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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를 뽑고 싶어-188화 (188/192)
  • #188

    솔의 생각이 깊어지려던 찰나, 영호가 솔을 빤히 바라보다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솔이 네가 더 신기하다.”

    “저요?”

    “어디서 너 같은 애가 여태 숨어 있다가 이제야 나타났는지 정말 신기해.”

    솔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영호가 혀를 내둘렀다. 저 외모에 저 재능을 가지고선 여태껏 진흙 속에 파묻히다 못해 아예 짓눌려 살았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그만큼 음울한 티를 완전히 벗어 낸 솔은 누가 봐도 챙겨 주고 싶고 손 내밀어 주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물론 차분히 앉아 있을 땐 함부로 손댔다간 손이 얼어 버릴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어리둥절해 눈을 크게 뜨고 반문할 때는 막내도 아닌데, 이런 애가 막내지 싶었다. 영호의 말에 공감하기는 멤버들도 마찬가지인지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특히나 지호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솔을 제 쪽으로 끌어당겨 끌어안곤 능청스레 농담을 던졌다.

    “몰랐어요, 영호 형?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지금까지 제가 숨겨 놨던 거잖아요.”

    “지호혀엉.”

    낯 뜨겁기 짝이 없는 말을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내뱉는 지호의 모습에 솔이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 어찌나 빠르고 세게, 제 얼굴을 가렸는지 ‘찰싹’하고 뺨을 때리는 소리까지 났다. 더군다나 얼굴은 가려도 새빨갛게 타오르는 목과 귀까진 가릴 순 없어 붉게 달아오른 그 모습에 다시금 멤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괜히 민망해진 솔은 아무도 없는 방으로 숨어들고 싶었지만 우렁찬 득용의 목소리가 솔을 붙잡아 앉혔다.

    “형들, 이거 봐요.”

    레터북과 솔에게서 눈을 못 떼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득용은 급한 성격을 참지 못하고 홀로 앞질러 나갔다. 그리고 가득 찬 쇼핑백 사이에서 두둑한 무언가를 꺼내든 득용은 솔의 어깨를 두들기며 제게로 시선을 끌어모았다. 득용의 손에는 멤버들을 조그마한 2등신으로 캐릭터화한 그림이 들려 있었다. 마치 게임 캐릭터처럼 동글동글, 작고 귀여운 모양이었지만 그 오밀조밀하고 작은 모양에서도 누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 그림이었다.

    그림을 확인한 멤버들 사이에서 ‘와…!’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득용이 꺼내든 커다란 종이봉투 안에는 직접 그린 멤버 캐릭터 그림과 그 그림으로 만든 스티커가 들어 있었다. 물론 귀여운 글씨체의 손 편지도 함께였다. 득용이 저를 형상화한 캐릭터 스티커를 이마에 붙이고 닮았냐고 솔에게 물었다.

    “너무 귀엽다. 득용아. 너랑 똑같이 생겼어.”

    새빨갛게 칠해진 머리카락과 검은색 가죽 의상을 입은 자그마한 캐릭터는 솔의 말처럼 정말 득용이랑 똑 닮아 있었다. 그 두 가지를 번갈아 본 솔이 정말 즐거운 듯 티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득용이 득달같이 봉투 안을 뒤져 솔이 그려진 스티커를 내밀었다. 득용이 내민 스티커가 그의 손바닥 안에서 햇빛을 받을 때마다 반짝반짝 무지갯빛을 반사했다.

    “형도 진짜 닮았어요. 여기 형 스티커요. 완전 귀엽죠?”

    순간 멤버들의 몸이 들썩거렸다. 테이블에 코를 박을 듯, 적당히 거리를 두고 솔을 바라보고만 있던 가람까지 벌떡 일어나 몸을 기울일 정도였다. 멤버들 모두가 자그마한 솔이 그려진 스티커를 보며 즐거워했다. 이 재능 넘치는 팬은 이런 멋진 연성물을 선물하고는 편지에는 멤버들의 미모를 자기 손이 다 표현해 내지 못해 부끄럽다는 말을 남겨 멤버들의 원성 아닌 원성을 샀다. 솔이 그려진 스티커를 서로 더 자세히 보겠다고 왁자지껄 떠드는 멤버들의 모습을 보던 영호는 무언가가 생각이 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맞다! 잠깐 얘들아. 얘들아 여기 좀 봐줄래? 잠깐만…!”

    분명 선물 언박싱 영상을 찍어 오란 지시를 들었었는데, 애들 얼굴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또 같이 들떠 버리는 바람에 까맣게 잊고 있었다. 주섬주섬 카메라를 꺼내든 영호가 급히 멤버들을 진정시켜 보려 했지만 다들 솔의 스티커에 정신이 팔려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영호는 일단 지금 이대로 찍고 제대로 인사하는 모습은 후에 따로 촬영해야겠다 생각하며 녹화 버튼을 눌렀다.

    “솔이 형, 형 스티커 나 하나만 주면 안돼요?”

    솔이 대답도 하기 전에 득용의 손이 재빨리 움직였다. 그리 많지 않은 스티커가 한 장 득용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본 지호와 가람이 달려들었다.

    “아, 김득용 뭐야. 솔아 형도 하나만 주라.”

    “솔, 나도!”

    “핸드폰 뒤에 붙여야지.”

    “어… 나도. 핸드폰에 솔 붙일래.”

    근래 들어 본 가람의 모습 중에 가장 힘차고 재빠른 동작이었다. 마치 느른하게 길바닥에 누워 있던 길고양이가 인기척이 느껴지자마자 잽싸게 도망가는 것처럼. 솔이 대답할 틈도 없이 스티커를 가져간 세 남자가 핸드폰 케이스 뒤편에 스티커를 찰싹 붙였다. 그리곤 저들끼리 스티커를 살살 문지르곤 귀엽다며 웃었다. 그 모습을 보던 태오는 속이 뒤틀렸지만, 내색하지 않고 꾹 억눌렀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계속 벌어질 텐데 그때마다 유치하게 멤버들과 씨름하는 모습을 보여서 좋을 것이 없었기에.

    솔은 테이블 위에 한 장 남은 제 스티커를 구겨지지 않게 조심스레 챙겼다. 그 뒤로도 7조 앞으로 온 편지 개봉이 계속해서 이어졌고 영호는 그 모습을 계속해서 카메라에 담았다. 한참을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영호가 숙소를 떠나자 솔은 조용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저마다 자신에게 온 팬레터를 소중히 들고 방구석에 틀어박히자 다섯이 모이면 조용할 날이 없는 숙소에 적막이 찾아왔다.

    솔 또한 태오가 샤워하러 자리를 비우자 홀로 조용히 편지를 하나씩 펼쳐 보았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신조어들로 적힌 편지부터 처음부터 끝까지 낯 뜨거워지는 주접으로 가득 찬 편지도 있었다. 물론 모두 다 솔을 웃음 짓게 만들고 가슴을 뻐근하게 만드는 과분한 편지였지만 솔의 시선을 오래도록 잡아끈 건 다른 종류의 편지였다. 그냥 솔이 이쁘고 잘생겨서, 춤을 잘 춰서, 취향이라 그에게 빠진 사람도 많았지만 아무래도 아픈 사연을 가졌다 보니 솔과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팬들이 보내온 편지가 유독 솔의 시선을 오래도록 잡아끌었다.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해 힘든 시기에 TV 속에서 밝게 웃는 솔을 보고 함께 웃었다는 중학생, 그리고 무용수였으나 발목 부상으로 인해 다른 전공을 택해야 해 우울하던 중, 솔을 보고 희망을 품었다는 대학생, 또 부모님 없이 홀로 유년기를 보내면서 그저 이유 없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했는데 솔을 보며 그 마음이 다시 떠올라 편지를 보낸다는 직장인까지 다양한 모습의 또 다른 솔들이 그 편지들 속에 있었다. 찬찬히 젖은 눈동자로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솔은 그 편지 속에서 태오를 바라보던 자신을 떠올렸다.

    처음 태오의 사정을 알게 되고 그에게 가졌던 동경. 비슷한 사정을 가졌지만, 자신과 달리 멋진 모습으로 상황을 이겨내려 하던 태오를 보며 참 빛나고 멋있는 사람이라 느꼈던 그때의 감정이 팬들이 보내 준 편지 속에 담겨 있었다. 솔은 그때 제 눈에 태오가 얼마나 대단하고 멋져 보였었는지를 떠올렸다. 제게 이 편지를 보내 준 사람들의 눈에도 자신이 그때의 태오같아 보일까? 자신에게 편지가 온 것은 여전히 신기했지만, 팬레터의 주인들이 자신에게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모습을 보고 있는지는 어쩐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솔은 품에 편지를 꽉 끌어안으며 마음속으로 감사 인사를 보냈다. 솔이 품에 안은 편지엔 수없이 많은 감사 인사가 적혀 있었다. 그저 존재 자체로도 고맙다는 말. 하지만 정작 누구보다 감사한 사람은 솔이었다. 그들이 보내 주는 한결같은 마음에 솔은 가슴이 뻐근할 정도로 부풀다 못해 펑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자신이 태오를 보며 느꼈던 것처럼 이 편지를 보내온 팬분들에게 항상 그렇게 힘이 되는, 위안이 되는 사람이고 싶었다. 솔에게도 아득히 멀지만, 끝을 의미하는 빛이 보였듯이, 지금도 자신처럼 깊고 어두운 터널을 걷고 있을 사람들에게 그런 빛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늘, 많이 헤매고 많이 느리더라도 항상 같은 곳에서 언제까지나 길고 깊은 터널을 빠져나올 사람을 기다리며 희미하게라도 계속해서 빛날 빛이 되고 싶었다.

    “울었어?”

    물기를 머금은 솔의 빛이 어느새 혼자 있던 방 안을 비췄다. 솔은 코끝을 씰룩이며 자신의 빛에게 씩씩하게 대답했다.

    “아니.”

    “눈가랑 코끝이 붉은데….”

    품에 가득한 편지지와 붉어진 눈시울을 보고 솔이 지금 어떤 기분인지 이해한 태오는 더는 묻지 않고 소리 없이 웃었다. 솔뿐만 아니라 지금 각자 방에 콕 박혀 있을 멤버들과 자신 또한 비슷한 감동을 받은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지금쯤 다들 주먹을 불끈 쥐곤 팬분들이 보내 준 애정에 보답하려면 더 열심히 더 잘해서 하루빨리 데뷔해 더 멋진 모습을 보여 주는 거라며 각오를 다지고 있을 게 뻔했다. 태오가 조용히 저를 보며 씩 웃자 솔은 괜히 붉어진 코끝을 손등으로 거칠게 문지르며 말을 돌렸다.

    “이거 줄게, 대신 태오 네 거 한 장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솔은 주머니에 곱게 숨겨 놓았던 제 스티커를 꺼내 태오에게 내밀었다. 득용을 비롯한 멤버들이 솔의 스티커를 홀라당 가져갈 때 몰래 속으로 혼자 부러워했던 게 너무 티가 났었던가, 솔이 건넨 스티커를 받아 든 태오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어서. 우리 둘이 바꿔 가지자.”

    평소엔 소심한 게 이럴 때만 이상하게 적극적이었다. 태오는 민망함에 뺨을 긁적이며 솔의 스티커를 서랍 안에 다소곳하게 넣어 두곤 짙은 눈썹에 조금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가 그려진 스티커를 내밀었다. 솔은 그 작은 종이 스티커를 받아 들곤 해맑게 웃었다. 태오의 스티커를 받아 든 솔은 득용처럼 차마 그걸 붙이지도 못하고 한참 우물쭈물 망설이더니 핸드폰 케이스 안쪽에 곱게 숨겨 넣었다. 차마 아까워서 함부로 붙일 수가 없었다. 그러다 순간 이렇게 보관하면 제가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때마다 작은 스티커 태오가 테이블과 박치기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한편 웃음이 살짝 새어나왔다.

    태오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꼬물꼬물 제 스티커를 숨겨 넣다 말고 혼자 웃는 솔을 빤히 바라보았다. 태오의 시선을 느낀 솔이 민망함에 ‘큼큼’ 헛기침하곤 이미 다 읽었던 편지지를 다시 한번 펼쳐 들었다. 널따란 편지지에 얼굴을 콕 박으니 그 편지지를 가득 채운 글자의 냄새가 코 끝을 스쳤다. 솔을 포함한 멤버 모두 밤이 새도록 편지와 그 달달한 잉크 냄새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했다.

    각자 다른 이유와 다른 사정을 가지고 있지만 마음은 모두 한곳을 향해 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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