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연습하는 내내 땀이 너무도 났다. 트라우마 페널티가 반으로 줄며 전처럼 진이 빠지는 일이 드물어져 이 정도로 쫄딱 젖어 본 적은 오랜만이었다. 태오를 옆에 두고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은 동작을 반복하려니 긴장한 탓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댄스 퍼포먼스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 무대이니만큼 댄서인 태오와 솔이 메인에 나서야 했다. 태오의 말대로 가장 합을 맞춰야 하는 사람은 두 사람이었고 연습에 있어서 더 도움이 되는 것도 맞았다. 잘 알고 있지만 솔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 낯선 상황에 적응하고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
본격적으로 연습이 시작되자 솔은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거리다가 고장이 난 로봇처럼 삐거덕거리기도 했다. 솔이 그러면 그럴수록 태오는 몸으로 직접 그의 행동을 교정하기 시작했고 그런 접촉이 가해질수록 솔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늘 솔의 상태를 눈여겨보고 미리 그가 불편할 만한 행동을 자제하는 태오였지만, 이번에는 열정이 과했다.
솔과 팀에 붙은 꼬리표를 떼어 버리고 싶은 욕심에 조급증이 일어 솔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더불어 사실 솔뿐 아니라 이 컨셉에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태오도 마찬가지였다. 애써 인식하려 않으려 노력하느라 점점 하얗게 질려 가는 솔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등 뒤에 바짝 붙어 몸을 밀착한 태오가 마치 솔을 끌어안듯 팔을 둘렀다. 그러고는 쭉 뻗은 솔의 팔을 따라 어깨를 거쳐 목까지 빠르게 손바닥으로 훑었다. 땀을 흥건하게 머금은 머리카락에서 떨어져 내린 땀방울이 태오의 손등 위로 떨어졌다.
“하나, 둘, 셋, 넷. 여기서 강가람이 왼편에서 당기고.”
태오의 설명과 함께 그가 힘을 가하는 대로 솔은 허리를 젖혔다. 태오의 손이 목을 감쌀 때마다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려 엉망이 되는 구간이었다. 목을 조르는 듯, 강한 손에 끌려가지 않으려 팔을 뻗고 의지할 곳을 찾아 허우적거리는 동작. 처음 설명만 들었을 땐 볼품없을 것처럼 들렸던 아이디어였지만, 솔이 홀로 서서 나긋나긋한 손짓으로 표현해 보이자 모두의 의심이 무의미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얗고 긴 손가락이 애처롭게도 허공에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자면 무대와 상관없이 정말 절로 움켜잡고 싶어졌다. 다만 문제는 그 손을 저지하는 역이 ‘윤태오’, 그 손을 붙잡는 역이 ‘강가람’이라는 점이었다.
홀로 오롯이 서서 안무를 표현할 땐 흠잡을 구석이 없었는데, 좌우로 가람과 태오가 서니 문제가 발생했다. 태오의 손이 목덜미에 닿을 때마다 움츠리고, 가람이 손을 붙잡고 끌어당길 때마다 솔이 자꾸만 손을 반사적으로 내뺐다. 이때부터 솔이 두 사람을 급격히 인식하면서 행동이 굼떠지고 눈에 띄게 긴장해 뚝딱거리게 되는 것이었다.
그 속을 모르는 태오는 안타까웠다. 무대에서 날아다닐 수 있음에도 그게 수월치 않아 고생하는 솔이 안쓰럽기도 했고 그저 솔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이 싫었다. 춤을 출 때면 세상 제일 고귀한 보석처럼 고아하게 빛나는 선한 그를 다른 사람들도 알아주었으면 했다.
태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늘 손가락 안에 여유 공간을 두고 살짝 말아 쥐던 손이 정말로 솔의 목덜미를 한 손에 덥석 잡아 버렸다. 놀라 흐트러질 법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반복적인 연습 덕인지 솔은 이번에는 움츠리지 않고 타이밍에 맞춰 다음 동작을 이어 갈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그다음에 발생했다. 넘어갈 듯 허리를 젖히는 솔의 목을 조르고, 다른 한 손으론 그의 등을 받쳐 주자 태오의 얼굴이 지척에서 솔을 내려 보게 되었다. 순간적으로 확 다가온 태오의 얼굴에 솔은 몸을 뻣뻣하게 긴장시켰다. 부드럽게 휘어 넘어가던 허리가 순간 통나무처럼 뻗대자 그를 받쳐 주던 태오가 놀라 힘을 주었다.
물랑 루즈의 탱고라도 추듯, 밀착된 상황에 솔은 ‘흡’ 하며 숨을 들이마셨다. 다가온 태오의 얼굴이 너무도 가까워 땀에 흠뻑 젖은 자신에게 혹 땀 냄새가 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솔은 황급히 그를 밀치며 품에서 빠져나왔다.
노골적으로 밀어내는 행동에 태오는 조금 놀란 듯 방금까지 솔을 안고 있었던 그 자세로 마네킹처럼 굳어 버렸다. 아무것도 없는 팔을 허공에 들고 마치 마임을 하듯, 제 품에 존재하지 않는 솔을 여전히 받치고 있는 태오의 모습에 솔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솔은 있는 힘껏 태오를 밀쳤다. 손바닥이 단단한 태오의 가슴팍을 때리자 얻어맞은 태오보다 솔의 손바닥이 더 아릿했다. 아뿔싸, 너무 세게 밀쳤다. 그의 가슴팍을 두 손으로 ‘퍽’ 소리가 나게 밀쳐 태오가 뒷걸음질을 칠 정도였다. 등을 받쳐 주던 손이 순간적으로 힘이 빠지자 뻗대던 솔의 몸이 훅 바닥으로 추락했다.
정확히는 추락할 뻔했다. 솔의 밀침에 비틀거렸던 태오가 재빨리 다시금 몸을 바로 하고 팔에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태오는 솔이 떨어지지 않도록 더욱 바짝 끌어당겨 안았다. 덕분에 솔은 태오를 밀어내기 전보다 더욱 그와 밀착되었다. 대신 이번에는 다리를 버둥거려 허리를 바로 세운 솔은 제 발로 걸어 태오의 품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마침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서자 그제야 태오의 눈에 땀으로 범벅이 된 솔의 얼굴이 들어왔다.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그의 표정. 돌이켜 보니 연습 내내 그가 몸을 내빼거나 굳히거나 하는 일이 많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태오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태오는 순간 솔을 처음 만났을 때로 돌아간 기분이 되었다. 그간 제 손길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해맑게 웃는 솔에게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아니면 상황이 바뀌며 생긴 과욕 때문일까. 솔이 불편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눈치챈 태오는 다소 멍했다.
이렇게 눈에 띄게 당황하는 경우가 드문 태오였지만 이번에는 적잖이 놀랐다. 솔이 자신을 강하게 밀어냈다는 것과 무엇보다 자신이 욕심에 눈이 멀어 솔을 보고 있지 않았다는 것 두 가지 지점에서 말이었다.
의도적으로 솔을 인식하지 않으려 피한 것도 있었지만, 저렇게 땀이 범벅이 되도록 혹사했는데 늘 입에 달고 사는 그 흔한 ‘쉬자’는 말 한마디를 안 했다. 연습을 정확하게 언제 시작했더라,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습 덕에 열이 올라 뺨이 발그레했지만, 혈색이 도는 것과 별개로 낯빛이 좋지 않았다. 태오는 여전히 들고 있던 팔을 내리며 솔에게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괜찮아?”
하지만 정작 그렇게 묻는 태오의 목소리는 그리 괜찮지 않게 들렸다. 솔 저 스스로도 반사적으로 저지른 제 행동에 놀라 태오의 물음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강한 거부가 강한 긍정을 나타날 때가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가만히 그의 손길을 받고 있었으면 그냥 넘어갔을 일을, 강하게 쳐 내어서 상황을 오히려 이상하게 만들었다. 누가 보더라도 솔이 그의 손길과 그와의 접촉에 예민하게 반응했다는 걸 나타내는 행동이었다. 실수였다.
그리고 태오는 평소 솔이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그가 불편해하는 상황을 잘 눈치채곤 하는 사람이었다. 솔이 조금 전 접촉을 꺼렸다는 걸 그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얼어붙은 솔이 입을 꾹 다물고 서 있자 태오가 나지막이 물었다.
“혹시, 내가 불편해?”
솔에게 자신이 불편하냐 묻는 태오의 표정은 덤덤하기 그지없었지만, 그 속내는 꽤 복잡했다. 요 며칠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첫 무대가 대중 앞에 선보인 시점과 솔이 자신을 은근히 피하는 시점이 겹쳐 태오는 그가 또 괜한 자책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더욱 이번 무대에 열중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 이상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늘 연습실에서 돌아오면 힘들다며 침대에 누워 도무지 일어나질 않는 솔이 요즘 들어 거실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득용과 노닥거리는 시간이 늘었다. 졸음을 참지 못해 하품을 연거푸 하면서도 소파에 앉아 막내와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모습이 그저 귀엽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자신과 방에 함께 있는 시간을 줄이려 잠을 참아 가며 버텼던 걸지도 모르겠단 의심이 들었다.
무엇이 잘못되었지? 태오는 자신이 무엇을 놓친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솔을 향한 제 마음을 입 밖으로 내거나 눈에 띌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좋아한다 인정하고 난 뒤로 더욱 신경을 썼으면 썼지, 덜하지는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에겐 당연히 잘해 주고 싶은 법이었다. 좋은 것만 주고 좋은 일만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
아무리 기억을 되새겨 봐도 솔에게 미움받을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도리어 그가 제 마음을 눈치라도 챌까, 근래 들어선 모든 상황에서 한 발짝 물러서 지켜보는 비중이 더 컸다. 더 가까이 다가가고 만지고 싶고 그의 앞에 서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솔이 손 뻗으면 언제든 잡을 수 있는 거리에 서서 웃는 그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뒤로 한 발 물러서 있을수록 가람이 솔에게 보내는 감정이 더 선명하게 느껴져 씁쓸하기도 했다. 하지만 멤버들과 어울리면서 또 무대를 준비하면서 제 길을 찾아가고 행복해하는 솔을 보면서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지켜 줘야지. 지금까지 모든 것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런 태오에게 오늘 완곡한 거절의 신호가 찾아왔다. 어디서 잘못된 것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혹시, 제 마음을 알게 된 것은 아닐까? 그것 때문에 자신을 불편해하는 거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솔이 침묵하는 가운데 태오의 표정이 점점 굳어 갔다.
그런 태오를 마주하고 선 솔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불편하냐 묻는 태오의 질문에 바로 대답을 못 하고 우물쭈물해 버렸다. 숨 막히는 정적은 사실상 불편하다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크게 도드라지지는 않지만, 점점 굳어 가는 태오의 얼굴에 솔은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그냥 힘들어서 그랬다, 미안.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면 이런 숨 막히는 정적이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었다. 바보처럼 늘 이런 상황이 닥치면 제대로 자신을 변호하지 못하고 악화만 시키는 자신이 진력이 났다. 그런데도 끝내 입술이 떨어지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