인으로 놀러 가 탈락하고 만 녀석이었다.

    * * *

    남부 일라의 축제가 시작되고 2일째 되는 아침이었다.

    에드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아침부터 빠르게 경마장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오늘은 일라의 경마장에서 날쌘 말들의 경주가 있는 날이었다. 그를 관람할 수 있는 표를 구하기 위해서 아침 일찍 움직인 에드는 어렵게 표를 구했다.

    경마장은 인기가 많았고 선착순으로 표를 살 수 있었기에 줄을 서 있는 동안 제 앞에서 부디 표가 다 팔리지 않기를 바랐다.

    ‘어제 대공이 분명 경주 게임에 관심이 있었단 말이지.’

    발터와 옌이 주점에서 개최되는 이벤트를 설명할 때만 해도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그렇게 몰빵으로 게임을 내동댕이친 것은 거북이 경주 대회라서 그런 것이었겠지.’

    속도감도 없고, 운과 요행에 모든 걸 맡기는 것에 흥미를 잃고 말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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