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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를 뽑고 싶어-160화 (160/192)

#160

설렘이나 부끄러움 같은 풋풋한 감정이 아니라, 다른 감정으로 열이 오른 두 뺨을 태오는 조심스럽게 감쌌다.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부드러운 살결과 조금 높은 체온, 촉촉한 습기까지 똑같은 사람인데 그 감촉이 생경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태오는 솔의 입술을 짓눌렀다. 하도 짓씹어 붉어진 입술이 집어삼켜졌다.

말캉하며 일말의 저항도 없이 뭉개진 입술에 체온을 그대로 담은 뜨거운 것이 닿자 솔은 놀라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의 입술은 태오의 입술에 가로막혀 그 어떤 소리도 새어 나가지 못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덜컥 울음이 터져 나왔다. 차라리 태오가 제 입을 틀어막아 줘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더는 그를 괴롭게 할 억지 말을 내뱉지 못할 테니까. 솔은 두 손으로 제 뺨을 붙잡고 더 깊이 입술을 파묻는 태오를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가슴이 벅차오르면서도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처럼 아파 왔다. 그리고 벌어진 입술을 타고 서로의 숨이 넘어올 땐 폐부를 가득 채운 공기처럼 커다란 만족감이 차오르다가도 숨을 내쉬면 금세 흩어져 버렸다. 뺨을 어루만지는 태오의 손은 안쓰러울 정도로 떨렸고 솔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오히려 태오에게로 한 발짝 더 다가갔다. 첫 키스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달콤하지도 꽃가루가 날리지도 종소리가 울려 퍼지지도 않았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각들의 향연이었다. 낭만적이지는 않았지만, 꿈결 같았다.

누군가 솔에게 첫 키스가 어떠했냐 물어본다면 안개가 자욱한 저수지 같았다고 말할 것이다. 새하얀 안개가 가득 낀 저수지. 그 풍경은 고요하고 아름답지만, 그 물속이 얼마나 깊은지 가늠할 수 없는. 출입 금지라는 안내판을 보고 위험할 걸 알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홀린 듯 흘러 들어가게 되는 그런 곳 말이었다. 잠시 정신을 놓았다가 다시 붙잡으면 어느새 발이 저수지 깊이 빠져 헤어 나올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상관없었다. 애초에 자청해 찾아간 자리이니.

솔은 놀라 몸을 움츠리거나 태오를 밀어내기는커녕 오히려 그에게 더욱 파고들었다. 반 발짝 더 가까워져 두 팔을 들어 태오를 끌어안았다. 솔의 그런 반응에 오히려 태오가 움찔, 어깨를 떨었다. 입맞춤이라는 행위가 주는 어떤 성적인 자극보다도 그저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1초 한순간이라도 더 가까워질 수도 없이 서로가 포개어졌다는 사실에 만족감이 온몸을 어루만졌다.

“음…, 읏.”

그 어떤 고백보다도 부드럽고 뜨거운 살점이 입술을 가르고 입안 곳곳을 헤집었다. 두 살점이 뒤엉키자 마침내 침묵이 깨졌다. 솔은 간질간질한 느낌에 어깨를 움츠리면서도 더욱 태오에게 닿으려 목을 길게 뻗어 몸을 기울였다.

어느새 솔의 두 뺨을 어루만지던 태오의 손은 그의 허리와 등을 단단히 휘어잡고 있었다. 커다란 태오의 몸이 솔을 완전히 품에 안자 호리호리한 솔의 모습이 가로등 불빛 아래에 반쯤 가려졌다. 다시는 놓지 않을 것처럼 단단히 끌어안았지만, 그가 말하지 않아도 솔은 이것이 윤태오의 이별 고백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이 놓을 수 없어 오히려 그에게 온전히 몸을 기대었다. 기뻐해야 할까 슬퍼해야 할까. 입맞춤을 빌린 태오의 고백에 행복에 겨운 눈물을 흘려야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홀연히 떠나 버린 여동생, 아직도 사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어머니, 저를 의지하며 걱정하는 멤버들. 태오는 그 모든 것들을 등지고 솔에게 열렬한 고백을 보낼 남자가 아니었다.

솔은 가늠조차 하지 못했겠지만, 태오는 자꾸만 솔에게로 기우는 자신의 마음을 바로 다잡아 왔다. 그런데 이제 와 이렇게 입을 맞추며 제 마음을 시인하는 일은 윤태오답지 않게 무책임했다.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작별 인사였다.

이제 TEAM ONE의 리더 윤태오일 수 없다는. 솔이 태오에게 제 마음을 밝히길 주저했듯이, 태오도 피차 마찬가지였다. 솔이 그토록 간절히 붙잡았지만, 태오는 결국 떠나려 마음을 굳힌 것이다. 그랬던 그가 먼저 입을 맞춘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둘은 다른 듯 닮아 있으니까. 그 속을 알기에 솔은 더더욱 태오를 놓을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아주, 아주 깊은 입맞춤을 나눴다. 안개로 자욱한 저수지에 발이 빠지다 못해 물이 목까지 차올라 숨이 턱 막힐 때까지. 꼴깍, 마침내 한 덩어리가 되었던 역광이 드리운 실루엣 사이에 빛이 들었다. 가로등 불빛을 머금은 자그마한 틈이 두 사람 사이에 생기고 이내 서로를 끌어안았던 손과 몸이 멀어졌다. 솔은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골랐다. 눈물인지 타액인지, 붉어진 입술이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미안해.”

그 말 한마디에 조금 전까지 솔의 온몸을 어루만졌던 온기가 사라지고 서늘함이 느껴졌다. 그 말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서 버린 태오의 뒷모습에 솔은 팔을 들어 올려 얼굴을 가렸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솔은 멀어져 가는 그의 발걸음 소리만을 들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 내었다. 이내 태오의 그림자까지 사라지자 솔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한참 고개를 파묻고 주저앉아 있던 솔의 앞에 가지런한 두 발이 나타났다. 검은색 스니커즈, 느슨하게 묶인 운동화 끈. 그 자리에 돌이 되어 버린 듯 일어나지 않는 솔을 운동화의 주인은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그의 팔을 붙잡아 일으키니 솔은 물먹은 솜 인형처럼 축 늘어져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다. 아니, 가눌 생각조차 없었다.

휘청거리는 몸을 끌어안으니 정말 모든 힘을 빼 버린 듯,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누구인지 구태여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을 일으켜 세운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단단한 어깨에 머리를 기울이자 그의 조금 긴 머리카락이 뺨을 간질였다.

“솔….”

“가람아. 태오가…, 태오가.”

가람의 나지막한 부름에 솔은 입을 떼었으나 말을 끝맺지 않았다. 처음부터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가람은 그저 솔의 등을 토닥여 줄 뿐이었다.

가람의 손길에 솔은 오롯이 그에게 기대어 흐느꼈다. 가람의 마음을 훤히 알면서, 솔은 그의 품에서 태오 때문에 슬퍼했다. 뒤늦게 미안함을 느꼈지만 무너지는 마음에 가람을 배려해 줄 여력이 없었다. 이 모든 것들이 가람을 저처럼 아프게 만들 거란 걸 알면서도 그를 마음을 들여다봐 줄 수가 없었다. 솔은 가람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가람은 제게 기대어 흐느끼는 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태오에게 그저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고, 잠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네게로 돌아올 거라고 속삭여 주었다. 얼마나 그렇게 더 서럽게 눈물을 쏟아 냈을까. 더 나올 눈물도 없는 것인지 진이 빠져 버렸는지. 품 안에서 축 늘어진 솔의 흐느낌이 잦아들었다.

주변은 조용했고 언제고 둘이서 숙소로 돌아가던 날처럼 가로등 불빛은 은은하게 주변을 밝혀 주었다. 가람은 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솔, 난 솔이 좋아.”

“…….”

가람의 속삭임을 들었으면서 솔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뺨을 간질이던 가람의 머리카락이 이젠 솔의 반대편 귓가를 간지럽혔다. 말로 하지 않아도 피부로 느껴지는 그의 움직임이 완곡한 거절이었다. 가람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솔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었다. 온갖 헤어 제품의 향기와 옅게 섞여 있는 솔의 체향. 그리고 태오가 사용하는 스킨의 향기.

제 친구와 같은 사람을 짝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해 의식했는데, 알고 보니 짝사랑은 결국 저 혼자만이었다. 가람은 익히 예상한 반응에 실망하지 않았다. 이미 태오와 솔이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을 지켜보면서, 태오가 마음을 굳혔듯이 그도 굳혔기 때문이었다.

“지호 형도, 득용이도. 나는 영호 형도… 그리고 태오도.”

입 안이 썼다. 비겁하고 찌질하기 짝이 없는 변명이지만 이렇게라도 쏟아진 말을 주워 담아야 했다. 이마저 하지 않으면 솔이 저를 불편해할 테니까. 가람의 얼굴엔 평소와 달리 조금의 여유도 없었다. 그의 입가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검은 눈동자는 하염없이 슬펐다.

“전에 내가 노래 만들면 불러 달라고 했던 거 기억해?”

“…응.”

솔은 여전히 가람을 보지 않고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대답했다. 자신을 위해 노래를 하나 만들어 주겠다던 약속. 이곳에 와서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였다.

“멤버별로 한 곡씩, 우리가 진짜 데뷔하면 정규 앨범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만들어 뒀거든.”

“멤버별로?”

“응. 이제 내 것만 남았어. 솔이 너한테도 부탁했던 것처럼 지호 형한테도 윤태오한테도. 다들 꼭 불러 주기로 약속했거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가람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 왔고, 되어 주던 든든한 친구 윤태오. 그를 너무도 좋아하지만, 지금은 그 제일 친한 제 친구가 미웠다. 하지만 미워할 수도 없었다. 입을 맞추는 두 사람을 보며 가람은 솔에게도 태오에게도 더 무거운 짐을 안겨 줄 수 없었다. 이미 두 사람은 남들은 겪지 않아도 되는 힘겨운 일을 겪었고 지금도 그 두 어깨가 충분히 무거웠다. 거기에 자신을 올려 둘 수는 없었다. 이건 태오를 위해서기도 했지만 동시에 솔을 위해서기도 했다.

“태오 약속 안 지키는 거 못 견디잖아. 내가 다… 다 돌려놓을게.”

가람은 솔의 머리와 등을 쓸어내리며 지키고 싶지 않은 약속을 했다. 단둘이 병실에서 밤을 지새웠을 때 속으로 솔에게 약속했지 않은가, 지켜 주겠다고. 윤태오가 있어야 솔의 웃음을 지킬 수 있다면 얼마든지. 매달려서라도 그의 옆에 돌려놓을 수 있었다.

“우리 다섯이 다 모여야 TEAM ONE인 거잖아. 그렇지? 걱정하지 마. 시간이 조금 필요할 뿐이야.”

“…미안해 가람아. 고마워.”

혼잣말하듯 곱씹는 가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솔은 그에게 사과와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가람에게 돌려줄 수 있는 말은 오직 그 두 개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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