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40화 (40/198)

Chapter 40

헤링 분수대가 어떤 분수대인가?

제국의 건국을 기리기 위해서 당대 최고의 조각가가 황금용이 탄 마차를 끄는 네 마리의 황소를 역동적으로 표현한 조각이 유명한, 남부 사람들의 사랑이 낭만이 축적된 곳이 아니었는가?

거리의 악사들은 사랑을 노래하고, 떠돌이 음유시인은 인생을 읊조리며, 부푼 가슴으로 내일을 꿈꾸는 어린아이들은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비는!

그런데 그런 장소에 출몰한 변태 놈이라니?

그런 놈을 그냥 둘 수 없었다!

당장에 잡아다가 본때를 보여 줘야 다시는 사랑과 낭만이 넘치는 분수대 앞에서 알몸으로 설치는 난봉꾼이 없으리라! 다시는 감히 그런 놈들이 발도 붙이지 못하게 아주 혼쭐을 내리라!

남부 1구역 치안대장은 직접 나서 그 변태 놈의 멱살을 끌어 올린 생각에 콧김을 뿡뿡 내뿜으며 치안대를 나섰다. 너, 너, 너 눈에 보이는 대로 대원들을 손가락으로 콕콕 집어 함께 분수대로 향했다.

그리고 헤링 분수대에 도착했을 때, 수레에 우유를 싣고 배달을 가던 배달원부터 도서관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선 아이까지 모여들어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뭔가를 내려다보며 킥킥거렸다.

‘저기구나!’

당장에 달려간 치안대장은 휘휘 손을 내저으며 구경꾼들을 밀어냈다.

“모두 물러나게. 신고가 들어와 확인해야 할 일이 있으니.”

그리고 보았다.

중요 부위만 간신히 손수건으로 가린 헤린스 백작가의 장남인 네이센이 분수대 앞에 대자로 퍼져 있는 것을.

“크흠, 흐으음.”

‘헤링 분수대에 웬 난봉꾼 하나가 알몸으로 퍼져 있다는 신고를 받고 바람같이 출동했는데, 그놈이 헤린스 백작가의 장남이었을 줄이야.’

네이센을 알아본 치안대장 율마는 쯧쯧, 짧게 혀를 차며 주위를 물렸다. 모포로 네이센의 몸을 감싼 뒤 살살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밤새 뭘 얼마나 마시고 논 건지 그는 주위의 소란스러움에도 눈을 뜨지 못했다. 혼절한 듯이 깊게 잠이 들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주먹으로 머리통을 퉁, 내려쳐 깨워 며칠쯤 감옥에 집어넣고 싶었다.

그러나 제 성질대로 할 수는 없어 쯧, 짧게 혀를 찬 치안대장은 다시 한번 네이센을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시오, 영식.”

그리고 드디어 네이센이 정신을 차렸을 때 치안대장은 복장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어? 여기는?”

자기가 어디에 드러누워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고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주정뱅이였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고 한술 더 뜨니 치안대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 어어어? 내, 내 돈! 내 돈이 다 어디 갔어?!”

모포로 감싸인 알몸을 마구 짚어 보던 네이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미친 사람처럼 주위를 둘러보며 눈을 희번덕거리더니 다시 제 몸을 짚어 보았다. 그것도 모자라 자리에서 쿵쿵 뛰었다.

‘쥐약이라도 먹은 건가? 웬 미친 짓이지?’

그 바람에 몸에서 후드득 떨어지는 모포 사이로 드러난 덜렁거리는 작고 고약한 물건을 목격해야 했던 율마는 눈살을 찌푸리며 대원들을 향해 눈짓했다.

‘연행해.’

그에 빠르게 움직인 대원들이 네이센에게 모포를 두르고 수갑을 채웠다.

“잠, 잠깐만! 내, 내 돈이 없어졌다고! 어제 딴 내 돈이!”

치안대로 연행당하는 내내 네이센은 목청이 터져라 외쳤지만 들어주는 이 하나 없었다.

치안대장은 귀를 후비며 말에 올랐고 대원들은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고민하며 네이센을 연행했다.

“너, 너희들이 훔쳐 갔지?! 그 많은 내 돈을! 내놔, 이 자식들아! 이거 풀고 내 돈을 내놓으라고!”

치안대로 끌려오는 동안 내내 목청을 높이던 네이센은 사레가 들려 쿨럭거리면서도 “돈! 돈!”을 외쳤다.

치안대장은 치안대 내 소란을 명목으로 네이센을 독방 구치소에 집어넣었다. 감옥은 아니었지만 밖으로 나가는 게 저지되었음을 안 네이센은 창살을 발로 차며 외쳤다.

“저, 저기 잠, 잠깐만! 나 좀 내보내 줘! 돈만 찾으면 내가 내 발로 치안대로 들어올 테니까 나 좀 꺼내 줘! 분명히 그 근처에 돈 가방이 떨어져 있을 거라고! 금화가 잔뜩 든 내 가방이! 잠결에 끌려오느라 분수대 주변은 찾아보지도 못했으니! 제발! 제발 나 좀 꺼내 줘! 내 돈! 내 도오온!”

가방은 무슨 가방?

옷 한 벌도 제대로 걸치지 못하고 있었던 처지였으면서?

지난밤 내내 게임에 빠져 있던 건지 눈 밑은 퀭했고 하는 말마다 산만하기 그지없었다.

네이센의 난동을 치안대장은 차분히 지켜보았다. 아무래도 게임을 하다가 돈을 잃고 최후의 보루였던 옷가지까지 다 털린 모양인데, 그게 민망해 저러는 모양이었다.

‘똥손으로 유명한 네이센이 어제라고 별반 다를 것은 없었을 테니…….’

창살을 발로 쿵쿵 차며 밖으로 내보내 달라 발광하던 네이센의 힘이 점점 빠지는 게 보였다. 창살을 손에 쥐고 흔들다 자리에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치안대장은 네이센이 힘없이 눈가를 손으로 훔치자 구치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네이센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 들을 테니 내 집무실로 올라가지, 헤린스 소백작.”

그렇게 치안대 대장실로 네이센과 함께 올라온 치안대장은 소파에 앉아 차를 마셨다.

맞은편에 앉은 네이센은 따뜻한 김이 오르던 차가 차갑게 식을 동안 고개를 숙인 채 머리만 쥐어뜯고 있었다. 옅은 갈색 머리카락이 손가락에 뜯겼건만 아픔을 느끼지도 못하는 듯했다.

율마는 차를 네이센 앞으로 밀어주었다.

네이센은 고개를 저었다. 그저 신기루처럼 손아귀에서 빠져나간 돈만 생각날 뿐이었다.

‘분명히 어젯밤 내 품 가득히 돈이 있었다고! 어마어마한 돈이!’

‘행복을 꽃피우는 행운의 가게’에서 골든벨을 울리고도 대상단 부부가 자리를 뜨지 않아 게임을 더 즐긴 네이센은 그 이후로 골든벨을 두 번이나 더 울렸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이 무척이나 흡족했던 네이센은 젠에게 보너스도 넉넉하게 챙겨 주었다.

네이센이 자리에서 일어난 건 새벽 3시쯤이었다. 두툼하게 금화가 찬 가방을 품에 안고 가게 직원이 호출해 주는 마차를 기다렸다.

평소라면 세네르와 외출했겠지만, 며칠 전에 떠난 그와 그의 부하들 때문에 백작가의 기사단에 구멍이 뚫렸다.

헤린스 백작가를 호위하던 자들이었는데 대공이 제법 후하게 대접을 해줬는지 북부 기사단의 입단 시험을 치르자마자 북부로 떠났다. 얼굴을 내비치지도 않은 퇴직이었다.

‘하여튼 믿을 놈들이 없다니까.’

그들의 소식을 접한 네이센이 입술을 삐죽이자 대공은 옅게 웃으며 말했다. 헤린스 백작가에 북부 기사단을 호위로 내주겠다면서.

하지만 도박을 하러 나오는 길에 북부 기사단을 대동해 봐야 서로 불편했기에 네이센은 혼자서 외출을 했다.

도박장에서 연결해 주는 마차는 실력 있는 호위도 따라붙어 믿을 수 있었다. 도박을 하러 나올 때는 혼자 다니는 게 편하기도 했고.

그래서 네이센은 도박장 앞에 도착한 마차에 올랐다. 안녕히 가시고 또 오시라는 직원의 배웅도 받았다.

달리는 마차에서 도박장이 멀어지는 것을 창으로 내다본 네이센은 마차 창에 커튼을 쳤다. 쪽 창문까지 암막 커튼으로 꼼꼼히 가렸다.

그리고 가방을 열어 보자 손끝으로 흥분이 내달리며 심장이 펄떡펄떡 뛰었다. 가방 안에 번쩍번쩍 빛을 내며 가방을 뚫고 나올 정도로 가득 찬 금화가 들어 있었다.

‘꿈이 아니었어!’

손으로 볼을 꼬집어 보며 중얼거린 네이센은 금화를 손에 들었다. 입에 넣고 깨물어 보았다. 차가운 금화의 감촉이 말도 못 하게 황홀했다.

‘이 정도 돈이면 헤린스 백작가의 1년 치 예산도 넘을 것 같은데?’

씨익 웃으며 금화를 잔뜩 움켜쥔 네이센은 마차가 속도를 줄이는 느낌에 가방 지퍼를 꼼꼼히 채웠다.

〈도착했습니다, 소백작님.〉

그의 예상대로 마차가 멈추자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툭, 툭 털었다. 혹시나 떨어진 금화는 없나 마차 안을 살핀 후 마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마차에 덧대어진 휴대용 발판을 밟고 바닥으로 내려섰다.

그리고 그 순간 네이센은 멈칫, 했다. 고개를 갸웃했다.

‘여긴 헤린스 백작 저택이 아닌데.’

너른 공터에 선 마차에 의아함을 느끼기가 무섭게 네이센의 목덜미에 강한 충격이 와 닿았다. 마치 커다란 바위로 목덜미를 내리치는 느낌이었다.

〈으윽.〉

짧은 신음과 함께 앞으로 고꾸라진 네이센은 눈꺼풀을 깜빡였다. 까끌까끌한 모랫바닥에 눌리는 이마가 아팠지만, 어찌나 강한 충격이었는지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엎어진 눈앞으로 반질반질한 구두가 보였다.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눈앞이 흐려지고 머릿속이 검게 물들어 가는 게 먼저였다.

그리고 눈을 떠 보니 헤링 분수대 앞이었다. 들고 있던 가방도, 걸치고 있었던 옷가지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수표로 끊어 외투 안에 넣어 둔 돈도 있었는데 그것도 옷이랑 함께 없어졌고!’

네이센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자고 일어나니 모든 게 사라진 것이 망연했다. 차라리 없었던 돈이라면 모르겠는데 손으로 쥐고 이로 느꼈던 금화가 하나도, 단 하나도 수중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이 너무나 허망해 어쩔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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