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를 뽑고 싶어-151화 (151/192)

#151

여전히 시선은 화면 속 은겸에게 둔 채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솔을 태오는 그저 조용히 바라보았다. 애써 덤덤한 척하며 이야기를 이어 나가고 있지만, 나지막한 솔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가볍게 시작하지만 태오는 그 이야기가 아주 무거우리란 걸 솔의 목소리로 눈치챘다.

“…….”

“본격적으로 입시 준비를 하면 시간이 없으니까 가족들이랑 같이 바다를 보러 가고 싶었어.”

그렇게 솔은 슬픈 과거가 되어 버린, 하지만 지금까지도 자신에겐 현실인 그날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끄집어냈다. 기억을 더듬으면서 마치 꿈을 꾸듯 솔은 몽롱하게 이야기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충격 탓에 너무 힘들어 기억 대부분을 지워 버렸다. 솔이 기억하는 것은 극히 단편적이었다.

꿈에서 보았듯이 매일같이 타던 부모님 차의 냄새, 창밖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 엄마의 목소리 이런 것들이 그가 기억하는 것의 전부였다. 가장 행복하게 느꼈던 소소한 것들이 이내 매캐한 타는 냄새와 비릿한 냄새, 어두운 시야로 뒤바뀌어 버리지만 말이었다.

그 외에 자세한 이야기는 솔이 병원에서 눈을 뜨고 나서 주변으로부터 전해 들은 것이다. 경찰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주변인들이 솔을 찾아오면서. 솔은 떨리지만 덤덤한 목소리로 그날의 사고에 관해 이야기했다.

“터널에서 그렇게 사고가 났는데 제대로 기억나는 건 별로 없거든. 정신 차려 보니까 불행한 사고로 부모를 잃은 불쌍한 아이가 되어 있더라고.”

처음에야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불쌍한 아이’에 스스로가 사로잡혀 버렸다. 물리적 상처는 그리 크지 않았고 스스로 내보이지 않는 한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솔에게 일어난 일들을 모르는 사람도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솔은 그런 사람들 앞에서도 스스로를 ‘불쌍한 아이’처럼 행동했다.

“다들 나를 불쌍하게 바라봐서 그랬는지, 행복하면 안 될 것 같았어. 애초에 내가 가자고 한 여행이었잖아. 나 때문에….”

차마 ‘죄책감’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지 않았다. 입 밖에 내면 다시 그 죄책감에 휩싸여 아무것도 못 하던 시절로 돌아갈까 봐. 이렇게 태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최근에 멤버들을 만나 죄책감을 어느 정도 덜어 냈기 때문이었다. 솔은 말꼬리를 흐리며 시선을 은겸에게서 태오에게로 옮겼다. 제 마음을 저도 잘 모르겠다. 여태 모르고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척척박사가 되는 것도 말이 안 되긴 했지만, 은겸의 고백에 심장이 뛰고 설레였던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이런 이야기까지 할 수 있냐 묻는다면 솔은 고개를 기울일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는 오로지 태오에게만 할 수 있다. 가람이나 지호나 그 누구도 아니라 윤태오에게만.

“태오 너는 행복해지고, 이겨 내려 노력하고 있지만 나는 불행해지려고 노력했어.”

“…….”

솔의 그 한마디가 태오에게 충격을 주었다. 태오답지 않게 흐트러진 얼굴을 하자 솔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솔의 말은 정확했다. 솔과 태오의 차이는 바로 그것이었다. 솔의 이야기를 쭉 들은 태오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속으로 말을 고르고 또 골랐다. 처음 솔을 만났던 날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 내가 느끼기엔 그래. 훨씬.”

“…치료는 받아 봤어?”

“응…. 기억력에 문제도 생기고 밖에 나가는 게 점점 어려워져서….”

태오는 어려운 말을 꺼냈다. 사고의 이야기를 할 때는 떨리던 솔의 목소리가 제 상태를 이야기할 때는 오히려 차분해졌다. 누군가에겐 흠이라고 느껴질 망가진 자신에 대해 서술하는 것이 사고에 대해 서술하는 것보다 쉽다는 방증이었다.

“힘들거나 싫거나, 불리하거나 그런 일은 그냥 잊어버리게 돼.”

솔은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단발적인 기억 상실과 무력증, 무대 공포증과 자동차나 차도에 나서서 느끼는 공포. 클랙슨 소리와 자동차 방향제에 대한 민감함.

“처음에는 말이야. 내가 무대 공포증이 생겼다는 것도 잊어 먹었어. 그날 너무 무섭고 충격적이었는데, 그걸 까먹고 관객 앞에 섰더라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무대도 아니었고, 사고 이후로 오래 쉬었기에 솔의 기량을 체크할 겸했던 평가의 자리였다. 거울 앞에 쪼르르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눈앞이 깜깜해지고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고 말했다시피 깜빡 그날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처지를 고려해 한 번 더 테스트하게 되었고 거기서도 마찬가지로 깜빡 기억을 지운 상태였다. 두 번째 테스트였으나 솔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 전까지는 그저 자주 약속을 잊고, 사고에 대한 기억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이 단순히 충격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해서. 혼자 삶을 살아가는 것에 넋을 놓아서, 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예약 시간에 맞춰 병원에 가는 것조차 나한테는 어려운 일이더라.”

당연하게도 평가 자리를 마련해 주었던 원장 선생님이 조심스레 병원을 권했고 솔도 적잖은 충격을 받아 잠시 치료를 다녔었다.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노력하라 채찍질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놀랍게도 가장 가까운 사람인 경우가 많았다. 자신이 이렇게 도와주고 있는데, 나아지는 게 보이지 않아서. 어느 정도 애정에 기반한 그 말들이 때로는 늪을 더욱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치료를 포기하게 되었다. 별달리 눈에 띄는 호전도 없었고 예약 시간조차 맞춰 병원에 나가는 게 힘든 솔을 지척에서 떠밀어 줄 사람이 없었다. 혼자서는 벗어날 수 없는 늪. 잠시 그때의 기억에 잠겨 있는 솔의 귓가에 차분한 저음이 흘러 들어왔다.

“여기에 와서도 그런 적 있었어?”

태오의 물음에 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처음에, 애초에 여기 어떻게 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걸.”

“……쉽지 않았겠네.”

태오는 잠시 할 말을 잃었는지, 조금 멍한 얼굴로 솔을 바라보았다. 솔이 그와 시선을 맞추자 태오가 조금 먹먹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누군가는 태오에겐 그래도 남은 가족이 있으니 더 쉬웠을 거로 생각할 수 있지만 솔의 생각엔 그 반대였다. 오히려 태오에게 희망이 있어서 더 힘들었을 거라고, 솔은 생각했다. 솔은 속으로 ‘너만큼 힘들었을까.’ 하는 말을 삼키며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자다가 일어났는데, 갑자기 영호 형이 와서 늦었다며 끌고 갔어.”

그날을 기억하며 솔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이제 와 생각하니 참 별것도 아니고 우스웠다. 다른 멤버들의 눈에 자신이 얼마나 볼품없었을지, 방치한 머리는 감지 않아 떡지고 후줄근한 차림에. 용케도 받아 줬다 싶었다.

다 말하고 나니 솔은 후련한 기분이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 이야기를 모두 알게 된 태오가 도리어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다. 태오는 속 시원하면서도 텁텁한 웃음을 지은 솔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괜찮으면, 지금이라도 다시 치료받아 볼래?”

“……어…. 음.”

고마운 말이지만 이미 실패하고 상처받은 경험이 있는 솔로서는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제안이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아무렇게나 살던 그때와는 많은 것이 달랐다. 그룹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아직 데뷔 전이지만 소속사가 마련되어 있기도 했다.

이런 사실이 밝혀지면 회사에서 여전히 솔을 환영할지도 의문이었고 무엇보다 당장 멤버들과 저에게 도움의 손을 뻗는 태오도 마음에 걸렸다. 태오를 이제는 제법 잘 안다. 그간 솔에게 노력하라며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처럼 태오가 시간을 거듭하면 변하게 될 거라 이제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태오는 솔이 지금 고개를 끄덕인다면 더 이상의 치료가 필요 없을 때까지 우직하게 솔을 도와줄 것이다.

다만 그 사실을 알기에 더욱 솔은 그가 내민 손을 잡을 수 없었다. 저 손은 너무 다정하고 든든해서 의지하다 보면 그의 힘듦을 미처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 묵묵함과 올곧음에 익숙해져서 그가 기우는 걸 눈치채지 못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솔은 고개를 숙였다. 멍 자국이 남아 있는 제 손목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무대는 정말 열심히도 했다. 결국에 끝까지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단연코 사력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너 혼자 그렇게 안 힘들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모두 다 같이 즐거울 때 너도 즐거웠으면 해. 나는.”

“…….”

“오늘처럼 너 없이가 아니라.”

솔은 고개를 들어 태오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없는, 촬영장에서 1위를 했을 때 멤버들은 즐겁고 기뻤을까? 구태여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려울 것도 없이 자신이 태오였다면, 가람이었다면. 멤버 중 누군가가 쓰러졌다면 하고 상황을 대입해 보면 답은 쉽게도 나왔다.

‘아니.’

아마 순위 발표 내내 쓰러진 멤버를 생각하고 걱정했을 거다. 혹 큰 이상이 생긴 건 아닐까 불안할 거고 1위의 성적 따위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필시 어서 빨리 이 촬영이 끝나 모두의 온전한 모습을 확인하길 바랐을 것이다.

솔은 굽어 있던 등을 펴자 그의 심경의 변화를 느꼈는지, 태오가 손을 쓱 내밀었다. 커다랗고 따뜻한 손바닥이 솔의 시야에 들어왔다.

“도와줄게. 같이 하자.”

“아니. 나 혼자 할게. 너는…. 그냥.”

덥석 잡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솔은 태오의 손과 그의 눈을 번갈아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잡을 수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그냥 기다려 줘.”

솔의 말에 태오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멋지고 당당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난 솔은 잠시 멈칫하다 뒤를 돌아보았다. 시작부터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뭐든 시작이 어려운 법이었다. 솔은 어색하게 웃으며 아직 펼쳐져 있는 태오의 손을 붙잡았다.

“음…. 영호 형이랑 멤버들한테 이야기하는 거만 도와줄래?”

“그럴게.”

“고마워. 태오야.”

솔의 인사에 태오가 조용히 웃었다. 다음에 이 손을 다시 붙잡을 때에는 은겸처럼, 제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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