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39화 (39/198)

Chapter 39

골든벨은 도박장 VIP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와인이나 샴페인을 돌리는 것을 말했다. 그리고 그건 대부분 크게 땄을 때 기분이 좋아 터뜨리는 이벤트였다.

“네, 그렇습니다.”

하며 젠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네이센의 등 뒤를 살짝 눈짓해 방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들을 가리켰다.

“저분들은 해외를 돌다 이번 주에 남부로 들어온 거대 상단을 이끄는 부부라고 합니다.”

고개를 뒤로 돌린 네이센의 시선도 그쪽으로 향했다. 한 쌍의 남녀가 커다란 가방을 들고 직원의 안내를 받아 도박장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얼마나 돈이 많은지 게임장에서 벌써 날린 금화만으로도 사과 궤짝으로 세 개가 나오고도 남을 거라는 말이 돕니다.”

“그래?”

고개를 숙여 정보를 전하는 젠의 말소리가 더 낮아졌다.

“그리고 씀씀이도 크고 호탕하신 분들이기도 하고요. 에럴드 님이 두 번이나 골든벨을 울릴 수 있던 것도 저들을 상대하다가 크게 버신 덕분이기도 합니다.”

허, 네이센의 입가가 비죽이 올라갔다.

‘에럴드의 수완이 그리 좋지 못했는데 그런 녀석이 딸 정도의 실력에다가 이기면 골든벨을 울릴 정도로 판돈이 크다니?’

그렇다면.

“그럼 나도 같이 자리를 한번 가져 봐야겠군.”

네이센을 상대하던 젠이 종을 울려 보안 직원을 불렀다. 몇 마디 주고받더니 상단 부부가 네이센과 한 테이블에 앉을 수 있게 자리를 마련했다.

“안녕하세요.”

먼저 살갑게 인사해 오는 부부를 향해 네이센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옆에 앉은 사람들의 행색을 훑었다.

몸에 알맞게 맞는 부부의 옷은 비단이라도 섞인 건지 윤기가 좔좔 흘렀다. 여성은 목에 푸른색 에메랄드 목걸이를 차고 있었는데 보석이 크고 아름다웠다. 깊고 맑은 녹색의 보석은 청명한 광채를 뿌리며 눈길을 끌었다.

귀에는 고개를 갸웃할 때마다 흔들리는 귀걸이가 걸려 있었다. 그 귀걸이의 끝자락에 푸른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는데 VIP실의 조도 낮은 조명과 보석의 빛이 어우러질 때마다 아름다운 색감이 번지며 시각을 자극했다.

손에는 손가락마다 반지가 있는 것도 모자라 마디마디에도 가는 반지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남성은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는데 그 시계에도 시간을 가리키는 숫자마다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다.

‘대상단을 이끄는 상단주 부부라더니 돈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양이네.’

네이센은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사이가 좋은 부부인지 남성의 팔짱을 낀 여성이 뭐든 신기해하고 즐거워했다.

“실례되는 질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부부이신가 봅니다.”

네이센이 묻자 남자가 시계를 품속에 집어넣으며 답했다.

“하하, 네. 제가 자그마한 상단을 운영하고 있는데 바다를 건너다니는 일이 많다 보니 시간이 생기면 이렇게 아내와 여흥을 즐길 수 있도록 함께 다닙니다.”

자그마한 상단은 무슨.

척 보기에도 여유가 넘쳐흐르는데.

“네, 사이가 아주 좋아 보이셔서 보기가 좋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저 때문에 부인이 고생을 많이 한지라 이렇게 잠깐이라도 시간이 생기면 함께 다니는 걸로 만회하는 거죠.”

“네, 그러시군요.”

네이센이 남성의 다리 아래에 놓인 가방을 힐끗, 내려다보았다. 부드러운 가죽 가방의 겉면이 울룩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저게 다 금화로 채워진 것이려나.’

이미 금화를 칩으로 바꾼 양도 상당한데.

상단주 부부가 바꾼 칩을 바구니에 담아 테이블에 올려 두었는데 그 양도 제법 되었다.

네이센이 시선을 들어 올리자 젠이 옅게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행복을 꽃피우는 행운 가게의 젠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어서 정말 반갑습니다.”

젠이 테이블에 카드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어떤 방식으로 게임을 하시겠습니까? 합의가 되지 않으셨다면 동전을 던져서 게임을 정하시는 방법도 있습니다.”

“음, 가장 쉬운 걸로 하고 싶은데.”

젠의 말에 집중하던 여성이 툭 내뱉자 젠이 옅게 웃었다.

“그렇다면 추천드릴 수 있는 게임은 ‘가장 높은 수 뽑기’ 게임입니다.”

“아, 그거 알아요! 어제도 그 게임을 했었거든요!”

“그럼 다른 분들은 어떠십니까? 동의하신다면 가장 높은 수 뽑기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동의하지 않으시면 다른 게임으로 합의하시거나 제가 동전을 던져서 게임을 선택하시는 데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가장 높은 수 뽑기 게임’은 숫자 1부터 21까지 적힌 카드를 사용하는 게임이었다.

처음엔 다섯 장의 카드를 받는다. 카드를 받은 사람은 그 뒤로 카드를 더 받을지 말지 정한다.

받는다면 다시 두 장의 카드를 더 받고 한 장을 내놓는 게임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높은 수의 카드를 가진 사람이 승리하는 게임으로 크게 복잡하지 않은 게임이었다.

카드를 받을 때마다 칩을 내야 했고, 100장의 카드 중에서 21이 쓰인 카드는 한 장만 존재했다. 나머지 카드는 숫자 1에서 20이 중복으로 쓰여 있었다.

‘우선 가볍게 실력을 보도록 할까?’

잠시 생각한 네이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 괜찮습니다.”

“그럼 그걸로 가죠.”

남성도 동의하자 젠이 카드를 선택했다.

“네, 알겠습니다. 게임의 규칙을 설명해 드리자면 ‘가장 높은 수 게임’은 먼저 다섯 장의 카드를 제가 나눠 드립니다. 카드를 확인하신 이후 게임에 참여하지 않으실 분들은 카드를 뒤집어 놓으시면 되고요, 게임에 참여하실 분들은 제가 두 장의 카드를 더 나눠 드리면 그를 확인한 후 게임을 진행하시면 됩니다.”

짧게 게임의 규칙을 설명한 젠이 소매를 걷은 손을 앞으로 뒤로 내보인 후 카드를 섞었다.

네이센은 와인으로 목을 축이며 분위기를 살폈다. 대공에게 받은 돈이 아직 많이 남았으니 천천히 시간을 들여도 될 것 같았다.

* * *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네이센의 입가에 미소가 멈추지 않았다. 상단주 부부가 한 팀이 되어 네이센과 진행하는 게임이었다.

상단주 부부의 실력은 논할 것도 없었다. 정말로 가볍게 유흥을 즐기러 온 건지 별생각 없이 카드를 돌렸고 칩을 내려놓았다.

네이센은 차를 마시며 상단주 부부를 힐끗, 바라보았다.

‘머리와 감각으로 돈을 벌기 위해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남아도는 시간을 죽이러 온 것에 불과하군.’

남편은 게임에 관심도 없었다. 숫자가 큰 카드가 들어오면 참지 못하고 좋아하기에 바빴다. 작게 주먹을 쥐며 꿈틀거리는 입가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남편의 표정만 봐도 어떤 카드가 들어왔는지 다 보일 정도였다.

카드를 받고 내는 건 거의 부인이 했는데 게임에 그다지 감각이 없었다. 치고 빠질 때의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무조건 칩을 내고 카드를 받았다. 때로는 높은 수의 카드를 버리기도 하는 실수도 했다.

‘이러니 다 털리지.’

그 상황에서 네이센은 속으로 웃었다.

여덟 게임 중에서 여섯 게임을 이기고 나자 테이블에 바짝 몸을 붙이고 집중하던 네이센의 몸이 뒤로 늘어졌다.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차를 마셨다.

제 칩은 상단주 부부를 이긴 대가로 바구니를 차고 넘칠 정도로 많이 쌓여 있었다. 이걸 금화로 바꾸면 요 며칠 게임으로 잃은 금화를 다 채우고도 남음이었다.

‘오늘 정말로 운이 좋은데?’

“한 번 더 카드를 받을게요!”

밝게 말하는 부인을 보며 네이센은 웃음을 삼켰다. 이미 자신에게 들어온 카드에 21이 있었으니 이번 판은 그녀가 아무리 카드를 많이 받는다 해도 자신을 이길 수 없었다.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었으나 일단 직진에만 관심이 있는 건지 칩을 내려놓으며 카드를 받는 데에만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네이센은 젠이 건네는 카드를 받으며 속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이번에도 나의 승리다.’

그리고 열 번째 게임에서도 승리를 거머쥐었을 때 네이센은 골든벨을 울렸다.

“오늘의 승리자인 익명의 게임 참가자님께서 VIP 홀의 모든 분들께 와인과 과일을 선물하신다고 합니다. 오늘 위대한 승리를 하신 익명의 게임 참가자님께 축하를 드리며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께 행운과 행복이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천장이 높고 공간이 넓은 홀에 청아한 벨 소리가 울리며 젠의 목소리가 퍼져 나갔다.

익명의 승리자라고 해도 젠이 자신의 테이블에 놓인 벨을 치며 축하를 전하는 것이라 누가 오늘 이 홀에 선물을 전하는 건지 다 알았다.

골든벨을 울린 주인공을 향해 짝짝짝, 울리는 박수 소리와 부러움이 담긴 시선이 꽂혀 들자 네이센은 가슴과 어깨가 활짝 펴지는 느낌이었다.

오늘 손에 넣은 칩이 담긴 바구니를 챙기며 네이센은 씨익 웃었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 남부 1구역의 치안경비대로 신고가 들어왔다.

남부 1구역의 자랑인 ‘헤링 분수대’ 앞에 웬 망측한 차림 남자 하나가 쓰러져 있다는 내용이었다.

에헴, 콧방귀를 뀌며 치안대 안으로 들어서던 남부 1구역 치안대장은 몸을 뒤로 빙글 돌렸다.

“뭐? 아침 댓바람부터 분수대 앞에 웬 잡놈 하나가 알몸으로 드러누워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고?”

그것도 남부 1구역의 자랑인 헤링 분수대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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