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23화 (23/198)

Chapter 23

당연히 그러시겠지.

에이는 사흘 전에 이미 팔아넘겼으니까. 아이들을 잘 보살피라는 대공의 후원을 그렇게 받고도.

동시에 휘이익― 제이논이 휘파람을 불자 높은 하늘에서 날쌘 매 한 마리가 나타났다. 쌔애앵 소리와 함께 날아들더니 제이논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뭐, 뭐야?”

갑자기 나타난 매에 머리를 감싸고 움츠러들었던 원장이 고개를 빠끔 들어서 주위를 살폈다.

뭐긴 뭐야? 대공이 자신을 대신할 사람을 파견했으니 그들이 요청하는 사항에 잘 따르라는 서류와 후원계약서를 들고 온 배달부지.

케이크 가게를 나설 때 기사들은 세 팀으로 나뉘었다. 로넨이 탄 마차를 이끄는 팀, 대공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한 팀, 원장이 탄 마차를 감시하는 팀으로 쪼개져 달렸다.

그리고 로넨이 탄 마차에서 에드와 제이논은 역할을 분담했다. 에드는 마차가 보육원에 들어서면 원장의 주목을 끄는 역할을 맡았고, 제이논은 그사이에 대공과 연락을 주고받는 일을 하기로 했다.

“이건 대공께서 보육원을 후원할 때 계약하신 계약서.”

제이논이 매의 발에 매달린 통에서 종이를 꺼내며 말했다.

“그리고 이건 대공께서 대리로 보육원을 검문할 사람을 보낸다는 확인서.”

“…….”

“그리고 또 이건 대공 전하께서 후원을 하실 때 보육원에서 제공한 보육원생들의 명단.”

원장이 얼굴을 굳혔다가 풀며 입매를 꿈틀거렸다.

“하하하, 그건 안 될 것 같은데. 계약서를 잘 확인해 보라고? 후원 계약서에는 대공 전하께서 보육원을 방문할 때 적어도 1시간 전에 연락을 하기로 되어 있으니!”

제이논이 어깨를 으쓱했다.

“1시간 전에 이미 말했지 않았습니까?”

“뭐라고?”

“잘 생각해 보시지요. 케이크 가게 앞에서 보육원의 방문을 허락하시는 거냐는 질문에 그쪽이 뭐라고 답하셨는지?”

“뭐, 뭐라고오?!”

“케이크 가게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1시간 7분 소요되었습니다.”

뒤에서 찔러 주는 이르텔의 대답에 원장의 얼굴이 팍, 굳었다.

“길을 왜 돌아서 왔겠습니까? 원장님은 주무시느라 깨닫지 못하셨던 것 같지만요.”

물론, 시간을 안 지켰어도 상관은 없었다. 1시간이 지났다고 밀어붙이면 그만이었으니까.

“이, 이 새끼들이! 처음부터 이럴 계획으로 내게 접근한 거였어!”

“그렇지 않을 텐데요? 잘 생각해 보세요, 로넨 도련님을 먼저 아는 척하던 게 누구였는지.”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또박또박 대답하는 제이논의 대답에 씨근덕거리던 원장이 앞에 선 에드에게 손을 치켜들었다.

원작에서의 버릇을 남 줄 리 없었다. 말보다 몸으로 해결하는 것에 길든 원장은 머리로 열이 오르자 손부터 올라갔다. 신분이 가장 낮아 보이는 이를 향해서 손을 치켜들었다.

에드는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그가 때린다면 기존에 저지른 죄에 폭력까지 더해서 감방에 집어넣으면 그만이었다.

“안 돼!”

그러나 로넨의 생각은 달랐다.

원장이 손을 쳐들자 에드의 뒤에 서 있던 로넨이 후다닥 튀어나왔다. 발사대에서 쏘아 올려진 로켓처럼 튀어 나가서 원장을 머리로 들이받았는데, 그 충돌음이 퍽 소리가 날 정도로 몹시 컸다.

“…….”

“…….”

“……어억.”

그리고 하, 하필이면 로넨이 강타한 곳이 원장의 중심부였다.

어억, 하며 원장이 뒤로 넘어가자 주위는 침묵에 휩싸였다. 잽싸게 정신을 차린 에드는 얼른 로넨에게 뛰어갔다.

으악! 썩을! 로넨의 찰랑거리는 머리에 몹시 더러운 게 닿았어!

“아아악!”

그러나 머리에 몹시 더러운 게 닿았어도 굴하지 않은 로넨은 뒤로 쿵, 쓰러진 원장의 손을 물어뜯었다.

“이, 이 나쁜 자식! 키워 줬더니 은, 은혜를 원수로 갚아?!”

뒤로 넘어가 중심부에 감히 손도 못 대고 끙끙대던 원장이 로넨의 머리채를 휘어잡으며 외쳤다.

“도, 도련님!”

“로넨 도련님!”

갑자기 돌진한 로넨의 돌발 행동에 어안이 벙벙해졌던 기사들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머리채를 휘어 잡혀도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원장과 대치하는 로넨에게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늦었다. 개입할 순간이 늦어도 너무 늦었다.

“으아악!”

원장이 뒤로 넘어가자 화들짝 놀랐던 보육원생들이 로넨이 원장의 손을 물어뜯자 달려들기 시작했다.

‘안 돼! 로넨을 공격하면!’

그러나 아이들이 덮친 건 에드의 생각과 완전히 달랐다.

“에이 오빠 어디 갔어요?!”

“형을 돌려줘요!!”

“이 나쁜 원장! 에이를 어디다 팔아넘겼냐니까!”

“에이 오빠도 내놓고 왕자님도 괴롭히지 마! 으어엉!”

아이들의 공격 상대는 로넨이 아니라 원장이었다. 엎어진 원장을 깔고 앉아 물고 뜯고 때리고…… 겁을 먹고 울기까지 하면서도 할 건 다 했다. 난장판이었다.

그 난장판의 소용돌이에서 에드는 로넨을 구해 내려 했지만, 원장이 얼마나 독기를 품었는지 꽉 부여잡은 로넨의 머리채를 놓지 않고 버텼다.

이건 정말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에드는 두 눈을 질끈 감곤 다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원장의 중심부를 향해서 힘껏 내리꽂았다.

“으아악!”

원장의 격한 비명이 터지고 나서야 로넨은 그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었다.

에드는 원장을 깨무느라 정신이 없는 로넨을 뒤로 잡아끌어 앉혔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어, 어. 난 괜찮아. 에드는?”

아니, 이 도련님은 머리가 쑥대밭이 되어 있는데 뭐가 괜찮다는 건지 모르겠다.

“네, 전 도련님 덕분에 괜찮습니다.”

에드는 오른쪽 구두를 벗어 던지며 대답했다. 원장과 접촉했던 구두를 계속 신고 있을 수 없었다. 그대로 있으면 더러운 감촉이 계속 생각날 것 같았다.

에드는 로넨의 머리를 살살 정리해 넘겼다. 이 결 좋은 머리카락에 무슨 죄가 있다고 그렇게 우악스럽게 쥐어뜯어? 쥐어뜯길?

그는 후회했다. 이왕 밟는 거 다시는 못 서도록 짓밟을걸. 어차피 구두는 더럽혀졌고 기왕에 뭉개 버릴 거 구두 밑창이 다 닳을 때까지 짓밟아 버릴걸.

에드가 원장을 노려보자 기사들의 무심한 손길에 일어나 앉은 원장이 흠칫, 했다. 비루한 자기 하체를 가린다고 뒤돌아 앉는데 저 등을 플라잉 니 킥으로 찍어 버리고 싶었다.

‘나도 힘을 길러야지.’

이럴 때 한 방을 더 날릴 수 있게.

히이이잉!

그때 보육원으로 마차가 1대 더 들어왔다. 어수선한 현장으로 들어선 마차에는 대공의 문장인 검은 용이 박혀 있었다.

“…….”

마차에서 내린 대공이 주위를 훑었다. 그리고 제이논에게 다가갔다.

“제이논, 신발 벗어.”

“네? 대공 전하! 제, 제 신발은 왜?”

뒷골목의 불량배처럼 손가락을 까딱이며 대공이 제이논이 신고 있는 구두를 요구했다. 그에 제이논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자 이르텔이 움직였다. 제이논을 잡아 움직임을 막았다.

“아, 잠, 잠깐만. 이, 이르텔! 그, 그렇게 마구잡이로 신발을 벗기면……아앗!”

이르텔은 어렵지 않게 벗겨 낸 제이논의 신발을 대공에게 가져왔다.

대공은 갈취한 구두를 들고 에드에게로 향했다.

그러곤 에드의 앞에 무릎을 굽혔다. 그건 옆에서 보면 마치 서약을 하는 기사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에드는 어쩔 줄을 몰랐다.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철퍽 주저앉은 몸을 일으켜 무릎이라도 꿇어 보려고 바르작거렸으나 쉽지 않았다.

“…….”

“…….”

대공이 에드의 움직임을 저지하며 오른쪽 발목을 잡았다. 단단한 손이 발목을 감싸자 에드는 배가 꽈악 조이는 기분이었다. 숨을 쉬어도 쉬는 것 같지가 않았다.

‘설, 설마 대, 대공께서 내 발목을 톡, 꺾으려는 건 아니겠지?’

그러나 에드의 격한 망상과는 달리 대공은 그저 지저분해진 양말을 손으로 탈탈 털곤 제이논의 구두를 신겼을 뿐이었다. 다행히 구두는 조금 컸지만 알맞게 들어갔다.

“기사들 말로는 하인은 하인으로서의 쓰임새가 있는 것이라는 말에 로넨이 울적해했다고 하던데.”

대공이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니, 그 말은 또 누가 말한 겁니까.

너무 빠른 소식통의 움직임에 에드는 시선을 힐끗, 들었다. 제이논과 이르텔. 가장 유력한 용의자들을 올려다보자 둘 다 어깨를 으쓱, 할 뿐이었다.

대공이 에드의 왼쪽 구두도 벗겨 냈다. 마치 에드가 유리 구두를 신고 있다는 듯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꽉 쥐면 깨질라, 확 움켜쥐면 터질라. 조심스럽다 못해 정중한 그 손길에 에드의 발이 흠칫흠칫 움츠러들었다.

“마음이 움직일 때는 그게 누구이든 간에 이렇게 내가 무릎을 굽혀 에드에게 구두를 신겨 주듯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는 거란다, 로넨.”

눈동자를 굴리며 상황을 지켜보던 로넨이 아! 하더니 환하게 웃었다.

“네!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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