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솔을 홀로 남겨 두고 빈소로 돌아온 태오는 그 후로 쭉 아무 말이 없었다. 자리를 비운 건 셋, 돌아온 건 한 명인 이 상황에 득용이 얼굴을 찌푸리며 지호의 눈치를 봤다. 시간이 한참 흘러도 돌아오지 않는 두 사람의 행방에 득용이 안절부절못하더니 이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솔이 형은 왜 안 들어오지…, 가람 형도. 찾아볼…!”
“앉아 있어. 안 그래도 복잡한 애들, 너랑 나까지 합세해서 더 복잡하게 만들지 말자.”
찾으러 나가려는 득용을 힘으로 다시 끌어 앉힌 지호는 묵묵히 상주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태오를 살폈다. 무언가 일이 터지긴 단단히 터진 모양이었다. 솔을 찾으러 나가는 걸 막은 게 퍽 불만인지 득용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지호에게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짓을 보냈다.
“넌 들어가 봐야지. 학교도 나가야 하잖아.”
“이런 때에 학교가 문제예요?”
“득용아…. 너 있다고 크게 달라지는 일도 없다. 형들 괜히 더 신경 쓰이니까 너랑 나랑은 조금 있다가 들어가자.”
지호는 식장 내부를 쓱 둘러보곤 한숨이 섞인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가끔은 눈치가 빠르다는 것이 피곤했다. 그렇다고 눈에 훤히 보이는 것들을 무시하고 이기적으로 굴기엔 어쭙잖게 덜 못됐고. 이럴 때만 철부지 애 같은 득용을 한참 달래고 나니 가람과 솔이 모습을 비쳤다.
누가 봐도 조금 전까지 억장이 무너지도록 운 흔적이 역력한 솔의 얼굴에 득용만 안절부절못할 뿐 다들 별말을 않았다. 득용만이 아직 트라우마에 대한 치료를 받는 솔의 상태가 태오의 일로 인해 악화될까 사색이 될 뿐이었다. 그 부분이 걱정이 아예 안 되진 않았지만, 지호가 보기엔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아 보였다.
태오와 영호가 멤버들에게 숙소로 돌아갈 것을 권하자 지호는 득용을 데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코 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다들 저마다의 생각으로 바쁘니 이럴 때 형인 제가 동생들을 챙겨야겠다는 마음에서였다. 상주가 아닌데도 오히려 더 진이 빠져 보이는 솔이 쓰러질 것 같은 모양새라 솔에게도 귀가를 권했지만, 그는 끝내 고집을 부렸다. 억지로 끌고 가는 것도 좋지 않을 듯하여 솔은 가람에게 맡긴 채 지호는 득용만을 데리고 숙소로 돌아갔다.
날이 밝자 조문객이 하나둘 발걸음을 했다. 담임선생님과 여동생의 친구들, 늦게 연락을 받은 몇몇 친척, 소속사 관계자들이 다녀가고 나니 다시금 장례식장이 조용해졌다. 간신히 눈물을 추슬렀던 솔은 녹초가 되어 구석진 자리에 앉아 가람에게 기댄 채였다. 지호가 떠나고 태오는 가람에게도 솔에게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맞은편의 태오를 바라보며 솔은 가람에게 몸을 기댔다. 점점 무게감이 더해진다고 했더니 스르륵, 솔의 머리가 미끄러져 내렸다. 강행군이 계속되었고 긴장을 잔뜩 한 채 무대를 치른 걸로도 모자라 그토록 세상이 무너진 듯 울고 밤을 꼬박 새웠으니,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 자체가 곤욕이었을 것이다. 결국 지쳐 쓰러진 솔을 가람은 제 무릎을 내어 주고 그를 조심스레 눕혔다.
제 무릎에 머리를 기댄 채 까무러진 솔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가람은 태오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몇 번이고 시선이 마주쳤지만, 그저 서로를 바라볼 뿐 가타부타 말을 않았다. 그 이상한 대치가 계속되자 결국 태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데리고 들어가.”
“솔이 좀 쉬게 해 주고 다시 올게.”
“그럴 필요 없어. 다시 안 와도 돼.”
“윤태오.”
단호한 말에 가람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의 이름을 또박또박 불렀다. 하고 싶은 말이 여럿 있었지만, 가람은 꾹 눌러 그 말들을 마음속에 담았다. 가람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아는 태오는 그를 바라보며 대화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만. 여기서 그만하자. 너도… 그리고 솔도.”
태오는 ‘내가 없는 편이 너에게도, 솔에게도 결국 모두에게도 나을 거야.’라는 뒷말을 삼켰다. 가람에게 기대어 지쳐 쓰러진 솔을 보고 있자니 쓴 물이 올라왔다. 아니 어쩌면 뱉어 내고 보면 쓴 물이 아니라 검붉은 핏덩이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아프면서도 내심 가람이 솔의 곁에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태오는 가람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은 말이 통하지 않음을 깨달은 가람은 다정히 솔을 깨웠다. 이러다 태오가 아니라 솔의 몸이 상할 것이었다. 서늘한 바닥에 웅크리고 누운 그를 살짝 흔들어 깨우니 솔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급히 일어난 덕에 현기증이 이는지 이마를 짚고 고개를 흔들었다. 다행히 돌아가자는 가람의 말에 솔은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눈을 뜬 그의 시야에 민트색 경고 창이 수없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장례식장에서 유족을 두고 더는 민폐였다. 솔이 무거운 발걸음을 터덜터덜 옮기니 그의 뒤로 태오의 시선이 따라왔다.
숙소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발을 질질 끌다시피 하는 솔은 가람이 거의 둘러매듯이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태오가 돌아오지 않을 방에 누워 의식을 잃듯 까무러쳤다 눈을 뜨니 다시 여전히 해가 떠 있었다. 문득 모든 것이 엉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꼭 열여덟 살, 홀로 병실을 나와 텅 빈 집으로 귀가했던 그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
지난밤 이동 중에 소식을 들은 은겸은 화환을 보내고 귀갓길에 멤버들과 장례식장에 들렀다. 그래도 태오와 함께 부대꼈던 시간이 있는데 얼굴을 비치는 게 맞을 듯싶었다. 상을 겪어 가뜩이나 강했던 태오의 얼굴에 날카로움이 덧대어졌다. 퍽 예민해 보이는 얼굴을 뒤로하고 루카와 함께 회사로 돌아오니 솔의 걱정이 앞섰다.
어제가 분명 생방송 촬영일이라 들었다. 밤을 꼬박 새우고 막 돌아온 참이라 무척이나 피곤했지만 여리기 짝이 없는 솔이 이 일로 또 그때처럼 눈물짓고 있는 건 아닌지 신경 쓰였다. 솔에게 연락해 볼까, 핸드폰을 다시 쥔 은겸을 루카가 팔꿈치로 툭 쳤다. 팍 짜증을 내려는데 루카가 은겸의 얼굴에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네가 싸고도는 애 일 나겠는데?”
“뭐?”
“얘. 윤태오랑 같은 팀, 지금 서바이벌 하고 있는 걔 맞지? 존나 이쁜 애.”
은겸은 루카의 손에서 핸드폰을 낚아챘다. 핸드폰 화면에는 <마이 아이돌 스타즈> 커뮤니티 게시판이 켜져 있었다. 게시판 최상단에는 한번 혹하는 마음으로 눌러 볼 법한 제목의 글들이 여러 개 걸려 있었는데 루카가 어느 글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은겸의 눈동자는 그중 가장 많은 댓글이 달린 글로 향했다.
마아스 성솔이 동창생
ㅇㅇ | 22:21:48
조회 281,127
나 마아스에 나오는 성솔 동창임
크게 악감정은 없는데 요즘 얘 언급되는 거 보니까 저 인성에 진짜 연예인되려나 보네ㅋㅋㅋㅋㅋㅋㅋ
신기하기도 하고ㅋㅋㅋ 저런 애가 아이돌 해도 되나 싶기도 해서 글 씀
솔직히 얼굴 보고 빨아주는 거 같은데 얘 얼굴값 존나하거든 ㅋㅋ 학교 다닐 때 무용 오래 했고 잘 했음
막 학폭 같은건 아닌데 애들 무시하고 말걸어도 대답도 안하고 지금 마아스 하면서 나오는 지적 그대로 학교다닐때도 그랬음
표정 관리 1도 안하고 애들이 말걸면 똥씹은 표정됨. 대답도 안하고ㅋㅋㅋㅋ 얼굴보고 친해지고 싶어서 다가갔던 애들 다 나가떨어지는 거 순식간이었음
존나 재수없어서ㅋㅋ
└ 인증없으면 중립기어 박아
└ 근데 얘 확실히 얼굴에서 싸가지 없는거 티가 나긴해
└ ????
└ 동창이면 인증 좀;; 하다 못해 졸업앨범이라도 찍어오는 성의라도 있어라
└ 헐...충격임. 억까당하는거 같아서 응원했는데....
└ 그래서 실물은 어떰?
└ 그냥 성솔이랑 친해지고 싶었는데 안 놀아줘서 까는 거 아님? ㅈㄴ찌질한 냄새남
└ 아니 근데 얘 진짜 화면에 나올 때마다 표정 ㅆㅂ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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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더 보기
뚜렷하다 할 만한 피해 사실이 있는 글도, 흔히들 ‘인증’이라고 부르는 어떠한 증명이 있는 글도 아니었지만, 은겸은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SNS에 성솔의 이름을 검색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다른 곳에서도 해당 게시글을 두고 여러 가지 말이 오가고 있었다.
명소다
@MH_SODA
이거 봄?
(게시글 스크린 샷.jpg)
꾸독께 @s33Pn8g8R25N1Dsy
(게시글 내용을 스크린 샷 찍은 이미지.jpg)
계속 말 나올때마다 왜 안뜨나 했다
방송에서 멤버들이랑 사이 되게 좋은 척하는데 참 방송하기도 힘들겠다 싶음ㅎㅎ
명소다 @MH_SODA
#명하 #마이아이돌스타즈 #5조_데뷔해
진짜 속상함.... 얘는 표정 저따구인데 명하야 너는 뭐가 그렇게 좋아서 웃어ㅠㅠㅠ 와기갱얼쥐
Wㅘ현 @WWWah0225
표정관리 진짜 못 함 아니꼬운티 개난다 글구 한명은 또 어디간건데????
해물된찌 @So_Delicious
인증도 없고 피해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뭘 했다는 것도 아닌 글 하나로?? 그냥 욕하고 싶은거잖음 아이돌도 사람인데 무조건 말건다고 다 웃으면서 친절하게 받아줘야함? 이게 왜 논란인지 이해가 안된다
뀽 @gly5Xj68iclVqL7XiY
무대 끝나고 둘이 싸웠대 존나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다가 한명 걍 가버렸다함
사약술수 @sayagsoolsoo
아 진짜 무슨 개소리이야;
중간중간 그냥 흘려 넘길 수 없는 글들이 눈에 띄었다. 솔의 인성? 지금의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체 무슨 헛소리냐고 고개를 대번 저었겠지만, 무엇이 사실이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작은 논란도 여러 손을 타면 점점 부풀려져 모두의 공격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 되고는 한다. 후에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오해였는지 진짜였는지 밝혀져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낙인이 찍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가뜩이나 매 회차 방송마다 표정이나 태도로 여러 부정적인 말을 들어온 솔이었다.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옳다구나, 먹이를 문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사람이 분명 존재할 것이었다. 인상을 절로 찌푸리게 하는 조롱조의 내용들이 스크롤을 내릴수록 가득해졌다. 은겸은 루카에게 핸드폰을 다시 돌려주며 물었다.
“얘네 다른 SNS는 안 해?”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안 하던데. 유튜브만 하더라. 좀 있으면 댓글 창 지랄 날걸.”
은겸에게서 제 핸드폰을 건네받은 루카는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은겸에게 다른 화면을 보여 주며 짜증을 부렸다.
“아씨. 너 때문에 저번에 얘 응원하는 글 올렸다가 나한테까지 DM 오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