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10화 (10/198)

Chapter 10

……네? 갑자기 뭐가요?

“내, 내가 못된 생각을 해서 그래.”

로넨이 고해성사를 하듯이 말했다.

“에, 에드와 대공 전하께서 가족이면 나를 버리고 가 버릴까 봐 내, 내가 계속 못된 생각을 했어. 에드와 대공 전하께서 가족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아, 그래서 아까 로넨이 그렇게 긴장하고 시무룩했던 거구나.

에드는 침대맡에 서서 고개를 숙인 로넨과 시선을 맞췄다.

“로넨 도련님.”

“응, 에드.”

“로넨 도련님은 가족을 찾으시면 저를 버리고 가실 겁니까?”

“아, 아니!”

로넨이 펄쩍 뛰었다. 에드는 옅게 웃었다.

“그런데 뭐가 걱정이십니까? 만약에 제가 대공 전하의 가족이었다고 해도 저는 로넨 도련님을 절대로 혼자 두고 다른 데 가지 않을 건데요.”

“진, 진짜?”

“그럼요.”

로넨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에드는 팔에 찬 수갑을 풀었다. 그리고 로넨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로넨 도련님이 대공 전하의 가족이라고 해도 저를 혼자 두고 떠나지 않을 거라고 하셨으니 자, 도련님. 팔을 내밀어 보시겠습니까?”

사실 원작에서는 가족 관계 검사를 하나 하는 것만으로도 하네, 마네 하며 소설 분량을 잡아먹었으니 고구마도 이런 고구마가 어디 있을까?

그래서 에드는 검사 도구를 장난감처럼 사용해 역할 놀이를 했다.

〈로넨 도련님, 도련님의 가족은 도련님을 버린 게 아니라 잃어버린 것이 분명합니다.〉

로넨이 잊을 만하면 말해 주고 잊을 만하면 말해 주면서.

로넨은 검사를 할 때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마정석을 신기해했고, 에드와 가족 관계가 아니라고 나온 결과에 몹시 실망했다.

그런 로넨에게 에드는 말했다.

〈실망하지 마세요, 도련님. 내일 검사해 보면 결과가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가족 관계라고요.〉

〈정말?〉

〈그럼요.〉

그래서 그다음 날도, 그 다다음 날도 그들은 가족 관계 검사 도구를 가지고 놀았다. 잘 놀다가 별일 아닌 것처럼 검사 버튼을 눌렀다.

백작 저에서 유일하게 온건한 하녀인 세나와 정원에서 키우는 강아지인 소이에게도 해 봤던 일이었다.

도구에 맞는 검사지 가격도 고가라 갈수록 에드의 허리가 휘었지만 로넨이 즐거워한다면 그걸로 되었다.

처음에 에드와 가족이 아니라는 것에 몹시 실망했던 로넨은 점차 멘탈을 회복하고는 에드에게 속삭였다.

〈에드의 말대로 지금은 가족이 아니더라도 내일 해 보면 다를지 몰라.〉

검사지 하나에 얼마인지 모르는 로넨의 천진한 말에 에드는 눈가가 촉촉해졌지만 로넨의 멘탈이 회복되었다면 그 역시 되었다.

“그, 그런데 에드.”

검사를 하려고 스윽, 팔을 내밀던 로넨이 에드에게 가까이 붙었다. 그러곤 귓가에 속삭였다.

“네, 도련님.”

에드도 덩달아 목소리를 낮췄다.

“아무래도 북부 대공 전하는 내 가족이 아닌 것 같아.”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너무 잘생기셔서 아무래도 내 가족이 아닌 것 같아.”

하하하, 에드는 속으로 웃었다.

매끄럽고 하얀 얼굴.

원래는 검은색이었지만 잿빛으로 보이는 머리카락.

크고 시원하게 트인 눈매에 본바탕은 적안이었으나 지금은 보석처럼 박힌 남보라색 눈동자.

붉고 생기 있는 입술.

그렇지 않았다. 아직 어리고 말라서 로넨의 미모가 살짝 죽었지만 앞으로 환하게 피어날 가능성이 어마어마했다.

에드는 씩 웃었다.

“왜요, 로넨 도련님이 더 잘생기셨습니다. 대공 전하보다 훨씬 더요.”

에드의 말에 로넨의 볼부터 귀까지 빨개졌다. 뜨끈뜨끈하게 열까지 오르는지 로넨이 귀를 만지작거렸다.

에드는 작게 웃었다.

“자, 그러니까 팔을 내밀어 보세요. 도련님. 대공 전하께서도 잃어버린 가족을 찾으시니 검사를 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 그러니까 팔을 내밀어 보세요. 도련님. 대공 전하께서도 잃어버린 가족을 찾으시니 검사를 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응, 하면서 로넨이 팔을 내밀다가 어, 하면서 주먹을 말아 쥐었다.

이번엔 또 왜 그러지?

에드가 고개를 갸웃하자 로넨이 다시 속삭였다.

“그런데 에드.”

“네, 도련님.”

“……대공 전하와 내가 진짜 가족이면 어떡해?”

어떡하긴 뭘 어떡합니까? 앞으로 꽃길만 걸으시면 되는 거죠.

“뭐가 말입니까, 도련님?”

“에드는 아직 가족을 못 찾았잖아. 그런데 나만 찾으면 에드가 많이 속상하지 않을까?”

벌써부터 이렇게 다정하다니…… 에드는 옅게 웃었다.

“그게 왜 걱정이십니까, 도련님? 로넨 도련님이 가족을 찾는다면 저도 가족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쑤욱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아.”

잠시 생각에 잠겼던 로넨이 그렇네, 하면서 이번에야말로 팔을 쭈욱 내밀었다. 내가 가족을 찾으면 에드에게도 좋은 일이네 하면서.

에드는 가족 관계 검사 도구 수갑을 로넨의 팔에 쏙 채웠다.

대공은 어쩌면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는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성숙한 어른의 자세였다.

그리고 뾰로롱, 가족 관계 검사 결과가 나오자.

“…….”

“어?”

“정말 축하드립니다, 로넨 도련님! 아스넬 린든 대공 전하!”

대공은 혹시나 했던 것이 역시나가 되자 말없이 감격했고, 로넨은 얼떨떨해했다. 에드는 대공과 로넨이 가족을 만난 것을 축하했다.

“어? 내가 진짜 대공 전하와 가족…….”

그리고 로넨이 에드를 보며 말했지만 에드는 그 말을 다 듣지 못했다.

이제는 정말로 큰 산 하나를 넘었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긴장이 확 풀리며 피로감과 졸음이 밀려들었다.

에드는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열 오른 눈꺼풀이 축 처지듯이 내려앉더니 침대 헤드에 기대고 있던 몸이 스르륵 무너졌다.

깜짝 놀란 로넨이 제 몸을 잡으려고 손을 뻗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에드의 의식이 똑, 끊기는 게 더 빨랐다. 너무 피곤하고 졸렸다.

‘아, 그런 표정 할 것 없어요. 로넨 도련님. 조금 졸릴 것뿐이니까.’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머리끝까지 차오른 수마에 실패했다.

고꾸라지는 몸을 단단한 뼈대가 받치는 느낌과 함께 에드는 정신을 잃었다.

* * *

에드의 무거운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갔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이글거리듯이 음영이 지는 붉은빛이었다.

‘이게 뭐지? 여기는 어디이고?’

잘 잡히지 않는 초점에 에드가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뜨자 이번엔 검고 단정한 머리카락과 강인한 남자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방 안에는 어둠을 밝히는 램프가 약하게 켜져 있었다. 벽난로에서는 장작이 타닥타닥 타들어 가고 있었다. 뜨겁고 거센 불 덕분에 방 안이 후끈후끈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 벽난로의 불이었구나.’

이글거리듯이 음영이 지는 빛의 정체를 알아챈 에드는 눈동자를 굴렸다. 동시에 머리가 천천히 돌아가며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생각났다.

‘아, 맞다. 나 빙의했지. 로넨 도련님을 모시는 하인 에드로.’

그렇다면 저 크고 강인한 뒷모습의 주인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아스넬 대공이었다.

‘그런데 대공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깨질 것같이 아픈 머리로 에드는 독을 먹었다는 것까지 상기했다. 온몸이 아팠으나 특히나 목이 불에 덴 듯이 아팠다. 침 한 방울조차 넘기기 어려울 정도로 메말라 숨을 쉬기도 괴로웠다. 몸이 엉망진창이었다. 이마는 뜨거운데 몸은 얼음에 갇힌 것처럼 추웠다.

얼마나 다친 거지?

손을 들어 목을 만져 보고 싶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힘들었다. 끙끙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너무 오랫동안 자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그때 벽난로 앞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물도 넘기기 힘들 정도로 목이 부어서 약을 제대로 삼키지 못해 그렇습니다.”

대공과 주치의의 대화였다. 그리고 대공이 고개를 돌리자 에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럼 이만 나가 봐.”

“네, 대공 전하.”

주치의가 방을 나서자 걸음을 옮긴 대공이 침대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벽난로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에 대공의 그림자가 너울지고 이지러지듯이 굴곡이 졌다. 감은 눈꺼풀 위로도 느껴지는 어둠과 빛의 경계에 에드는 숨을 꾸욱, 참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대공이 에드의 이마를 덮은 수건을 집어 들었다. 미지근하게 이마를 덮고 있던 수건이 치워지자 온몸으로 찬 기운이 스미는 기분이었다. 몸이 잘게 떨렸다.

‘……아.’

그때 커다란 손이 이마를 짚었다. 단단하고 뼈대가 올곧게 선 대공의 손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따뜻한…… 마냥 거칠고 차가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감각에 에드는 발끝에 힘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건 또 새로운 기분이었다. 앓고 있을 때 누군가가 자신을 이렇게 간호해 주는 것이.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