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루카의 말대로 그의 핸드폰 화면에는 그가 솔을 응원한다고 올렸던 글의 링크와 누군가 내뱉어 둔 저 말도 안 되는 게시글의 스크린 샷을 보낸 DM이 존재했다. 이때다 싶어 말을 붙이는 부류들이었다. 아마 파헤쳐 보면 루카의 팬도 솔의 팬도 아닐 것이 분명했다.
짜증스러운 말투와 달리 루카는 이 상황이 퍽 재미있는지, 계속 낄낄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이내 논란에 불을 지필 게 빤한 그 DM에 답변하려는 듯 키패드를 두드리며 혼잣말처럼 웅얼거렸다.
“저번에 보니까 좀 차가워 보이긴 해도 막 그렇게 싸가지 없어 보이진 않던데…. 아니다 끼리끼리 논다고 어쩐지 태은겸 네가 싸고돌더라. 진짜 인성 노답이냐?”
못 들은 척 무시하기엔 루카의 혼잣말이 은근히 은겸을 떠보는 질문으로 끝을 맺었다. 투명하기 짝이 없는 행동에 은겸의 고개가 획, 돌아갔다.
“지금 그게 중요해!?”
은겸은 루카가 그 DM에 답장하지 못하도록 핸드폰을 다시 가로챘다. 아니나 다를까 입력 창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이상한 뉘앙스의 답변이 적혀 있었다. 은겸은 그 DM을 삭제해 버리곤 루카를 향해 버럭 언성을 높였다.
은겸의 거친 반응에 루카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은겸은 마치 이 일이 제 멤버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무척 예민하고 화가 담긴 고성을 내질렀다. 아니, 마치 제 일인 것처럼 굴었다. 정작 본인 멤버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도 걱정은커녕 손가락 하나 허투루 놀리지 말라며 늘 화만 내는 그였다.
은겸이 성을 냈지만, 루카는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았다. 은겸에게 욕을 듣는 것도 이젠 만성이 되었고 그의 이런 취급도 대수롭지 않았다. 루카는 내 일이 아니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어깨를 들썩여 보였다. 루카는 오히려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은겸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그럼, 뭐가 중요해?”
루카의 반문에 은겸은 말문이 턱 막혔다. 뭐가 중요하냐니. 지금, 이 논란을 목격하고 받아들이고 있을 솔이 중요하지. 그리고 회사와 제작진의 반응이 중요하고.
은겸은 손에 들린 루카의 핸드폰을 패대기쳤다. 루카는 SNS가 모든 것을 망친다는 말의 화신 같은 놈이었다. 루카의 핸드폰은 밴 밑바닥을 굴러 좌석 밑으로 들어갔다. 허리를 숙여 사라진 제 핸드폰을 찾는 루카는 연신 은겸을 욕했다. 그가 욕을 하든 말든, 은겸은 급히 솔의 번호를 눌렀다. 수화음이 이어졌지만, 솔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편 솔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제 핸드폰이 진동하는 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핸드폰이 빙글, 돌며 전화를 건 상대를 알려 주었지만 지금 솔은 그 전화를 받을 상황이 아니었다. 슬쩍 눈치를 살핀 솔은 은겸의 전화를 거절했다. 테이블을 울리는 진동 소리가 멈추자 회의실 안에는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눈을 뜨자마자 솔은 태오를 만나러 장례식장이 아닌 YC 엔터테인먼트 3층으로 향해야 했다.
여기에 불려 오기까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솔은 어리둥절했고 영호의 표정은 심각해 보였다. 회의실 테이블에 앉으니 신인 개발 팀을 비롯해 몇몇 처음 보는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 솔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 준 것이 몇몇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이었다.
“정말 아닌 거 확실하지?”
“…….”
솔은 벌써 저 질문을 다섯 번은 넘게 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계속 반복적으로 솔에게 같은 질문을 하는 이유는 바로 그에게 있었다. 솔이 깔끔하게 대답하지 못해서였다. 교우 관계가 좋지 않았거나 학교생활이 영 순탄치 않았으면 ‘않았다.’ 혹은 티끌만큼도 부끄러움이 없다면 단호하게 ‘그런 일 없다.’ 당당히 대답이라도 해야 할 텐데 솔이 계속 눈만 굴리며 어물쩍거렸다. 그러니 이 사태에 대해 어떻게든 정리해야 하는 직원들은 그 답답함에 말투가 점점 날카로워졌다.
“솔아, 확실하게 대답해 줘야 우리도 널 도와줄 수 있어.”
처음, 별 내용도 없는 글에서부터 의심이 시작될 때만 해도 시답잖게 여기던 댓글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시간 지나고 여러 커뮤니티로 논란이 퍼져 나가며 점차 살이 덧대어졌다. 흐지부지 사라질 거로 생각했던 솔의 인성 논란은 자그마한 라이터가 내뿜은 불꽃에서 어느새 제법 타오르는 장작불이 되었다. 별말 없이 타오르는 불길만 보고 있어도 자극적일 만큼 말이었다. ‘팩트만 가지고 얘기해라.’, ‘중립 기어 박아라.’ 이런 댓글들도 어느새 묻혀 사라지고 살을 덧붙이는 말만 가득했다.
갑자기 솔은 기억하지 못하는 동창이 여럿 나타났고 그를 마주쳤다는 사람, 그와 함께 무용했다는 사람도 나타났다. 정작 같이 학교에 다니고 무대에 올랐던 사람의 얼굴도 기억 못 하는 솔인데 그 사람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방도도 없었고 애초에 사실 여부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재수 없다.’, ‘싸가지 없다.’에서 시작된 글은 그렇게 점점 살이 덧붙여져 솔은 어느새 촬영장 분위기를 망치고 다른 사람의 뒷말을 하며, 팀 멤버들과도 불화가 있는 사람이 되었다.
“솔이가 그럴 앱니까? 애초에 지금 글 올라온 거도 솔이가 딱히 뭘 했다는 게 아니잖아요.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말뿐인데.”
“지금 추궁하는 게 아니잖아요.”
“아닌 거 확실하지? 이 말 자체가 켕기는 거 없냐 추궁하는 거잖아요.”
“김영호 매니저님!”
솔의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영호가 그를 감싸며 대신 대답했다. 그런 영호의 참견이 도리어 불만인 신인 개발 팀 팀장은 버럭 그의 이름을 불렀다. 영호와 팀장은 회의실 책상을 두고 대치하며 서로에게 눈을 흘겼다. 영호와 눈싸움을 해 봤자 조금도 도움 될 게 없는지라 팀장은 한숨을 푹 내쉬곤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날카롭게 날이 섰던 어조를 조금 누그러뜨리고 솔을 다시 타일렀지만 결국 으름장을 놓듯 말을 마무리했다. 그럴수록 솔의 어깨가 더더욱 축 처지며 오므라들었다.
“솔아, 뭐든. 자금은 아주 작은 거라도 조심해야 해. 조금이라도 걸리는 게 있으면 솔직하게 얘기하렴.”
“우리 솔이는 무조건 아니라니까요! 무슨 인성 논란이에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죠!”
“어떻게 알아요! 일이 있었건 없었건 저희가 알아야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지 대비하죠! 사과할 일이면 빠르게 사과하고 사실무근이면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경고를 하든지!”
이러다간 영호와 신인 개발 팀 팀장이 저 때문에 싸울 것 같아 망설임 끝에 솔은 영 자신 없는 얼굴과 태도로 대답했다. 사실 팀장도 영호의 말대로 솔이 당했으면 오히려 당했지, 누굴 괴롭힐 성격이 못 된다는 걸 그간 지켜봐 왔기에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 일은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었다. 얌전하고 조용하기만 했던 눈앞의 솔이 어느 날 대뜸 빼곡한 글씨가 채워진 진단서를 들고 돌아올 줄은 이 방에 있는 사람 중 아무도 예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마찬가지로 실제로 티 없이 깨끗한 이미지였던 연예인들이 생각지 못한 과거사로 몰락한 사례는 꽤 많은 편에 속했다. 그중 하나가 솔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솔에게 확답을 받아야만 했다.
“…그게. 제가 기억하기론 딱히….”
“그럼 이런 글 올릴 만한 사람은 좀 떠오르니?”
“그것도 딱히….”
무엇 하나 명확한 것 없는 솔의 대답에 팀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솔이 이러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얼마 전까지 기억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솔이 친구들을 무시하고 비웃고, 차별했다는 말이 그를 아는 사람들에겐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며 대응할 필요도 없다 생각하겠지만, 사람 일은 혹시 모르는 것 아닌가.
솔 스스로도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이 있었으며 스물다섯 살의 성솔은 교우 관계에 무척 많은 문제가 있었었다. 애초에 누군가와 논란이 있을 정도로 친하지도 말을 주고받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모를 일이었다. 아예 무관하다 자신 있게 말하기엔 다른 세상 속 대학 생활에선 종종 비슷한 일이 있지 않았던가.
어색함을 감추려 과장되게 웃으면 지금 웃음이 나오냐, 비웃는 거냐며 상대가 화를 내던 일도 있기는 했다. 더군다나 이곳에서의 성솔이 지내 온 고등학교 생활이 자신이 기억하는 것들과 정확히 일치하는지 무엇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불과 얼마 전 졸업식에서의 일도 있었듯 무엇 하나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없었다.
“일단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나 사이 원만했던 동창들에게 연락 한 번씩 해 둬. 진짜 피해 사실이 나오든 나오지 않든 이렇게 논란이 계속된다면 나서서 해명해 줄 사람이 필요해질 거야. 그래 줄 만한 친구 있지?”
“어….”
“만일에 대비해서 리스트 업 해 두고.”
솔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이름이 불쑥 떠올랐다. 해명을 해 줄 사람? 친구? 주환과 의찬이 없는데 그런 걸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연락하고 싶어도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 하나 없는 게 실정이었다. 담임 선생님 연락처라도 수소문을 해 봐야 하나. 학교 번호를 찾아볼까.
솔은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전화할 사람을 떠올려 보았지만 우습게도 태오, 은겸, 가람, 지호 혹은 득용이의 얼굴만 떠올랐다. <마이 아이돌 스타즈> 제작진 쪽이 이 논란에 어떠한 피드백을 내놓기 전에 최대한 일축하려는 팀장은 회의실에 모여 앉은 사람들에게 쉼 없이 말을 쏟아 내었다.
“멤버 간 불화설. 태오와 다퉜다. 이런 거는 있는 그대로 태오 가족 사정 얘기하면서 적당히 감성 자극해서 사실대로 내보내면 동정 여론 생기면서 조금 수그러들 거고, 그런 일 때문에 멤버들도 함께 힘들고 예민했다. 이런 식으로….”
팀장의 지시를 배경 음악처럼 들으며 핸드폰을 두 손으로 꼭 잡고 만지작거리던 솔은 ‘태오’의 이름이 떠오르자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순간 솔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
“태오가 그래도 된대요?”
“어? 당연히… 멤버들 일이잖니.”
불쑥 튀어나온 솔의 물음에 정신없이 떠들던 팀장은 솔을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당연한 일은 없었다. 아무리 멤버들의 일이어도 태오의 동의 없이 그의 가정사를 이런 식으로 이용해선 안 됐다. 솔도 그 누구도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팀장이 영호에게 은근히 눈짓을 보냈지만, 영호의 표정도 솔 못지않게 어두워졌다. 이미 태오는 솔에게 이야기했던 대로 제 뜻을 영호에게 밝힌 뒤였다. 영호가 급한 대로 일단 장례부터 치르고 다시 이야기하자며 억지로 덮어 두었지만, 태오가 하차하는 건 그저 시간문제였다. 두 사람의 반응에 팀장은 이마를 부여잡고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날 밤, 게시판에는 논란의 불씨를 더욱 키울 게시글이 하나 더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