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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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레터가 주는 감동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고 다시 연습생의 본분으로 돌아온 뒤에도 계속되었다. 그리고 <마아스>에 나가는 동안 경연에 집중하느라 잠시 미뤄졌던 수업들이 다시 이어졌다. 오히려 이전보다 트레이닝의 강도가 올라 경연을 준비할 때보다 절대 편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다만 아직 멤버들은 공식적으로 회복 기간이었기에 이전처럼 늦은 시간까지 연습은 최대한 삼가하고 정시 출, 퇴근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전보다 자연스레 숙소에 모여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럴 때면 약속이라도 한 듯, 이미 읽었던 팬레터를 읽고 또 읽고 훌쩍이다가 실성한 사람처럼 헤실헤실 웃다 날밤을 새웠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정도로 마음은 든든했지만, 다들 얼굴은 퀭하니 잠이 모자라 피곤해 보였다.
잘 먹이고 제때 잘 돌려보내서 쉬게 하는데 아침마다 어쩐지 피곤해 보이는 멤버들의 모습에 영호는 영문을 몰라 하며 영양제만을 가득 챙겨 주었다. 며칠째 그러길 반복한 멤버들은 오늘도 몽롱하게 감동에 취한 얼굴로 한참을 거실에 앉아 있었다.
샤워를 끝마친 솔이 파자마를 입은 채 거실로 나오니 태오를 제외한 멤버들이 득용의 핸드폰을 들여다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여전히 고등학생인 득용은 <마아스>의 효과를 학교에서 톡톡히 체감하는 중이었다. 오히려 그 인기는 하차 후에 더해졌는데, 하차 후 멤버들의 소식에 대해 궁금해하는 친구들이 득용에게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면 득용은 아무리 물어봐도 대답해 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대처했다.
득용이 답을 주지 않는데도 이따금 반 친구들이 7조의 팬클럽에 관한 소식이나 득용을 포함한 멤버들에 대한 반응들을 메시지로 보내올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저렇게 세 사람이 득용의 핸드폰에 집중하곤 했다. 원래 커뮤니티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가람은 스토커 사건 이후 치료받으며 커뮤니티나 SNS 반응을 서치하는 일을 자제하고 있었다.
가람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SNS에 둔한 편이다 보니 일부러 찾아보지 않는 이상 따로 외부 소식에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득용의 반 친구들이 보내 주는 모든 것들이 처음 듣는 소식이라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자그마한 핸드폰 화면에 집중한 세 남자의 눈치를 살핀 솔은 살포시 태오의 옆에 두 다리를 쭉 펴고 앉았다. 멤버들은 여전히 핸드폰에 집중해 두 사람이 뭘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이때다 싶었던 솔은 무덤덤하게 앉아 있던 태오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아 눈짓을 보냈다. 같이 휴가를 보낸 뒤부터 그냥 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나오는 두 사람이었다.
정신없는 멤버들을 뒤에 두고 태오와 솔은 아무 의미도 없는 눈짓을 주고받곤 저들끼리 소리 없이 웃음을 터뜨리며 슬쩍, 팔을 등 뒤로 둘러도 보았다. 하지만 이쯤 되니 솔은 대체 뭘 보고 있길래 태오와 자신이 붙어 앉아 있든 뭘 하든 신경도 안 쓰는지 슬슬 궁금해졌다. 솔의 관심이 세 사람에게로 살짝 기울쯤, 득용의 목소리가 더욱 궁금증을 자극했다.
“가람 형은 알고 있었어요?”
“응. 어제 봤어.”
“강가람, 이제 이런 거 안 찾아보기로 한 거 아니었어?”
“안 찾아봤어. 포털 메인에 뉴스로 떠 있어서 본 거야.”
뉴스를 봤다는 가람의 말에 태오도 짐작 가는 것이 있는지 ‘아.’하는 얕은 탄식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정말 소식에 영 느린 사람은 솔뿐이었다. 짐작 가는 바도 없는 솔이 태오에게서 떨어져 멤버들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득용과 가람, 지호가 보고 있는 핸드폰 화면엔 이제는 종영한 <마아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었다. 스토커가 솔에 대한 루머를 퍼뜨렸던 그 커뮤니티 게시판. 솔을 향한 거짓 루머에 대한 반박 글 이후로도 쭉 해당 커뮤니티엔 <마아스>에 대한 여러 인증 글들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그리고 7조의 하차와 종영 이후로 관계자라며 올라왔던 글이 최근 다시 재조명받고 있었는데, 그 사안이 제법 심각한 것이었다.
관계자라 밝힌 글쓴이는 자신이 부당 해고를 당했고 그 과정에서 제작사와 특정 소속사가 모종의 커넥션을 가지고 처음부터 승자가 정해진 불공정한 경연을 진행했다며 조사와 처벌이 필요하다 폭로했다. 솔에 대한 거짓 루머 사건으로 인해 처음엔 해당 글의 내용을 믿지 못하는 반응이 이어졌지만, 글쓴이가 지속해서 자료와 여러 가지 증빙을 추가하자 게시 글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후 이미 청탁으로 승자가 정해진 자리를 두고 많은 연습생들을 기만했다며 결과가 어찌 되었든 그 일에 동참했음을 사죄하는 말로 마무리된 글은 7조뿐만 아니라 <마아스>에 최애를 두었던 모든 팬들을 분노케 하기 충분했다. 그 결과 다수의 민원과 신고가 들어가며 실제 조사에 착수된다는 말과 함께 오늘 아침 뉴스에까지 등판하게 되었다.
멤버들이 심각했던 이유를 알게 된 솔은 지호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지호는 덤덤한 얼굴로 윙크를 해 보일 뿐이었다. 솔에 대한 논란이 해명되었음에도 유력한 우승 후보였던 7조를 하차시켰던 의문이 남는 대응과 제작진의 악의적이고 고의적이었던 편집 그리고 누가 봐도 편파적이라며 논란이 되었던 심사평까지, 여러 의심스러운 정황이 더해지며 팬들이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특정 소속사가 어디인지 추론하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더불어 솔의 인성에 대한 폭로 글 이후로 명하와 사이가 안 좋은 것처럼 편집되었던 것에서 솔의 모습이 계속해서 올라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김명하에 대한 논란도 터져 나왔다. 주된 피해자는 지호처럼 명하와 함께 연습생 생활을 했고 그 과정에서 따돌림이나 언어폭력을 당했던 동기들이었다.
그로 인해 우승과 함께 진행된,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준비하고 있었을 5조의 데뷔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명하의 이미지는 바닥으로 추락했고 비단 데뷔가 문제가 아니라 연예계엔 다시 얼굴을 들이밀 수 없을 정도로 여론이 좋지 않았다. 비록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솔은 괜히 입 안이 썼다.
누구든 어떤 사람이 추락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여러모로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솔뿐만 아니라 다들 피차 마찬가지인지 모두 미묘한 얼굴이었다. 그 찜찜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에 득용이 급히 친구들이 보내 준 다른 글을 확인했다.
‘데뷔를 소취하는 흔한 7조 팬들의 재능 낭비.jpg’ 라는 제목의 글에는 로딩 버퍼링이 걸릴 정도로 많은 이미지와 움짤들이 첨부되어 있었다. <마아스>에 참여하며 급히 찍었던 멤버들의 프로필 사진을 보정, 합성해 정말 데뷔한 그룹인 것처럼 로고와 티저까지 제작한 것이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마아스>에서 나왔던 인터뷰 장면이나 연습 장면, 그리고 기존 TEAM ONE 너튜브 영상을 활용해 마치 솔을 비롯한 멤버들이 자체 콘텐츠나 리얼리티 예능이라도 찍은 것처럼 능청스레 꾸며 둔 짤들도 있었다.
휴식기 내내 숙소와 회사만 왔다 갔다 했던 멤버들도 자신이 언제 저런 프로그램에 나갔던가? 순간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진짜 같았다. 거기에 더불어 만약 TEAM ONE이 데뷔한다면 이런 컨셉이었으면 좋겠다 하는 가상 안도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일반인의 솜씨가 아닌 것들이 있었는데, 그런 짤들에는 영락없이 ‘YC로 가라.’, ‘YC는 뭐하냐, 이런 인재를 안 모셔가고.’ 이런 반응들이 달려 있었다. 팬분들의 놀라운 아이디어와 이따금 보이는 통통 튀는 유머러스함에 첨가 찜찜한 감정을 덜어내고 웃음을 머금을 수 있었다.
“우리 팬카페도 있대요.”
끝없이 스크롤이 이어지던 게시 글의 맨 마지막은 ‘출처 : 7조 TEAM ONE 팬카페’란 문구가 차지하고 있었다. 득용의 말에 지호가 알고 있었다는 듯 맞장구를 치자 재빨리 가람이 제 핸드폰으로 팬카페를 찾아 화면을 보여주었다.
“맞아. 생긴 지 좀 됐어.”
“마아스 나가기 전부터 있었는걸? 우리 처음 너튜브 올렸을 때 생겼었어.”
데뷔도 하지 않았는데 팬카페가 있다니, 심지어 <마아스>에 나가기 전부터 있었다는 소식에 감탄도 잠시. 솔은 제가 상상한 것보다도 많은 회원 수에 감탄을 내뱉었다.
“생각보다 되게 많네.”
“혼날까 봐 가입은 안 해서 더 못 봐.”
솔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순수하게 감탄하자 가람은 전체 공개되어 있는 팬카페 게시판을 몇 곳 보여주었다. 원래 팬카페란 회원 가입 후 일종의 인증 같은 걸 받아야 볼 수 있는 게시판들이 따로 있었다. 솔은 가람의 핸드폰으로 팬들이 남긴 몇몇 게시 글을 읽어보았다. 그러던 중, 둥글게 모인 머리 사이에서 혼잣말 같지만,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데뷔하고 싶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의외로 윤태오였다.
“나도.”
“저도요.”
태오의 나지막한 말 한마디에 가람과 득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솔도 조용히 웃으며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제대로 또렷하게 말했다.
“나도 데뷔하고 싶어.”
순간 모두의 시선이 솔에게로 쏠렸다. 그간 솔이 함께 데뷔하고 싶다는 말은 했어도 오늘처럼 또렷하게 온전히 저 혼자만의 목표와 희망인 것처럼 말하기는 처음이었다. 돌연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솔은 발그레하게 두 뺨을 붉혔다. 그렇게 갑자기 너도나도 데뷔하고 싶다고 말하기 시작하자 지호가 별스럽다는 듯 팔꿈치로 제일 먼저 말을 꺼낸 태오를 툭 쳤다.
“뭐야, 윤태오 갑자기 새삼스럽게.”
“그렇잖아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 데뷔 기다리는데, 빨리 데뷔하고 싶어요.”
“…그야 뭐. 다들 마찬가지지 뭐. 근데 우리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거면 벌써 했지.”
늘 무뚝뚝한 그가 답지 않게 아이처럼 눈을 빛내며 대답하자 지호는 멋쩍게 뒷머리를 긁었다. 누군들 데뷔하고 싶지 않을까? 팬카페 곳곳에도 ‘TEAM ONE 데뷔 소취 nn일째’라는 제목의 글이 널려 있었다. 팬들처럼 멤버들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쓱, 눈으로 멤버들의 얼굴을 훑은 지호는 약간의 자조가 섞인 푸념을 내뱉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였으면 데뷔만 한 10번은 했겠다.”
그 순간 득용이 익숙한 얼굴이 나온 기사를 꺼내 들었다. 멤버들보다 조금 더 일찍 탈락했던 팀이 멤버를 추가해 곧 ‘딜라이브’라는 이름으로 데뷔를 할 거라는 기사였다. 특히 그중에 제일 맏형은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한 흔히 말하는 ‘망돌’ 출신이었다. 말없이 ‘데뷔만 두 번째’라는 타이틀을 한참 바라보던 다섯 남자 사이에서 득용이 비장하게 손을 번쩍 들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어린이처럼 말이었다.
“형들 우리도 이렇게 있을 게 아니라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