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존나 귀여워!”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생길 수가 있지?”
“사람이 아닌 거지…. 아니다. 사실 우리가 사람이 아니었던 거야.”
“아, 어쩐지. 다리 털이 엄청나더라니 우린 짐승이었던 게 분명해.”
다리를 꼰 채로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두들기고 있던 지호는 다짜고짜 들리는 욕설에 눈살을 찌푸렸다. 남녀 내외까지는 아니어도 남자 셋이 쓰는 방에 쳐들어온 교복 차림의 제 동생들은 염치도 없이 대놓고 잠든 솔과 태오를 보며 주접을 떨고 있었다. 지호는 몸을 바로 세워 앉아 팔짱을 끼곤 제 여동생들을 향해 목소리를 깔고 속삭이듯 말했다.
“돌았나. 자는 사람 두고 뭐 하는 거야.”
“엄마가 아침 먹게 다 불러오라고 해서 깨우러 왔는데… 귀여워!”
지호의 말은 귓등으로 들으며 기승전결도 아무런 맥락도 없이 지은의 모든 말은 결국 ‘귀여워’로 마무리되었다. 쉼 없이 귀여워를 내뱉는 여동생의 모습에 지호는 고개를 내저었다. 대체 어떤 꼴로 자고 있길래 귀엽다고 저 난리들인지 궁금해 몸을 일으킨 지호는 이 시끄러운 와중에도 일어나지 못하는 태오와 솔을 바라보았다. 어쩐 일로 태오가 늦잠을 다 자나 싶었지만 근래를 되짚어보면 그럴 만도 했다.
“그러게, 귀엽네….”
두 사람이 잠든 모습을 확인한 지호는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레 제 동생들과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솔이야 숙소에서도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잠 귀신이었다. 한번 잠들면 무슨 시체처럼 가지런히 누워 아무리 흔들고 소리쳐도 잘 일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득용이 이따금 죽은 거 아니냐며 맥박을 확인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며칠간 마음고생, 몸 고생을 해서일까, 아니면 마음이 풀어져서일까? 오늘은 태오도 솔처럼 깊게 잠들어 있었다. 나란히 누워 둘이 손을 꼭 잡은 채 말이다. 지호의 나지막한 말에 자매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치?”
“존나 귀엽다니까!”
다 큰 사내놈들이 얌전히 손을 꼭 잡고 잠든 것이 귀여워 보일 줄이야. 잠든 사람 얼굴을 이렇게 쳐다보고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닌데 보고 있자니 괜히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오고 마음이 편안해져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똑 닮은 넷이 둥글게 모여 앉아 잠든 미남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자니 부엌에서부터 우렁차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학교 안 갈 거니! 아들들 밥 먹고 자렴!”
그 익숙한 목소리에 여전히 시선은 태오와 솔에게 둔 세 여자가 그제야 본래의 임무를 상기했다.
“아 맞다. 밥.”
“학교.”
“밥 먹고 자래.”
“언제부터 아들들이야. 우리 집에 아들이라곤 나 혼잔데.”
남매가 각자 저 할 말만을 했다. 그때 아침부터 너무 소란스러웠던 탓일까 아니면 너무 노골적인 시선 탓일까. 솔이 얼굴을 한껏 찌푸리더니 부스스하게 눈을 떴다. 그리고 흐릿한 시야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해괴한 광경에 다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도 그럴 것이 눈이 부시도록 쏟아지는 햇빛을 등지고 네 명의 지호가 자신을 둘러싼 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무슨 외계인에게 납치당해 수술대에 올라 마주한 것 같은 광경이었다.
“외계인….”
“외계인?”
잠에서 덜 깬 솔이 의식의 흐름대로 웅얼거리자 네 남매가 똑같이 고개를 기울이며 솔의 말을 따라 했다. 그 장면은 맨정신으로 보기에도 굉장히 괴이한 광경이었다.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던 태오도 손을 꼭 잡고 있던 솔이 바스락거리자 눈을 떴다. 그리고 태오로서도 난생처음 마주하게 된 광경에 쉽사리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짙은 눈썹을 와락 구기며 눈에 힘을 주었다.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솔과 달리 태오는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이부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 생선을 앞에 둔 고양이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던 세 자매가 세상 다소곳하고 참한 모습으로 ‘아침 식사하세요.’하고 말을 전하곤 다시 수줍은 소녀가 되어 꺅꺅 소리를 지르며 방을 빠져나갔다. 지호는 제 여동생들의 돌변한 태도를 보며 혀를 쯧쯧 차곤 태오에게 눈을 흘기며 한마디를 던졌다.
“손잡고 자니 좋니?”
“……?”
“응?”
좀스럽지만 조금은 놀려 먹어야 속이 후련해질 것도 같아 지호가 던진 짓궂은 말에 태오와 솔은 각자 자신의 손을 쳐다보았다. 태오는 일어나 앉아서, 솔은 누운 그 자세 그대로 고개만 돌려 제 손을 확인했다. 어쩐지 손바닥이 따뜻하다 못해 따끈따끈하더라니 마치 누가 접착제로 찰싹 붙여둔 것처럼 두 사람의 손은 꽉 맞물려 있었다. 그제야 상황을 인지한 솔이 눈을 번쩍 뜨곤 태오의 손을 움켜잡고 있던 손을 파닥거렸다.
손을 놓아야 했는데 어찌나 오래 잡고 있었는지,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당황하여 손가락이 채 펴지지도 않은 상태로 팔을 퍼덕거리니 태오의 팔까지 덩달아 흔들렸다. 본의 아니게 두 사람에게 아침 체조를 시키게 된 지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팔짱을 끼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비로소 정신이 또렷해진 태오가 귀를 새빨갛게 불태우며 손을 놓아주자 솔은 그제야 지호를 보며 ‘하하’하고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손 좀 잡은 게 뭔 대수라고 솔이 너무 크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자 장난을 걸었던 지호가 덩달아 머쓱해졌다. 순진한 애를 괜히 놀려 먹었나 하는 생각에 멋쩍어진 분위기를 풀기 위해 지호가 능청을 떨었다.
“그래, 무서웠지. 그래서 무서운 꿈을 꿀 것 같았쪄요? 근데 누가 그렇게 겁쟁이라 손까지 잡아 줘야 했을까?”
지호가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 혀 짧은 소리를 내며 솔을 놀려댔다. 잠이 확 달아난 솔은 지호의 장난에 대답도 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태오는 그런 솔을 보며 열이 오른 제 귓바퀴를 손으로 한번 쓱 매만지고는 얼굴에 철판을 깐 듯, 무뚝뚝한 표정으로 지호의 놀림을 받아 냈다.
“제가요.”
지나가던 개가 웃을 만큼 씨알도 안 먹힐 말이었다. 지호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태오는 재차 못을 박듯 한 번 더 말했다.
“제가 무서워서 손 좀 잡아 달라고 했어요.”
귀는 말 그대로 ‘빨간색’이라고 서술해도 될 만큼 붉히고는 낯짝은 무덤덤하기 그지없는 태오의 대답에 지호는 헛웃음을 뱉었다. 눈앞에서 사람이 쓰러져도 동요하지 않을 거 같은 얼굴을 하고선 거짓말을 하려면 그럴싸한 시늉이라도 좀 하던가.
태오는 정말이지 일말의 성의도 없이 그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내뱉고 있었다. 솔직히 지호는 윤태오의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황당하기도 해 그저 빤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동그래져 태오를 바라보기는 솔도 마찬가지였다. 제 한마디에 두 사람의 시선이 뜨겁게 내리꽂히자 제아무리 윤태오래도 민망하기는 했는지, 아주 살짝 입술을 비틀고는 두 사람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획 돌려버렸다.
“네. 그러셨군요.”
정말로 혹독한 며칠을 보냈던 태오가 저리 수긍해 버리니 더 놀려 먹고 싶어도 놀릴 수가 없었다. 뭐라도 한마디를 얹었다간 천하의 나쁜 놈이 되어 버릴 것 같아 지호는 허탈한 웃음만 흘렸다. 놀려 먹는 재미까지 뺏어 가다니 얄미운 놈. 거기다 제 감정을 숨길 생각도 없는지, 저 새빨개진 귀 좀 보라지. 문 너머로 ‘아들들 밥!’하고 외치는 엄마의 목소리에 심술이 나 지호는 괜히 태오를 발로 툭 치며 일어났다.
“도솔, 도태오 밥 먹으란다.”
지호는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집에서 하룻밤 지냈다고 김숙현 여사의 아들들이 되어 버린 두 사람의 성을 멋대로 갈아치워 불렀다. 그러자 아직 멋쩍었던 조금 전 상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솔이 이불 위에서 뭉그적거렸다. 지호에게 빌려 입은 헐렁한 반소매 셔츠와 트레이닝 바지 차림인 솔은 방금 일어나 부스스한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나 이러고 나가도 돼…?”
“너희 자는 꼴 이미 다 보고 나갔는데 뭐 어때. 나가서 밥이나 먹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장면에 솔은 두 뺨을 발그레하게 만들고는 황급히 두 손으로 얼굴을 벅벅 문질러 마른세수를 한 뒤 머리를 정리했다. 그래 봤자 자다 일어난 티가 역력했지만 안 하는 것보단 나을 듯싶었다. 지아의 짐이 가득해 얼굴만 빼꼼 보이는 전신 거울 앞에서 단장하는 솔을 두고 지호는 먼저 터덜터덜 거실로 나갔다. 거실에서 한차례 푸닥거리는 소리가 이어졌고, 곧바로 지호를 따라 나가려던 솔은 문 앞에서 멈칫하곤 쭈뼛거렸다. 남의 가족의 아침 식사 자리에 자다 일어난 몰골로 끼려니 여간 민망한 게 아니었다.
주춤거리며 뒤를 돌아보니 방금 자다 일어났음에도 한결같이 잘생기고 멋진 태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새카만 머리카락이 조금 눌리기는 했지만 흠잡을 구석이 없었다. 솔은 괜스레 웃음이 나와 태오를 보고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왜 웃어?”
“그냥.”
“어른들 기다리시겠다. 어서 나가자.”
“으응.”
솔이 저를 빤히 쳐다보고 웃자 철면피인 태오도 멋쩍기는 매한가지였는지 급히 솔의 등을 떠밀었다. 문 앞에서 주춤거리던 두 사람이 방을 나오자 지호의 가족들이 정말 활기차게 둘을 반겨 주었다. 숫기 없게 쭈뼛거리며 솔과 태오가 아침 인사를 하자 지호의 어머니는 두 사람을 식탁 앞에 앉히고 따뜻한 국과 밥을 가져다주었다.
숙소에 있을 때 늘 동생들의 아침 식사를 책임지던 지호가 도대체 누굴 닮았나 했더니 어머니를 많이 닮은 것 같아 보였다. 지호의 보살핌 아래 그래도 남부럽지 않게 챙겨 먹고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식탁을 쳐다본 두 사람은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아침부터 무슨 수라상을 받은 것처럼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상이 차려져 있었다.
“많이 먹으렴.”
다정한 손길이 등에 닿았다. 방금 막 뜬 국처럼 따뜻한 손길이었다. 어느 집이나 엄마란 이렇게 포근한 걸까.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 한술 뜨지 않아도 뱃속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솔과 태오는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솔이 밥 한술을 뜨기 무섭게 맞은편에 앉아 있던 지호의 동생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솔이 오빠 너무 말랐어요. 고기 좀 먹어요.”
“이거 맛있어요. 저희 엄마 이거 진짜 잘하거든요. 이것도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척 보기에도 맛있어 보이는 반찬들을 가리키며 여동생들이 소란을 피웠다. 솔이 숙맥처럼 존댓말을 하는 것이 귀여웠는지 저들끼리 또 까르르 웃음꽃이 피었다. 늘 헐레벌떡 아침밥을 마시고 학교에 가는 것들이 오늘따라 다소곳하게 식탁 앞에 앉아 있는 꼴이 거슬린 지호는 마치 벌레라도 쫓듯 손을 휘휘 젓고는 제 동생들에게 어깃장을 놓았다. 하지만 동생들도 가만히 그 어깃장을 받고 있지만은 않았다.
“야. 솔이 아침에 잘 못 먹어!”
“도지호 친한 척 존나 하네.”
“학교 안 가냐! 다 먹었으면 꺼져! 너희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애가 체하겠어!”
“고깝다 고까워… 힝. 솔 오빠랑 태오 오빠랑 사진 찍어야 하는데…. 또 놀러 와야 해요. 다음엔 낮에요.”
가히 이중인격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호의 세 여동생들은 지호를 대할 때와 솔과 태오를 볼 때가 천지 차이였다. 가식적이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핸드폰을 쥐고 꼬물거리는 여동생을 지호는 기꺼이 발로 한 대씩 툭툭 쳐주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아침을 끝내고 매니저와 통화했다며 회사까지 태워다 줄 테니 더 자도 된다는 지호 어머니의 말에도 태오와 솔은 깔끔히 제가 머물렀던 자리를 정리하고 집을 나섰다. 하룻밤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만큼 짧은 시간을 보냈지만, 무척이나 정겨운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