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를 뽑고 싶어 (125)화 (125/192)

#125

쏟아지는 박수갈채에 지호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솔이 재차 ‘뭐라고?’ 되물으며 몸을 지호에게 붙였다. 하지만 지호는 대답 대신 고개를 살랑살랑 가로저었다. 산뜻하게 흔들리는 그의 머리칼과 달리 얼굴을 무겁기 짝이 없었다. 영문 모를 지호의 표정에 솔은 걱정이 되었지만 더 이상 캐물을 수는 없었다. 본격적으로 심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특별 심사 위원으로 자리한 서승훈은 보컬에 있어 깐깐한 심사 위원이었다. 그가 무대에서 부족했던 점을 지적할 때마다 참가자들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아마도 성솔 빼고는 모두가 아는 국민 가수 ‘서승훈’의 훈수기 때문인 듯했다. 내는 족족 히트곡인 가요계의 대선배. 굵직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심사 위원으로 자주 출연하는 그는 지호와 인연이 제법 깊었다.

서승훈은 깐깐하고 엄격한 평가와 달리 점수는 제법 후한 편이었다. 대면식 무대에서 받은 자극이 있었는지, 다른 참가자들의 무대도 지난번과 달리 퀄리티가 한층 높아져 있었다. 솔을 포함한 대부분의 참가자가 점수에 반영이 안 되었던 지난 무대와 달리 이번 무대부턴 심사 위원들의 점수가 제법 야박하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생각과 달리 앞선 팀들 모두 꽤나 높은 점수를 얻고 밝은 얼굴로 무대에서 내려갔다.

생각보다 큰 점수 차이는 없었다. 적게는 2, 3점. 많아도 12점 이상 벌어지지 않았다. 다른 조가 평가를 받으러 무대에 올라갈 때마다 순위가 변동되었다. 미션의 주된 평가가 ‘보컬’에 고정되어 있다 보니 아예 안무나 퍼포먼스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노래에만 승부수를 둔 팀도 있었다. 다른 팀들도 상대적으로 퍼포먼스에 비중을 덜 두다 보니 지난번과 달리 투자할 시간이 제법 있었던 터라 무대의 질이 훨씬 높아져 비등비등했다.

심사 위원의 평가와 쭉 나열된 점수들을 보고 있자니 솔은 마음이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순서는 빠르게 지나 명하가 속한 5조가 무대에 올라섰다. 긴장하지 않은 듯, 유달리 환하게 웃는 명하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솔은 속이 뒤틀렸다. 밝게 웃는 명하와 달리 무거운 표정의 지호가 자꾸만 신경에 거슬렸다. 두 사람의 대비가 솔을 어딘지 불안하게 만들었다.

괜히 기우이겠거니, 솔은 도포의 동정을 살짝 매만졌다. 빳빳하고 새하얬던 동정엔 어느새 땀이 스며들어 있었다. 불안해하지 말자. 솔은 그렇게 속으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땀이 스민 동정이 열심히 했다는 증거였다.

5조는 후한 평가를 받았다. 각각 심사 위원들이 매긴 점수가 화면에 표시되더니 이내 숫자가 빠르게 지나가며 합산된 최종 점수가 나타났다. 점수가 공개되자마자 김명하는 머리가 무대에 닿을 정도로 깊게 숙이며 기뻐했다. 6조와 솔이 속한 7조 총 두 개 조의 평가만을 남겨 둔 현재 1위는 5조가 차지하게 되었다.

5조가 물러나고 6조가 무대에 올랐지만, 순위에는 변동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6조가 현재로선 최하위의 점수를 받게 되었다.

“7조 YC 엔터테인먼트!”

MC의 호명에 박수를 받으며 솔과 멤버들은 무대 위로 향했다. 일찌감치 결과를 알려 줬던 저번과 달리 아직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는 시스템 창에 솔은 조금씩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색하지 않고 계단을 사뿐히 뛰어오르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솔의 손을 덥석 잡았다. 돌아보니 솔의 바로 뒤에 따라오던 지호였다.

솔은 지호의 손길이 왜인지 자신을 위로하고 진정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느꼈다.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그런 느낌이었다. 솔은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지호에게 몸을 붙이며 작게 속삭였다.

“잘될 거야.”

자신이 듣고 싶었던 말이었지만, 솔은 지호에게 해 주었다. 오디오에 잡히지 않을 만큼 아주 작은 속삭임이었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다른 누구보다 정작 솔 자신이 제일 편안해졌다. 지호가 대답 대신 솔의 손을 더욱 꽉 붙잡았다.

리더인 태오를 중앙에 두고 대열을 맞춰서 인사를 하니 심사 위원들의 평가가 이어졌다. 많이 연습하고 좋아졌다곤 하나 솔의 노래엔 엄연히 실수가 있었다. 솔과 더불어 득용은 보컬의 안정성, 음정에 대해 지적받았지만, 전체적으로 콘셉트와 무대 자체와 음색에 대해선 호평이 이어졌다.

더불어 연습생, 신인답지 않게 사고에 당황하지 않고 잘 대처했단 칭찬도 들었다. 심사 위원이 그 말을 하는 순간 득용이 태오와 솔을 슬쩍 곁눈질했다 두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솔은 그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이 무척 기분이 좋았다.

짧게 눈짓을 주고받은 그 행동들이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진짜 한 팀이 된 기분이어서 어깨가 으쓱해졌다. 이내 심사 위원들의 평가가 이어지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던 서승훈이 옆자리의 심사 위원과 눈짓을 주고받더니 마이크를 들었다.

“도지호 군. 오랜만이에요.”

“안녕하세요.”

“얼마 만이죠? 타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만났었죠. 사실 지호 군과 제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어요.”

특별 심사 위원 서승훈은 지호에게 알은체를 했다. 태평하게 아는 사이였구나, 하며 솔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서승훈의 입에서 생각지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많이 응원하던 친구였거든요. 근데 내가 지호 군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했나 봐요. 그때가 벌써 몇 년 전인데 지금이랑 별로 달라진 게 없어요.”

솔은 맞잡을 지호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오늘 무대는 모두가 잘했지만, 솔은 이 자리에 모인 참가자 중 1등을 뽑으라 한다면 지호를 뽑을 것이었다. 그만큼 오늘 지호는 멋진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런 그가 들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던 평가에 솔은 놀라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눈을 똥그랗게 뜬 채 지호를 바라보았다.

“아꼈던 만큼 아쉬움이 크네요.”

서승훈의 말에 지호는 고개를 숙였다. 지호가 몇 번이고 다시 무대를 선보여 최상의 컨디션으로 최상의 노래를 한다고 해도 서승훈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올 리 없다는 걸 지호는 알고 있었다. 서승훈과 처음부터 악연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가수가 되겠다고, 좀 한다 싶은 노래 실력으로 참가했던 오디션 프로그램, 그곳에서 지호는 서승훈과 처음 만났다. 대형 소속사의 히트곡을 다수 보유한 유명한 발라드 가수. 지호는 서승훈의 선택으로 오디션 예선을 통과할 수 있었다. 오디션 프로그램 진행 내내 서승훈은 지호에게 우호적이었고 몇 번 위기에서 도움을 준 적도 있었다.

나이 차이가 그리 많이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단순히 아는 사이, 형 동생 하는 사이를 넘어 한동안 그는 지호에게 스승 같은 사람이었었다. 그렇기에 지호는 늘 감사한 마음으로 서승훈에게 깍듯이 대했었다. 조금 어려운 사람이었으나 많은 도움을 주었던 은인임에는 변함이 없었고 지금은 떠나왔지만, 첫 소속사를 선택하게 된 이유도 서승훈이었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 승훈의 추천으로 그와 같은 대형 소속사에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즉 지금, 이 촬영장에 있는 승훈과 지호, 명하와 그 친구들은 한때 같은 소속사에서 얼굴을 마주쳤던 사이였었다.

하지만 상황은 좋게만 풀리지 않았다. 그곳에서 함께하는 동안 승훈은 지호에게 꽤 많은 간섭을 했고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어 왔던 관계를 지속해 나가길 원했다. 그곳에서 경쟁을 버티지 못하고 도태되었던 지호에게 승훈은 큰 압박감을 주었고, 많은 것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이미 고립되고 매몰된 지호는 그의 기대에 부응할 수가 없었다.

결국 두 사람 사이의 끝엔 실망과 배신감 같은 찌꺼기만 남았다. 약간의 언쟁이 있었고 지호는 도망치듯, 인사 없이 지호는 그 소속사를 나오게 되었다. 지호가 떠난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는 못했지만 돌아가는 꼴을 보아 하니 서승훈은 여전히 지호에 대한 감정의 응어리와 실망이 남아 있는 듯했고, 어째서인지 명하와는 제법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명하에게 호의적일 거라는 사실은 가늠하지 못했지만, 그가 저에게 좋지 않은 평을 내릴 거라는 것은 지호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과유불급이라고, 오히려 고음과 과한 기교가 감정의 몰입을 방해했어요. 이 곡의 강점은 감정이에요.”

지호는 그냥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승훈의 비평을 들었다. 예전과 하나 다를 바가 없는 비평들이었다. 물론 맹목적인 비난은 아니었으나 그 비평 안에 정말 한 톨의 감정도 남아 있지 않다고는 하기는 어려웠다.

지호의 노래가 완벽할 순 없지만 객관적으로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에선 가장 뛰어났다. 그런데도 혹평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중간중간 화살이 솔이나 다른 멤버들에게 돌아가기도 했다. 서승훈의 평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지호의 고개가 더욱 깊게 숙어졌다. 이 순간만큼은 그에게 가르침을 받던 순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서승훈의 평가를 듣고 있자니, 정말 자신들이 제일 부족한 팀이 된 기분이었다. 솔과 득용은 이 상황이 자신들의 탓인 거 같아 덩달아 함께 고개를 숙였다. 상황이 이쯤 되니 솔의 마음에 슬그머니 불안이 움트기 시작했다. 승훈의 서슬 퍼런 혹평을 듣고 있자면 자신들이 꼴찌를 기록할 거 같았다.

안정의 포션이 아직 활성화 중임에도 그런 생각이 들자 솔의 손이 벌벌 떨려 오기 시작했다. 그의 떨림을 느낀 지호가 손을 깍지 껴 더욱 꽉 붙잡았다.

서승훈의 혹평이 이어지자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 점을 인식한 옆자리의 심사 위원이 중재할 겸, 승훈의 의견과 조금 다르다며 몇 마디 옹호했다. 적정히 선을 긋는 그의 말에 승훈도 이미지 관리를 하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미 솔의 불안은 걷잡을 수 없게 커지고 있었고 지호를 포함한 멤버들의 기분은 바닥을 친 지 오래였다.

모든 것이 끝난다는 불안감이 손을 넘어 솔의 온몸에 번질 무렵. 안심하라는 듯이 고개 숙인 솔의 눈앞에 민트색 알림 창이 떠올랐다.

[퀘스트 <이제는 들려줘야 할 시간!> 성공]

[2ROUND에서 무사히 순위 3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성공 보상으로 2ROUND 보상 상자를 획득 획득하셨습니다.]

[<보너스 미션>을 성공하였습니다.]

[보너스 미션 성공 보상으로 컨셉 랜덤 골드 티켓 X1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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