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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를 뽑고 싶어-140화 (140/192)
  • #140

    ***

    파스 냄새가 코끝에 진동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연습실에 둘러앉아 가쁜 숨을 내쉬는 멤버들이 저마다 손목이며 발목이며 보이는 족족 파스를 붙이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땀으로 젖은 후드 티를 벗겨 보면 하얗고 네모반듯한, 싸한 냄새의 그것이 서너 군데는 더 붙어 있을 것이었다.

    말 그대로 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내일, 내일이면 무대에 올라야 했지만 아직도 불안하고 부족한 것투성이로 느껴졌다. 특히나 이번 미션이 유독 그랬다. 모두가 외부의 반응에 신경을 쓰고 있어서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솔 때문이기도 했다. 3일 전부터 갑자기 미친 듯이 연습하기 시작하더니 뛰고 구르고 넘어지고, 의 반복이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심장 철렁하게 만드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색이 된 가람이 말리기도 여러 번, 병원에 가자는 영호의 말도 거부하고 이번 촬영이 끝나면 그때 가겠다며 파스만 붙인 채 반복하고 있었다. 충분하다 싶을 만큼의 고난도의 아크로바틱한 동작들이 이어졌지만, 솔은 만족을 모르는 사람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꼭 다치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이제 됐나 싶으면 다시금 동작을 덧붙여 더 난이도를 높게 만들었다.

    득용은 그런 솔을 보며 ‘제2의 윤태오가 눈을 떴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평소라면 그런 솔을 태오가 나서 제재했을 텐데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나서질 않았다. 도리어 솔과 합을 맞춰 연습에 박차를 가할 뿐이었다. 덕분에 서로 부딪히고 넘어지고, 훈장 같은 멍만 몸에 늘고 있었다.

    상황을 모르는 이가 보았다면 둘이 치고받고 싸운 줄 알 것이었다. 리더인 태오가 말릴 생각이 없어 보이니 그다음으로 지호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다만 두 사람이 살벌하게 연습하는데, 지호를 포함한 다른 멤버들이 손가락만 빨고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덕분에 지옥 특훈 같은 며칠이 흘러갔다.

    솔과 태오가 마치 서로 배틀이라도 하는 듯이 개선한 안무는 그야말로 미친 난이도였고 폐활량이 월등히 좋은 지호조차도 호흡을 가누기가 힘들 정도였다. 춤에 다소 버벅대는 가람이 몇 번 난이도 조절을 제안하자 그나마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조율해 두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다른 멤버들은 간신히 숨을 쉴 구간은 마련했지만, 댄스 브레이크 구간에선 태오와 솔은 제 몸을 갈아 버리기로 작정한 듯했다.

    “쟤네 둘이 무슨 일 있었어? 싸웠나?”

    “아뇨. 우리 늘 같이 있었잖아요.”

    지호의 물음에 득용이 어깨를 들썩이며 고개를 내저었다. 눈뜨고 있는 동안에, 심지어는 잠이 들었을 때도 함께하는 멤버들이었다. 연습을 열심히, 무대 준비하는 데에 의욕을 보이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지금 두 사람의 모습은 지호가 보기엔 일종의 자기 학대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이러다 정말 큰 사고가 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지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솔은 깍지 낀 태오의 두 손바닥에 발을 밀어 넣고 그걸 받침대 삼아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이쯤이 되면 거의 곡예였다. 뛰는 타이밍에 맞춰 탄성을 받아 더 높이 뛸 수 있도록 태오가 받쳐 주자 솔이 정말 말 그대로 신선처럼 공중에서 휘돌았다. 어찌나 몸놀림이 날래고 가벼운지 민들레 홀씨처럼 두둥실 떠다니는 것 같았다.

    그의 동작에 미적 아름다움이야 두말할 것도 없었지만, 어찌 되었든 근본은 아주 높이 점프를 뛰는 동작이었다. 특히나 컨셉상 두 손이 결박된 듯, 손목을 교차한 채로 팔의 움직임을 제한했는데. 두 손을 실제로 묶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행동을 제한한 채로 위험한 동작을 하는 것이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솔이 무사히 착지하는 것을 볼 때마다 멤버들 모두 가슴을 겨우 쓸어내리곤 했다. 이어 솔의 두 발이 바닥에 닿자마자 그는 정말 어딘가에 줄이 매여 강제로 끌어당겨지는 포로처럼 움직였다.

    그다음은 멤버들의 손이 동시에 솔의 뒤에서 튀어나와 그의 몸을 붙잡고 다시 끌어당기는 것이었다. 솔과 태오를 제외하고 모두 숨을 돌리는 참이었기에 동작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가람이 음악을 끊어 주자 솔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 내며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호나 득용, 가람이 보기엔 흠잡을 곳이 없었는데, 두 사람의 마음에는 차지 않는 듯했다. 솔이 뒤를 돌아서며 팔짱을 끼고 있는 태오에게 말했다.

    “다시 한번 해 보자.”

    “착지하고부터 좀 끊기는 느낌이었지?”

    “응. 차라리 구를까?”

    “어떤 식으로?”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시선은 바닥에 두고 두 사람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태오의 물음에 솔은 조금 전, 착지했던 위치에 자리를 잡고 섰다. 그러고는 여러 방향으로 허리를 틀어 보였다.

    “앞 구르기는 좀 그렇지? 착지 반동으로 바로 훌턴이나….”

    “아니야, 힘 받기도 어렵고 허리 돌리기도 너무 짧아.”

    “그러면?”

    솔이 설렁설렁 동작을 보여 주며 제안하자 태오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의 반응에 솔은 태오에게서 등을 돌려 자신이 서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발자국을 찍듯이 걸음을 두어 번 옮겨 보더니 태오의 말에 동의하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솔이 영 만족스럽지 못한 얼굴이자 태오가 흘깃 그를 곁눈질하고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여전히 태오의 시선도 솔보다는 그의 발치에 가 있었다.

    “차라리 착지를 하는 건 어때? 무릎 지지하고 손을 뻗어서 다음 동작이랑 이어 버려.”

    “그러면 거리가 너무 짧아지잖아.”

    “…이 이상은 위험해.”

    태오의 제안을 확인해 보듯 몸을 가볍게 움직여 보인 솔이 토를 달았지만 이어지는 태오의 말에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몇 번 움직여 보니 다시금 트릭킹 같은 동작을 하기엔 힘 받을 구석이 없었다. 무리해서 하고자 한다면 못 할 것은 없었지만 괜한 사고로 이어질 확률도 높았다. 불안한 안무 연계와 사고로 무대를 망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래. 이쯤하고 잠깐 숨 좀 돌렸다가 최종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한번 맞춰 보자.”

    두 사람이 의견을 나누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지호가 한마디 거들었다. 내일을 위해서라도 오늘은 컨디션 조절이 필요한 날이었다.

    “의상 소식은 이번에도 아직이야?”

    두 사람을 쭉 지켜보고 있던 가람이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리려 태오를 향해 물었다. 하지만 정작 답이 돌아온 것은 지호에게서였다. 이번 주 내내 솔도 이상하지만, 태오도 이상했다. 솔은 꼭 연습광 태오가 된 거 같았고 어딘지 맹하게 있는 시간이 늘어난 태오는 솔이 같았다.

    “그러게…. 조금만 미리 해 주시면 좋을 텐데. 이럴 때마다 마음이 좀 불안해.”

    “아…!”

    지호의 답에 엉뚱한 솔이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스스로를 혹사하는 데에 미쳐서 의상 컨셉 뽑기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다른 생각을 안 하려 연습에만 온 신경을 쏟아붓고 있었더니 정말 다른 것들까지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제도 저녁 식사 후에 지호가 노래를 봐주겠다고 보컬 연습실에서 보자 했었는데, 까맣게 잊고 몸을 풀고 있었다. 지호가 악보를 들고 찾아오지 않았다면 끝까지 몰랐을 것이었다.

    깜빡했다며 거듭 사과하는 솔에게 지호는 그저 웃으며 피곤해 보인다고 좀 쉬라 했지만, 솔은 고개를 내저었었다. 분명 그때에도 의상에 관한 이야기를 짧게 했었기에 보상 상자도 확인하고 의상에 대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었다. 그런데 그사이 또 잊어 먹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요즘 들어 시스템 창의 등장 빈도가 낮아진 이유도 한몫했다. 지난번에는 시간제한으로 경각심을 일깨워 주더니 이번엔 그런 것도 없었다.

    시간 끌지 말고 이참에 해결해야겠단 생각에 솔은 모처럼 휴식을 취하자는 지호의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지난 3일간 한 번을 안 쉬던 솔이 먼저 잠시 쉬자 하자 다들 일제히 그를 쳐다보았다. 솔이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연습실을 나서자 득용이 ‘휴’ 하며 크게 한숨을 내쉬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솔이 형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에요?”

    득용의 물음에 멤버들 모두가 태오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긴 하지만 말해 줄 수 없는 태오는 모르겠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거짓말에 소질 없기는 태오도 마찬가지였지만, 워낙에 무뚝뚝하고 말수도, 표정의 변화도 적은 태오이기에 다들 큰 변화를 느끼지는 못했다.

    화장실 칸 안에 숨는 건 또 오랜만이었다. 한동안 이런 일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이 좁은 공간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땀을 뻘뻘 흘려 조금 전까지는 더웠는데, 화장실의 서늘한 공기와 닿으니 이젠 또 몸이 으슬으슬 추운 느낌이었다. 잠시 숨을 고른 솔은 익숙하게 컨셉 뽑기 창을 떠올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눈앞에 푸른색 창이 떠올랐다.

    <3ROUND 스타 라이트 : 불야성 에디션>

    ★R-★SR 컨셉 등장!

    [ 1회 뽑기 | 10회 뽑기 ]

    [‘컨셉 랜덤 티켓’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사용 가능한 컨셉 랜덤 티켓 개수 : 14]

    [사용 가능한 컨셉 랜덤 골드 티켓 개수 : 2]

    솔은 잠시 남은 티켓의 개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사실 이번 무대의 분위기는 원곡 ‘HUSH’의 컨셉을 그대로 따와 득용의 말을 빌리자면 ‘섹시’와 ‘퇴폐’였다. 딱히 이전의 교복이나 한복처럼 특별한 풍의 의상일 필요는 없었다.

    다들 의상 소식이 늦어짐에도 그리 조급해하지 않은 이유기도 했다. 막말로 그냥 정장 한 벌 입고 무대에서도 크게 도드라질 만한 문제 없었다. 지난 2라운드 미션에서 컨셉 의상 때문에 고생을 했던 게 떠올랐다. 아낄 수 있을 때 티켓을 최대한으로 아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자 솔은 미련 없이 1회 뽑기를 선택했다.

    굳이 열 장씩이나 사용하여 여러 선택권을 둘 필요가 없을 것 같단 생각에서였다. 다만 대신 솔은 골드 티켓을 사용하기로 했다. 보아하니 금색의 반짝이는 카드들은 비교적 다른 의상보다 화려하고 디테일이 많은 의상이 나오는 것 같았다.

    반짝이는 빛과 함께 시야에 금색으로 반짝이는 카드 한 장이 떠올랐다. 어지간한 의상이면 단호하게 선택할 생각이었다. 더 뽑으면 더 좋은, 멋진 의상이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이 없을 수야 없었지만 후에 생방송 무대를 위해서라도 티켓을 아껴야 했다. 솔은 이번 미션을 반드시 성공할 생각이었다. 자신이 망쳐 버린 태오와의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서. 이번 미션을 성공하고 나면 전처럼 왁자지껄한 친구 같은 사이로 모두가 돌아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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