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를 뽑고 싶어-147화 (147/192)

#147

솔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직 꿈에서 헤어 나오질 못해 몽롱한 눈길로, 제 손을 잡고 있는 은겸을 바라보았다. 순간 저를 바라보고 있는 은겸이 주환인 줄 알았다. 어제 만났던 친구를 다시 만나는 듯, 은겸의 여상한 인사가 조금 전 곁을 떠난 엄마의 인사와 겹쳐 더욱 헛헛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 많이 슬프지는 않았는데, 슬프다기보단 허전함이 강했다. 하지만 그 마음과 달리 솔의 뺨을 타고 눈물은 계속 흘러내렸다.

“왜 울어?”

뺨에 흐르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쳐 내며 은겸이 물었지만, 솔은 별달리 대답하지 않았다. 그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당장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음에도 솔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눈을 뜨자마자 촬영이 어떻게 되었는지, 혹은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하다못해 은겸이 어쩐 일인지 물어야 할 것들이 많았지만 솔은 공허함이 주는 여운에 잠시 그냥 맥을 놓았다.

솔이 대답 없이 눈물만 쏟아 내자 은겸이 그의 손을 깍지 껴 꽉 붙잡았다. 웃는 게 이뻐서 다른 사람들을 보며 웃는 그를 보고 시샘했는데 이리 보니 또 우는 것도 이뻤다. 솔에게 이끌리는 감정을 제외하고도 객관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감상이었다. 첫 만남 때도 그랬지만 눈물만 뚝뚝 떨어뜨리며 우는 모습이 너무도 처연했다. 이왕이면 웃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이번엔 또 무엇이 너를 그리 힘들게 해서 이렇게 슬프게 우는가,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이렇게 여리고 툭하면 울어서야 아이돌 생활을 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자신도 그렇지만 생각보다 잔인하고 냉정한 세상이었다. 겉으로 보이기엔 화려하지만 그 이면은 치졸하기 짝이 없는 질투와 경쟁심으로 범벅이었고 돈에 얽힌 이해관계도 깨끗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차라리 솔과 처음 연습실에서 만났을 때, 당장 이 일을 그만두고 병원에 가라고 조언했어야 했을까. 은겸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랬었다면 이렇게 손을 붙잡고 앉아 있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은겸은 하염없이 솔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았다. 조금 이상한 이야기였지만 이러다 쓰러지는 건 아닌가 걱정스럽고 무엇이 그리 슬픈지 몰라 짜증이 치솟는 것만 아니라면, 눈물을 애처롭게 뚝뚝 흘리는 솔의 얼굴은 하루 종일이라도 보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치 작품을 감상하듯 말이었다. 그렇게 솔을 말없이 바라만 보던 은겸은 그의 눈치를 살피고는 혹 솔이 촬영 중 쓰러져서 속이 상해 우는가 싶어서 위로를 건넸다.

“멤버들 촬영 끝내고 지금 오는 중인가 봐. 밖에서 매너저님이 통화하고 있어. 걱정하지 마.”

“……아.”

솔은 은겸의 다정한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꿈에서 헤어 나와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무대가 끝나고 쓰러졌었지. 창밖이 어둑했다. 자신이 쓰러진 것 때문에 괜한 문제가 생기진 않았는지, 멤버들이 얼마나 놀랐을지 무대의 결과를 빼고 다른 것들이 걱정되었다. 왜냐하면 결과는 이미 솔의 눈앞에서 어른거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퀘스트 <이제는 움직여야 할 시간!> 성공]

[3ROUND 댄스 미션에서 순위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성공 보상으로 3ROUND 보상 상자를 획득하셨습니다.]

[<보너스 미션>을 성공하였습니다.]

[보너스 미션 성공 보상으로 컨셉 랜덤 골드 티켓 X1 획득하셨습니다.]

[생방송 진출을 확정 지었습니다. 축하합니다!]

반가운 메시지였다. 마음은 복잡하고 몸이 고됐던 거와 별개로 최선을 다한다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준비했던 무대였다. 그 결과 이렇게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지만.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1위’ 처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멤버들이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더 좋아했을 거다. 득용은 어쩌면 정말 아이처럼 결과를 듣고 방방 뛰었을지도 몰랐다. 멤버들과 함께 결과를 들었다면 좋았을 텐데.

안정의 포션을 사용하지 않은 게 실수였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하다못해 체력 회복 포션이라도 사용했다면 그렇게 쓰러지진 않았을지도 몰랐다. 아쉬움이 곳곳에 남았지만 이제 와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었다.

<퀘스트 : 이제는 움직여야 할 시간!>

<마이 아이돌 스타즈> 대망의 첫 생방송 무대. 이제부터가 실전입니다. 4ROUND 첫 생방송 무대에서 살아남으세요.

*보너스 미션 : 생방송 문자 투표에서 2위 이상을 차지.

연이어 떠오른 4ROUND 미션 알림 창에 솔은 시선을 뺏겼다. 미션 내용이 어딘지 부족한 느낌이기도 달라진 느낌도 들었다. 아리송한 기분에 한참 시스템 메시지를 응시하자, 그런 솔의 모습이 넋을 놓은 듯 보였는지 은겸이 솔의 뺨을 스치듯 톡, 건드렸다.

“걱정돼?”

은겸의 목소리가 그를 다시금 일깨우자 그제야 솔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미션에는 성공했다는 알림 창을 보고 나니 눈물이 쏙 들어갔다. 보너스 미션에도 성공한 걸 보니, 넘어지지 않으려 추가했던 동작까지 성공으로 쳐준 것 같았다.

“아뇨…. 그런데 그보단 은겸 형이 왜 여기에….”

솔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꼬리를 흐렸다. 한창 촬영 중이니 멤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거야 그렇다 쳐도 아무도 없었었으면 없었지, 은겸이 제 옆을 지키고 있는 것이 뜬금없었다. 거기다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때도 늦은 시간까지 장거리 이동을 하거나 활동으로 바쁜 그였었다.

“왜긴, 걱정돼서 왔지. 우리 로드가 너희 애들 지원 가 있어서 알게 됐어.”

“…나 때문에 온 거예요? 바쁘지 않아요?”

“그럼 내가 너 보러 오지. 병원에 올 일이 뭐 있겠어.”

은겸의 대답에 솔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의외의 답을 들은 것 같은 솔의 표정에 은겸의 얼굴에는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연락도 안 되더니…. 갑자기 쓰러졌다는 소식이나 들리고….”

“아…. 미안해요. 요즘 여러모로 정신이 없어서.”

은겸의 말에 솔은 그제야 자신이 지난 며칠간 그의 연락에 별다른 답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늦은 미안함이 몰려왔다. 일부러 무시하려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오해를 사기엔 딱이었다. 실제로 은겸에게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솔이 때늦은 사과와 변명을 건네자 은겸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가 고개를 가로로 흔들 때마다 보드라워 보이는 갈색 머리카락이 사뿐하게 흔들렸다.

“그러게. 얼굴 보니까 마음 편하게 연락 주고받을 타이밍은 아니었던 거 알겠다.”

그는 눈썹을 살짝 올리고는 처진 눈을 더욱 늘어뜨리며 웃음 지었다. 솔직히 그간 연락이 되지 않아 안달복달하기는 했다. 하필이면 계속 피곤한 루카와 함께 일정이 잡혀 있었고 연락이 되질 않는 솔 때문에 루카에게 평소보다 배는 예민하게 굴었다. 며칠 내내 당한 루카가 보았다면 기함했을 표정과 어조로 은겸은 솔을 안심시켰다.

“누워서 쉬어. 너 타박하려고 온 거 아니야. 걱정돼서 얼굴 보려고 온 거지.”

“…안 가 봐도 돼요? 바쁘잖아요.”

솔은 순수한 걱정 반, 궁금 반의 마음으로 은겸에게 물었다. 아직 정식 데뷔도 못 한 자신과 달리 은겸은 유명 인사였다. 솔의 머리로는 그가 구태여 자신이 쓰러졌다고 병원까지 몸소 찾아올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다. 저와 한 팀인 것도 아니었고, 말이 친구였지 그리 친밀한 시간을 오래 보낸 것도 아니었다. 솔의 물음에 은겸은 눈썹을 찡긋거렸다.

“혹시 내가 있는 거 불편해서 그래?”

“네…? 아니요.”

“그런데 왜 이렇게 보내려고 해. 괜찮아. 걱정은 푹 쉬고 몸 상태 괜찮을 때 해. 내가 도울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고.”

은겸의 물음에 솔은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불편보다는 부담이었다. 보답할 길도 없고 일방적인 도움을 받을 정도로 대단한 관계도 아닌데, 솔은 처지를 바꿔 생각해 보았다. 만약 은겸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자신은 어떨까. 걱정되어 연락은 해 보겠지만 바쁜 와중에 만사를 제쳐 놓고 얼굴을 보러 병원에 찾아올 정도는 아닐 것 같았다.

“이제 괜찮아졌어요.”

“입술 붉어진 거나 감추고 거짓말해.”

은겸의 손이 솔의 입술에 닿았다. 눈을 뜨고부터 어쩐지 입술의 감촉이 영 불편하다 했더니 피로 탓에 붉어져 부어 있었다. 솔은 은겸의 손이 닿았다 떨어진 제 입술을 손가락으로 살살 문지르며 되물었다.

“왜 이렇게 잘해 줘요?”

“뭐가.”

“처음부터 그랬잖아요.”

솔의 물음에 은겸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뭉그적거리며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저 은겸이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라 호의로 솔을 도와준다고 태평하게 생각하기엔 다른 멤버들의 반응이 늘 신경 쓰였다. 은겸이 해 주었다고 말하면 늘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그런 반응 말이었다. 아무리 눈치가 둔한 솔이어도 멤버들과 은겸 사이에 썩 좋은 감정은 없다는 것과 그가 이런 식으로 호의를 베푸는 게 그리 흔한 일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뮤직비디오 촬영 때도 그랬고….”

그리고 지금도. 솔이 자신에게 이리 다정히 잘해 주는 이유를 은겸에게 물으려던 찰나. 영호가 병실 문을 열고 비죽 머리를 드밀었다. 은겸을 찾는 듯, 병실을 둘러본 영호는 깨어난 솔과 마주치자 반색을 표했다.

“어! 솔이 깨어났구나. 진짜 철렁했다. 심장이 열 개라도 모자라겠어.”

“네, 네. 영호 형 죄송해요.”

“어휴. 너도 참…. 일단 애들 촬영 끝나서 곧 이쪽으로 온다니까 다시 얘기하자.”

가슴을 쓸어내리는 시늉을 하는 영호에게 솔은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대역죄라도 지은 것처럼 사과하며 고개를 푹 숙이는 솔의 모습에 영호는 손사래를 쳤다. 영호는 은겸에게 그의 로드 매니저와 태오를 비롯한 다른 멤버들이 함께 병원에 곧 도착하니 매니저가 오면 같이 움직이라 말을 전했다. 어딘지 쭈뼛거리는 영호의 행동과 그 말이 맞물려 꼭 축객령같이 들렸다.

영호가 다시 병실 문을 닫고 나가자 은겸은 잡고 있던 솔의 손을 놓고 잠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얼굴 같기도 했고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얼굴 같기도 했다. 은겸의 다정한 갈색 눈동자가 솔이 아니라 막 놓친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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