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51화 (51/198)

Chapter 51

대공이 말고삐를 잡으며 물었다.

“괜찮아, 에드?”

“아, 네.”

“긴장할 것 없어. 경직된 자세로 억지로 등을 세우려고 하지 말고 편하게, 말의 움직임에 몸을 맡긴다는 느낌으로 리듬을 타면 돼. 온몸에 힘이 들어가면 내일 근육통에 시달릴 수 있으니까 몸에 힘 빼고.”

“네, 알겠습니다.”

“그럼 움직일게.”

조이의 배를 발로 가볍게 찬 대공이 고삐를 잡아당기며 속도를 조절했다. 불이 환하게 밝혀진 정원의 넓은 길을 천천히 빠져나오며 에드가 말에게, 말이 에드에게 서로 적응을 할 수 있게 여유를 두었다.

불빛과 달빛, 어둠이 교차하는 밤길이었다. 파스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나무 잎사귀들이 가볍게 흔들렸다.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결에 진한 꽃향기가 묻어났다.

대공은 주변의 풍경에 시선이 빼앗긴 에드를 면밀하게 살폈다. 그리고 중심이 흐트러진 몸이 살짝 흔들리자 고삐를 한 팔로 잡고 나머지 한 팔로 에드의 배를 감싸 안았다.

그러자 에드의 등에 탄탄한 대공의 몸이 더 가깝게 맞붙었다. 존재감이 있다 못해 철철 넘치는 느낌이었다.

에드는 한 것도 없는데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것 같았다. 호흡이 딸려 숨을 크게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한 번으로는 부족했다. 여러 번 반복하자 대공이 팔로 감고 있는 배가 크게 부풀었다가 꺼졌다.

뒤에서 작게 웃는 기척이 느껴졌다.

“에드, 긴장할 것 없다니까. 말 움직임이 느껴지는 게 이상하면 내게 몸을 더 기대도 괜찮아. 억지로 등을 곧추세우려고 하면 몸에 힘만 더 들어가니까 오히려 균형이 무너지거든. 내일 온몸이 아프다며 내 탓을 하면 곤란한데.”

“아, 네에에.”

남의 속도 모르고 말을 처음 타 잔뜩 긴장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공에게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순 없었다.

에드는 앞을 똑바로 보며 고개를 빳빳하게 세웠고, 대공은 에드를 팔로 조금 더 단단히 감싸 안으며 말의 속도를 늦췄다.

한밤의 느긋한 산책이었다.

* * *

말이 멈춘 곳은 철제 간판이 달린 주점이었다.

빗물과 세월의 흔적에 시달린 간판이었지만 지저분해 보이지 않았다. 연혁이 있어 보였지만 낡지 않은 건물과 잘 어우러져 느낌 있게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점원이 나와 인사하자 대공이 물었다.

“앉을 자리가 있나?”

“네, 안쪽에 자리가 있습니다. 말을 마구간으로 옮기겠습니다.”

대공이 고개를 끄덕이자 직원이 말고삐를 잡았다.

먼저 말에서 내린 대공이 등자가 흔들리지 않게 잡고 에드의 등을 손으로 받쳤다. 에드가 말에서 내리기 쉽게 옆에서 도왔다.

“감사합니다.”

그 덕분에 별 어려움 없이 말에서 내릴 수 있었던 에드가 인사를 꾸벅하자 대공이 옅게 웃었다.

“그럼 들어갈까?”

에드는 가게 창문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바라보았다.

축제의 밤은 길었고 마을은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평소라면 다들 잠들었을 시간인데도 축제를 즐기는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잔을 맞대며 건배를 외치는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에드는 대공을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두 분이십니까?”

홀을 담당하는 점원이 인사를 하며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대공을 바라보던 점원이 자리를 안내했다. 창가 쪽 자리였다.

“에드, 가볍게 맥주 한잔 어때?”

자리에 앉은 대공이 테이블에 놓인 메뉴판을 펼치며 물었다. 대공의 맞은편에 앉으며 에드는 대답했다.

“네,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맥주 두 잔과 소고기 스튜, 새우구이와 굴튀김. 그리고 새송이버섯구이에 해삼찜. 그리고 대게는 오늘 물이 좋은가?”

“네, 오늘 오후에 대게가 들어와서 정말 싱싱합니다.”

아니, 그런데 가볍게 맥주 한잔을 하자고 하셨으면서 대공께서 왜 이렇게 안주를 왜 많이 주문하시지?

에드는 정신없이 주문서를 작성하는 점원을 올려다보다가 의자를 당겨 앉았다. 몸을 대공 쪽으로 가까이 붙이며 작게 말했다.

“안주가 너무 많지 않을까요?”

“이곳이 일라의 맛집이라고 하던데 별표가 붙은 건 다 먹어 보고 가야지.”

대공이 메뉴판을 넘기며 말하자 점원이 옅게 웃으며 답했다.

“네, 맞습니다. 녹스는 일라에서 맥주와 해물 요리가 맛있다고 소문난 곳입니다. 맥주 종류도 다양한데, 개인적으로는 꿀에 절인 알밤으로 만든 맥주를 추천해 드립니다. 맥주의 향과 풍미가 굉장히 좋아 분명히 만족하실 겁니다.”

“그런가?”

“네, 드셔 보시면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대공은 점원의 추천을 중간중간 참고하며 주문했고, 에드는 물을 마시며 목을 축였다.

마지막 주문까지 확인한 점원이 자리를 뜨자 어디선가 끼이익, 의자가 급하게 뒤로 밀리는 소리가 들렸다. 부산스레 움직이는 발소리도 들렸다. 동시에 정수리로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에 에드는 시선을 들었다.

격하게 발을 놀린 두 명의 남자가 테이블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에드는 아, 하며 깨달았다.

‘그래, 어쩐지 가게에 들어설 때 구석으로 눈길이 간다고 했더니…… 북부 기사단의 단원들이었구나.’

발터와 옌이었다.

대공에게 인사를 꾸벅한 그들이 고개를 숙였다. 다른 테이블에 소리가 들리지 않게 작게 속삭였다.

“대공 전하, 어쩐 일로 이런 곳에 오셨습니까?”

“왜, 나는 이런 곳에 오면 안 되는 건가?”

“아니, 그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대공의 짓궂은 대답에 어설프게 웃은 기사들이 에드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대공이 왜 이런 곳에 이런 녀석과 함께 왔는지 궁금해하는 시선의 끝자락은 술이 올라 살짝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술잔을 맞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아닌 밤중에 만난 상관에 화들짝 놀라 걸음을 한 게 느껴졌다.

대공이 축제가 시작되는 일라에서 짐을 풀고 쉬었다 가는 이유가 있었다. 로넨에게 활기차고 왁자지껄한 축제를 즐기라는 이유와 함께 북부 기사단원들에게 휴식과 충전의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제이논은 일찍 잠들었고 이르텔은 저택에 머물렀지만 그 외 북부 기사단원들은 밖으로 나와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기사들과 몇 마디를 더 주고받은 대공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러니 가서 놀아. 나 있다고 가게에서 슬금슬금 나갈 생각하지 말고. 내 욕하는 것만 아니면 들어도 못 들은 척을 할 테니까.”

“나가기는 왜 나갑니까? 이따 자정이 되면 거북이 경주 대회가 있는데 말입니다.”

“거북이 경주 대회?”

“네, 새끼 거북이 녀석들로 달리기 시합하는데 1등을 맞추면 녹스의 자랑인 만드라고라주를 한 병씩 준다고 합니다.”

“만드라고라주?”

대공이 슬쩍 관심을 내비치자 발터가 고개를 숙이며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대공에게 은밀한 소식을 전하듯이 작게 속삭였다.

“그렇잖아도 정력에 좋다고 소문난 만드라고라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일라의 가드너 산에서 자란 만드라고라는 해풍을 맞고 자라서 그 능력이 말도 못 하게 좋다고 소문이 자자하다고 합니다.”

“아아, 정력에?”

그렇게 말하면서 대공이 에드를 바라보자 오늘 오전 마차에서 대공과 나눴던 대화가 생각난 에드는 쿨럭, 헛기침이 튀어나와 급히 물을 마셨다.

대공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타서 나눠 주지.”

“에이, 그걸 왜 나눠 주십니까? 대공 전하께서 드셔야지요.”

“발터, 자네가 보이게도 내 몸이 부실해 보이나?”

“네?”

“누군가와 나눈 대화를 되짚어 보니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내가 좀 약하게 보이고 그런 모양이야.”

“네에에?”

“그런데 발터가 내게 이렇게 만드라고라주를 권하는 걸 보니 내가 나에 대해서 너무 과신하고 있던 게 아닌가 하여 걱정이 되어서 말이야.”

“하하, 감히 뉘 집 자식이 그런 망발을 했답니까? 단단하기는 바위와 같은 허벅지로 차돌도 단번에 깨트리실 대공 전하께 말입니다. 제가 말씀을 드린 건, 그 귀한 걸 나눠 주실 생각하지 마시고 대공께서 드시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다시 한번 쿨럭, 기침을 한 에드는 물을 마셨고 대공은 그걸 보며 옅게 웃었다.

“역시 그렇지? 이 정도면 쓸 만하지?”

“쓸 만하다 뿐입니까? 무시무시하기까지 합니다.”

“난 오늘 그 말을 듣고 시무룩했는데 발터의 말에 다시 자신감에 차올랐어. 그쪽 테이블은 내가 계산을 할 테니 마시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마음껏 시키며 놀라고.”

“감사합니다!”

신이 난 기사 두 명이 테이블에 머리를 박을 듯이 인사를 하며 기뻐했다. 직원을 불러 메뉴판을 챙기다 고개를 숙여 은밀히 전했다.

“주문한 안주 당 기회가 한 번씩 있다고 하니 힘내십시오, 대공 전하.”

맥주잔에 물기가 어린 시원한 맥주와 소고기 스튜, 새우구이가 나왔을 때 옅게 웃는 에드를 보며 아스넬은 생각했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기본적인 호기심은 있는 것 같고.’

그가 소고기 스튜를 그릇에 덜어 넘기자 감사를 표한 에드가 숟가락을 들어 맛있게 떠먹었다.

새우구이에 이어 굴튀김까지 맛나게 먹어 치우는 것을 보자니 먹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입이 길진 않은 것 같긴 해도.

헤린스 백작저에서 식사를 할 때는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아서 그랬는지 많이 먹지 않던 에드였는데, 밖에 나오자 입맛이 도는 모양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