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를 뽑고 싶어-153화 (153/192)
  • #153

    솔은 천천히 가람의 핸드폰 화면을 넘겼다. 솔에게는 영 익숙하지 않은 SNS 화면, 다행히도 처음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멤버 모두가 무대에 나란히 서 있는 사진과 함께 올린 기분이 좋아지는 긍정적인 반응의 글이었다.

    두유(ᓀ ֊ ᓂ )

    @maeilDoU

    7조가 데뷔할 수밖에 없는 이유

    태오 : 메인 댄서인데 보컬도 좋음

    지호 : 메보에 맏형인데 제일 귀여움

    가람 : 보컬인데 댄스 안 딸림

    디케 : 이름이 득용이임

    솔 : 보컬 댄스 딸리는 게 없는데 남신임

    조심한다고 하는 말이 무색하게 열띤 편집에도 불구하고 TEAM ONE 채널을 통해서 디케이의 본명이 여러 차례 언급이 되어 버렸다. 해당 채널까지 챙겨 보는 ‘팬’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겐 디케이란 이름보다 득용이란 이름이 더 귀엽다고 여겨지는지. 득용의 바람과 달리 그를 디케이라고 불러 주는 사람은 몇 안 됐다. 하지만 살포시 웃음이 나오는 글도 찰나였고, 바로 아래부터는 솔을 씁쓸하게 만드는 내용투성이였다.

    박아주의@allmyhole69

    7조에 은발 쟤 화면에 잡힐 때마다 똥 씹은 표정인데 보기 싫음

    명댕 @myeongdaeng

    (솔이 명하의 인사에 얼굴이 냉랭하게 굳은 사진.jpg)

    방금 뭐야? 명하랑 투샷 잡힐 때 뭐임?

    쏘Ki @sso_kkkkk

    존나 싸하다ㅋㅋ

    승훈드셔보세요 @try_try_ssh

    (서승훈의 비평에 얼굴이 굳은 솔과 침울한 지호의 사진.jpg)

    어쨌든 실수도 한 거고 난 솔직히 잘한 무대라고 생각 안 하는데... 어쨌든 평이 마음에 안 들어도 저딴 표정 짓는게 아이돌임? 표정 관리하는 법 좀 배우고 와라 다른 애들은 뭐 항상 행복하고 웃고 싶어서 웃나? 지들만 까임?

    그렇게까지 보기 좋지 않았나. 연이어 올라오는 날이 선 말들에 솔은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쓸어 보았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솔의 주변 사람들도, 솔도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아 딱히 제 생김새에 대해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표정. 그마저도 모든 표정을 지워 내면 서늘하다 못해 냉랭한 이미지가 된다는 말도 느닷없는 아이돌을 준비하며 처음 들었다. 대학 생활 내내 그가 어색하고 과장된 웃음을 지을 때마다 불편해했던 동기들이 떠올랐다. 비웃거나 자신을 놀리고 있다고 생각해 기분이 나빴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의 솔은 그때와는 여러모로 달라졌다. 그를 깊이 아는 사람이라면 음지에 있던 솔이 볕으로 나와 얼마나 많이 밝아졌는지 알고 대견해했다. 하지만 그저 솔을 겉으로만 봐 온 사람들이라면 그의 어색한 표정이나 냉랭한 얼굴을 오해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그를 해결해 보려 연기 수업도 꾸준히 듣고 있지만 그간 솔이 쌓아 왔던 모든 습관을 뒤엎는 일이다 보니 변화가 더뎠다. 또 아직 카메라 앞에서의 긴장감을 벗어던지지 못한 것도.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고 왜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는지, 머리로는 잘 이해하고 있었지만, 막상 눈으로 보니 꽤 아팠다. 덤덤하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그도 사람인지라 두 눈으로 날것의 글들을 보고 나니 약간의 서운함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는 모두의 걱정과 달리 의연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자신을 이용하라던 은겸의 말이 떠올랐지만 뭘 어디서,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감조차 잡히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의 마음을 알게 된 지금 이 시점에서 은겸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고 아무렇지 않기가 어려울 정도로 솔은 뻔뻔하지 못했다. 솔이 손끝으로 핸드폰 화면을 쓸 때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솔의 속눈썹 한 올, 손끝의 떨림 하나, 그의 미세한 반응 하나조차 놓치지 않으려는 듯, 모두가 눈을 부릅떴다.

    사약술수 @sayag2034

    서승훈 7조한테 왜 지랄이야? 잘생기고 이쁘고 노래 잘하고 춤 잘 추고 다하는데 대체 뭐가 문제야?? 저기요???????? 저기요??

    명댕 @myeongdaeng

    7조 은발 그 친구 저번부터 누가 한마디하면 표정 관리 못하는 거 완벽하게 하남자 같음

    ㄹ @KwOyzX2qja7kkq39q

    (애써 웃음 짓는 솔의 사진.jpg)

    표정 관리 좀 하세요ㅋㅋㅋㅋㅋ 억지로하는 거 다 보여요

    마아스보는계정 @maidols_1231

    표정 관리할 생각 1도 없는게 개웃기다ㅋㅋㅋㅋㅋ 근데 표정 썩은 것도 이쁨 ㅅㅂ

    두유(ᓀ ֊ ᓂ ) @maeilDoU

    귀여운데 왜들 그러쥐?

    모두가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난번보다 훨씬 더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다른 커뮤니티도 매한가지였다. 솔은 더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핸드폰 화면을 꺼 버리고 가람에게 건네자 태오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이 더 울상이었다. 솔은 모두의 얼굴을 한 바퀴 쭉 둘러보았다. 무뚝뚝한 태오도 카메라 앞에서는 잘만 웃었다. 지호야 워낙 표정이 풍부하고 리액션이 좋았고 가람의 얼굴엔 늘 여유가 있었다. 득용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하나같이 멋지고 반짝거리는 내 친구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좋아하면 닮는다는데 닮아 가는 것도 쉽지가 않다. 솔이 좋아하는 그들의 모습들은 구태여 웃지 않으려 해도 시선이 닿는 곳마다 따뜻함이 가득해 절로 웃게 된다. 솔은 머릿속을 떠돌던 부정적인 말을 고개를 크게 휘저어 날려 버렸다.

    “카메라에 이쁘게 나오는 법, 연습해야겠다.”

    솔은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들썩이고 환히 웃었다. 별거 아닌 한마디였는데, 솔이 간직한 상처를 이제는 알고 공감하게 된 가람이 또 한차례 울컥하는지 획, 고개를 돌려 버렸다. 지호는 손을 뻗어 어여쁜 손자를 보는 할머니처럼 솔의 손을 잡고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주접을 떨었다.

    “우리 솔이, 이미 요정인데…. 이미 충분히 이쁜데… 아이고. 아이고. 알못들….”

    “우리도 이제 팀 SNS 활동 다시 해도 된다니까 별스타그램 만들면 거기에다 말해요. 우리 형 사실 그거 윙크한 거라고!”

    “맞아. 라이브 방송 켜고 보여 주자.”

    득용은 아직도 제 인터뷰 내용이 편집된 것이 분한지 씩씩거리며 우렁차게 외쳤다. 눈시울이 빨개진 가람도 득용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아주 결연한 표정으로 태오를 바라보았다. 태오는 그저 눈썹을 살짝 씰룩여 보였다.

    “그래, 그러자. 스포만 조심하면 된대.”

    “네. 다른 팀들은 생방 투표 벌써부터 홍보해요.”

    참여자들 개개인의 활동명 사용이 금지되어 그간 ‘7조’라고 불렸던 것도 이젠 끝이었다. 아직까지 7조라는 이름표는 남아 있지만, 그 아래에 활동명인 ‘성 솔’이 조금 더 작은 글씨로 들어갈 예정이라며 태오가 설명을 덧붙였다. 잘됐다 싶었다. 적어도 이름이 공개되고 나면 앞으로 저에게 안 좋은 말을 할 때 ‘7조 걔’, ‘7조 은발’처럼 조까지 싸잡히는 일은 적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언제 울적해하고 성을 냈냐는 듯, 다시금 씩씩하게 의욕을 보이는 득용을 보며 솔은 배시시 웃음 지었다. 솔의 웃음을 본 멤버들은 울적한 일을 떨쳐 버리려는 듯 보란 듯이 한바탕 왁자지껄하게 떠들었다.

    “솔, 내일은 퇴원해?”

    “그럴걸?”

    한차례 소란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가람이 정리하며 솔에게 물었다. 솔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느른하게 앉아 고개를 끄덕이며 가람을 빤히 바라보았다. 여전히 가람에겐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그래도 제 속에 꼭꼭 눌러 담았던 혼자만의 비밀을 멤버들에게 조금이나마 공유하고 나니 한결 편안했다. 밑바닥을 보여 줘서 더는 나빠질 것도 없을 것 같단 느낌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후에 돌아온 반응이 진심 어린 애정이라 정말로 과한 마음을 받고 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솔의 모호한 대답에 득용이 한껏 불쌍한 척을 했다.

    “형, 얼른 와요. 숙소에 형 없으니까 지호 형이 맛없는 반찬만 줘요.”

    “너는 어차피 먹지도 못하잖아.”

    “보는 맛도 있다고요.”

    득용의 말에 지호가 어깃장을 놓았다. 투덕거리는 두 사람과 묵묵히 뒷정리하는 태오와 가람을 보며 솔은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스물다섯 살의 퀴퀴한 자취방도 열여덟 살의 엄마 아빠가 있는 제 방도 아닌, 이 멤버들이 한데 부대껴 자는 좁아 터진 숙소 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더 웃고 떠드는데, 영호가 병실로 들이닥쳐 모두를 끌고 사라졌다. 다시금 혼자가 되었지만, 솔은 기분 좋게 잠이 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오전, 다시 한번 상담과 진료를 끝마치고 영호와 함께 퇴원 수속을 하던 솔은 평소와 무언가 다름을 느꼈다. 무언가가 달라졌는데, 명확하게 어떤 것이 달라졌는지를 콕 짚어 낼 수가 없었어. 이 이상한 기분은 아침 침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영호가 처방 약을 기다리는 사이 솔은 영호가 챙겨 온 마스크와 모자를 눌러쓰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무언가 빼먹은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모든 수속을 끝낸 영호를 따라 주차장으로 걸어가면서도 솔은 내내 찜찜함의 원인을 찾으려 머리를 굴렸다.

    “솔아, 밴 괜찮겠어?”

    “약 먹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그래, 형이 조심히 살살 운전할게.”

    “감사합니다.”

    이미 많은 부분에서 차도가 있었지만, 정신과 상담 끝에 솔은 몇 가지 약을 처방받았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처방받은 약을 먹은 것까지 살뜰하게 확인했으면서 그래도 걱정이 쉬이 가시지 않는지 영호가 다시 한번 솔을 확인했다. 솔은 그의 배려에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밴에 올라 솔은 안전벨트를 채우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본래도 그리 험하게 운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영호는 마치 살짝만 충격이 가해져도 깨지는 알을 배달하기라도 하는 듯, 살살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아!”

    영호가 운전하는 밴이 대로변을 달리기 시작할 때쯤 솔은 감았던 눈을 번쩍 뜨며 탄성을 내뱉었다. 오전 내내 그를 찜찜하게 만들었던 그 이유를 마침내 오랜 생각 끝에 떠올려 낸 것이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늘 마주하는, 이제는 일과가 되어 버린 민트색 알림 창을 보지 못했다. 매일 아침 솔의 시야를 가득 채우는 로그인 보상 창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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