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6화 (6/198)

Chapter 6

쿠키 봉지를 들고 정리하던 에드는 물에 젖어 축축한 쿠키를 오른손에 꽉 움켜쥐었다.

그러자 독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하는지 손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조금 더 쿠키를 움켜쥐고 있던 에드가 쿠키 봉지를 놓치자 엘리사가 놀랐다.

독이 닿은 오른손에 옅은 생채기가 나며 피가 비쳤기 때문이었다.

‘……손에만 닿아도 이렇게 아픈 걸 로넨에게 먹이려고 했다니.’

에드는 속으로 이를 갈며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손이 갑자기 왜 이러는지…… 마저 치우겠습니다.”

그때 휙 날아온 손수건이 에드의 옆통수에 맞고 떨어졌다.

“이걸로 닦으렴.”

엘리사가 던진 손수건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엘리사 영애님.”

다시 한번 깊게 인사를 한 에드는 자리에서 일어난 로넨이 다가오려는 걸 막았다.

“괜찮습니다, 로넨 도련…….”

그러나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점차 눈앞이 가물가물해졌다.

원작에서 엘리사가 쓴 독은 여러 가지의 소량의 독초들을 모아 만드는 독이라고 묘사되었다.

중독 증상은 빠르게 나타나지만, 그만큼 독성은 강하지 않고 다양한 독을 섞어 쓴 것이기에 범인도 찾기 힘들어 일반적으로는 마음에 안 드는 상대방을 괴롭히는 용도로 사용되곤 했다.

‘그런데 정도를 모르는 영애가 독을 대체 얼마나 쓴 걸까?’

한숨을 내쉰 에드는 로넨을 바라보았다. 놀란 얼굴이 해쓱했다. 그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옅게 웃었는데…… 그 의미가 잘 전해졌을지 모르겠다.

에드는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몸이 아프긴 했지만 최악의 기분은 아니었다.

이번 기회를 놓쳤다고 해서 엘리사가 로넨을 노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어쩌면 더 교묘하게 로넨을 노릴지도 몰랐다.

그러니 차라리 이런 소란이 일어나서 셀튼 남작의 귀에 들어가는 게 좋았다.

눈치가 빠른 그는 엘리사가 무슨 일을 저지르려고 했는지 파악하고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할 테니까.

그래서 엘리사를 향해 옅게 웃어 주려고 했는데 잘되지 않았다.

“에드!!”

로넨이 외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으니. 쿵, 소리와 함께.

원작에서 에드는 치유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좋을 건 없었다.

사실 에드가 가진 힘이 미미해도 너무 미미했거니와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해서 로넨의 손길을 피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힘 때문에 에드는 쉽게 죽지 않았다.

에드의 능력을 알아챈 로넨은 그를 죽일 만큼 굴리다가 살리고 다시 죽일 만큼 굴리다가 완전히 치유된 후에 죽였다.

독자일 때는 시원함을 느끼는 장면이었지만 에드가 된 뒤에 떠올려 보니 그저 잔인하고 암울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런 잔인한 장면으로 로넨을 구할 수 있는 방도가 떠오르니 이래서 사람들이 인생을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너무 아픈데.’

누군가가 해열제를 먹인 건지 열이 떨어진 에드는 정신을 차렸다. 동시에 온몸을 좀먹는 아픔을 느꼈다. 무거운 눈꺼풀은 올라가지 않았고, 손가락은 무거운 추가 매달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는 거야? 뭘 잘했다고?”

그리고 머리맡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신경질적이었다.

“그러니까요, 어머니.”

“마님, 에드의 몸을 그렇게 건드리면 좋지 않으니…….”

“세나! 너는 입 다물고 물수건이나 갈아! 어디서 건방지게 나와 소백작이 말을 하는데 입을 놀려?”

쿡, 쿡 제 몸을 찌르는 손길에는 악의가 가득했다.

“아, 얘는 또 왜 이렇게 거치적거려? 세나! 얘 좀 치우라니까!”

“로넨, 이 자식아! 너는 나가라고 몇 번을 말해? 왜 이렇게 하인 나부랭이에게 못 붙어 있어서 안달이야?”

“그 정성을 엘리사 영애에게 쏟아 봐라. 영애가 얼마나 놀랐겠어? 멍청한 게 하인 관리도 제대로 못 하고.”

“……에드는 잘못이 없어요.”

에드는 속으로 한탄했다.

‘아, 그런 말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자신이 깨어날 때까지 곁을 지키면서 물도 제대로 안 마셨는지 대꾸하는 로넨의 목소리가 쩍쩍 갈라졌다.

“뭐라니, 얘가?”

“뭐, 이 자식아?”

“엘리사 영애가 가져온 쿠키에 분명히 문제가 있었…….”

“쿠키 소리는 하지도 말랬지!”

백작 부인이 고음을 발사했다. 마치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였다.

지금 방에 있는 사람은 로넨과 양모인 백작 부인, 그리고 로넨의 의붓형인 네이센과 하녀인 세나였다.

“로넨, 이 형님이 잘 알아듣게 설명했지? 이번 일은 귀족들의 티타임 자리를 정리하던 저 자식이 남은 음식을 먹고선 배탈이 난 거라고?”

“그래! 얘야!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듣겠니? 귀족끼리 즐겼던 티타임에 저 하인이 찬물을 확 들이부은 거라고! 말귀가 어두운 건지, 머리가 모자라는 건지. 어휴, 답답해.”

“그래, 로넨. 그나마 우리가 명망 있는 백작가라서 사고를 친 놈이라도 치료를 해 주는 거지, 다른 귀족이었어 봐라? 맨발로 쫓아냈지.”

그러니 쉿, 에드가 무사히 낫길 바란다면 입 다물고 쉬잇, 로넨.

입가에 손을 대며 목소리를 낮추는 네이센의 목소리가 비열했다.

어차피 저들은 이 일의 진위를 밝힐 생각이 없었다.

그건 원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엘리사의 독에 깊은 내상을 입은 로넨이 피를 토했을 때도 백작가의 관심은 오로지 하나였다. 셀튼 남작가에서 입막음으로 보내는 선물들에만 눈을 빛냈다.

‘그렇다면 이번엔 뭘 받았으려나.’

헤린스 백작과 셀튼 남작은 엘리사가 사고를 쳤다는 걸 이미 눈치챘을 터였다. 그렇지만 함구하겠지.

셀튼 남작은 증거가 되는 하인을 없애고 싶겠지만 그렇게 되면 백작가에 커다란 빚을 지게 된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백작가의 수족을 건드리면 탈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백작가에서 자신을 치료하는 목적은 뻔했다. 이번 일을 잘 이용하면 남작에게 입막음용 재화를 넉넉히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드는 작게 한숨을 내쉴 힘도 없었다. 온몸이 무거웠다.

‘내가 낫고 나면 셀튼 남작은 나를 노리겠지. 증인을 없애기 위해서.’

그 전에 대공이 짠, 나타나면 좋을 텐데…… 그러면 나도 편하고, 로넨의 복수도 할 수 있고.

……대체 그분은 언제 오시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시는 건가.

“하여튼 이 하인은 도움이 안 되는구나. 벌써 몇 시간째 누워 있는 건지. 이만하면 일어날 때도 되었건만.”

“그러게요, 어머니.”

에드의 몸을 툭, 툭 건드리는 손길은 여전히 심술궂었다.

“하지 마세요, 어머님.”

그리고 그를 말리는 로넨의 목소리는 애처로우면서도 강단이 있었다.

“뭐?”

“에드를 건드리지 마세요. 편하게 잘 수 있게요.”

“하이고, 네이센. 얘 눈 좀 보렴. 조금만 더 이 하인을 건드리면 나를 잡아먹겠다고 덤비겠구나.”

“어머니, 이래서 머리털 난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하나 봐요. 은혜도 모르는 멍청이니까요.”

“하인이 아니고 에드예요.”

“뭐라고?”

“아니, 이 자식이 근데! 요즘에 봐줬더니 못 기어올라서 안달이 났지?”

네이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여기서 제 분을 못 이기면 로넨을 때릴 게 분명했다. 에드는 그 전에 네이센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싶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의식이 돌아오긴 했지만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으, 제기랄.’

그때였다.

“마, 마님!”

밖이 시끌시끌해졌다.

에드는 있는 힘, 없는 힘을 끌어모아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흐릿하게 시야가 잡히며 천장이 보였다.

머리가 아팠으나 눈꺼풀을 몇 번 깜빡여 본 그는 시선을 힐끗 돌리며 어수선한 주위를 살폈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인데 문을 이렇게 교양 없이 열어?”

문을 벌컥 연 사람은 헤린스 백작가의 집사인 케릴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마님, 그런데 빨리 밖으로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케릴은 백작가를 10년 넘게 지켜 온 베테랑 집사였다. 예의를 중시했고 그의 주인에게 선을 넘지 않았다. 주인 앞에서 항상 침착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사색이 되어 방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인데 그래?”

백작 부인의 미간으로 짜증이 스몄다. 별일 아니었다가는 혼쭐을 내겠다는 태도였다.

“그게 저…… 북부의 아스넬 린든 대공께서 오셨습니다.”

“북부의 아스넬 린든 대공?”

“네, 마님.”

백작 부인이 고개를 기울였다.

“아스넬 린든 대공이라면.”

말끝이 흐려지던 백작 부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럴 만도 했다. 대공이 지나는 자리마다 피와 죽음이 번진다는 소문이 자자했으니.

“……북부 대공께서 왜?”

하얗게 질린 백작 부인 대신 네이센이 물었다.

그러나 집사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똑, 똑 노크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우지끈, 방문 손잡이가 자리를 이탈해 뜯어졌다.

끼이익, 소리가 퍼지며 부채꼴로 넓어지는 방문의 궤적에 방에 있던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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