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17화 (17/198)

Chapter 17

에드는 마차 곁에 서 있는 이르텔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르텔 경.”

“네, 안녕하세요. 에드.”

“그런데 질문이 있는데요, 이르텔 경. 마차에 오를 때 말입니다.”

“네, 에드.”

“바닥에 놓아둔 휴대용 발판을 잃어버리면 마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르텔의 시선이 바닥에 놓인 발판으로 향했다가 에드에게 닿았다. 그리고 곧 메튜에게로 내리꽂혔다. 서늘한 눈빛이었다.

“그럴 땐 마부가 엎드려서 마차에 잘 오를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합니다.”

“그렇습니까?”

고개를 끄덕인 에드는 로넨을 마차로 이끌었다.

“로넨 도련님, 이제 마차에 오르실까요?”

마음 같아서는 로넨이 메튜의 등짝을 꾹꾹 짓밟고 마차에 오르게 하고 싶었지만, 그에게 이런 식으로 남을 괴롭히는 방법을 알려 주고 싶지 않았다.

‘저 천사 같은 얼굴이 문제일까?’

로넨은 좋은 것만 보고 들었으면 했다.

“에드가 먼저 올라가.”

로넨이 마차에 오르지 않고 에드를 잡아끌자 이르텔이 조언했다. 부드럽고 조곤조곤한 음성이었다.

“로넨 도련님, 도련님께서 먼저 오르신 뒤에 에드를 이끌어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 그런가?”

“네, 도련님. 그리고 에드가 마차에 타기 전에 마차 안을 잘 살피는 것도 중요합니다. 혹시 위험 요소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아, 그렇구나.”

이르텔의 말을 경청한 로넨이 작게 손뼉을 마주쳤다. 높이가 알맞은 발판을 밟고 폴짝 마차에 올랐다. 가볍고 날랜 움직임이었다.

“로넨 도련님, 우선 마차 뒤쪽을 살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때마침 제이논이 한마디 거들자 로넨이 뒤로 돌아 마차 안을 살폈다.

그리고 이르텔은 바닥에 놓인 발판을 뻐엉, 찼다. 어찌나 힘차게 찼는지 발판이 점이 되어 하늘로 올랐다가 정원 끝자락에 투웅, 떨어졌다.

“…….”

“…….”

“어? 무슨 소리가 났는데?”

모두가 침묵하는 사이 마차 안을 살피던 로넨이 숙였던 몸을 들었다. 이르텔이 마차 문을 몸으로 막으며 시야를 가렸다.

“들고양이가 지나간 모양입니다.”

“아.”

“그쪽만 살피지 마시고 저쪽도 살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도련님.”

“알았어, 이르텔 경.”

동시에 이르텔이 메튜에게 눈으로 말했다.

‘엎드리지 않고 뭐 해.’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던 메튜가 납작 엎드렸다. 그 등을 이르텔이 쿠욱, 밟자 메튜가 납작 짜부라졌다.

“으윽.”

그러나 이르텔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메튜의 등을 완벽하게 밟고 마차에 올랐다.

“도련님, 이쪽도요. 사각지대는 특히나 더 신경을 쓰셔야 합니다.”

마차 안으로 들어선 이르텔이 로넨의 정신을 더 쏙 빼놓자 에드의 뒤에 서 있던 제이논이 작게 웃었다. 그도 눈으로 말했다.

‘다시 엎드리지 않고 뭐 해.’

웃으면서 사람을 쪼는 제이논의 눈빛에 메튜가 다시 자세를 잡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엎드려 발판을 대신했다.

‘그럼, 에드.’

입 모양으로 에드를 부른 제이논이 오른손을 쭉 뻗어 길을 안내했다.

먼저 마차에 오르라는 신호에 에드는 메튜의 등을 꾸욱, 밟았다.

“으윽.”

이 정도로 엄살은.

밑창이 훨씬 더 단단하고 딱딱한 구두로 미처 갈아 신지 못한 걸 아쉬워하며 에드는 발에 느껴지는 메튜를 꾹꾹 눌러 밟으며 마차에 올랐다.

* * *

마차가 의상실에 도착했을 때 가게 주인과 점원이 벌써 나와 있었다. 작고 풍채가 좋은 리먼과 키가 크고 마른 주리, 연륜이 있어 보이는 점원까지 줄을 지어 나와 있었다.

리먼과 주리, 두 사람은 부부였고 의상실의 주인이었다.

“안, 안녕하십니까. 로넨 도련님.”

“저희 부부의 의상실에 방문해 주셔서 정말 영광입니다.”

주인 부부가 넙죽 인사를 하는데 그들의 뒤통수에 커다란 땀방울이 매달린 것 같았다.

당연했다. 얼마 전에 실수로 로넨의 치수를 잘못 재 옷을 만들고 로넨이 살이 쪄 옷이 작아진 거라고 모욕했다. 그 옷은 로넨이 약혼식 때 입을 옷이었다.

그 때문에 백작 부부는 안 그래도 마른 로넨에게 살을 빼라며 호통을 쳤다.

이건 의상실 주인 부부뿐만 아니라 하인 벤스와 하녀 안나가 옷을 맞출 때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일을 대충대충 처리해서 생긴 일이었다.

그들은 번화가에서 유명한 디저트 가게에서 빵이 품절되기 전에 사려고 의상실 부부의 실수를 못 알아채고 청구서만 달랑달랑 들고 나오기에 바빴으니까.

히이이잉.

에드와 로넨이 탔던 마차 뒤로 마차가 한 대 더 들어오자 주인 부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건 안나와 벤스가 탄 마차였다.

헤린스 백작가가 아스넬 대공과 연이 닿았다는 건 이미 소문이 돌고도 남은 기간이었으니까, 그들 역시 이미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듣는 것과 실제로 보는 건 천지 차이였다. 사용인을 위해서 값나가는 마차까지 굴리는 것을 직접 보니 감회가 남다른 모양이었다.

‘그러게 처음부터 좀 잘하지.’

연신 굽실거리며 마차 발판을 살피는 의상실 부부의 모습에 에드의 입매가 비뚜름히 올라갔다.

평소라면 로넨이 인사를 해도 뚱, 뭘 물어봐도 무시하곤, 오로지 백작가에서 낼 돈에만 관심이 있었을 텐데…… 이렇게 상반된 태도라니 씁쓸했다.

‘이자르 의상실’

이 의상실은 여성용 드레스뿐만 아니라 남성용 정장도 취급했다. 이곳은 귀족 작위를 달았더라도 아무나 드나들기엔 가격과 콧대가 높기로 유명했다.

갑옷마저 제작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한 이자르 가에서 운영하는 의상실은 질 좋은 옷감과 세공으로 유명했다.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로넨 도련님.”

평소와 다르게 특별 고객실 푯말이 붙은 방으로 로넨을 안내한 부부는 연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찌나 활짝 웃고 있는지 그들의 얼굴에 경련이 다 일 정도였다.

“에드도 이쪽으로.”

“네, 도련님.”

에드를 잡아끈 로넨이 자리에 앉자 이르텔이 손을 내밀어 안내했다.

“안나와 벤스도 이쪽으로 오십시오, 새 옷을 맞춰야 하니까요.”

“정, 정말요?”

“진, 진짜로 안나와 제 옷을 맞춰도 되는 건가요?”

특별 고객실에 들어온 벤스와 안나가 넋을 놓고 방을 구경하다가 멍하게 질문을 했다. 이르텔이 웃으며 답했다.

“물론입니다. 대공 전하께서 오늘 가져간 금화를 벤스와 안나에게 남김없이 쓰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이르텔이 테이블 위에 금화 주머니를 내려놓자 의상실 부부뿐만 아니라 안나와 벤스까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에드는 의상실 부부의 머릿속에서 주판알이 요란하게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곧 그들은 알아서 안나와 벤스를 이끌었다.

“두 분 모두 이쪽으로 앉으세요. 자리가 넓으니 편하게. 차와 과일이 바로 들어올 테니 그때까지 책자를 보고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보세요. 옷은 어떤 옷이라도 제작이 가능하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이르텔은 그들의 주판알에 펌프질을 했다.

“옷은 10벌이고 20벌이고 마음대로 골라도 됩니다. 대공께서 모자라면 금화를 더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안나가 책을 넘기며 흥분했다.

“흐아아, 이, 이것도 예쁘고 저, 저것도 예쁜데 어떡하지? 뭘 골라야 하지?”

이르텔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둘 다 하면 됩니다.”

“진, 진짜 그래도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정중한 대답에 책자를 넘기는 안나와 벤스의 손이 빨라졌다. 옆에서 그들을 격려하는 부부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여기에 반짝이는 비즈를 달면 더욱 화려하고 세련되어 보일 거예요.”

이르텔은 거기에 쐐기를 박았다.

“그러지 말고 반짝반짝 빛나는 진짜 보석으로 달아 주십시오.”

* * *

로넨이 몸 치수를 재러 밖으로 나갔을 때 의상실 부부와 계약서를 작성한 이르텔은 금화를 쏟아 냈다. 통 큰 씀씀이에 의상실 부부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이르텔은 계약서를 갈무리하는 의상실 부부에게 다시 한번 강조했다.

“계약 조건은 꼭 지켜 주셔야 합니다. 다음 주 주말까지 오늘 계약한 옷들이 나와야 합니다. 황실에서 축하연을 기획하는 중이니까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 의상실이라면 이번 주까지도 가능한 일이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계약 불이행 시 붙는 위약금에 대해서 밑줄이 쫙쫙 쳐진 계약서를 챙기며 이르텔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에 의상실 부부가 고개를 깊게 숙이며 금화를 챙겨 방을 나갔다.

이르텔은 안나와 벤스에게도 계약서를 내밀었다.

“두 분은 여기에 사인을 해 주면 됩니다.”

“이게 뭔가요?”

커다란 글씨로 후원계약서, 라고 쓰인 종이를 내려다보면서 안나와 벤스가 고개를 깊게 숙였다.

“후…… 후, 원, 계……?”

안나가 한 자 한 자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맞습니다. 대공 전하께서 백작가에 계신 두 분을 후원하신다는 계약서입니다. 금과 은, 보석은 물론이거니와 원한다면 학술원도 보내 주고 헤린스 백작가의 누군가가 어려움에 처한다면 모두가 힘을 합쳐서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계약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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