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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33화 (33/198)

Chapter 33

살짝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세네르는 이내 마음을 놓고 무기점에 진열된 무기들을 살폈다. 고귀한 이들을 위해 비치된 물건이라 그런지 광이 번쩍번쩍 나며 손질이 잘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검신이 늘씬한 장검을 고른 세네르는 뒤로 돌았다.

“안목이 좋으시군요, 고객님.”

적당히 거리를 두고 따라붙어 설명을 해 주던 주인장에게 눈짓하며 뒤로 물렸다.

“잠시 뒤로 물러나 주게.”

“네, 기사님.”

그리고 문가에 선 이르텔에게 말했다.

“이르텔 경, 잠시 검을 맞대 주시겠습니까?”

며칠 전 대공은 세네르에게 제의했다. 북부 기사단에 입단하지 않겠냐는 달콤한 제안이었다.

입단 시험, 그저 형식에 불과한 시험만 통과하면 된다면서 말이다.

북부 기사단 ‘로얄트.’

위엄 넘치고 강한 기사단의 상징으로 통하는 북부 기사단에 이름만 올려놔도 경력이 되어 다른 곳에서 모셔 가기에 바빴다. 1년, 아니 몇 개월만 북부 기사단에서 버티기만 해도 돈도 벌고 경력도 쌓이고 이렇게 좋은 무기도 손에 쥘 수 있고……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문가에 선 이르텔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네르는 백금으로 만들어진 검 손잡이에 힘을 주었다. 손에 착 감기는 감촉이 남달랐다. 가벼운 긴장감으로 손끝이 지잉 울리는 게 기분 좋았다.

* * *

챙, 챙, 챙

채앵, 챙, 챙, 챙

락 무기점 4층에서 검과 검이 맞닿으며 소리가 울렸다.

고위층을 접대하는 4층은 무기를 써 보고 점검할 수 있도록 꾸며진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세네르와 이르텔이 가볍게 검과 검을 맞댔다. 날쌘 움직임으로 이르텔에게 다가간 세네르가 바람을 가르며 검을 휘둘렸다.

챙, 챙

가는 검신과 묵직한 대검이 맞부딪히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세네르는 몇 번 검을 부딪쳐 본 것만으로도 이르텔이 얼마나 대단한 실력자인지 알 수 있었다.

남들은 두 손으로 들어도 힘들어할 대검을 가볍게 한 손에 들고 안으로 파고들려는 검을 탁 쳐 내며 밀어내는 실력에 세네르의 입매가 비틀렸다.

‘제대로 된 일격을 날리는 것도 아니고 그저 밀어내는 것뿐인데.’

이르텔이 대검을 휘두를 때마다 그 힘을 막으려는 세네르는 검을 쥔 손끝에서부터 어깨까지 힘이 들어갔다.

이르텔이 손이나 발을 움직일 때 무게중심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는 것을 보며 세네르는 미간을 찌푸렸다.

‘짜증 나네. 이런 건 수련으로 갈고닦은 실력 차가 아니라 타고 태어난 핏줄 차이 아니냐고.’

세네르는 저를 벽으로 밀어 움직임을 가두려는 대검을 튕기듯 쳐 내며 검을 길게 앞으로 내질렀다.

그 공격을 이르텔이 거대한 검신으로 받아 비껴 흘리니 세네르는 손에 가볍게 힘을 주었다 뺐다. 그리고 살짝 뒤로 빠지는 검의 흐름에 이때다 싶어 힘을 실어 이르텔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오히려 그때를 노린 이르텔이 검을 뒤로 더 빼며 세네르가 헛심을 쓰게 만들었다. 그리고 반동으로 검을 탁, 밀어붙이니 세네르는 손에 힘이 빠지면서 검을 놓칠 뻔했다. 짧은 공방이었음에도 세네르의 호흡이 거칠어져 있었다.

이르텔과 거리가 벌어진 세네르는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폈다. 크게 숨을 내쉬며 호흡을 갈무리했다.

‘이거야 원, 무슨 바위와 싸우는 기분이니.’

세네르가 이르텔에게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대련의 끝을 고했다.

“감사합니다, 이르텔 경.”

이르텔은 살짝 고개를 까닥였다.

“별말씀을.”

단, 몇 번의 합이었지만 이마에 송골송골 오른 땀을 훔친 세네르는 조용해진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기점 주인과 부하들이 구석에 서서 작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세네르는 속으로 툭, 내뱉었다.

‘저 박수도 이르텔에게나 아낌없이 날리는 것이겠지.’

그리고 아직도 박수를 치느라 정신없는 주인장에게 검을 내밀었다.

“이 검으로 하지.”

“알겠습니다, 기사님. 그리고 마음에 드는 다른 무기는 없으십니까?”

“마음에 드는 무기가 있다면 부담 가질 것 없이 얼마든지 골라도 되네.”

주인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첨언하는 이르텔을 바라본 세네르는 천천히 무기점을 둘러보았다.

진귀하고 비싼 무기들을 그저 손에 쥔다고 실력이 오르는 법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기회는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했으니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헤린스 백작가는 예산 문제로 무기도 갑옷도 제때 지급되지 않을 때가 많았으니 여차하면 오늘 산 무기들을 팔아 치워도 되고.’

“대장, 이건 어때요? 여기에 박힌 월계수 문양은 도끼를 쥔 이가 어려운 상황에 닥치며 지혜를 나누어 도와준다고 쓰여 있는데요? 모양은 구리지만 쓸 만해 보이지 않아요?”

“텔론, 그런 건 다 팔아먹기 위해 나불나불 써 붙여 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아니거든?”

“맞거든? 대장, 마검을 본다면 그것보다는 이게 훨씬 낫지 않겠어요? 정령의 숨결이 들어간 보석을 갈아 사슬로 만들었다는데 정령이라니…… 뭔가 느낌이 오지 않아요?”

“아슬러와 텔론도 그렇게 구경만 하지 말고 사고 싶은 것들을 들도록 해.”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슬러와 텔론이 크게 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이르텔 경.”

“눈에 들어오는 게 한두 개가 아닌데 괜찮습니까? 이르텔 경?”

“얼마든지.”

“그럼 이번에는 희귀한 보석들로 만들어진 무기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때는 이때다 싶었는지 이르텔의 말이 끝나자마자 화려하고 특색이 넘치는 무기들로 안내하는 주인장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며 세네르는 비죽이 웃었다.

운수 좋은 날이었다.

* * *

헤린스 백작가에는 한창 훈련장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백작가의 동쪽 정원은 미로와 같아서 방문객이나 길을 잃고 드나드는 길고양이에게 작은 즐거움을 선사하는 곳으로 유명했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잘 유지되었던 정원도 가세가 기울자 점점 황폐해졌다.

미로로 꾸몄던 길과 길 사이에는 잡초만 무성히 자라났다. 철마다 정원을 꾸미던 꽃들도 영양분이 부족하여 시들시들해지더니 하나둘씩 고개가 푹, 꺾이고 말았다.

빗질이 제대로 되지 않은 머리카락처럼 얽히고설킨 가시덤불의 잔해는 치우고 치워도 영역을 넓혀 나가기에 바빴다. 덤불 사이로 나뒹구는 잡초를 제거하는 것만으로도 일손이 달렸다.

정원사 지오가 부지런히 손질했지만 넓은 헤린스 백작가 정원을 혼자서 정리하는 건 쉽지 않았다. 거름이 모자라거나 병이 들어 시들어 가는 나무는 잘 살아나지 않았다. 새로운 나무를 심기에는 백작가의 재정이 열악했다.

그랬던 정원이 북부 기사단이 움직이자 금방 말끔해졌다.

지난여름 불어닥친 태풍에 부러진 나뭇가지와 쓸린 모래 더미도 아직 제대로 치우지 못했다. 그걸 하루아침에 말끔히 정리한 북부 기사단은 쓸려 내려와 작은 동산처럼 볼록 튀어나온 흙더미도 치워 평평하게 다졌다.

그리고 제국에서 가장 단단해 철목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를 땅에 박아 올리며 골조를 세웠다. 그 위를 기름 막을 입힌 너른 천으로 둘러쌌다.

마치 서커스 천막처럼 지붕이 볼록하게 솟았고 너르고 둥근 원형의 임시 훈련장이 며칠 만에 뚝딱뚝딱 만들어졌다.

그 건물 안으로 들어온 세네르와 부하들이 내부를 둘레둘레 살피던 중 아슬러가 입을 뗐다.

“여기서 북부 로얄트 기사단의 입단 시험을 본단 말입니까?”

철목을 촘촘히 세워 탄탄했고 불과 물, 마법에도 강한 재질의 천으로 외부를 차단하니 넓고 깨끗하다 못해 휑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텔론은 발로 바닥을 톡, 톡 차 보았다. 값싼 나무 재질이 아니라 반질반질 잘 연마된 돌바닥이었다.

반짝반짝 윤기까지 흘러 미끄럽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 이거 비싼 거네.’

돌 하나하나에 마법을 가공하면 이렇게 품질이 좋다고 하던데…… 그런데 이렇게 꾸며 봐야 어차피 헤린스 백작가에서 쓰지도 않을 훈련장에 뭐 이리 돈을 들이지?

텔론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에 이르텔이 말했다.

“그래, 오늘 입단 시험에 쓸 장소이다. 시험에 쓸 무기는 무기대에서 골라서 써도 되고 소지하고 있는 것을 써도 된다.”

벽 한쪽에 세워둔 무기대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무기대에는 커다란 삼지창에서부터 작은 단검까지 종류도 크기도 다양한 무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잘 손질된 무기들은 연무장 문이 열릴 때마다 들어차는 볕에 반짝반짝한 빛을 흩뿌리다 사그라지곤 했다.

“저는 어제 샀던 이 녀석을 쓸 겁니다.”

텔론이 품에 안은 검과 도끼를 내보이며 웃었다.

“저는 이걸 쓸 거고요.”

그 옆에서 아슬러도 손에 든 대검을 내보이며 웃었다.

모두 어제 락 무기점에 산 값지고 희귀한 좋은 품질의 무기였다.

‘이것만 해도 좋은데 시험만 통과하면 북부 로얄트 기사단에도 입단할 수 있다니!’

아슬러가 흥분하는 사이 이르텔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선 기사들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가슴을 보호할 수 있는 갑옷과 손목, 발목 보호대를 내려놓은 기사들이 훈련장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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